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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Jason 님의 서재입니다.

예술천재 탑배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박천상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3.19 17:17
최근연재일 :
2024.04.15 08:0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46,487
추천수 :
1,856
글자수 :
215,706

작성
24.03.1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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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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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내 생에 마지막 오디션

DUMMY


다음날 이른 점심.


최해문은 역에서 내려 마지막 남은 오디션 현장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일찍 출발했기에 넉넉하게 지정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위치는 KBC의 방송국의 3층. 이곳에 똑같은 신분으로 몇 번이고 와봤던 최해문은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와.”


천천히 열린 문 뒤로 분주한 오디션장의 풍경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역시 공개 오디션이라서 그런가.’


천금 같은 기회를 잡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이 많은 사람이 전부 경쟁자라고 생각하면 아찔해질 만큼의 사람이었다.


‘이만큼이나 사람 많은 오디션이 언제였더라.’


한 7년 전에 봤던 천만 감독의 영화 오디션이 이런 느낌이었다.


그때는 너무 긴장돼서 연기하다가 대본을 떨어트렸을 정도였는데.


‘···근데 이상하게 긴장은 안 되네. 왜지?’


이보다 훨씬 적은 곳에서도 심장이 쿵쾅거려 참을 수 없을 때도 많았던 최해문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긴장이 잘되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인 데다가 경쟁자가 한가득한데도.


오히려 바짝 기합을 넣으려고 해도 여유가 강제로 흘러넘치는 기분이랄까.


어제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난 후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포기할 때가 되니 더는 미련이 없는 탓인가.


어느 쪽이건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 생각하고 있던 최해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오디션 참가 시죠?”

“아. 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안내자를 따라 들어가자 널찍한 방에 사람들이 간이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대본이라도 보면서 감이라도 살릴까.’


어제의 일로 의욕이 조금 살아난 최해문은 가져온 가방을 열어 대본 뭉치를 꺼냈다.


그중 [탐정 형사 강현철]이라는 작품과 가장 비슷할 만한 대본을 찾아냈다.


[비의 살인].


오직 비가 오는 날에만 살인을 하는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


그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자 수십 번을 반복해서 읽고 연습한 대본이었다.


형사물이다 보니 오디션 대상 작품과도 잘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최해문은 몇 번이나 봤는지 벌써 너덜너덜한 대본을 집어 들어 첫 페이지를 펼치려고 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작품으로 대본을 확인했습니다. 필요한 능력치인 사용자의 ‘연기’ 능력을 측정합니다.]


순간적으로 그의 귀에 들리는 소리에 최해문이 손이 움찔했다.


“···?!”


간신히 입을 막지 않았다면 비명이 터져 나올 만큼 깜짝 놀랐다.


[대본을 리딩합니다.]


‘뭔데?’


마치 귀를 막고 말할 때처럼 먹먹하게 안에서 울리는 소리.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혼이 빠진 최해문을 두고 말은 계속 이어졌다.


[리딩을 완료했습니다. 사용자의 연기 능력이 대본의 수준을 넘어 기존 86%의 이해도가 100%로 상승했습니다. 이해도가 일정 수준을 달성하여 분야 전환이 가능합니다. 다른 분야로 전환하시겠습니까?]


‘이게 뭐야.’


자기 마음대로 줄줄 읊어지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Yes/No라고 적힌 버튼.


마치 영화 속에서 보던 홀로그램과 같은 그것은 당장이라도 만져질 것처럼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뭐지.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진짜 뇌가 과부하가 걸렸나.’


확실히 요 며칠 그의 삶이 격정적이긴 했다.


‘결국, 정신병까지 왔구나.’


하긴 12년 동안 이러고 살았는데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그래도 환각이라니.


혹시나 하고 열심히 눈을 비볐지만 변하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더욱 선명해지는 것이 마치 제발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주실 간곡히 바라는 듯 보였다.


‘일단 눌러나 보자.’


정말로 정신병이라면 누른다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겠나.


그런 생각으로 최해문은 조심스럽게 Yes 버튼을 눌렀다.


[확인했습니다. 전환할 분야를 선택해 주세요.]

[1. 음악]

[2. ?]

[3. ?]


다시 나타난 예상치 못한 변화에 최해문은 이번에는 선택지를 살폈다.


‘심지어 고를 수도 있어?’


정작 뜬 3가지 선택지 중 누를 수 있는 것은 1번의 음악이었다. 나머지는 물음표와 함께 회색빛으로 된 것이 누르지 못한다는 뜻임이 분명했다.


