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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마냐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사랑이 구원한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큰 돌멩이를 넘고 커다란 웅덩이에 빠지면서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걸었다. 호송하던 감시병들은 계속 고함을 지르면서 총의 개머리판으로 우리를 위협했다. 다리가 아픈 사람은 옆 사람의 팔에 의지해서 걸었다. 한마디도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 때문에 누구든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이 세운 옷깃으로 입을 감싸고 있던 옆의 남자가 갑자기 이렇게 속삭였다.


  “만약 마누라들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꼴을 본다면 어떨까요? 제발이지 마누라들이 수용소에 잘 있으면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소.”


 그 말을 듣자 아내 생각이 났다.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수없이 서로를 부축하고,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면서 몇 마일을 비틀거리며 걷는 동안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모두가 지금 아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때때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어가고, 아침을 알리는 연분홍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머리 속으로 그렸다.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진솔하면서도 용기를 주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실제든 아니든 그때 그녀의 모습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났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천사들은 한없는 영광 속에서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나니.’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플랭클 저



누군가를 온전히, 그 자체로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에는 언제나 사랑이야기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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