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신경쓰이는 사람들
균열핵은 나무 형태. 적당히 공격이 통할 거라 생각되는 부분은 지상에서 6미터, 그 위로는 아득히 많은 갈라진 가지가 보이고, 거기서 떨어지는 빛 알갱이가 있다. 저거 독인가, 폭탄인가... 아니면 둘 다?
코어가 있는 부분이 대놓고 빛나고 있는 거 보니 투사계 코어. 그럼 우리 원거리 공격으론 잘 안 통하겠는데...
하지만 첫 번째 공격은 어쩔 수 없이 송골매.
송골매가 총을 겨누고 에너지를 집중한다. 저걸로 자기 출력보다 훨씬 높은 위력의 탄을 쏘는데, 에너지를 발사하는 건 평범 이하지만 그걸 한 곳에 계속 응축시키고 그걸 유지하는 건 상당한 수준.
그럼 이 사람은 투사계가 아니라 조작계란 이야긴데.
첫 발이 날아간다.
안 돼, 너무 느려. 균열핵이 '감지' 하고는 집중된 에너지를 쏟아서 상쇄시킨다.
나무의 가지가 우르르 떨리고, 빛나는 뭔지 알 수 없는 게 뿌려지고 먼 곳에서부터 괴물체들이 꾸역꾸역 몰려오고. 어후. 이거 독이야, 폭탄이야. 좀 보자... 이런, 닿은 쪽의 에너지를 빨아가는데.
에너지를 흡수해서 본체 쪽으로 보내는구나.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에너지가 전달되는 경로가 있다는 이야기...
아수라가 다음 지시를 내린다.
"타이탄!"
"네!"
주먹을 두 번 부딪치고 거인이 되어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저 친구의 문제는 아직 저거 하나뿐이라는 거. 코어도 메인코어 한 종류. 그런 일이 없길 바래야겠지만 사람끼리 싸울 일이 생길 때 저 능력은 하등 쓸모없이 과녁만 넓게 해 주는 꼴이다. 걱정되네.
균열 안이라 그런지 조금 더 몸이 가벼워보이지만...
나무에서 '포격' 이 이어지고 빛나는 가루가 쏟아지자 더 나가지 못한다. 워낙 튼튼하니 좀 버티긴 하겠지만 더 나가려면 보조가 필요해.
김학균은 나무 쪽은 신경을 쓰지 않고 주변 상황을 정리하는 중.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팀의 에이스는 김학균이 맞다. 우선 몸놀림이 좋아. 타고난 반사신경이랑 빠른 감각이 분명 있어. 여기 있는 네 명 중 저 크레모아 사격을 한 발도 안 맞게 피할 놈은 저놈 뿐이다.
송골매는 됐고, 그래서 아수라는...
끙... 출력이 안 따라 주는 것 말고는 다 좋은데.
한 번에 움직이는 플라스틱 투명 진압 방패가 스물 다섯 개.
나는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저 장비를 너무 싫어하지만... 당장 가져다 쓸 수 있는 게 저것 뿐이었겠지. 이 사람은 자기 능력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장비가 좀 필요할 것 같네.
방패를 왜 싫어하냐고? 내 보육원 '형제'들 중에 저거에 맞은 사람이 몇 명 있거든, 아주 잔혹하게... 지금 말고 지난번의 2024년 이후에.
여기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쓸데없는 생각이 길었다.
결국 이 사람에게 필요한 건 출력. 더 많은 코어. 능력에 맞는 장비.
"타이탄, 방호하겠다. 앞으로 가자! 거리를 좁히고 영거리 사격을 진행!"
어, 그거 안 될 텐데.
하지만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말고 생각부터 해보자.
"가까이에서 저 놈 공격 어떻게 막죠?"
"막는다!"
"그럼 제가 지원해드릴테니..."
"아니! 내가 막는다!"
"그 소대장님."
"내가 막을 수 있다, 걱정 마라!"
