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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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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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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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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307

작성
20.07.0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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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조상의 뜻

DUMMY

“ 내가 비록 몸이 이렇게 되긴 했지만. ”


치우와 왕위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을 때 그 정적을 깬 사람이 있었다.

의자에 걸쳐져 있던 왕태구였다.


“ 강치우. 네가 보기에 내 지금의 모습이 더 구걸하기 좋아 보이지 않나?

예전에는 내가 구걸이라도 할라치면 너무 멀끔한 놈이 비럭질한다고 욕도 먹었거든. ”


왕태구가 기운 없는 음성으로 뜻밖의 말을 하자 좌중은 와 하고 웃었다.

현재 무리 중 가장 큰 어른이자,

황제 순의단의 부 단주가 그리 말을 하니 모두 긴장이 풀어진 것이다.

강치우도 왕태구가 그리 말을 하니 저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눈에서 힘이 빠졌다.

그것을 본 왕위가 툴툴거렸다.


“ 거참, 사부는 참 이상한 데서 사람 기운 뺀단 말이 유.

사부 말은 그래서 뭐 우리 모두 이 지역에서 구걸해 먹으며 군자금을 아끼자 뭐 이런 거유? ”


분위기가 좀 가라앉은 것을 느낀 왕태구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 상황으로 봐서 우리가 이곳에서 주저앉기는 좀 어렵다.

그렇다고 쓰촨으로 돌아가면 기다렸다는 듯 하오문이 따라붙겠지.

그러니 나는 여기서 우리의 진로를 두 갈래로 나누었으면 한다. ”


좌중은 모두 왕태구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집중하고 있었다.

치우와 왕위, 왕방과 여빙심도 그가 무슨 혜안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 일단, 왕위는 순의단을 이끌고 월국의 경계로 가라.

거기서 남군 도독부에 끌려간 개방도들을 빼돌려야 한다.

분명 우리의 힘을 약화하기 위해 초 공공은 끌려간 개방도들을 최전선에 배치하여 모조리 소모하게 하려고 할 것이니.

그리고 여 교두와 왕방, 치우는 아직 초 공공의 손길이 덜 미치는 문파들이 세력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으로 이동해서 왕위가 데려올 개방도들을 훈련할 장소를 마련해라,

물론 그사이에 군자금을 준비해야 하는 건 당연히 치우의 몫이다. ”


왕태구가 내민 제안은 현실적이고 세력의 안배를 제대로 짚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가 문제였다.

그때,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 외인이긴 하지만, 제가 제안해 보겠소. ”


일동은 일제히 낯선 음성이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그들이 이 금시사에 자리를 잡도록 허락하고 도와주었던,

이 폐허의 주인이라는 승려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를 본 왕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오, 단천정 段天定 대사시군요.

고견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가르침을 주시지요.

우린 어차피 선대의 밀약 때문에 맺어진 개황의 세력 아닙니까. ”


왕태구의 말에 낡은 가사를 입은 수려한 용모의 중년 승려가 합장하며 나섰다.

그는 이 폐 사찰의 주인인 단천정이라고 했다.

과거 대리국이 이곳에 있었을 때 금시사는 국가의 행사를 주관하는 국사 國寺였었다.

그리고 대리국의 황 조는 대대로 단 씨 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조상은 과거 송나라와 원나라가 대치했을 때 송나라 편에서 함께 싸웠던 일양지 日陽指 무공으로 유명한 공극황제 功極皇帝 단지흥 段智興 이었다.

그 당시 단지흥과 개방의 방주 사이에 끈끈한 관계가 생겼었고,

훗날 명에 의해 대리국이 멸망한 이후로도 개방과 협력을 하면서 황제 순의단을 돕는 세력으로 남아있었던 것.


“ 아마도 초 공공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중원 천지에 거의 없을 것입니다.

개방의 세력이 닿는 모든 성에는 당연히 무림 파들이 존재하고,

무림 파에는 늘 하오문의 눈과 귀가 따라붙으며,

개방에 호의적인 문파라 해도 그 안에는 온갖 간자 間者들이 흘러넘치죠. ”


단천정의 말에 좌중은 탄식과 더불어 수런거림이 들려왔다.


“ 하면, 어디가 그런 눈과 귀를 벗어나는 곳이란 말이오?

세외 라도 가라는 말인지?

세외로 가면 우리 개방에는 모두 적대적일 거요.

명나라를 세울 때 개방의 역할을 모르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곳은 이곳보다도 더 구걸로 먹고살기도 어려울 거고. ”


왕태구의 말에 다시 좌중은 수런거리며 탄식의 소리가 더 커졌다.

치우와 왕방, 왕위도 마찬가지로 갑갑한 마음이었다.

어디라고 초 공공의 세력이 미치지 않을까.


