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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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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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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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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36. 승소. 그러나, 험난한 미래

DUMMY

“먼저 쟁점이 되었던 계약 기간을 보면 원고들과 피고 JS 엔터테인먼트의 전속계약은 13년이라는 긴 기간으로 계약 기간을 설정하였고, 그 기간의 기산점도 첫 음반 출시로 잡는 등 연습생 시절을 고려하면 계약 기간이 이론적으로 무한정 연장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다 말고 멤버들을 한 번 쳐다봤다.

그의 눈에 연민이 잠깐 스쳐 가는가 싶더니 다시 판결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에 대해서 피고는 전형적인 고용계약이라 주장하나, 고용계약은 일반적으로 계약 체결 즉시 그 효력이 발생하는 점, 후술하는 바와 같이 손해배상액을 예정할 수도 없는 점 등에 비추어보면 고용계약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피고 회사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체결한 것으로써 위법함을 면할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일단 계약 기간 부분에서는 위법한 것임이 밝혀졌다.

물론 위법하더라도 계약 해지가 될 정도로 중대한 위법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다음으로 손해배상액 예정을 보면 원고들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손해배상으로써 투자한 금액의 3배를 배상하고, 따로 위약벌로써 2억 원을 추가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피고는 초기 투자액이 상당한데, 연예인들을 붙잡아 두는 규정이 없다면 회사의 운영이 어려워진다고 하면서 위 규정이 문제없다고 주장합니다.”


재판장이 고개를 들고 피고 측 변호사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판결문을 보며 선고를 계속 이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회사의 초기 투자나 운영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투자액 전액도 아닌 3배를 손해배상으로 하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며, 이와 별개로 위약벌 2억까지 부담하게 하는 것은 원고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도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판결의 윤곽이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범구 변호사를 비롯한 피고 측 변호사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피고 측의 제출한 원고들의 매출, 비용 자료를 보면 과다하게 산정된 것이 확인되며, 활동 기간 동안 원고들에게 지급한 정산금은 실제 지급해야 할 정산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판결의 주문을 선고할 차례였다.

재판장은 주문을 선고하기 전 멤버들과 피고 측 변호사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숨을 한 번 고른 후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이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선고합니다.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체결한 계약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20억 원 및 이 사건 판결 선고시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재판장이 주문을 낭독하는 순간 방청석에 있던 기자들의 입에서 옅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멤버들은 기쁨과 함께 재판 과정에서 겪은 고통이 떠오르는지 곧바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옆에 있던 예준이 내 손을 꼭 잡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나머지 두 사람도 차례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축하합니다. 어서 가서 기자회견 하셔야죠.”


나는 웃는 얼굴로 법정 출입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멤버들은 우는 듯 웃는 듯 묘한 표정으로 법정을 천천히 빠져 나갔다.

멤버들을 기다리던 차미연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인사했다.

그런 그들을 보니 나도 괜히 감정이 북받쳤다.


“그 동안 수고했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전범구 변호사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공손하게 악수를 하며 말했다.


“변호사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 자네 연수원 수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재판을 꽤 잘하더군. 앞으로 더 잘 해 보게.”

“저도 이번 재판으로 변호사님께 배운 점이 많았습니다.”

“배우긴 뭘 배웠겠나. 하여간 앞으로도 훌륭한 변호사로 활동하길 바라겠네.”


말을 마친 전 변호사는 손을 들어 작별 인사를 하고 법정을 빠져나갔다.

전 변호사 일행이 나가자 재혁이 중얼거렸다.


“전 대법관. 저렇게 나가는 모습을 보니까 짠하네.”

“그러게. 재판할 때는 밉상이었는데 말이야.”

“형! 그나저나 우리 너무 잘하는 거 아냐?”


재혁이 실없이 웃으며 물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 겨우 1년 지났는데 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나도 재혁 만큼 기뻤다.

이번 사건으로 연예계의 잘못된 관행 개선에 큰 역할을 한 것과 더불어 또 다른 수익이 있었다.

바로 멤버들이 받게 될 정산금의 10%가 성공보수로 지급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며칠 후.

JS 엔터테인먼트는 소송을 계속하는 것보다 남은 멤버 두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전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소송을 제기한 세 명의 멤버들에게 정산금을 지급했다.

