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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양치기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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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복숭아
작품등록일 :
2024.08.0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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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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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화

DUMMY

“모두, 이쪽으로 모여.”


황혼이 지는 언덕의 중턱, 투란의 지시 한 마디에 한가로이 풀을 뜯던 양 떼가 몰려들었다.

짖어대며 길을 인도하는 목양견이나 옆구리를 찌르는 양치기의 지팡이 없이도 일사불란하게.

마법의 힘이 작용한 결과였다.


지난 팔 년간 알아본 바에 의하면 마법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무언가를 강력히 갈망하면 마력을 대가로 자신이 원하는 바가 실행된다는 것.

둘째, 그 원하는 바를 직접 입으로 말하면 더 쉽게, 적은 마력을 소모해서 이룰 수 있다는 것.

마지막 셋째는 원하는 소원이 어려운 일일수록 더 많은 힘을 소모하거나-아예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


여기서 ‘어렵다’라는 조건은 그리 명확하지 않았다.

때로는 이게 이렇게까지 쉽게 들어줄 일인가? 싶을 정도로 너그러웠고, 때로는 고작 이것도 못 들어주나 싶을 정도로 야박했다.


며칠 전 표범 마수와 싸웠던 때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즉사보다도 훨씬 간단한 조건인, 멈추라는 명령조차 놈에게는 거의 통하지 않았다.

평범한 양 따위라면 동시에 백수십 마리까지도 어렵지 않게 통제할 수 있는데도.


그에 비해 투석구에 놈의 머리통을 부숴버릴 힘과 속도, 그리고 반드시 명중하게 하는 가호를 싣는 것은 우스우리만치 간단했다.

당시 소모된 힘의 양을 계산하자면 투란은 그와 같은 공격을 수백 번쯤 해낼 수 있었다······.


생각에 잠긴 채 모든 양을 축사로 밀어 넣었을 때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옅은 피 냄새가 풍겨왔다.

며칠 전 라부스의 죽음을 감지했을 때처럼.

하지만 그의 예민한 후각으로 감지하건대 인간의 피 냄새는 아니었다. 양도, 표범도 아니고······.


‘늑대?’


일 년 전쯤 죽여서 도축했던 늑대의 피 냄새가 딱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았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케오른이 죽은 늑대 한 마리를 어깨에 얹은 채 석양을 등지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좋은 저녁일세, 투란. 괜찮으면 오늘 밤 집에서 묵을 수 있겠나? 숙박비는 이 늑대로 대신할까 하네만.”


늑대는 꽤 괜찮은 사냥감이었다.

가죽은 마을 놈들에게 팔 수 있고, 고기 역시 먹으려고 키운 것들만은 못하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말하자면, 하루 숙박비로는 과할 정도로 훌륭했다.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근처에는 늑대가 거의 없을 텐데, 얼마나 멀리까지 갔다 오신 겁니까?”


투란이 지난 몇 년간 주변을 순찰하며 늑대 무리가 보일 때마다 공격해 댄 탓에 이 주변은 육식동물의 씨가 마르다시피 한 지 오래였다.

애초에 히사릴 언덕 자체가 워낙 황량한 곳이라 동물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기도 했고.


“하늘산맥 인근을 둘러보다 찾았지.”


하늘산맥은 세상의 서쪽 끝인 히사릴 언덕에서도 더 서쪽에 있는, 이름 그대로 저 하늘까지 뻗어 오른 산맥을 말했다.

혹자는 대장벽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름 그대로 사람이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벽에 가까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기슭까지 가는 데만 해도 며칠은 걸릴 텐데······.”

“내 걸음이면 반나절로 충분하더군.”


투란 역시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기에 특별히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이 마법사가 정말로 허풍선이는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내심 경계심을 높였을 뿐.


잠시 후 두 사람은 집 앞에 피운 모닥불에 둘러앉아 늑대고기 스튜로 저녁 만찬을 즐겼다.

케오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곳 별이 정말 밝구만 그래.”

“어머니에게 듣기로 이 언덕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땅 중 하나라더군요. 저 서쪽의 하늘산맥만 빼면 말이죠.”

“그곳과 비교하면 어딘들 높겠나? 오늘 다녀와 보니 새삼 더 감탄하게 되더군. 아마 귀족들조차 그곳을 넘기는 쉽지 않을 거야.”

“귀족들은 신처럼 강한 힘을 지녔다던데, 산맥쯤은 훌쩍 넘을 수 있지 않나요?”

“다 그런 건 아닐세. 대가문의 가주쯤 되면 정말 신이나 다름없지만······.”