그저 정신이상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이상했다. 이토록 눈앞에서 정밀하게 움직이는 환각이 있던가.


그러나 이게 정신병이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정신병치고는 너무 그럴듯한데?’


최해문은 여기까지 왔으니 못 누를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눌렀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한번 변화가 일어났다.


“···!”


아까 전 내레이션처럼 들리던 소리가 이번에는 노랫소리로 변했다.


아주 낮게 깔리는 피아노로 시작하는 노래.


차오른 물처럼 금방이라도 발목을 채갈 것만 같은 지독하게 무거운 음악이 귀를 때렸다.


‘진짜로 음악이 나오네.’


다행히 이번에는 처음 소리를 들었을 때보다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눈앞에 홀로그램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충분히 충격이었으니까.


대신 그 당혹감이 사라진 자리에 무언가 채워졌다.


감상이라는 예술인다운 태도가.


‘이거 [비의 살인]이랑 너무 어울리는데.’


지금 그의 손에 들려있는 대본의 첫 장면은 오프닝에서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가 빗속을 거니는 모습.


노래를 들으면서 찬찬히 대본을 살펴보니 정말 찰떡같이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마치 이 장면을 위해, 아니 장면에서 태어난 듯이.


‘잠깐. 장면이랑 어울린다고? 혹시?’


최해문은 페이지를 넘겨 아예 다른 부분으로 넘어갔다.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추격전 파트.


그 부분을 펼쳐서 바라보자 잠시 뒤 소리가 바뀌었다.


빠른 비트의 드럼 소리와 귀를 째는 듯한 강렬한 기타 소리.


심장을 움켜쥐려는 듯 강렬한 음악이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에 상대를 죽일 듯이 뒤쫓는 형사의 얼굴이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까지 확인하자 어떤 확신이 그의 마음에 찾아왔다.


‘전환한다는 게 이런 거였나.’


말 그대로 대본의 내용을 음악으로 바꿔준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전환된 음악은 단순히 어울리는 수준이 아니라 최해문이 알고 있는 이 작품의 원래 삽입곡보다도 좋았다.


지금 당장 작품에다 이 노래를 삽입해도 평가가 올랐으면 올랐지, 떨어지지는 않음이 분명했다.


‘굉장한데.’


원래도 대본을 볼 때 때때로 원작의 음악을 듣곤 하던 최해문은 이 어울림이 퍽 마음에 들었다.


자주 읽어 익숙한 것도 있겠지만 페이지가 쑥쑥 넘어가는 게 이것만으로도 작품이 더 잘 이해가 되는 듯한-


‘···그러고 보니 아까 이해도가 올랐다고 했지?’


86%에서 100%로 올랐다고 한 이해도.


최해문은 자신이 수없이 봐온 대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내가 이 대본을 다 이해한 건 아니긴 한데.’


아주 오랫동안 작품을 분석했지만, 그는 이 작품에 항상 의문인 부분이 있었다.


작품의 결말.


범인과의 대치 순간을 넘어 작품이 끝나갈 때. 범인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조금씩 풀려가는 마지막이 그에게는 항상 고민이었다.


그 감정선도 행동도 모두.


‘어디 한번.’


끝을 펼친 최해문은 볼펜으로 온갖 표시가 되어 있는 대본을 찬찬히 읽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음악이 흘렀다.


엔딩에 어울리는 잔잔하고 소름 끼치는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자 그의 눈이 찬찬히 작품의 마지막을 탐닉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외마디 탄식을 내뱉었다.


“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작품의 일면이 단박에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 여기서 범인이 이런 심정을 가졌는지, 왜 이런 결말을 작가가 냈는지까지 전부다.


‘내가 여길 놓치고 있었구나.’


너무 사소한 부분이라 놓치고 있었던 힌트를 눈치채자 그동안 몰랐던 부분이 너무나 선명했다.


마치 아주 잘 설명된 작품의 설명서가 갑자기 날아와 머리에 꽂힌 것 같았다.


‘···이거 대체 뭐지?’


오랜 고민이 단박에 풀리는 기분. 그걸 맛보자 눈앞의 홀로그램을 바라보는 최해문의 감정이 변했다.


이해할 수 없는 정신질환에서 써먹을 수 있을 만한 무언가로.


‘지금 분명 내 연기 능력이 기준을 넘어서 이해도를 올렸다고 했어. 그럼 아예 읽어 본 적 없어서 이해도가 0%인 건? 그것도 되나?’


