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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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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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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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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 증인을 잡아라 (2)

DUMMY

소규모 공연장들이 모여 있는 홍대 앞 골목.

밴드로 추정되는 긴 머리를 한 남자들 무리와 그들을 흘끔거리며 지나가는 여성팬들을 보니 과연 인디밴드의 성지다웠다.

수많은 공연장 중에 변지훈이 활동하는 밴드가 어디서 공연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어떻게 그를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여전히 변지훈으로부터 온 메시지는 없었다.


‘일단 아무 공연장이나 들어가 보자.’


나는 인디밴드의 팬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는 공연장에 따라 들어갔다.

지하로 내려가니 무대에서는 밴드 멤버들이 악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쿵쾅쿵광 울리는 드럼 소리에 짜릿한 흥분이 밀려 왔다.


‘이 맛에 공연을 보러 오는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이 보였다.

찢어진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를 입고 긴 파마머리를 한 남자였다.


“저 혹시 변지훈씨를 아세요?”

“누구요?”


시끄러운 소리에 남자가 귀를 갖다 대며 되물었다.


“변지훈이요!!”


내가 큰소리로 말하자 남자가 뒤로 몸을 빼며 소리쳤다.


“아. 시발. 깜짝 놀랐네. 나 귀 안 먹었어.”

“하하!! 미안합니다”

“변지훈. 변지훈이라?”


남자는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한참 생각을 하더니 손바닥으로 머리를 탁치며 말했다.


“변지훈이. 파이브 보이스 매니저 했던 놈 말이죠?”

“네. 그 사람 맞습니다.”

“방부제에서 드럼 치고 있는데··· 요 밑으로 내려가면 ‘트리플 G’라는 공연장이 있어요. 아마 거기서 공연을 하고 있을 겁니다.”

“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남자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남자는 좌우를 살피다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지훈이 만나면 진지하게 말해줘요. 빨리 그만두라고.”

“아. 네. 네.”


남자는 내 등을 한번 툭 치더니 다시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연장을 나와 남자가 알려 준 ‘트리플 G’를 찾아갔다.

좀 전과 마찬가지로 공연장은 지하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쿵쾅쿵쾅 드럼 소리와 함께 찢어질 듯한 일렉트릭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헤비메탈 밴드인가?’


‘방부제’의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은 무대 앞에 모여 있는 열 명이 전부였다.

흥이 나지 않을 법도 했지만, 그래도 ‘방부제’는 최선을 다해 연주를 하고 있었다.

뒤쪽으로 드럼을 치고 있는 변지훈의 모습이 보였다.

헤어밴드를 하고 형광색의 드럼 스틱을 휘두르는 그가 꽤 근사해 보였다.


‘왜 그만 두라고 하라는 거지?’


남자가 왜 변지훈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한 건지 생각하고 있는데, 곧 남자의 말을 이해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드럼은 일정한 템포로 연주되어야 한다.

그래야 기타, 베이스, 키보드가 그 템포에 맞춰 합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변지훈의 드럼은 미세하게 템포가 틀어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멤버들이 뒤를 힐끗 거렸지만, 변지훈은 음악에 취한 건지 고개를 흔들기만 할 뿐 멤버들의 시선에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아!! 멤버들 갑갑하겠네.’


연주는 점점 더 어색해졌고, 보컬의 목소리도 그에 맞춰 소심해졌다.

헤비메탈 밴드의 정체성을 상실한 그들의 연주를 누가 듣겠는가.

무대 앞에 있던 팬들이 하나둘씩 공연장을 나서고 남은 사람은 단 하나.

나뿐이었다.


“듣고 싶은 곡 있으세요?”


금발로 염색한 긴 머리의 보컬이 나를 보며 물었다.

객석이 컴컴해서 그런지 변지훈은 아직 나를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뇨. 저는 변지훈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지훈이요? 요즘 지훈이 찾아오는 사람이 많네.”


금발의 보컬은 뒤를 돌아봤고, 변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무대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

멤버들은 앞으로 나오는 변지훈 띠꺼운 시선으로 보고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윽고 나를 알아본 변지훈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변호사님이 여길 어떻게···.”

“변지훈씨. 갑자기 증인신문 안 한다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저희한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죄송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저도 제 인생이 있잖아요.”

“JS에서 찾아왔어요?”


방금 전 금발 보컬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런 추측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아··· 아니오. 그냥 저는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역시 찾아왔군요. 지훈씨. 지훈씨하고 5년이나 함께 했던 멤버들을 생각해 주세요. 그 친구들 이번 재판 잘못되면 정말 나락으로 떨어질 겁니다. 모든 게 지훈씨 손에 달렸어요.”