학선이도 그렇고 방패 쓰는 사람들은 성격이 왜 다 이 모양이야. 왜 세상 풍파를 자기 혼자 다 버텨야 해?
일단 긴급상황을 대비해두자. 어느 때라도 <세이프하우스>랑 모두에게 <스틸스킨>을 최대 출력으로 걸 만큼.
지금 내 출력은 28만. 스킬 두 개에 집중하면 10만 이상씩 할당이 된다. 이 균열 안에서는 절대 다치지 않아.
보자. 자, 온다. 방패를 펼쳐 타이탄을 감싸고 첫 번째 공격... 과연? 아수라, 막을 수 있나요?
튕겨내긴 했는데! 괜찮아? 이보쇼, 괜찮은 거 맞죠?
"간지럽군!"
잇몸에서 지금 피 나시는데요?
두 번째... 공격은, 더 잘 막아냈다. 꽤 괜찮은 타이밍에 에너지를 뻗어 공격을 막아냈어.
이렇게 보니 에너지 용량과 재생은 상당히 좋아. 고출력 기술을 여러 번 써도 꽤 잘 버텨준다.
이거 코어 많이 먹여서 출력만 괜찮... 이런, 공격이 휘어서 온다!
방패를 우회해서 아수라에게! <스틸스킨>!
다치는 건 막았지만 뒤로 한참 굴러가버렸어, 괜찮나? 괜찮은 거죠 소대장?
아니, 그렇다고 너무 빨리 무리해서 일어나진 말고요...
"괜찮아요?"
"괜찮다!"
송골매도 놀랐다. 그녀와 내가 눈이 마주쳤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어. 내가 저 사람 눈을 보고 그랬어. 이거 참.
"소대장님 방패 뒤에서 잠깐 쉬고 있어요. 타이탄? 모조리 너한테 건다, 무슨 말인지 알지?"
"준비 됐슴다-!"
"최대로 걸 테니까 잘 버티는 거다? 어?"
"맡겨줘요!"
타이탄이 몸을 최대로 키우고 - 약 5미터! 나도 그놈에게 <스틸스킨>을 아낌없이 건다. 절-대 뚫리지 않아.
송골매가 머뭇거린다. 이러면 공격할 각이 나오지 않으니까. 나는 김학균을 손짓해 부른다.
"왜요 형?"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것들 <드레인> 해봐."
"이게 뭔데요? 나 뭐 잘못돼서 죽는 거 아니죠?"
"해 봐, 날 믿어 봐."
반신반의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깜짝 놀란다. 그렇지.
"에너지가?"
"원래 우리 에너지를 저 쪽에 보내는 건데 너라면 그 반대로 할 수 있지. 이 상태로 네가 움직이진 못해도, 저 분 총에 더할 순 있지?"
"아, 아, 오케이오케이. 알았어요."
"타이탄!"
"네?"
"삼 이 일에 맞춰 엎드려!"
"예에!"
송골매의 능력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준보다 약한' 탄은 쏠 수 없는 걸 거다. 그렇다고 아주 강력한 에너지가 실린 탄을 쏘고 싶어도 본인의 출력 문제가 있고.
그걸, 학균이를 이용해 외부에서 더하면. 그 제어를 내가 좀 도와주면...
"학균, 됐냐? 될 것 같냐?"
"되고 있어요! 한 손으로 드레인하고 다른 손으로 여기 맞죠?"
"좋아, 앞으로 10초만 더, 타이탄?"
"멀쩡합니다!"
송골매가 긴장한 얼굴로 웃네. 그렇지. 이거 한 방으로 충분하다.
"송골매, 쏠 수..."
"언제라도."
좋아.
"자 간다! 타이탄! 셋, 둘,"
"하나아!'
"네가 외치고 엎어지면 어떻게 하냐!"
어쨌든 늦지는 않았다. 적의 공격보다 준비하고 있던 송골매가 훨씬 빠르다.
