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블리딩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대학생, 기사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새글

블리딩
작품등록일 :
2024.03.20 19:03
최근연재일 :
2024.05.09 19:5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972
추천수 :
24
글자수 :
186,334

작성
24.04.06 19:50
조회
27
추천
1
글자
12쪽

12화. 갈란 마을

DUMMY

< -- 12. 갈란 마을 -- >







길을 따라 걸었다. 밭들 속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들을 빤히 쳐다본다. 저 앞에 보이는 입구 쪽 위병 둘이 허둥거리면서 한 명은 성문 안으로 냉큼 들어가 버린다.


'설마 우리들을 냅다 공격하려 들지는 않겠지?'


바짝 긴장한 상태로 천천히 입구 쪽을 향해 다가갔다.


"멈추십시오!"


입구까지 열 걸음을 남겨둔 상태에서 홀로 남은 위병 한 명이 손바닥을 펼쳐 보이면서 우리들을 제지한다.


"일단 거기서 멈추시고,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렸다. 그러고 있는 동안 목책 위로 어린 아이를 포함한 사람들 무리가 우리들을 빤히 구경한다. 진귀한 볼거리라도 되는 냥 호기심 가득한 표정들을 지여보인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순간 성문에서 아까 들어간 위병이 누군가를 대동한 채로 나온다.


"기사?"


나하고 갑옷의 모양은 다르지만 판금갑옷인 것만은 확실하다. 허리춤에는 검도 채워져 있고, 손에는 창도 들려져 있다. 온 몸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투구너머로 울려 퍼지는 기사의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답했다.


"제 이름은 베르너입니다."

"베르너? 검의 표식을 보여줘라."


검의 표식? 칼자루 끝에 새겨진 월계관 문양을 말하는 건가? 허리춤에서 검 집을 풀어내고 앞으로 내밀었다. 기사가 목을 앞으로 내밀면서 검을 빤히 쳐다보더니 뭐라고 말한다.


"월계관의 표식. 월계수의 기사인가?"


뭐라 답하지? 일단 고개를 끄덕여보자.


"음... 월계수의 고리를 가진 기사가 아직 남아있을 줄은 몰랐어. 이 자의 신원은 내가 보증하지. 안으로 들여보내도 괜찮네."

"알겠습니다, 기사나리! 얼른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위병이 기사에게 고개를 푹 숙이더니 내게도 고개를 푹 숙이면서 들어오라 손짓한다. 우리들은 그렇게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돌아왔어! 돌아왔다!! 여보!! 얘들아!!"

"살았어, 이제 진짜로 살았어!!"


뒤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허름한 집들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와 우리들을 반긴다. 정확히 말하자면 헤어진 가족들과의 눈물겨운 재회였다. 내 쪽으로는 일절 다가오지를 않는다.


"저분들이 우리들을 구해주셨어! 저 기사나리와 요정분이 우리들을 구해주셨다고!"


서로를 얼싸안은 사람들 무리 속에서 남성 한 명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청껏 소리 지른다. 그러자 구출자의 가족들이 내게 절을 하면서 고맙다고 연신 말을 한다.


뻘쭘해서 멀대처럼 가만히 서 있으려니 누군가가 등을 팍 친다. 아까의 그 기사였다.


"좋은 일을 했어. 기사의 귀감이군, 자네."

"....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대충 틀에 박힌 답을 하니 기사가 너털웃음을 짓고서는, 투구를 벗고 악수를 청한다. 회색의 짧은 머리에 약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얼굴의 남성이다. 푸른색 눈동자의 담긴 강렬한 눈빛이 나를 마주 본다.


"그 악수 내가 받지!"


손을 내밀기를 망설이던 중 엘라가 대뜸 나타나 내 대신 악수를 한다. 기사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요정? 이거 참 특이한데?"

"내 이름은 엘라. 네 이름은 뭐야?"


그녀의 작디작은 손을 떼어낸 기사가 미소를 짓는다.


"베르딕 위고. '칼로스의 늑대'의 기사이다."


그의 칼자루 끝에 새겨진 표식을 봤다. 늑대의 옆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눈 부위에는 세로로 길게 난 상처자국이 새겨져 있다.


엘라가 내 투구에 턱 걸터앉은 후 쾌활하게 말한다.


"안녕! 내 이름은 엘라, 이쪽은 베르너야. 내 부하지."

"오호~ 부하라? 기사가 요정의 부하라니, 이거 참ㅡ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인데?"

"뭐야?! 날 무시하는 거야? 너 지금 내가 요정이라고 무시하는 거지, 그런 거지?!"

"아니, 아니. 그럴 리가. 난 그저 처음 접하는 경우라서 말이야, 언짢았다면 사과하지."

"좋아, 그 사과 받아주지."


거만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화는커녕 인자한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에, 관대한 성격을 지닌 남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세련된 신사처럼 보인다.


턱을 문지르며 우리들을 흥미롭게 쳐다보던 그가 돌연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게 있는데,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닌 모양인데"


검은 머리카락에 반나체 상태인 그들을 쳐다보는 기사에게 사피엔스라는 남성이 해준 말을 그대로 들려줬다.