그 말에 걸리는 게 있는지 지훈이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변호사님. 죄송합니다. 더 이상 변호사님과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지훈씨! 이렇게 부탁할게요. 멤버들을 버리지 마세요!!”


지훈은 대답을 하지 않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금발의 보컬이 멀찌감치 떨어져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보컬과 시선을 한참 교환한 뒤 몸을 돌려 공연장을 나섰다.

끝내 변지훈에게 그만 두라는 클럽 사장의 말을 전하지 못한 채.


***


“변지훈은 잘 마무리된 거지?”


JS 엔터테인먼트 엄진석 대표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는 윤 본부장을 향해 물었다.


“네. 저번에 홍대에 갔을 때 다짐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했어?”

“이번 사건 증인으로 안 나가면 너희 밴드 앨범 내주고 방송에도 몇 번 출연시켜 주겠다고 했죠.”

“밴드를 해?”


엄 대표가 놀란 눈으로 윤 본부장을 쳐다봤다.


“네. 홍대 앞에서 인디밴드를 하더라고요.”

“잘 해?”


윤 본부장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실력이 영 아닙니다. 다른 멤버들은 그런대로 하는데 지훈이 실력이. 크큭···.”

“윤 본부장. 그런 애를 어떻게 데뷔 시킨다고 그런 말을 했어?”

“일단 급한 불은 끄고 봐야 해서. 나중에 전문가들 데려다가 어르고 달래서 관두게 해야죠. 그리고, 약도 좀 쳤습니다.”

“약을 치다니? 돈을 줬다는 거야?”


엄 대표의 물음에 윤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많이는 안 줬습니다. 돈 천만 원.”

“그거 갖고 되겠어?”

“좋아하던데요.”


엄 대표가 흡족한 듯 고개를 젖히며 웃어대자 윤 본부장도 엄 대표를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끝나갈 무렵 엄 대표가 다시 정색을 하면서 윤 본부장을 쳐다봤다.


“이번에 어떻게 하든 이겨야 돼. 그 세 놈을 가만 두면 다른 놈들도 컨트롤이 안 돼.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이 새끼들은 내가 작살을 내고 만다. 작살을!!”


엄 대표는 어금니를 바득바득 갈았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그 큰 대표실에 울려 퍼졌다.

소름 끼치는 소리였지만 윤 본부장은 눈을 살짝 찡그리기만 할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


제3차 변론기일이자 증인신문기일.

변호사 대기석에 앉은 재혁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형! 변지훈한테 연락 없었지?”

“응.”

“이거 어떻게 해야 돼?”

“일단 기다려 보자.”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변지훈이 마음을 돌리고 오늘 법정에 나와 주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수를 찾아야 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전 변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전 변호사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네까짓 게 뭘 하겠냐’는 것 같은 비웃음.


‘벌써 손을 썼구나. 그럼 변지훈 없이 가야 하는 건가?’


“다음 재판 진행하겠습니다. 원고 김예준 외 2인, 피고 JS 엔터테인먼트 주식회사 나오세요.”


재판장이 사건을 호명했다.

나와 재혁은 원고 변호사 대기석에서, 전 변호사 일행은 피고 변호사 대기석에서 천천히 원고석과 피고석으로 걸어갔다.


“자. 양측 모두 앉으시고, 2회 변론기일 후 원고 측에서 원고 박주현의 다이어리를 제출하고, 다이어리 일정에 근거해서 비용을 추정해서 제출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원고 박주현은 평소 기록을 꼼꼼하게 하는 성격으로 연습생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뭘 했는지를 전부 다 다이어리에 기록을 하고 있었습니다.”


재판장이 나와 재혁 쪽을 보자 재혁이 나서서 진술했다.


“원고 박주현의 다이어리에 기록된 내역이 정확하다는 것을 뒷받침할 증거는 있는가요?”

“피고 측이 제출한 비용 내역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피고 측이 추산한 비용과는 상당히 괴리도 있었고요.”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 변호사가 나섰다.


“개인의 기록일 뿐입니다. 어떤 객관적인 근거를 가질 수 없습니다. 게다가 원고들은 파이브 보이스의 멤버로 비용을 실제로 지급한 사람들이 아니고, 비용 정산은 피고 회사가 했기 때문에 더더욱 알 수 없었습니다.”

“피고 측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원고 측은 좀 더 객관적인 증거를 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박주현의 다이어리는 파이브 보이스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 모든 일정이 거의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지 않은 것은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저녁을 먹었다 식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서 이런 비용을 추산하기가 꽤 어려웠다.