최해문의 머릿속은 온갖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거면 하루에 몇 개의 대본을 볼 수 있을까. 그럼 내가 아예 해석 못 한 대본은 어떻게 될까.’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완전히 포기하려고 했던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다른 것도 한번 시험을-’


흥분한 최해문은 얼른 가방에서 다른 대본을 꺼내 실험을 하려는 순간.


“다음 42번 최해문님. 들어가세요.”


얼마나 집중하고 [비의 살인] 대본을 봤던지 벌써 그의 차례가 돌아와 있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결국, 그는 다음 대본을 꺼내지도 못하고 오디션이 진행되는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람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는 대본을 기반으로 연기하시면 됩니다. 연기 전 준비 시간은 10분입니다.”


작은 대본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최해문은 고민 없이 대본을 집어 들어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어디 보자.”


가장 위에 적힌 이 대본에서 보여줘야 하는 역할을 나타내는 문장 하나.


‘사이코패스 살인마.’


그 밑으로는 대략 2분 정도면 연기를 마칠 수 있는 짧은 대본이 적혀 있었다.


여기까지 본 최해문은 심사위원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단박에 파악했다.


이 대사와 지정된 행동을 통해 주제를 표현하라.


그리고 그걸 확인한 순간 약속한 것처럼 속에서 소리가 울렸다.


[대본을 확인했습니다. 필요한 능력치인 사용자의 ‘연기’ 능력을 측정합니다. 대본을 리딩합니다.]


...


[대본의 리딩을 완료했습니다. 사용자의 연기 능력이 대본의 수준을 넘어 기존 0%의 이해도가 100%로 상승했습니다. 이해도가 일정 수준을 달성하여 분야 전환이 가능합니다. 다른 분야로 전환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선택은 yes.


바로 버튼을 누르자 역시나 음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창이 나오고 최해문은 고민 없이 음악을 눌렀다.


‘역시 우연이 아니었어.’


대본을 집어 들자 2번이나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건 단순히 환각이나 정신병이 아니다.


최해문은 얼른 대본을 펼쳐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고작 한 페이지짜리 대본을 다 본 후 완전히 해석까지 마치는 데에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단순히 이해 수준이 아니었다.


아까 전 [비의 살인]은 명확한 원작이 존재해서 잘 느끼지 못했지만, 난생처음 보는 이 대본을 보니 어떤 느낌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다 보이네.’


여기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이 대사에는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지.


어떤 톤으로, 어떤 마음과 눈빛으로, 어떤 과거를 품은 것처럼.


대본을 쓴 사람이 가장 바라던 완벽한 연기의 가이드라인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다.


다만 대본의 해석 이외에 부분에서 최해문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음악이 다른데.’


해석까지는 [비의 살인] 대본을 봤을 때와 똑같은 효과였다.


하지만 들리는 배경음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허밍(humming).


앞선 대본은 정말로 이대로 잘라서 넣기만 해도 충분한 음원이었다면, 이 짧은 대본에서 들리는 소리는 한 남자가 가볍게 흥얼거리는 허밍 소리였다.


그냥 짧은 대본이라서 그런가?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생각보다 이 허밍이 장면에 어울리는 것 같았다.


‘혹시 이 장면에서는 배경음악이 필요 없다는 건가?’


하긴 영상물에서 인물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배경음을 깔면 그거만큼 어지러운 것은 없을 테니.


‘그럼 허밍까지 연기 일부여야 한다는 건데.’


실제로 지금 그가 파악한 대본상으로는 확실히 어울리긴 했다.


‘문제는 그게 심사위원에게 어떻게 비치냐.’


살인마를 주제로 했는데 좀 깨지 않을까? 괜히 허밍을 해서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까?


그냥 허밍을 빼고 연기해도 충분히 괜찮은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거다.


아니, ‘충분히’를 넘어 차고 넘칠 만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최해문은 이 능력이 들려주는 허밍을 자꾸만 연기에 녹아내고 싶었다.


‘이 능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그렇게 얼마나 고민했을까.


“42번 참가자. 42번 참가자?”

“...”

“최해문씨. 안 들리시나요?”

“어, 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10분이 지난 뒤였다.


“10분 다 지났습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남자가 살짝 열어준 문이 최해문의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인가 오늘따라 얇게 열린 그 틈새가 어쩐지 넓게만 느껴졌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통과할 수 있을 것처럼.


심호흡한 최해문은 남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안을 향해 걸어갔다.


고요한 심사장의 안.


앉아 있는 심사위원들이 무표정한 눈빛이 한곳을 향했다.


