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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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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연재수 :
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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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542

작성
23.10.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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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45. 상표권 분쟁 (1)

DUMMY

“하하!! 맞습니다. 제가 신광 손종성 동생 손종민입니다.”


재벌 회장님 이름을 함부로 불렀는데도 손종민 회장은 그냥 웃어 넘겼다.

멍하니 정신 줄을 놓고 있던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실례를···.”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나저나 스님이 제대로 소개를 하신 건가 모르겠네.”

“저희 사무실이 좀 누추하죠? 혜명 스님이 소개를 해 주신다고는 했는데, 그분이 회장님인 줄은 몰랐습니다.”

“인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죠. 특히 혜명 스님이 소개해 주신 분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손 회장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살집이 적당히 오른 얼굴에 붉은 혈색이 도는 것 자체로 거부(巨富)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혜명 스님 말로는 어떤 사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시던데. 어떤 사건이십니까?”

“얘기가 좀 긴데 그래도 다 말해야겠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신광그룹.


일제시대를 갓 지난 1947년 창업주 손인현이 창립한 신광무역이 모체인 그룹이다.

손인현은 1970년 신광건설을 설립하여 건설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사업이 본격적으로 흥하게 되는데, 1980년대 군사 정권의 특혜로 정유업에 진출, 막대한 부를 쌓게 되고 화학, 제약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1980년까지 승승장구하며 흥하다가, 1990년 손인현이 사망한 후 장남 손종성과 차남 손종민이 각각 건설 부문과 정유 부문을 나눠 가졌다.

두 형제는 2000년 초까지 하나의 그룹 아래에서 각자의 사업을 해 왔지만, 이후 그룹이 갈라지면서 갈등을 겪고있는 상황이었다.


“회장님하고 신광건설 그룹은 완전히 분리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분쟁이?”


하나의 그룹 체제라면 갈등이 있을지 몰라도 분리됐는데 무슨 갈등이 있다는 건지 궁금했다.

손 회장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게 저희 신광정유 그룹과 형님네 신광건설 그룹이 동일한 상표와 로고를 사용하는데, 신광건설 쪽에서 저희한테 사용료를 내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네? 상표 사용료요? 청구 금액이 얼마인데요?”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깜짝 놀란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손 회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년 200억입니다. 타격이 갈 정도의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원래 같은 그룹 소속 회사에 그렇게 많은 사용료를 주는 게 맞는지 따져 봐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사용료를 언제부터 주게 된 겁니까?”

“1997년 IMF 때 신광건설이 부도날 뻔했습니다. 그때 계열사들이 상표 사용료를 지급하는 형태로 계약을 체결해서 3년 정도 사용료를 준 적이 있는데, 그걸 갖고 이렇게···.”


‘신광건설’을 말할 때 손 회장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대놓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형에 대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상표 사용계약서를 주시면 검토해서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밖에 있는 김 실장이 계약서하고 자료 가져왔으니까 드릴 겁니다. 그리고, 부족한 자료 있으면 김 실장한테 말씀하시고요.”

“네. 회장님.”


손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마친 손 회장이 사무실을 나가려다 몸을 돌렸다.


“아 참!! 혜명 스님이 변호사님 알아 두면 저한테 큰 도움이 될 거라는데, 앞으로 무슨 도움을 주실 거죠?”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한 내 모습을 보고 손 회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그는 사무실을 나갈 때까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멀어져 가는 그의 웃음소리가 환청같이 귓전에 울렸다.

재벌 회장과 얘기를 나누고 그의 사건을 맡게 되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손 회장이 나간 후 김 실장이 들어와 테이블에 자료를 두고 나갔다.

나는 바로 재혁을 불러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역시 가장 핵심이 되는 자료는 상표 사용계약서.


“연간 사용료가 200억이고,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은 게 6년이니까 미지급 사용료가 1,200억이네.”


내 말을 들은 재혁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재벌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크네. 상표 사용료로 200억이나 주고.”

“손 회장 얘기를 들어보니 IMF 때 신광건설 부도 막으려고 계열사들이 지원하기 위해 그런 거래.”

“정말? 그럼 신광건설은 그때 계열사들 지원받으려고 계약 맺은 건데 그걸 근거로 돈을 내놓으라고 그러는 거야? 이건 뭐 은혜를 원수로 갚는 뭐 그런 건가······.”


