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연재수 :
74 회
조회수 :
110,351
추천수 :
1,934
글자수 :
393,542

작성
23.10.22 12:00
조회
1,189
추천
24
글자
12쪽

044. 궁예의 후손 (2)

DUMMY

신선한 숲속의 공기에 실려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의 풍경은 어디 하나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한데, 내 마음은 그와 정반대였다.


“제가 궁예의 후손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변호사님은 대선사의 후손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스님이 그걸 단정하십니까?”

“변호사님이 가진 그 능력은 아무에게나 발현(發現)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에게나 발현되지 않는다면 내가 궁예의 후손이기 때문에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인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건 그렇고 제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죠?”

“변호사님 사진이 실린 신문 기사를 봤죠. 양쪽 눈의 색깔이 미세하게 다르게 나왔더군요. 일반적인 오드아이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강 형사를 재촉해 변호사님을 보러 가자고 한 것이고요. 그래서 변호사님을 뵀는데 역시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저는 아직 제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일부러 제가 속으로 생각했는데, 변호사님이 당황한 모습을 봤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혜명 스님은 미소 띤 얼굴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내가 그런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마음을 보이다니 보통 고수가 아니었다.

한편으로 내 능력이 역이용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섬찟하기도 했다.


“제가 왜 이런 능력을 갖게 된 겁니까?”

“다 업보(業報) 때문이죠. 궁예와 왕건의 천 년 동안 쌓인 업보.”

“궁예와 왕건의 업보라고요?”

“천 년 전 궁예와 왕건이 만났을 때 궁예가 비명에 갔으니 그 업을 갚기 위해 변호사님이 다시 오게 된 거죠.”


이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궁예와 왕건의 업은 뭐고 그걸 왜 내가 갚는다는 말인가.

들으면 들을수록 황당했다.


“도통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궁예의 후손이라는 것도 그렇고, 궁예의 업을 갚는다는 것은 더 그렇고.”

“지금 제가 설명해 드려도 믿지 못하실 거고. 나중에 다 알게 되실 겁니다. 궁예 대선사는 자신이 죽을 때 후대에 변호사님이 나타나실 걸 에언하셨죠.”

“제가 태조 왕건을 수십 번 봤는데, 그런 내용은 못 봤습니다.”

“하하하!!! 그런 내용이 TV 드라마에 나오겠습니까? 역사서에도 안 나오는데. 그 내용은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요상한 놈이 쓴 책에 잠깐 나왔을 뿐.”


혜명스님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긴 역사서에도 안 나오는 얘기가 드라마에 나왔을 리가.

생각해 보니 바보 같은 말이었다.


“하여간 저는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이 왜 궁예의 업을 갚는데 쓰여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궁예 대선사는 한반도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살기 좋은 극락정토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배 세력들은 선사의 뜻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죠. 그래서 그런 지배 세력들은 왕건을 중심으로 궁예 대선사를 내치려 했고, 관심법으로 그들의 음모를 간파했지만 결국 그들에게 지고 말았던 겁니다.”


말을 마친 혜명스님은 안타까운지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럼 궁예가 얘기했던 관심법이 진짜였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몰라도 왕건의 마음만은 알아낼 수 없었죠. 그 이유는 궁예 대선사가 죽을 때까지 그 자신도 몰랐습니다.”

“TV로 보면 궁예가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한 걸로 나오는데.”

“역사는 승자의 뜻에 따라 적히는 거죠. 그걸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궁예가 좋은 사람이었고, 왕건이 궁예를 몰아낸 것이 잘못된 것이라니.

나를 갖고 장난하나 싶어 쳐다보니 그의 얼굴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세상이야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거지요. 변호사님은 흘러가는 세상에 몸을 맡기면 될 뿐.”


속 시원한 해결책은 역시 없었다.

더 듣고 있어봤자 머리만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흠···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네. 인연 되면 다시 뵙겠습니다.”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일어날 때 다리가 찌릿했다.

절룩거리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등 뒤에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변호사님. 이번 소송 잘 돼서 저도 변호사님께 선물 좀 드리려고 합니다. 저희 사찰 신도 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있어서 변호사님께 연락드리라 했습니다. 곧 연락이 갈 겁니다.”


나는 절룩 걸음으로 뒤돌아 스님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스님.”

“감사는요. 나가셔서 강 형사 좀 들어오라 해 주세요. 잠시 말 나누고 보내겠습니다.”

“네.”


나는 몸을 돌려 절뚝거리며 방을 나왔다.


“사무장님. 스님이 찾으십니다.”