케오른은 아라비온의 가주가 손짓만으로 작은 언덕을 짓뭉개버리는 것을 본 적 있다며 자랑하듯 말했다.


“오······.”


투란은 그 말을 듣고 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다.

가끔 자신의 힘이 생각보다 더 강하니, 어쩌면 귀족과 같은 수준이 아닐까 하고 망상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듣고 나니 진짜 귀족들과 비교하면 그가 가진 능력은 실로 하찮은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혼자 살면 적적하지는 않은가?”

“그야 그렇지요. 그래도 이젠 익숙합니다.”

“마을에서 처자라도 하나 데려와 살지.”

“이런 곳에서 평생 양이나 치며 살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네처럼 잘생긴 청년이랑 함께 산다고 하면 좋아할 아가씨가 꽤 있을 것 같은데?”


케오른의 너스레에 투란은 멋쩍게 웃었다.

어린 시절 마을에 몇 번 들를 때면 그가 좋다고 따라다니던 여자애들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죽고 마을과 전쟁을 치른 후에는 완전히 교류가 끊겼다.

그녀들 역시 현실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투란과 결혼한다는 건 평생을 이 적막한 언덕에서 유배당한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미임을.


“뭐,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게. 누가 알겠나? 지나다니는 처자 한 명이라도 있어서 인연이 될지.”


물론 지난 18년간 찾아온 여행객이 케오른 한 명이었음을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실없는 대화를 몇 차례 주고받은 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먼저 침묵을 깨트린 이는 투란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음?”

“촌장이 뭘 약속했는지는 몰라도 어르신의 실력이면 더 편하게 많은 돈을 버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느 마을이건 주저앉아 머물며 자신이 이곳을 수호하겠다고, 그러니까 그 대가로 재물과 여자를 바치라고 하면 누가 감히 거절하겠는가?

마수 한 마리 잡겠다고 온종일 흙먼지를 먹으며 양치기의 집에서 머무르는 것보다 수백 배쯤 편하고 간단한 방법이었다.

반나절 만에 하늘산맥에서 늑대를 잡아 오는 사람이라면 능력 역시 부족하지 않을 테고······.


심지어 마을 사람들이 그런 호의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애초에 투란의 집에서 묵는 것부터가 마을에서 지나치게 비싼 숙박비를 매긴 탓이니.

만약 그가 케오른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마을 건물을 다 때려 부수고 돈을 챙겨 떠났을 것이다.


“가여운 사람들이잖나.”

“어떤 점이 말입니까?”

“마법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이런 변방에서 하루하루 떨며 살아가는 것이.”


늙은 기사는 투란의 앞에 마주 앉아 마치 아들을 가르치듯 자상한 어조로 설명했다.

이곳 히사릴 언덕 주변은 비교적 황량한 지역이라 평온할 뿐, 저 풍요로운 지상에서는 무수히 많은 마수가 산과 들에서 활개를 치며 사람들을 잡아먹는다고.

모름지기 마법사 된 이는 신의 힘을 물려받은 자로서 힘없는 평민을 마수로부터 지키는 것이 긍지라, 이제는 가문에 봉사하지 않는다지만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노라고.


투란이 어머니에게 들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였다.

그녀가 말했던 귀족들이란 탄압하고 착취하는 이요, 기사는 그 밑에서 일하는 부역자일 뿐이지 않던가······.

의아해하는 기색을 읽었는지, 늙은 기사가 씩 웃으며 양젖이 든 그릇을 내밀었다.


“뭐, 다 나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라네. 세상에 사람이 만 명이면 만 개의 생각이 있는 법이니까.”


* * *


다음 날 아침, 투란은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 축사를 청소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지난밤의 대화였다.


‘긍지라······.’


그 대화에서 투란은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기사란 존재가 그저 귀족의 힘에 굴복한 노예가 아닌, 스스로 평민을 보호하며 보람을 느끼는 존재일 수 있다니?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 어느 귀족을 찾아가 자신을 부려달라 간청할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으나, 적어도 마음이 조금 열리기는 했다.

저런 사람이 있다면 귀족 밑에서 사는 것도 그렇게까지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정도로······.


‘그건 그렇고, 마수가 이미 죽었다는 걸 어떻게 알리지.’


사실 원래는 한참 헤매다가 떠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었지만, 케오른처럼 좋은 사람이 이런 황량한 곳에서 허송세월하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미 마수의 시체를 깊은 골짜기 밑으로 던져버린 지 며칠이 지났다는 것.

그 썩어 문드러진 것을 찾아서 가져다주는 것부터가 고역일뿐더러, 거기에는 투란이 부린 마법의 흔적이 역력할 터였다.