"고블린들에게 공격받던 걸 구해준 사람들입니다. 그들 말로는 머나먼 동쪽에서 이곳까지 살곳을 찾아 떠돌던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머나먼 동쪽? 그 황폐한 대지에서 건너왔다니, 산전수전을 다 겪었겠어. 죽지 않은 게 용할 정도야"

"그... 그러게나 말입니다."


볼 살을 잘근잘근 씹으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기 위해 애쓰던 내게 그가 툭 말을 뱉는다.


"근데 자네는 투구를 왜 안 벗는 건가?"

"예? 아... 사실은 제가 지금 심각한 저주에 걸려서 투구를 벗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투구를 벗을 수 없는 저주? 난생 처음 들어보는 저주야."

"그,그러니깐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이런 저주가 있는 줄은 저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가 입술을 혀로 핥더니 슬쩍 내게 속삭인다.


"저주라기보다는 다른 이유로 벗지를 못하는 거 아닌가?"

"어,어,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거짓말을 하려거든 말투나 어감에서 신경을 써. 그렇게 말하면 누가 듣더라도 거짓말인 줄 알거야. 알겠나, 월계수의 기사 베르너 경."


아무 말도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중 엘라가 버럭 소리 지른다.


"너,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베르너는 진짜로 저주에 걸린 거라고!"


기사의 바로 코앞에서 옆구리에 손을 갖다 대고 항의하는 그녀의 모습에 초조함을 느꼈다. 거짓말인 걸 들통나버린 상황 속에서 그녀가 계속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좋지가 않다. 만에 하나 기사가 분노를 터뜨린다면 막아낼 재간이 없다.


기사의 다물어진 입이 위아래로 벌려진다.


"아무래도 진짜인가 보군. 방금 전 내가 한 말이 실언이었음을 인정하며, 사과를 전하는 바네."

"아,아닙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입니다."


그의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믿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일단 위기는 넘겼다.


엘라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들은 이 마을 사람들을 강도단에서 구출해왔어. 그러니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는 바야."


초장부터 돈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오르던 그때, 기사가 손짓으로 어떤 노년의 남성을 부른다. 아무래도 이곳의 촌장인 듯 보인다.


새하얀 턱수염에 백발이 성성한 남성이 지팡이를 짚으면서 기사에게 다가간다.


"부르셨습니까, 기사 나리?"

"촌장님, 이자들에게 우선 숙소와 음식을 제공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주민들한테 지금 당장 준비하라고 일러두겠습니다."


촌장이 우리들 곁을 떠나자마자 기사의 말이 다시금 들려온다.


"힘든 여정이었을 테니 일단 여독부터 푼 다음에 보상에 대한 건을 이야기해보는 게 어떻겠는가? 보다시피 눈물겨운 재회의 순간 속에서 돈 이야기를 나누는 건 별로 모양새가 좋지를 않아서 말이야."

"흐음~? 그래놓고 안 주려고 그러는 거지?"

"내 명예를 걸고 반드시 보상을 치룰 테니 안심하게."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는 기사의 태도에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질 더러운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주먹이 날아왔으리라 본다.


이후 우리들은 주민들의 안내를 받아 이 마을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벽돌집들 중 하나를 부여받았다. 큼지막한 침대에 한쪽 벽에는 벽난로가 있었고, 테이블과 탁자, 소파 등의 가구가 놓인 아늑하면서도 쾌적한 공간이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거주공간에 가축우리가 함께 존재하는 목재 집들을 보았기에 우리들이 부여받은 이 집이 얼마나 좋은지는 확실히 느끼고 있다.


"제 아내와 애들을 시켜서 곧 음식을 가져오게끔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사 나리."

"이 마을에서 제일 맛난 걸로 많이 가져와야 돼!"


내 어깨에 앉은 엘라의 말에 마을 남성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얼른 그녀와 나의 주종관계를 말하니 허둥지둥 고개를 숙이면서 금방 가져오겠다고 말함과 동시에 문을 열고 나간다.


테이블에 앉아 엘라와 이런저런 잡담을 늘여놓고 있다가,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머리에는 흰색 보닛을 두르고 몸에는 후줄근한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성과 여자아이 두 명이 품에 바구니를 안고 들어온다.


"오늘 아침에 갓 구운 빵과 수프입니다. 저희들이 마당에서 직접 재배한 과일들도 몇 개 가져왔습니다."


여성이 설명과 함께 테이블에 빵과 잼 그릇이 담긴 바구니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니, 아이 둘이 따라서 토마토와 사과 몇 개가 담긴 바구니를, 까치발을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기사 님... 요정 님."


그녀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나간 뒤, 바구니 안에 담긴 음식들을 쳐다봤다. 내가 알던 그 뽀얀 속살을 가진 빵이 아니다. 까무잡잡한 빵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 투구를 벗고 바구니에 손을 갖다 댔다.


'먹어도 되는 거 맞겠지?'