재혁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사실이 그랬다.

신광그룹의 모기업 격인 신광건설이 부도나게 생겨서 계열사들이 편법으로 사용료를 지급하게 된 건데, 그 편법 계약을 근거로 돈을 달라고 하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손 회장이 열 받을 만했다.


“여기 보니까 상표권은 공동으로 등록됐네.”


재혁이 상표등록증을 가리켰다.

녀석의 말처럼 등록증에는 소유자가 신광건설과 신광정유로 되어 있었다.


“어? 그런데 어떻게 신광정유가 신광건설에 사용료를 지급하게 된 거지?”


나는 상표 사용계약서를 찾아 테이블에 올렸다.

재혁이 계약서를 빠르게 스캔하더니 손가락으로 계약서 중간을 짚으며 말했다.


“이 조항 때문에 그런 것 같아.”


재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갑(신광건설)과 을(신광정유)은 ‘신광’상표의 공동소유자이기는 하나, 실 소유자는 갑이며, 을은 상표 사용료 지급 의무가 있음을 확인한다.]


“그렇네. 이 조항 때문에 사용료를 지급하게 된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혁을 쳐다봤다.


“흐음··· 검토는 해 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문제가 없어 보여. 이 조항만으로 보면 상표권 등록은 신광건설과 신광정유가 공동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신광’상표의 소유자는 신광건설이라고 신광정유가 인정하는 셈이니까.”

“그렇지. 상표의 명의의 반만 신광정유에 이전해 준 명의신탁(名義信託)으로 볼 수 있으니까.”


아무리 명의를 갖고 있다고 해도 실 소유자가 아니라면 사용료는 지급해야 한다.

더구나 신광정유는 신광건설이 상표의 소유자임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땅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답이 보이지 않는 건 재혁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정 국장이 들어왔다.


“변호사님. 저희 사무실 지원하신 변호사 두 분 와 계십니다. 면접하셔야죠?”


정 국장이 나오라고 손짓을 하며 말했다.


“면접이라뇨? 저번에 한 사람 뽑은 거 아니었나?”

“두 분 뽑기로 하셨잖아요. 오늘이 면접날이고요. 깜빡하셨나 보네.”


정 국장이 나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재혁이 가볍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맞다. 오늘이 면접날이었네. 형. 빨리 가자.”

“아!! 그랬나?”


나와 재혁이 주춤주춤 일어나 회의실로 가려는데, 정 국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신광정유에서 착수금 입금했습니다.”

“착수금이요? 얼마나요?”


착수금이라는 말에 놀라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바로 되물었다.

정 국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일부러 뜸을 들였다.

나와 재혁은 침을 꼴깍 삼키며, 정 국장의 입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2억이요. 2억.”


***


“안녕하십니까. 이유리 변호사입니다.”


이 변호사는 단정하게 자른 짧은 단발머리,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하얀 피부를 지닌 미인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녀의 눈이었다.

무슨 생각에 빠진 사람처럼 초점이 또렷하지 않은, 심하게 말하면 뽕을 맞은 사람 같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모든 조건은 전형적인 미인이었는데, 눈이 그러니 참으로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안녕하세요. 권태식 변호사입니다. 반갑습니다.”


권 변호사는 보통 사람치고는 꽤 지적인 인상이었으나 그게 전부였다.

굳이 말하자면 잘 다듬은 이대팔 가르마에 뿔테 안경을 낀 모습이 좀 재수 없게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나와 재혁보다 사법연수원 한 기수 선배로 약간 깔보는 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저는 김일목 변호사고, 이쪽은 김재혁 변호사입니다. 지금까지는 대표 변호사를 따로 두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하게 되면 제가 대표를 하게 될 겁니다.”

“네.”


두 변호사가 동시에 대답했다.


“기본적인 사항은 이력서에 있으니까 간단하게 본인이 수행하신 사건에 대해서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먼저 할까요?”


권태식 변호사가 살짝 손을 들며 물었다.


“네. 먼저 하십시오.”

“저는 지금 다니고 있는 법무법인에서 주로 형사 재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면접 오기 전에 법률사무소 일혁에서 수행하신 사건을 봤는데, 주로 민사 사건을 하셨더군요. 저를 뽑아 주신다면 형사 사건에 대한 부담을 더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민사 사건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


미리 준비한 듯 권 변호사는 장황하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김앤전에 있어야지 이곳에서 면접을 보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슬쩍 재혁의 눈치를 보니 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권 변호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이유리 변호사에게 물었다.