“무슨 말씀 나누셨어요?”

“별 얘기 아니에요. 이번 소송 잘 돼서 의뢰인 소개해 주신다고.”

“난 또 뭐라고? 스님도 이제 늙으셨네. 이런 일로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하시고.”


강 사무장이 투덜대며 스님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아 주위를 둘러봤다.

여전히 서석사의 공기는 맑고,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달라진 건 나의 어지러운 마음뿐이었다.


***


여의도 의원회관 옥주환 국회의원 사무실.

오랜만에 옥 의원 사무실을 찾은 김형모 대표가 옥 의원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옥 의원. 지지율이 꽤 높게 나오던데 내년 대선에 나오는 건가?”

“이 사람. 무슨 소리야? 남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옥 의원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했으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김 대표는 옥 의원의 얼굴을 보더니 더 큰소리로 말했다.


“들으라면 들으라지. 내가 뭐 틀린 말을 했나?”

“아이고. 이 친구 못 말리겠네. 하하!!”


옥 의원이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한참 웃던 그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이번은 내 차례가 아니야. 내년은 고 의원 차례지.”

“그래. 안 그래도 고 의원이 제일 유력하기는 하지. 서울시장도 훌륭하게 해냈고. 하지만 자네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 후보로 나서야 되지 않겠나?”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닌지만, 이번에는 고 의원 편에 서서 대통령을 만들고, 5년 동안 장관도 하고 고 의원 따르는 세력들 흡수해서 차기를 노릴 셈이네.”

“자네가 그런 생각까지 하는 줄 몰랐네. 역시 자네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야.”


김 대표가 못 당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옥 의원은 그런 김 대표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 그런 얘기 그만 하고··· 저번에 보니까 재밌는 기사가 났던데?”

“뭐가 재밌어?”

“대마도에서 불상을 훔쳐왔는데, 그게 원래 왜구가 훔쳐간 불상이라서 일본에서 못 가져갔다고 하더군.”

“아... 아.. 그거?”


순식간에 김 대표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의외의 반응에 옥 의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왜 그래? 자네 사무실에서 한 사건도 아닌데.”

“그렇긴 한데. 내가 보기엔 판결이 잘못된 것 같아서.”

“그래? 그게 잘못된 거야?”


불상 사건에 김앤전이 깊숙이 개입됐다는 걸 모르는 옥 의원은 계속 관심을 보였다.

하기 싫어도 대답을 기다리는 옥 의원을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법리적으로도 잘못됐지만 일본을 자꾸만 자극해서 뭘 얻겠나. 5백년이나 가지고 있었으면 그게 어떻게 되었건 그 사람의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것이 옳지.”

“뭐 그건 그렇네. 작은 걸 내주고 큰 걸 취하면 되는 것을. 하여간 판사들이란··· 참! 그 소송 승소한 변호사들이 저번에 자네 회사 이긴 애들이던데.”


불상 얘기도 짜증 나는데 이젠 일혁의 얘기까지 나오자 김 대표는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미안하네. 내가 괜한 얘기를···”


아차 싶었던 옥 의원이 얼른 사과했다.


“아냐. 아냐. 그놈들 정말 성가셔 죽겠어. 게다가 거기 골칫덩이가 끼어서 더 신경이 쓰여.”

“골칫덩이? 누가?”

“누구긴 누군가 내 인생 최대의 실패작이지.”

“아! 그 아이가 거기 있었나?”


고개를 끄덕인 김 대표가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20년 전 담배를 끊은 김 대표가 기분 더럽거나 답답해서 한 대 피우고자 할 마음이 들 때 하는 제스처였다.

김 대표의 불알친구인 옥 의원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정말 악연은 악연일세. 어떻게 할 건가?”

“악연이지. 그래도 나의 피가 흐르는 아이고, 혼자서도 그렇게 잘 컸으니 한번 만나 볼까 해.”

“오랫동안 안 본 사이인데, 만나려고 할까?”

“내가 가는데 안 만나고 배길까? 지한테 엄청난 이득일 텐데.”


김 대표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옥 의원은 김 대표의 말에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비서관이 커피를 가지고 들어왔고, 두 사람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


- 아버지. 우리 집안이 동송 김씨라고 하셨죠?

- 그래. 근데 그건 왜?

- 우리 가문 시조가 누구예요?

- 그건 왜 갑자기 물어봐?


내 질문에 아버지는 아주 심드렁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 혹시 우리 가문 시조가 궁예에요?

-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누가 그런 말을 해?


