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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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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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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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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307

작성
20.07.1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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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군노 軍奴

DUMMY

왕위는 장강의 부두에 늘어선 사람들을 힐끗거리며 걸어갔다.

그의 곁에서 절뚝거리며 걷던 량원호가 조용히 속삭였다.


“ 대장, 배에 오르는 선객들을 별로 검색하는 것 같지 않은데요? ”


량원호의 말에 왕위는 주변을 다시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 아니야.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지만, 부두 여기저기 관인들이 깔려있다.

모두 평복을 하고는 있는데 옷자락 안에 숨긴 칼들은 수춘도.

저놈들 모두 금의 위에서 나온 놈들임이 분명해. ”


량원호는 왕위의 말을 듣고 이리저리 고개를 들러보지만, 그가 보기엔 그게 그거 같아서 한숨을 쉬었다.


“ 하긴, 대장 같은 고수의 눈썰미를 내가 어떻게 쫓아가겠수?

그럼 어쩌우. 랴오닝으로 가려면 여기 광둥에서 바다로 나가는 배를 타는 게 제일 수월하긴 할 텐데.

그나저나 근해도 아닌 대해로 나가는 배를 타려면 호패라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 호패는 이미 수배 중일 거 아니오? ”


투덜대는 량원호를 이끌어 왕위는 부두에 즐비한 객점에 앉았다.

점소이가 다가와 두 사람에게 주문을 받고 돌아가자,

왕위는 점소이가 가져다준 찻물을 들이키며 한숨을 쉬었다.


“ 결국, 순의단에는 이제 너와 나, 둘만 살아남았구나. ”


왕위의 말에 마주 찻물을 홀짝이던 량원호의 얼굴이 우울해졌다.


“ 대장, 아무래도 이상하우.

그렇잖소. 어떻게 우리가 그곳으로 가는 걸 귀신같이들 알고 매복을 하지?

게다가 이미 징발된 개방도는 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보내져 있고······.

그걸 찾아가던 우리도 모조리 밀림에서 습격을 받았으니···.

우리 행로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오? ”


왕위는 량원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량원호의 말대로, 이번 임무는 처음부터 꼬여 있었다.

처음 월국의 경계에 포진하고 있던 남군 도독부 군사 중 갑자기 월국 경계선 안쪽까지 침투하게 된 부대는 쓰촨에서 강제로 징발되었던 개방도들의 부대였다.

하필 그들이 밀림으로 떠나게 된 시기가 묘했다.

그 시기는 왕위가 이끄는 순의단이 남군 도독부의 진지 근처에 도착하기 불과 삼 일 전이었으니.

교묘하게 순의단의 접촉 시기를 잃은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수소문하여 원주민에게 돈을 주고 안내를 부탁한 이후,

밀림에 들어서면서부터 순의단은 사냥감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개방도 들 중에서 제법 무공 수위가 있던 순의단 이었지만,

깊고 빽빽한 밀림 속에서는 제대로 무공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워낙 무공 수위가 높은 왕위의 곁에 따르는 보직을 가진 운이 아니었다면,

량원호 자신도 이미 죽었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왕위의 대단한 무공으로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정도 이상은 어려웠다.

밀림에서 그들이 공격받은 상대는 원주민으로 보였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분명 무림인들이 끼어있었다고 량원호는 느꼈다.


“ 타주.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먼저 금의위나 남군 도독부의 움직임이 있었잖소,

아무래도 우리들 일행 중에 간자가 있었거나,

아니면 우리가 수배했던 길잡이 역할을 한 원주민 중 누군가가 간자였지 않고야,”


늘 ‘두목’이라고 왕위를 부르던 량원호가 ‘타주’라는 공식 직함을 부른 것은 그가 이 사건을 정말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 알겠다만, 지금 우리는 빨리 어떻게든 해양으로 나가는 배를 타는 게 중요하다.

네 말대로 지금처럼 우리 행적이 드러난 상황에서 랴오닝으로 무사히 도망치려면 아무래도 육로로는 좀 힘들 것이니. ”


두 사람은 고개를 마주하고 부두를 감시하는 관원들의 눈을 피해 어떻게 해야 배를 탈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 사실 저로서도 그렇게까지 내몰릴 줄 몰랐죠. ”


양무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잠시 왕태구 일행이 쉬고 있는 마차의 근처에 둘러앉은 일행 앞에서 자신의 신상 내력을 털어놓는 중이었다.


“ 네가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은 알겠지만,

네가 우리 개방파에 들어온다는 것은 우리로서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네가 명문정파의 후손이라 하면 더더욱 그렇지.

그러니 돌이키기 어렵더라도 솔직하게 말해주어야 한다. ”


나뭇등걸에 등을 기댄 왕태구가 말했다.


“ 알겠습니다. 단주.

말씀드린 대로요.

제가 신창 양가의 후손은 맞으나, 어찌 보면 양 씨 세가의 배다른 종손이 된 셈이니 환영받을 존재는 아니죠.

더구나 미천하기 짝이 없던 하녀와 양씨 세가를 이끌어 갈 적자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니.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을 거요.