“ 한 군데 있소. 세외가 아니라도 개방도, 황실도 초 공공도 세력이 잘 미치지 않는 무림 파가. ”


단천정의 말에 왕태구와 치우, 왕방 할 것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 곳이 과연 중원 천지에 있을까?


“ 랴오닝성, 그곳의 터줏대감인 모용 세가요. ”


“ 모용 세가! ”


단천정의 말을 들은 좌중은 일제히 탄성을 한다.

그러나 잠시 후 왕태구는 침울한 목소리로 단천정에게 말했다.


“ 하지만, 그들이 비록 무림 세가의 일원으로 대접을 받는다곤 하지만.

알다시피 그들은 선비족이라 안 그래도 과거의 연나라를 재건한다는 명분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어서,

중원 무림에서는 늘 논외로 치는 족속이 아니오.

게다가 중원의 변방이라 늘 삼엄하기도 하고.

그래서 개방조차 그곳에는 지부가 없을 지경이오.

그런데 아무런 교류도 없던 우리를 그들이 받아줄는지···.”


단천정은 왕태구의 말에 빙긋 웃었다.


“ 그야 당연하지요.

그들이 과거지사라곤 해도, 어쨌든 한때 중원을 제패한 연나라의 왕족 후손이니 말이오,

과거 이곳 대리국의 황제가 내 조상이었던 것처럼. ”


단천정의 말에 짚이는 것이 있었는지 왕태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 그렇다면?

혹시 단 대사께서 그들과 교류가 있다는 말씀인지? ”


왕태구가 대놓고 질문하자 단천정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과거 중원을 손에 넣었던 이 족들은 꽤 많았었다.

숱한 왕조가 남북동서를 가리지 않고 세워졌었고,

그 과정에서 오호 십육국 시대에는 거의 모든 이민족이 각자 국가를 세웠었으니.


“ 우리는 시대는 달라도 한족에 의해 국가가 멸망한 과거를 갖고 있죠,

물론 현 국가인 명을 거역한다는 말이 아니오.

모든 역사란 결국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

우리는 그중 일부였을 뿐인 조상들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서로 무공과 학문으로 교류를 해오곤 하지요.

그들에게 간다면 적어도 쉽게 초 공공이 세력을 보낼 순 없을 거요. ”


단천정의 말에 왕태구와 여빙심은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서 한족이라는 울타리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들의 선대들도 상황에 따라 대세였던 주원장을 도왔을 뿐,

주원장 역시 혈통을 따지기에는 미미하기 짝이 없던 변두리 탁발승 출신이었으니까.

다만 국가를 세우기 위한 일종의 대의명분 大義名分으로 통치국가이던 몽골족의 원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족주의에 불과하다.


“ 감사하오. 그런데 하나 문제가 있소만···.”


왕태구는 말을 하며 흘깃 치우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단천정 대사가 잔잔히 웃었다.


“ 개황이 현재 명조의 혈족이라는 말이지요?

만력제의 또 다른 후손이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의 조상 반쪽은 해동의 조선이라는 나라 아니었소?

그건 따져보면 그 역시 온전한 한족은 아니라는 의미.

게다가 개황 스스로 현 황실을 위해 자신이 노력할 생각은 없지 않소?

나 역시, 선대가 후대를 생각한답시고 자신의 혈족 중 일부를,

음지에서 당대 후대를 위해 희생만 하란다면 거역하겠소, ”


단 대사가 잘라 말하자,

강치우는 새삼 공수 읍을 하며 단 대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 이 강 모는 황족도 개황도 그 무엇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아는 것은 저는 대대로 상권을 이어받은 금장의 후예.

그리고 초 공공이라는 환관의 음모에 의해 졸지에 부모와 식솔을 다 잃고,

온갖 고초 끝에 간신히 살아남아 지금도 역모죄로 쫓기는 억울함 뿐.

제 얼굴 반쪽을 덮은 화상이 사라지는 이변이 있다고 해도,

저는 이 황실을 위해 희생할 마음은 없습니다.

오히려 저를 도와준 개방을 위해 노력을 할 마음이 있을지언정. ”


“ 선재 善材 선재······.

강 시주는 진정으로 현명하고 강한 사람이오.

그대의 먼 조상이 어떤 연유로 과거 암군 暗君으로 유명했던 황제와 밀약을 나누었을지는 모르지만,

그 조상 역시 먼 후대가 그런 인과를 짊어지고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할 것을 바라지 않을게요.

역사도 중요하고 과거사도 중요하지만,

결국,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가장 중요한 현재의 중심 아니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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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천문채 +1 20.07.09 305 3 7쪽
60 산 너머 산 +1 20.07.07 325 4 8쪽
59 응어리 +1 20.07.06 347 4 8쪽
58 토사구팽 兎死狗烹 +2 20.07.03 372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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