누군가 박주현 다이어리가 맞다고 증언해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적임자가 바로 변지훈이었다.


“참. 오늘 증인신문이 예정되어 있었죠. 증인이 누구더라?”

“변지훈입니다.”


나와 재혁이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피고 측 권재수 변호사가 잽싸게 대답했다.


“맞네. 변지훈씨. 원고 대리인! 변지훈 증인 출석했습니까?”

“그게··· 아직···.”

“무슨 말씀이죠? 오늘 나오신다는 거예요? 아님 증인신청을 철회한다는 거예요?”

“잠시 연락을 해 보고 나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전화기를 꺼내 들고 법정 밖으로 나왔다.

만에 하나 변지훈이 오고 있을 수 있으니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지만, 변지훈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연락이 됩니까? 뭐라고 그래요?”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 겁니까? 증인신청을 철회할 겁니까?”


재판장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일반 변론기일에서 변론은 길어봐야 10분을 넘기 어려웠다.

하지만, 증인신문은 최소 30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증인이 나오지 않아서 증인신문기일이 연기되는 걸 재판장들은 극도로 싫어했다.

나는 적당하게 다른 방법을 제시해 보기로 했다.


“만약, 변지훈 증인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차미연을 증인으로 신청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차미연은 원고 대리인들과 상담해서 원고들을 소송에 이르게 한 자입니다. 객관적 사실을 진술할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전 변호사가 근엄한 표정에 맞게 묵직한 저음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재판장이 나를 보며 물었다.


“원고 대리인. 피고 대리인 말이 맞습니까?”

“네··· 사실은··· 맞습니다.”

“그럼 증인으로 곤란한 것 같은데요.”


재판장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 잘 끌고 왔는데, 안 됐네. >


재판장의 속마음이 귓전을 강하게 때렸다.

나는 눈을 꼭 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법정에 있는 모든 눈이 나에게 쏠려 법정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끼이익···.


낡은 법정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돌아갔다.

머리를 길게 기른 네 명의 남자가 조심스레 법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재판장이 그 무리를 향해 물었다.


“변지훈 증인?”


네 명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네. 제가 변지훈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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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044. 궁예의 후손 (2) +4 23.10.22 1,191 24 12쪽
43 043. 궁예의 후손 (1) +3 23.10.21 1,168 27 12쪽
42 042. 변론 재개 +5 23.10.20 1,197 21 12쪽
41 041. 재판장은 친일파 +3 23.10.19 1,179 23 12쪽
40 040.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4) +3 23.10.18 1,142 24 12쪽
39 039.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3) +4 23.10.17 1,191 20 12쪽
38 038.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2) +3 23.10.16 1,243 23 12쪽
37 037. 서석사 불상 도난 사건 (1) +3 23.10.15 1,448 27 11쪽
36 036. 승소. 그러나, 험난한 미래 +3 23.10.14 1,436 27 12쪽
35 035. 결정적 증언 +4 23.10.13 1,431 28 12쪽
» 034. 증인을 잡아라 (2) +4 23.10.12 1,411 27 12쪽
33 033. 증인을 잡아라 (1) +5 23.10.11 1,449 26 12쪽
32 032. 거짓 증거를 깨라 +4 23.10.10 1,490 29 12쪽
31 031. 전관 변호사가 비호감 +3 23.10.09 1,515 28 12쪽
30 030. 노예 아이돌 (3) +4 23.10.08 1,540 26 11쪽
29 029. 노예 아이돌 (2) +6 23.10.07 1,516 24 12쪽
28 028. 노예 아이돌 (1) +4 23.10.06 1,621 27 11쪽
27 027. 좋은 생각 +2 23.10.05 1,748 29 12쪽
26 026. 갑질의 끝 (2) +4 23.10.04 1,783 30 12쪽
25 025. 갑질의 끝 (1) +6 23.10.03 1,775 25 12쪽
24 024. 강남서 강력반 강호 (2) +1 23.10.02 1,768 28 12쪽
23 023. 강남서 강력반 강호 (1) +2 23.10.01 1,865 27 12쪽
22 022. 사장은 또라이 (2) +2 23.09.30 2,015 24 12쪽
21 021. 사장은 또라이 (1) +2 23.09.29 2,106 27 12쪽
20 020. 꼬리 자르기 +3 23.09.28 2,126 30 12쪽
19 019. 내부자 +3 23.09.27 2,155 29 12쪽
18 018.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 (2) +3 23.09.26 2,171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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