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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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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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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10.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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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37.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1)

DUMMY

충청남도 해안가에 위치한 서석사로 오르는 길은 가히 절경이었다.

왼쪽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울창한 산림이 늘어서 있는 길.

바다로 가야 할지, 산으로 가야 할지 피서지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이만한 곳도 없었다.

게다가 서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꽤나 유명한 사찰이었다.

또한, 그곳은 대한민국 불교계에서 신망 높은 혜명스님이 계신 곳이기도 했다.

강호 팀장은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 내며 서석사로 향했다.


“스님! 계십니까?”


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강호는 조심스레 혜명스님을 불렀다.

처소의 문이 열리며 노승(老僧)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누군가? 강호 아닌가? 강 형사 잘 지냈나?”

“이제 형사 일은 그만뒀습니다.”

“그 일은 왜 그만둬? 죄인들 참회하는데 그만큼 도움을 주는 일이 어디 있다고?”

“그야 뭐 제가 그 일을 하다가 죄인이 됐으니까 그렇게···.”


강호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아이처럼 수줍어했다.

그런 그를 가만 보고 있던 혜명스님은 손짓해 안으로 들어오라 했다.

강호는 쭈뼛거리다가 방 안으로 겨우 몸을 들였다.


“그래. 강 형사가 무슨 일로 왔는가?”

“네. 스님. 이쪽에 있는 형사한테 들었는데, 지금 서석사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요.”

“아. 그거 말인가?”


노승의 이마에 있는 깊은 주름이 더 깊게 패였다.

강호는 혜명스님이 말을 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오래된 일이야. 부처를 모시는 사람으로서 불상은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인데···.”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1심에서는 우리가 이겼네만. 항소심에서는 쉽지가 않아. 근심이 많네.”

“스님. 제가 지금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제가 도울 게 있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눈을 감고 있던 혜명스님이 눈을 번쩍 떴다.

마침 서석사의 소송을 대리하던 변호사가 상황의 변화를 감지했는지, 그만두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였던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강호가 찾아온 것이니 스님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래? 자네 사무실에 있는 변호사는 어떤 사람들인가?”

“갓 사법연수원 수료한 분들인데, 실력이 아주 좋습니다.”

“갓 수료한 사람들이라고?”


잠시 펴졌던 혜명스님의 주름이 다시 깊어졌다.

스님의 마음을 알아챈 강호가 가방 안에서 신문을 꺼냈다.

컬러로 인쇄된 스포츠신문이었다.


“스님. 여길 보십시오.”


강호는 김일목, 김재혁 변호사의 사진이 실린 면을 펼쳐 혜명스님에게 건넸다.

스님은 신문을 받아들고 찬찬히 기사를 살피던 중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혜영스님의 눈치를 살피던 강호의 눈에 시시각각 변하는 스님의 표정이 들어왔다.

근심에서 호기심으로, 호기심에서 놀람으로, 놀람에서 안도감으로, 안도감에서 확신으로.

그리고, 스님은 큰소리로 외쳤다.


“당장 서울로 올라가세!!”


***


강호 팀장이 낡은 승복 차림의 노스님과 함께 나타나자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정 국장이 스님을 보며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물었다.


“스님은 어떻게 오셨는지요?”

“저는 혜명이라 합니다. 저기 계신 김일목 변호사님을 뵈러 왔습니다.”


혜명스님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뜻밖의 지적에 당황하며 물었다.


“저를요? 저는 스님을 처음···.”

“일단 들어가서 말씀을 나눠도 되겠습니까?”


혜명스님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때 스님의 마음이 들려왔다.


< 대선사(大禪師)의 후손이 정말 맞는 건가? 아직 잘 모르겠어. >


대선사의 후손?

내가 무슨 스님의 후손이라는 말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혜명스님을 내 방으로 안내했다.

쇼파에 앉자마자 스님이 말을 꺼냈다.


