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퍼스트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데 언제 친해진 건지 영웅에게 애교를 부리는 흡혈귀와 표정은 좀 안 좋지만 아무 말 없이 애교를 받아주고 있는 영웅의 모습.
한 시간 전의 광경을 봤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군요.
그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잠시 시간을 되돌려봅시다.
퍼스트가 침대에서 자고 있었을 때 잠에서 깨어난 흡혈귀는 소파에 앉아있는 영웅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답니다.
그건 영웅이 싫어서도 방이 마음에 안 들어서도 아니었고 평소보다 영웅이 따뜻해 보였기 때문이었죠.
시설이 폭발하기 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퍼스트와 사랑을 나눈 영웅은 평소보다 사랑이 넘쳤으니까요.
따뜻함이 필요했던 흡혈귀는 그것이 매우 치사하게 느껴졌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부러웠던 거죠.
태어나서 지금까지 따뜻함을 원했던 흡혈귀는 자신이 자고 있는 사이에 따뜻함을 얻은 영웅이 질투 나고 부러웠어요.
그렇기에 흡혈귀는 화를 내며 영웅에게 불만을 말했답니다.
"치사해!"
"... 뭐가?"
영웅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흡혈귀의 감정이 이성을 압도했다는 게 문제군요.
논리가 통하지 않으니 무적 상태라는 거죠.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지 못한 영웅은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지만 흡혈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황을 파악한 영웅은 굉장히 화가 났답니다.
흡혈귀 때문에 퍼스트랑 마음 편히 놀지도 못했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뻔뻔하다는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영웅도 쌓인 게 많았기에 기관총처럼 엄청난 스피드로 말했고 흡혈귀도 할 말이 많았던 결과, 자기 할 말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말다툼 도중에 일어난 퍼스트는 불쌍하게도 휘말렸고요.
뭐, 여기까지만 보면 두 명이 친해질 이유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만.
언제나 예상 밖의 일은 벌어지는 법이죠.
한참을 싸운 두 명은 지쳐서 말이 없어졌답니다.
그렇게 침묵이 흐르자 흡혈귀는 고개를 돌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군요.
"됐어. 퍼스트에게 부탁할 거야."
단순한 혼잣말이었지만 영웅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발언이었답니다.
머릿속에 흡혈귀랑 퍼스트가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의 깊은 곳에서 질투심이 솟아났거든요.
만약 나랑 퍼스트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면... 영웅에게는 절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답니다.
물론 퍼스트가 장난으로라도 흡혈귀에게 키스를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려니 불안하고 짜증 나는 거죠.
그래서 영웅은 흡혈귀를 속이기로 했어요.
"자, 잠깐! 해줄게. 따뜻하게 해줄게."
"... 정말?"
따뜻함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흡혈귀는 영웅의 말에 큰 관심을 보였답니다.
방금 전까지 싸운 일을 눈감아줄 정도로 말이죠.
"물론이지. 그러니까 퍼스트에게 갈 필요 없어. 내가 해줄게."
"정말이지?"
"그럼, 나는 거짓말 안 해."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게 거짓말이지만요.
영웅의 말을 의심해볼 만도 하지만 순진했던 흡혈귀는 그대로 속아넘어갔답니다.
"빨리해줘!"
"알았어."
이렇게 돼서 퍼스트가 본 광경이 벌어진 거죠.
퍼스트의 입장에서 보면 두 명이 갑자기 친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건 아니랍니다.
뭐, 상황을 모르는 퍼스트는 알 리가 없지만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에 퍼스트의 머리는 이해를 거부했는지 버퍼링이 걸린 것 같네요.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걸까?'
얼빠진 얼굴로 서있는 퍼스트의 시선을 눈치챈 영웅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답니다.
영웅도 퍼스트에게 뭐라 설명해야 할지 곤란한 것 같군요.
"뭐 하는 거야? 어서 따뜻하게 해줘."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건 흡혈귀뿐이네요.
영웅은 흡혈귀를 꼭 끌어안아줬답니다.
적당히 따뜻하게 만들어서 속일 생각인 거죠.
하지만 따뜻한 것에 민감한 흡혈귀는 어딘가 불만스러운 듯이 말하는군요.
"... 이것뿐이야?"
"그래. 따뜻하지?"
"뭔가 조금 부족한데. 정말 다른 건 없어?"
'쓸데없이 예리하네.'
"싫으면 그만둘까?"
"... 그런 건 아닌데."
불만은 있지만 이유를 모르는 이상 흡혈귀는 강하게 말할 수 없었어요.
뭐, 그렇다고 얌전히 있는 건 아니지만요.
잠시 고민하던 흡혈귀는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렸는지 퍼스트를 쳐다봤답니다.
"퍼스트도 안아줘."
"하?!"
영웅의 표정이 험악해졌지만 흡혈귀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군요.
"같이 따뜻해지자."
"어, 그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영웅의 표정을 본 퍼스트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답니다.
'선택지를 잘못 고르면 폭발할 것 같은 표정인데.'
"싫은 거야?"
흡혈귀의 애처로운 눈빛과 영웅의 무언의 압박, 퍼스트는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네요.
힘들겠지만 힘내세요.
포기하면 안 돼요.
나중에는 더 힘들어질 테니까요.
이 정도로 쓰러지면 곤란하다고요?
지금은 둘뿐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샐나와 반쪽이 데려온 여자들도 추가될 테니까요.
아자 아자 파이팅!
싫어도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낀 퍼스트는 어쩔 수 없이 각오를 다지는군요.
퍼스트는 흡혈귀를 끌어안으며 조심스럽게 흡혈귀가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영웅에게 키스를 했답니다.
옆에서 보면 흡혈귀가 샌드위치처럼 껴있고 퍼스트랑 영웅이 흡혈귀의 머리 위에서 키스를 나누고 있는 거죠.
과감한 선택이네요.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싶지 않으니 시간을 적당히 건너뛰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말해야 한다면 흡혈귀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해야 했으니 평소보다 스릴이 있어서 상당히 뜨거웠던 것 같네요.
이런 게 바로 장애물이 있으면 불타오른다는 거겠죠.
평범한 것도 좋지만 역시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요.
아무튼 포옹이 끝나자 흡혈귀는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두 명을 쳐다보는군요.
"나보다 따뜻해진 것 같은데."
"기분 탓 아니야?"
"그래, 포옹 말고는 아무것도 안 했잖아.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거짓말쟁이들.
흡혈귀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반론할 말이 없었고 두 명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따뜻해진 덕분에 그렇게 불만이 많지도 않아서 깊게 추궁하진 않았답니다.
그렇게 흡혈귀가 어딘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돌아가자 속으로 안심하고 있던 퍼스트의 귓가에 영웅이 조용히 다가와 속삭이는군요.
"생각 이상으로 짜릿했어. 다음에 또 하자."
..... 취향은 존중해 줘야겠죠.
영웅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퍼스트의 손을 잡았답니다.
- 작가의말
사정이 생겨서 수요일부터 다시 연재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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