계약에서 자유롭게 된 세 명의 멤버들은 바로 새 출발을 위한 팬 미팅을 개최했다.


“이제 저희만의 길을 가겠습니다. 저희 셋이서 그룹을 만들고 곧 신곡으로 팬 여러분들을 찾아뵙겠습니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세 명의 멤버가 포부를 밝히자 잠실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팬들이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날 팬 미팅에서 세 사람은 파이브 보이스의 히트곡을 부를 수 없었다.

멤버들이 팝송 몇 곡을 돌아가며 부르고 팬들이 마련한 케이크를 자르며 오열하는 장면만 있었을 뿐이었다.

달라진 그들의 위상은 그게 시작이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이돌이고 방송에서도 맹활약한 그들이었기에 연예계에서 쉽게 그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멤버들과 팬들은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국내 연예계의 벽은 높았다.

JS 엔터테인먼트의 집요한 공세로 세 멤버들은 음악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이 사실상 정지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라디오를 포함한 거의 모든 매체에서 그들을 언급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멤버들은 새로운 그룹 활동을 위해 당분간 활동을 중단한다는 명분으로 애써 출연 정지의 이유를 감추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노력으로도 그들의 달라진 처지를 감출 수는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나는 감사 인사차 사무실을 찾은 차미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미연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상했던 일인데요. 엄진석이 가만 두고 볼 사람이 아니잖아요. 일단 신곡 발표는 일본에서 하려고 합니다.”

“일본에서요?”

“네. 우리 멤버들이 일본에서 인기가 좀 있거든요. 국내만은 못해도 어느 정도 수익은 올릴 수 있을 거예요.”

“아. 정말 잘됐네요.”


이런 것까지 대비하고 있었다니 과연 어린 나이에 JS 엔터테인먼트 실장을 할 만한 미연이었다.

일본에서 성공한다면 역으로 우리나라로 복귀가 쉬울 수도 있었다.

미연을 말을 듣고 나니 앞으로의 활동이 더 궁금해졌다.


“일본에는 얼마나 있을 생각이세요? 국내로 복귀는···”

“일단 국내 복귀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잘 된다고 해도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진출하는 게 먼저지 국내 복귀는 나중 일이에요.”

“왜 그런 거죠?”


빨리 국내 복귀해서 활동을 하는 게 멤버들에게 좋을 것 같은데 미연의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어설프게 복귀했다가 JS 엔터테인먼트한테 당할 수 있습니다. 성공하려면 아예 크게 성공해서 JS가 함부로 못하게 해야죠. 그때까지는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그렇군요. 그래도 멤버들은 한국이 그리울 텐데······.”

“그래서 다른 쪽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다른 쪽이라면?”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미연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TV나 영화 쪽이요. 아무래도 그쪽은 JS의 영향력이 덜할 테니까요.”

“와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난 생각도 못 했던 방법이었다.

어려서부터 가수를 했던 친구들이라 가수로 복귀한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연기자로 복귀한다면 JS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네. 아직까지 연기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끼가 있는 친구들이니까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네. 꼭 그렇게 될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주어 말했다.

미연이 미소를 지으며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걱정이 많을 텐데도 미연은 아주 담담해 보였다.

미모도 빼어났지만 그보다 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뭘 그렇게 빤히···.”

“아닙니다. 그냥 미연씨가 너무 훌륭한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훌륭하긴요. 이번 사건 변호사님 아니면 솔직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는데, 제가 감사하죠.”

“칭찬이 과하시네요. 하하!!”


말은 그렇게 했어도 솔직히 기분은 좋았다.

미연은 말없이 한참 동안 나를 쳐다봤다.

눈빛이 얼마나 그윽했는지 하마터면 눈을 감고 입을 내밀 뻔했다.

잠시 후 시선을 돌린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 참 매력이 있으신 것 같아요.”

“매력이요? 제가 무슨 매력이···.”

“전체적으로 다 괜찮으신데, 특히 그 눈이 너무 매력 있어요.”

“눈이요?”


나는 손으로 양쪽 눈을 만지며 물었다.

내 행동이 우스웠는지 미연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네. 그 눈. 아직까지 모르셨나봐요? 하긴 자세히 봐야 알 수 있긴 하지만.”

“무슨 말씀이시죠?”

“변호사님 눈. 오드 아이(odd eye)잖아요.”