“우리 절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오래 전에 우리 절에 있던 불상을 왜구가 훔쳐 가서는 돌려 주지 않았는데, 그 불상이 지금 한국에 돌아와 왔습니다. 그래서 그걸 찾으려 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차근차근 말씀해 주세요.”


혜명스님을 통해 듣게 된 불상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았다.


조선 중종 때인 1510년경 전후.

충남에 있는 서석사에 왜구가 침입했는데, 왜구가 서석사에 있던 불상과 경전을 약탈했다.

왜구는 근거지인 대마도로 돌아가면서 약탈한 불상과 경전을 가져갔고, 대마도에다 정토사라는 절을 지었는데 그 절의 주지가 불상을 가져간 왜구의 두목이었던 것이다.

거의 500년 동안 서석사의 불상과 경전을 보관하고 있던 정토사에 한국인 절도범이 들어가 그 불상과 경전을 한국으로 몰래 들여왔고 이게 적발되어 불상이 검찰에 압수되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석사에서 정토사가 가져가려던 불상에 대해서 반환 소송을 걸었고, 1심에서 승소한 상황이었다.


“1심에서 승소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사실 1심에서 승소한 건 불교계에서 들고 일어나 압력을 넣은 게 굉장히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법리적으로만 보면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 많다고 그러더군요.”

“불리한 게 뭔가요?”

“그건 우리 서석사가 임진왜란 후에 내륙에서 해안으로 절을 옮긴 적이 있는데, 두 절이 동일한 절이냐 하는 문제와 왜구가 불상을 가져갔어도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점유취득인가 뭔가로 이미 왜구의 소유가 된 것이라는 겁니다. 이게 정말 맞는 겁니까?”


사실 법리로만 보면 절도를 한 경우에도 자기가 소유할 의도로 점유한 것이라는 자주점유는 번복되지 않는다.

너무 논리적으로만 따져 일반인의 법 감정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었다.


“네. 사실 그게 맞습니다.”

“그럼 불상을 훔쳐 간 사람이 계속 가지고 있는 게 법적으로 합당하다는 건가요?”


노승은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몇 번 두드렸다.

나는 손을 들고 진정하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진정하시고요. 지금은 그 불상을 훔쳐간 건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가져간 건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 1심에서는 정황만으로 판단해 줬어요.”

“어쨌든 불상을 어떻게 가져간 것인지는 우리 측에서 밝혀야 하겠네요.”


500년 된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는 것.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맡고 있는 변호사가 힘들어 하는 눈치인데, 혹시 변호사님이 사건을 맡아 주실 수 있는지요?”

“제가요?”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가 혜영스님을 올려다봤다.

그때, 혜명스님의 눈에서 그의 마음이 들려 왔다.


< 맞아. 대선사(大禪師)의 후손이 확실해. 방금 왼쪽 눈이 오른쪽 눈과 달라졌어. 대선사처럼 관심법을 쓸 줄 아는 것 같아. >


혜명스님의 마음을 듣고 뜨끔해서 바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그를 쳐다봤을 때 그는 아주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서둘러 이 자리를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


“네. 스님. 제가 맡아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면 또 연락드릴게요.”

“네. 그러시죠. 괜찮다면 누추한 절에 한 번 와 주시면 좋고요.”

“당연히 가야죠.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별말씀을.”


나는 서둘러 스님에게 인사하고 강호 사무장을 불렀다.


“사무장님. 스님 좀 모셔다 드리십시오.”

“네. 변호사님.”


강호 사무장이 혜명스님을 모시고 나가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어지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내 능력을 어떻게 단번에 알아본 걸까?

그리고, 대선사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았다.


***


혜명스님이 다녀간 다음날 아침.

우리 사무실의 구성원 모두가 회의실에 모였다.

500년 된 불상 도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현재 서석사와 불상을 도난당할 당시 서석사가 같은 사찰인가, 두 번째는 불상을 보유하고 있는 정토사의 점유취득시효가 인정되는 가예요.”

“500년도 더 된 일을 어떻게 알아내지?”