이 주변에서 마법사를 찾자면 가장 수상한 인물이 투란일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젓자 축사에 쌓여 있던 양의 똥오줌이 모조리 뒤뜰로 날아갔다.

이제 저것이 언덕의 건조한 기후에 바싹 마르면 벽난로에 불을 땔 때 쓰기 좋은 연료가 될 터.

그렇게 청소까지 마치고 나니 시간이 조금 남았다.


‘한번 어르신이나 찾아볼까······.’


어제처럼 멀리 떠났으면 찾을 수 없겠지만, 듣기로 오늘은 언덕 주변을 좀 더 집중적으로 순찰하겠다고 했으니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투란은 가볍게 정신을 집중하여 지붕 위로 둥실 몸을 띄운 채 주문을 외웠다.


“인간 탐색.”


주문과 동시에 투란의 인지능력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고작해야 백수십 미터까지만 보이던 시야는 순식간에 수 킬로미터 거리에 자라난 들풀조차 구분할 정도가 되었고, 후각과 청각은 그 이상으로 증폭하며 가까운 곳에 있는 벌레들의 다리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옅은 개미산 냄새마저 포착했다.

하지만 그렇게 증폭된 오감은 불필요한 정보를 모두 차단한 채, 오로지 ‘인간’을 찾는 데만 집중됐다.


‘어디······음?’


귀를 기울이며 사방을 둘러보기도 잠시, 투란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증폭된 시야로 케오른의 모습이 보였다.

이마와 어깨에서 피를 흘리며 헐떡이는······.


그 맞은편에는 투란이 며칠 전 죽였던 표범 마수가 반쯤 썩은 몸뚱이를 이끌고 포효하고 있었다.


* * *


‘대체 어떤 놈이 이런 짓을······.’


케오른은 죽은 마수의 사령(死靈)을 보며 이를 갈았다.

생물은 대부분 죽는 순간 본능적으로 삶을 갈구하며, 전능의 열쇠인 마력은 그러한 주인의 의지를 이행하고자 망가진 육체를 억지로 살려내니 이를 사령이라 했다.

이 때문에 마법사와 마수를 죽인 뒤에는 그 시체에 담긴 마력을 빨아들이거나 흩어 버리는 것이 규칙.


하지만 눈앞의 표범 마수를 죽인 이는 그런 규칙을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모양이었다.

마수라면 본능적으로 자신이 죽인 적을 먹어 치워 마력을 흡수했을 테니 아마 마법사일 터.

머리에 난 구멍으로 짐작건대 투사체 주문에 능한 인물일 것이다.


[■■■■--!!]


썩어 문드러진 성대에서 토해낸 포효가 망자의 외침처럼 허공에서 수없이 메아리쳤다.

저것의 정체를 생각하면 썩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받아라!”


고함과 함께 케오른의 손에서 빛의 화살이 쏘아졌다.

강철 갑옷조차 우습게 꿰뚫는 위력의 공격이건만, 표범의 몸을 뒤덮은 그림자에 접촉하자 화살은 맥없이 흩어졌다.

몸을 감싼 마력이 케오른의 화살 주문보다 월등히 강력하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한 차례 공격을 무력화한 표범은 마법에는 마법으로 대항하겠다는 듯, 땅속으로 녹아들더니 순식간에 케오른의 뒤쪽 그림자에서 실체화했다.

다급히 두 팔을 들어 방어했으나 날카로운 발톱에 걸린 팔뚝에서 뜨거운 핏줄기가 솟구쳤다.

그나마 마력으로 담금질 된 몸이라 이 정도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팔과 몸통이 날아갔을 수준의 공격이었다.


‘이건······기사가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적어도 하위 귀족쯤은 되어야-’


사령이 부활 과정에서 원념으로 몇 배나 강해진다지만, 숙련된 기사인 케오른조차 감히 대적하기 힘들 정도라면 생전에도 강력한 마수였을 게 분명했다.

대체 누가 이런 놈을 죽이고 방치했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르르-]


사령은 다 잡은 먹잇감이라 생각했는지, 여유롭게 으르렁대며 케오른을 향해 다가왔다.

늙은 기사는 죽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최후의 반격을 준비했다.

놈이 덤벼드는 순간, 모든 마력을 손에 실어 직접 찔러넣는다면 일말의 희망이 있을지도······.


그렇게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계획을 짠 보람이 없게도,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번쩍이는 섬광 하나가 날아들었다.

너무나도 빠른 나머지 소리의 장벽마저 넘어선, 그래서 청각으로는 그 존재를 인지할 수조차 없을-

둥근 돌멩이가 사령의 썩은 머리통을 산산이 조각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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