빵을 집으니 딱딱하다. 속는 셈 치고 크게 찢어서 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수프를 가져온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퍽퍽하고 질길 뿐만 아니라 맛이 썩 좋지가 않다.


"음~ 내가 먹어본 빵 중에서 그나마 제일로 맛나다. 수프도 아주 맛있어!"


맛있게 먹고 있는 엘라의 모습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 내 처지에 부드러운 우유식빵에 딸기잼을 발라먹는 사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음식들을 먹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할 일이다.


이 마을 주민들의 옷차림을 보더라도 감사하게 먹어야 한다. 낡고 헤진 옷들을 입고 일을 하는 그들이 베푼 친절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닥치는 대로 우적우적 씹으면서 아주 맛나게 음식을 먹어 치웠다. 시장이 반찬이라 그런지 꿀떡꿀떡 넘어간다. 그렇게 슬슬 포만감이 생기자 몸의 여유로움과 함께 노곤함이 몰려온다.


"배부르다, 배불러~"


빵빵해진 배를 자랑하듯이 대자로 드러누운 엘라를 따라, 나 또한 침대에 대자로 드러누워 천장을 쳐다봤다. 푹신하진 않지만 그래도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에 편안함이 절로 든다.


평화롭다. 비 온 뒤 맑음인가? 딱 그 느낌이다. 스르륵 눈이 감겨온다. 잠에 취해든다.


똑똑똑ㅡ


별안간 들려온 노크소리에 잠이 달아난다. 서둘러 투구를 머리에 눌러 쓰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끼익ㅡ 문이 열리면서 촌장의 얼굴이 나타난다.


"두 분 모두 식사는 입에 맞으시는지요?"

"예,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촌장 어르신."

"맛있게 드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촌장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이내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엘라가 말한 보상에 관련된 얘기를 하러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이야기였다. 얼른 엘라를 깨웠다.


"엘라 대장님, 엘라 대장님."

"음냐... 더는 못 먹었어. 배부르단 말이야"

"대장님이 말씀하신 사람들을 구한 보상과 관련돼서 이야기 하러 가야 합니다"


내 귓속말에 그녀의 눈이 번뜩 떠진다. 입가에 잔뜩 흘린 침을 팔로 스윽 문질러 닦은 후 날개 짓을 힘차게 하여 내 어깨에 올라탄다.


"베르너, 당장 출발이다. 딴소리 못하게끔 얼른 받으러 가야 해."

"대장님, 근데 솔직히 돈은 이제 넉넉히 있잖아요? 그렇게까지 악착같이 받을ㅡ"

"무슨 소리야! 돈은 곧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있어 생명줄이나 다름없다고! 돈이 있어야 발 닦고 잠도 잘 수 있고 먹을 것도 배터지게 먹을 수 있고 그러지!"


불같이 화를 내는 그녀의 말에 입을 꾹 다물고, 그저 고개만을 끄덕였다. 여기서 더 대꾸해봤자 좋은 꼴 못 본다. 단지 그녀가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대학생, 기사가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는 수-토 / 저녁 7시 50분 입니다. 24.03.20 12 0 -
32 33화. 방패 NEW 18시간 전 3 0 13쪽
31 32화. 대화 24.05.08 2 0 13쪽
30 31화. 구멍 24.05.04 4 0 13쪽
29 30화. 분열 24.05.03 5 0 13쪽
28 29화. 함정 24.05.02 6 0 13쪽
27 28화. 습격 24.05.01 6 0 13쪽
26 27화. 장례 24.04.27 8 0 13쪽
25 26화. 도둑 24.04.26 10 0 13쪽
24 25화. 암린족 24.04.25 9 0 13쪽
23 23화. 서신 24.04.24 9 0 13쪽
22 22화. 문자 24.04.20 10 0 11쪽
21 21화. 수련 24.04.19 10 0 13쪽
20 20화. 심문 24.04.18 11 0 13쪽
19 19화. 엠마 24.04.17 10 0 13쪽
18 18화. 고리 마법 24.04.13 14 0 13쪽
17 17화. 돌격 24.04.12 14 0 13쪽
16 16화. 사제 24.04.11 16 0 14쪽
15 15화. 복귀 24.04.10 19 0 13쪽
14 14화. 갈등 24.04.09 19 0 13쪽
13 13화. 얼굴 24.04.08 22 0 13쪽
» 12화. 갈란 마을 24.04.06 28 1 12쪽
11 11화. 조우 24.04.05 28 0 13쪽
10 10화. 밖으로 24.04.04 35 1 13쪽
9 9화. 군자금 24.04.03 41 1 13쪽
8 8화. 동행 24.03.30 44 1 14쪽
7 7화. 토벌 24.03.29 44 2 14쪽
6 6화. 기사 24.03.28 56 2 13쪽
5 5화. 반딧불이 요정 24.03.27 56 2 13쪽
4 4화. 감옥 24.03.23 69 3 12쪽
3 3화. 이세계 24.03.22 97 3 13쪽
2 2화. 보케이네이아 24.03.21 116 4 13쪽
1 1화. 소환 24.03.20 152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