내 말에 재혁이 웅얼거리듯 대답했다.


“도서관 다니면서 고문서를 좀 봐야겠네요. 그리고 서석사 주변에 오래된 문서들이 있는지도 찾아봐야겠고요.”


정성식 국장이 덤덤하게 의견을 냈다.


“국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 사건은 저와 김 변호사뿐만 아니라 국장님하고 사무장님까지 다 나서야 할 것 같아요.”

“제가 괜히 스님을 모시고 왔나요?”


강호 팀장이 미안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아닙니다. 이 사건은 나름 중요한 사건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 관심을 받고 있는 사건이라서.”

“그럼 일단 일을 나누죠. 저하고 국장님은 고문서를 좀 뒤져 보고, 강 사무장님은 서석사 주변 수소문해서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재혁이 제안을 했다.

그런데, 나의 역할은 따로 없었다.


“그럼 난 뭘 해?”

“형은 재판도 나가고 서면도 쓰고 그래야지.”


재혁이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할 일이 제일 많기는 했지만 충분히 할 만한 일이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왜구가 불상을 훔쳐 갔느냐 아니냔 건데.”

“근데, 훔쳐 갔어도 그렇게 오래된 거면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는 거 아닌가?”


재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아. 왜구가 그랬다고 해도 불리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훔쳐갔는지 어떻게 가져갔는지도 아직 밝혀진 게 없어.”

“왜구가 불상을 빌려간 거면 자주점유가 아닌 거죠?”


나와 재혁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 국장이 물었다.

다소 엉뚱한 질문이었다.

조선을 약탈하려고 온 왜구가 갑자기 불상을 빌려 달라고 할 일이 있겠는가 말이다.


“국장님도 농담을 하실 줄 아시네요? 하하!!”


재혁이 웃으며 정 국장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 국장의 심각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런 문서라도 발견되면 주장이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문서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죠.”

“네. 그렇겠죠.”


정 국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으나 심각한 표정은 여전했다.

속으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나 들어보려고 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어서 재빨리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국장님. 사건 조회는 해 보셨나요?”

“네. 항소심 선임됐던 변호사가 오늘 사임했습니다. 변론기일은 일주일 뒤고요. 위임장을 넣을까요?”

“네. 제출해 주세요.”

“변론기일 연기하셔야죠?”


변론기일이 촉박하면 위임장을 제출한 뒤 연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변론기일을 연기하는 것보다 재판에 나가서 판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아뇨. 연기하지 마세요. 출석해 보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가서 뭐하게?”


재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가서 판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보고 오려고.”

“그게 보여? 후훗!!”

“너는 안 보이냐? 나는 다 보이는데.”


농담으로 알아들은 세 사람이 피식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럼 가셔서 판사들 생각을 많이 알아 오십시오. 관상가 형님.”


딱히 재미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농담에 의례적인 웃음을 지었다.

각자 할 일도 정해졌고, 변론기일도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500년 전 일어난 불상 절도 사건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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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041. 재판장은 친일파 +3 23.10.19 1,179 23 12쪽
40 040.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4) +3 23.10.18 1,141 24 12쪽
39 039.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3) +4 23.10.17 1,190 20 12쪽
38 038.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2) +3 23.10.16 1,243 23 12쪽
» 037.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1) +3 23.10.15 1,447 27 11쪽
36 036. 승소. 그러나, 험난한 미래 +3 23.10.14 1,435 27 12쪽
35 035. 결정적 증언 +4 23.10.13 1,430 28 12쪽
34 034. 증인을 잡아라 (2) +4 23.10.12 1,410 27 12쪽
33 033. 증인을 잡아라 (1) +5 23.10.11 1,449 26 12쪽
32 032. 거짓 증거를 깨라 +4 23.10.10 1,490 29 12쪽
31 031. 전관 변호사가 비호감 +3 23.10.09 1,515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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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028. 노예 아이돌 (1) +4 23.10.06 1,621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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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022. 사장은 또라이 (2) +2 23.09.30 2,014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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