처음 날린 것보다 두 배 이상 강하고 빠른 탄환이 적의 반격을 깨트리고!
깨끗하게 코어를 관통. 송골매는 들고 있던 총을 떨어트리고 양팔을 감싸고 주저앉고, 타이탄이 깜짝 놀라 몸을 줄이며 송골매에게 달려온다?
어? 이것 봐라.
이 표정 봐라, 타이탄 너 설마?
오호라?
나중에 캐 봐야지.
균열이 엷어진다. 균열핵이 깨졌고... 코어가 땅으로 떨어진다. 출력은 약 1만 정도.
김학균이 침 꼴딱 삼키는 게 이 거리에서도 보이네. 야야, 야.
그 좀, 힘든 요청인 건 아는데... 그냥 지금이 딱 좋거든. 너 제발 변하지 마라. 응?
김학균이 갑자기 날 본다? 왜, 너 <내면의 거울>도 있냐? 마음을 읽어?
"근데 형."
"응?"
"내 기술이 <드레인>인 거 어떻게 알았어요."
아차.
"뭐 대충 그런 걸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 팀밖에 모르는데?"
"전에 본 적 있는데 <흡성대법>은 아닐 거 아냐."
"뭐 그렇죠."
아수라가 벌떡 일어나더니 두 손을 높이 들고 환호한다. 그리고 힘차게 내게 손을 내민다.
"멋져! 대단해! 줏대 없는 얼간이라고 말한 것 사과한다!"
"그런 말 들은 적 없는데요."
"했어! 내가 했어. 잘난 척 하다가 권력에 찌그러졌다고 생각했었거든!"
"그 권력의 최전선에 소대장님이 계신 것 같은데."
뭐야 왜 갑자기 정색해...
"그렇게 생각해?"
"아니 꼭 그렇지는 않고요.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아수라는 크게 웃으며 내 등을 때리고... 들떴어 이 사람. 이게 본래 성격이구만.
"우리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녹색을 돌파한 건가? 다섯 명으로는 처음이고?"
어? 잠깐만.
"설마 그럴까요?"
"미국 외 다른 국가는 돌파 소식이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녹색 자체는 3만에서 시작하는데. 있을 걸.
"돌파한 곳은 있을 거예요."
"그럴까."
그거랑 별개로 지금 유명해지거나 하기 부담스럽긴 한데. '대리인' 들에게 내 소식이 가는 건 싫어서.
흐흐흠. 타이탄 이 놈 봐라. 송골매가 다치지 않았는지에만 관심 있네. 그래 네 취향은 저런 사람이란 말이지?
그럴 수 있지.
근데 쉽진 않을 거다.
어떤 사람을 죽였건, 죽은 게 사람인 이상 항상 죽인 자는 무언가에 쫓겨. 복수하려는 사람이든, 자기 자신이 만든 망령이던... 반드시.
김학균은 하하, 균열핵에서 떨어진 코어를 집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다. 자기 게 아니니까 별로 달갑지 않은 모양.
...이 팀도 신경쓰이네.
하지만 안 돼.
다섯 명을 내 범위 안에 두고 지키기도 벅차.
당장은 괜찮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강한 사람도 우습게 죽을 지도 모르거든.
우리 다섯이 가장 강하고, 건드리면 최악의 보복을 당할 거라 퍼지면 그 때부터는 문제없을 거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당장 그 외의 급선무는 없고.
하지만 이 팀은...
"그래서 소대장님."
"말해라! 뭐지?"
"제 봉사시간은 얼만큼 쳐 줍니까?"
"우리가 다섯 시에 집합했던가?"
"그렇죠?"
"복귀하는 시간까지 포함해 네 시간이다."
이걸 20번 더 하라고...?
안 되겠다. 신경도 쓰이고.
"훈련 하시죠?"
"항상 하고 있다."
"저 좀 끼워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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