아버지는 분명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 사실대로 말해 보세요. 우리 집안이 궁예의 후손이에요?

-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아니야. 이놈아!


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 아니라고요? 그럼 우리 집안 시조가 누구에요? 아버지가 한 번도 말해 준 적이 없잖아요.

- 그··· 그건 말···이다.


바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확신에 차서 말을 했던 혜명 스님의 목소리가 확연하게 대비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대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휴대폰 너머로 숨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 그건 할아버지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 애비가 까먹었다. 집 어디에 족보가 있을 텐데 찾아 놓을께. 네놈이 와서 보던가 해라.

- 아버지. 시조도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

- 그러는 너는 아냐? 평생 한 번도 안 물어보다 갑자기 시조 타령이야? 끊어! 이놈아!


내가 말을 할 새도 없이 아버지가 전화를 끊었다.

분명 처음에 머뭇거리는 것을 봤을 때는 시조가 누구인지 알면서 숨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본인이 무식해서 모른다는 말도 일리가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런 걸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수긍할 것이다.

난데없는 혜명 스님의 얘기로 때아닌 조상 찾기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똑똑똑.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네.”

“변호사님. 손님 찾아오셨습니다.”


이 시간에 예약된 고객은 없었다.


“누구신데요?”

“혜명 스님 소개로 오셨다고 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찰 신도에게 나를 소개했다는 혜명 스님의 얘기가 떠올랐다.


“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문이 열리고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고급 양복 차림의 신사가 들어왔다.

그의 옆에 있던 젊은 남자가 같이 들어오려고 하자 신사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젊은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섰고, 신사만 방으로 들어왔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나는 공손하게 자리를 권했다.

신사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 나도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혜명 스님께 변호사님 말씀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저는 신광제약 손종민이라고 합니다.”


신사가 명함을 내밀었다.


[신광정유 대표이사 회장 손종민]


명함을 보자마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충격과 함께 고개를 들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신광그룹 손종성 회장 동생?”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6 046. 상표권 분쟁 (2) +4 23.10.24 1,072 27 12쪽
45 045. 상표권 분쟁 (1) +3 23.10.23 1,132 24 11쪽
» 044. 궁예의 후손 (2) +4 23.10.22 1,190 24 12쪽
43 043. 궁예의 후손 (1) +3 23.10.21 1,168 27 12쪽
42 042. 변론 재개 +5 23.10.20 1,197 21 12쪽
41 041. 재판장은 친일파 +3 23.10.19 1,179 23 12쪽
40 040.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4) +3 23.10.18 1,141 24 12쪽
39 039.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3) +4 23.10.17 1,190 20 12쪽
38 038.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2) +3 23.10.16 1,243 23 12쪽
37 037.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1) +3 23.10.15 1,447 27 11쪽
36 036. 승소. 그러나, 험난한 미래 +3 23.10.14 1,435 27 12쪽
35 035. 결정적 증언 +4 23.10.13 1,430 28 12쪽
34 034. 증인을 잡아라 (2) +4 23.10.12 1,410 27 12쪽
33 033. 증인을 잡아라 (1) +5 23.10.11 1,449 26 12쪽
32 032. 거짓 증거를 깨라 +4 23.10.10 1,490 29 12쪽
31 031. 전관 변호사가 비호감 +3 23.10.09 1,515 28 12쪽
30 030. 노예 아이돌 (3) +4 23.10.08 1,540 26 11쪽
29 029. 노예 아이돌 (2) +6 23.10.07 1,516 24 12쪽
28 028. 노예 아이돌 (1) +4 23.10.06 1,621 27 11쪽
27 027. 좋은 생각 +2 23.10.05 1,748 29 12쪽
26 026. 갑질의 끝 (2) +4 23.10.04 1,782 30 12쪽
25 025. 갑질의 끝 (1) +6 23.10.03 1,775 25 12쪽
24 024. 강남서 강력반 강호 (2) +1 23.10.02 1,768 28 12쪽
23 023. 강남서 강력반 강호 (1) +2 23.10.01 1,865 27 12쪽
22 022. 사장은 또라이 (2) +2 23.09.30 2,014 24 12쪽
21 021. 사장은 또라이 (1) +2 23.09.29 2,105 27 12쪽
20 020. 꼬리 자르기 +3 23.09.28 2,125 30 12쪽
19 019. 내부자 +3 23.09.27 2,154 29 12쪽
18 018.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 (2) +3 23.09.26 2,170 28 11쪽
17 017.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 (1) +3 23.09.25 2,161 2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