하지만 난 남자였고, 게다가 적자의 자식들보다 무공에 타고난 재질이 있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죠. ”


양무기의 말을 듣던 왕태구와 여빙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강치우나 왕방, 단 대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가문에 재질 뛰어난 자가 나타났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출신이야 어떻든 가문의 핏줄이 분명하고,

그가 뛰어난 무공을 가지게 된다면 세가의 입장에서 좋은 일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세상사를 어느 정도 궤 뚫어보는 왕태구나 여빙심은 그런 일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안다.

가문을 이어갈 적자 嫡子가 재질이 뛰어난 것은 축복받을 일이 맞다.

하지만 미천한 출신의 서자 庶子가 재질이 뛰어나 적자를 위협할 정도가 된다면 그건 가문의 서열상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대부분의 세가는 공식적으로 외가 外家라는 조직을 만들어 가문 내에서 가문을 받쳐주는 역할만 할 정도로 활동을 제한한다.

그들은 가문 내 종이나 하인은 아니지만,

늘 적손들로부터 지시를 받고 본가를 받쳐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쓰촨에서 독공과 암기로 유명한 당문인데,

당문은 그들의 본가를 중심으로 영지 내에 외가를 두어 암기 제작이나 독물 수집을 하게 만들지만, 그 본질적인 기술은 알려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 그렇지만 너를 군문에 들게 한 것도 양씨 세가 아니냐? ”


양무기는 무공에 대한 천부적 재질을 타고나서 본격적으로 가르침을 받지 않고 세가의 적손들이 창법을 배우는 것을 담 너머로 보고 배웠다.

하지만 타고난 신력과 무공 쪽으로 깨우침이 워낙 빨라서 이내 적손들을 앞지르게 되었었다.

그가 열두 살이 되던 해,

세가 내에서 자손들을 모아 일종의 비무대회를 했었다.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그동안 배워온 창술을 겨루게 했다.

적자들이 아닌 서자들도 그 비무에 참가하도록 했는데,

그건 적자들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비무대회에서 서자들이 적자들에게 깨져 나가는 것을 봐야 자신들의 위치와 능력을 스스로 깨달아 복종할 것이라는 장로들의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판단은 양무기에 의해서 보기 좋게 깨져 버렸다.

창대 끝에 창날 대신 두툼한 가죽공을 씌우고 비무를 하게 했는데도,

양무기와 붙은 적자들은 몇 합 겨루지도 못하고 여기저기가 부러져서 비무 불능이 된 것이다.

장로들은 대노했고,

누가 몰래 양무기를 가르쳤는지 대라고 어린 소년을 감금하고 고문했다.

하지만 실제로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 없던 양무기는 울며 항변을 해도,

가문의 어른들은 믿지 않았다.


며칠 동안 고문을 하고,

그게 통하지 않자 그의 생모인 하녀를 붙잡아 양쪽 다리를 부러뜨려도 양무기로서는 따로 배울 사람이 없었으니 울며 하소연할 뿐이었다.

그러나 장로회에서 양무기를 군대로 보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명색이 양씨 가문의 후손인데 가문 내에서 죽일 수는 없으니,

군대에 군노 軍奴로 보내어 전장에서 죽도록 하자는 뜻.

장로들의 의견일치로 아직 어린 열두 살의 나이에 양무기는 양씨 세가가 있던 산시성에서 멀리 떨어진 강서 성의 서군 도독부 휘하의 수군으로 보내진 것이다.


수군으로 양무기를 보낸 가문의 뜻은 명확했다.

내륙에 자리를 잡은 산시성의 아이들은 물질에 약했다.

대체로 군에서도 수군은 군기가 세고,

수군의 군 노비들은 배를 수리하거나 장애물 제거를 하기 위해 물에서 노역을 하게 되니,

양무기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죽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혹은 수적들이나 왜적들과 전투를 벌리다 보면 붙잡혀 아주 먼 타국으로 노예로 팔려 가는 경우들도 있었다.

양씨 세가에서는 본래 명 군대의 기본 창술을 가르치는 교관들을 군대에 파견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군문에 여러 연줄이 있었고 그 연줄을 통해 양무기를 자연스럽게 도태시키려고 한 것이다.

양무기는 억울했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군대에 투신하면 그의 친모를 잘 치료해주고 보살펴줄 것이라는 약조를 믿고 군노로 팔려 갔었다.


“ 저런 악독한 작자들이 있나!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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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검신합일 +1 20.07.29 202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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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대결 +1 20.07.27 202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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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육합창 +1 20.07.23 204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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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전진교 +1 20.07.21 251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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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노 軍奴 +1 20.07.15 299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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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양가 창법 +1 20.07.13 268 2 8쪽
62 이화창 +1 20.07.10 291 3 7쪽
61 천문채 +1 20.07.09 305 3 7쪽
60 산 너머 산 +1 20.07.07 325 4 8쪽
59 응어리 +1 20.07.06 347 4 8쪽
58 토사구팽 兎死狗烹 +2 20.07.03 371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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