“이 변호사님은요?”

“저요?”


당연히 본인이 해야 할 상황인데도 이 변호사가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해 보라고 손짓했다.


“저는 홍일대 미대를 졸업해서 디자인 회사에 다니다 신림동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고, 시험에 합격해서 올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했습니다. 수료하자마자 전관들이 모여서 하시는 법무법인에 새끼 변호사로 들어가 일을 했는데, 6개월 만에 짤리고 현재는 백조입니다.”


면접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

법을 전공하지 않았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다, 경력이 짧다, 회사에서 잘렸다 등등.

이 변호사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초점을 잃은 눈과 심드렁한 표정은 오히려 그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호기심을 가진 건 재혁도 마찬가지였는지 녀석이 먼저 질문을 날렸다.


“미대를 나오셨다고요? 그럼 사법시험 공부가 어려우셨겠네요?”

“대학에서 전공 공부 열심히 하는 거 아니잖아요? 법학 전공이나 저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변호사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 법무법인에서는 어쩌다 나오게 되셨어요?”


나는 왜 짤렸냐고 묻기 그래서 최대한 예의를 갖춰 물었다.


“왜 짤렸냐고요? 짤리기 전까지 일요일 빼고 6일 동안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했습니다. 저 나름은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그 사건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나오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그 사건이요? 그 사건이 무슨 사건인데요?”


하루 14시간씩 일을 하던 고용 변호사를 나가게 한 사건이 무슨 사건인지 궁금했다.

내 질문에 이 변호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태종대 황소갈비 사건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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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46. 상표권 분쟁 (2) +4 23.10.24 1,072 27 12쪽
» 045. 상표권 분쟁 (1) +3 23.10.23 1,132 24 11쪽
44 044. 궁예의 후손 (2) +4 23.10.22 1,189 24 12쪽
43 043. 궁예의 후손 (1) +3 23.10.21 1,168 27 12쪽
42 042. 변론 재개 +5 23.10.20 1,197 21 12쪽
41 041. 재판장은 친일파 +3 23.10.19 1,179 23 12쪽
40 040.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4) +3 23.10.18 1,141 24 12쪽
39 039.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3) +4 23.10.17 1,190 20 12쪽
38 038.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2) +3 23.10.16 1,243 23 12쪽
37 037.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1) +3 23.10.15 1,447 27 11쪽
36 036. 승소. 그러나, 험난한 미래 +3 23.10.14 1,435 27 12쪽
35 035. 결정적 증언 +4 23.10.13 1,430 28 12쪽
34 034. 증인을 잡아라 (2) +4 23.10.12 1,410 27 12쪽
33 033. 증인을 잡아라 (1) +5 23.10.11 1,449 26 12쪽
32 032. 거짓 증거를 깨라 +4 23.10.10 1,490 29 12쪽
31 031. 전관 변호사가 비호감 +3 23.10.09 1,515 28 12쪽
30 030. 노예 아이돌 (3) +4 23.10.08 1,540 26 11쪽
29 029. 노예 아이돌 (2) +6 23.10.07 1,515 24 12쪽
28 028. 노예 아이돌 (1) +4 23.10.06 1,621 27 11쪽
27 027. 좋은 생각 +2 23.10.05 1,748 29 12쪽
26 026. 갑질의 끝 (2) +4 23.10.04 1,782 30 12쪽
25 025. 갑질의 끝 (1) +6 23.10.03 1,775 25 12쪽
24 024. 강남서 강력반 강호 (2) +1 23.10.02 1,768 28 12쪽
23 023. 강남서 강력반 강호 (1) +2 23.10.01 1,865 27 12쪽
22 022. 사장은 또라이 (2) +2 23.09.30 2,014 24 12쪽
21 021. 사장은 또라이 (1) +2 23.09.29 2,105 27 12쪽
20 020. 꼬리 자르기 +3 23.09.28 2,125 30 12쪽
19 019. 내부자 +3 23.09.27 2,154 29 12쪽
18 018.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 (2) +3 23.09.26 2,170 28 11쪽
17 017.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 (1) +3 23.09.25 2,161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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