“오드 아이라고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눈을 유심히 관찰했다.

미연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 눈, 특히 시력을 잃은 내 왼쪽 눈이 오른쪽 눈과 달리 은은한 회색빛이 돌고 있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신비감을 주고 있었다.


“모르셨구나. 난 첨부터 그 눈에 반했었는데··· 하여간 변호사님. 저희 멤버들 정산금 받은 거 10% 입금하겠습니다.”

“네. 네. 가··· 감사합니다.”


미연은 작별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내 방을 빠져나갔다.

내 눈을 보고 반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볼 시간을 주지도 않고 말이다.

그녀가 나간 자리에 희미한 향수의 내음만 풍겨왔다.

아쉬움에 미연이 나갔던 자리를 보고 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그녀가 다시 들어오나 설레는 마음으로 말했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재혁이었다.


“야아!! 노크도 안 하던 놈이 왜 갑자기 노크야!!”

“형. 왜 그래? 언제는 노크 안 한다고 뭐라더니? 이랬다저랬다.”


하긴 재혁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잘못이라곤 오락가락하는 내 기분 뿐.


“어, 어. 듣고 보니 그렇네. 근데 무슨 일이냐?”

“차미연씨 가시던데, 무슨 얘기 했어?”


사무실을 나가는 미연을 본 모양이었다.


“그냥 성공보수 준다고.”

“오예!! 이제 우리도 새로운 변호사 고용해야 되는 거 아냐? 사무실에 사건도 많이 들어오는데.”

“그래. 그건 차차 생각해 보자. 손에 든 건 뭐야?”


재혁이 손에 스포츠 신문을 들고 있었다.


“맞다. 여기 형하고 내 사진이 실렸어. 판결 선고기일에 사진 기자가 찍었나 봐.”


[3전 3승. 김앤전 잡는 무서운 변호사들.]


거창한 기사의 제목과 함께 재혁과 내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것도 컬러사진으로.


“근데, 형 사진은 좀 이상하게 나왔어. 짝눈으로. 하하!!”


재혁의 말을 듣고 사진을 보니 정말로 내 눈이 다르게 나와 있었다.

오른쪽 눈은 검게, 그리고 왼쪽 눈은 은은한 회색으로.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알 수는 있었다.

내가 오드 아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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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043. 궁예의 후손 (1) +3 23.10.21 1,168 27 12쪽
42 042. 변론 재개 +5 23.10.20 1,197 21 12쪽
41 041. 재판장은 친일파 +3 23.10.19 1,179 23 12쪽
40 040.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4) +3 23.10.18 1,142 24 12쪽
39 039.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3) +4 23.10.17 1,191 20 12쪽
38 038.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2) +3 23.10.16 1,243 23 12쪽
37 037.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1) +3 23.10.15 1,448 27 11쪽
» 036. 승소. 그러나, 험난한 미래 +3 23.10.14 1,436 27 12쪽
35 035. 결정적 증언 +4 23.10.13 1,431 28 12쪽
34 034. 증인을 잡아라 (2) +4 23.10.12 1,410 27 12쪽
33 033. 증인을 잡아라 (1) +5 23.10.11 1,449 26 12쪽
32 032. 거짓 증거를 깨라 +4 23.10.10 1,490 29 12쪽
31 031. 전관 변호사가 비호감 +3 23.10.09 1,515 28 12쪽
30 030. 노예 아이돌 (3) +4 23.10.08 1,540 26 11쪽
29 029. 노예 아이돌 (2) +6 23.10.07 1,516 24 12쪽
28 028. 노예 아이돌 (1) +4 23.10.06 1,621 27 11쪽
27 027. 좋은 생각 +2 23.10.05 1,748 29 12쪽
26 026. 갑질의 끝 (2) +4 23.10.04 1,783 30 12쪽
25 025. 갑질의 끝 (1) +6 23.10.03 1,775 25 12쪽
24 024. 강남서 강력반 강호 (2) +1 23.10.02 1,768 28 12쪽
23 023. 강남서 강력반 강호 (1) +2 23.10.01 1,865 27 12쪽
22 022. 사장은 또라이 (2) +2 23.09.30 2,015 24 12쪽
21 021. 사장은 또라이 (1) +2 23.09.29 2,106 27 12쪽
20 020. 꼬리 자르기 +3 23.09.28 2,126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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