말 그대로 들어오는 배우를 짓누르려는 듯한 압도적인 긴장감이 넘쳤지만, 정작 최해문은 건물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어떤 긴장감도 느끼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은 심사장 안의 풍경을 관찰했다.


여유가 주는 힘을 빌려 지금까지 가져본 적 없는 태도로.


이 공간의 분위기, 습기, 상대의 시선, 물건의 배치 등등. 그동안 오디션 때는 떨림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한 것들이 보였다.


“네 42번 참가자 최해문님 맞으시죠? 대본은 저희 주시고요.”

“네. 여기 있습니다.”

“연기 시작하시면 됩니다.”


별다른 말도 없이 단답형으로 선언한 후.


모든 것을 평가하겠다는 듯 날카로운 눈이 수십 개가 그를 쳐다보았다.


최해문은 천천히 몸의 힘을 푼 뒤 고개를 잠시 숙였다.


‘가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오디션를 위해서.


#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려요.]


시작은 누군가를 걱정하는 듯한 대사에서 시작되었다.


취객이라도 깨우려는 걸까.


쪼그려 앉아서 상대의 어깨 쪽을 툭툭 치는 모양새가 이런 사람을 한두 번 상대해 본 게 아니라는 듯 자연스러웠다.


[아저씨. 정신 차리시라니까요? 지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청년은 경찰인 걸까. 아니면 그저 마음씨 좋은 순박한 대학생인 걸까.


누가 보기에도 연민이 가득 서린 청년의 눈동자는 마치 그의 신분을 증명하는 듯했다.


[아이참. 진짜 말귀 못 알아들으시네. 아저씨. 깨어 있는 거 알아요. 제 말 들리죠?]


아니.


정말로 그런가? 그 눈에 비친 것이 연민이 맞나?


청년의 손짓은 아까보다 조금 더 거칠어졌다.


부드럽게 정신을 깨우기 위한 손짓은 어느새 뺨이라도 치는 듯 힘이 담겨 있었다.


[하아. 귀찮네. 진짜.]


스트레스가 담긴 한숨.


[아저씨. 내가 이런 거 한두 번 해보는 게 아니거든요. 가슴 오르락내리락하는 거만 봐도 대충 보여요. 이 사람이 지금 죽은 건지 싱싱한 건지 다 보인다고요.]


싱싱하다.


사람에게 쓰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단어가 청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청년의 손이 쓱 하고 움직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 손에 무언가 들려있는 것만 같이 보였다.


푹.


손에 들린 무언가가 분명히 누군가를 꿰뚫었다.


[왜요. 아파요? 그러니까 쉽게 가자고 할 때 하지. 여기서 시간 끌어서 좋을 거 없다 그러네. 아저씨만 아파요.]


그제야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청년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연민 가득한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일일이 뒤집어야 하잖아. 아저씨. 귀찮다고요. 그냥 얌전히 좀 썰려줘요.]


아까까지 순박하기만 했던 청년의 얼굴에 광증이 서렸다.


[아오. 질겨. 내가 이래서 통뼈가 싫다니까.]


아. 이제 보인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슬근슬근 타는 모양새를 보니 그것은 필시 톱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 박자에 맞춰 아주 이질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흐으음~.]


부드러운 콧소리가 담긴 허밍.


분명 아래에서 사람을 썰고 있는데.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인 양 콧노래가 퍼져나갔다.


아니. 단순히 콧노래인가?


묘하게 손발의 움직임이 마치 연주 같았다.


살과 뼈를 줄 삼아 톱으로 켜는 노래. 그런 노래가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후. 이제야 다 잘렸네. 아저씨 아직 정신 있죠? 이제 반대쪽 할 거니까 좀 돌려줘요. 알았죠?]


툭툭.


너무나 생생한 동작에 마치 눈앞에 몸뚱이가 있는 듯한 느낌이 스치고.


[이쪽은 조금 부드럽길 바라요. 아니면 아저씨가 좀 많이 힘들 테니까.]


청년의 표정이 변했다.


제일 처음 지었던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


“여기까지입니다.”


최해문의 연기가 끝났다.


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이 빠져나갔다. 대신 그 자리에 원래부터 있었던 묘하게 여유로운 표정이 걸렸다.


그와 반대로 심사장은 그가 들어왔을 때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고요해진 심사장.


좋았던 걸까. 아니면 너무나 형편없는 연기에 질겁한 걸까.


너무나 조용해서 어느 쪽인지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은 그때.


그 정적을 깨는 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드디어 찾았다.”


오른편에 앉아 있던 작가의 외마디 비명 같은 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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