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
진등은 뱃머리에서 강치우와 양무기가 수군의 함대를 공격하는 모습을 입을 떡 벌린 채 바라보았다.
수부들은 열심히 선미에 쌓아놓은 죽창과 목봉, 돌무더기들을 갑판 앞으로 나르고,
강치우는 돌덩이를 양무기는 목봉을 각자 기공을 실어 적 함선으로 던졌다.
아니,
던진다기보다는 내쏘았다.
그들이 내력을 끌어올리면 손에 들고 있던 덩어리들이 마치 활을 쏘는 것 같은 속도로 쏘아지고,
멀리 군함에 이르면 폭발이 일어나며 이내 배가 기울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함대의 중앙에 있는 장군선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으나,
보통 사람의 시력으론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이지도 않았다.
처음 학익진처럼 진세를 펼쳤던 적의 배들은 당황한 듯 갈지자로 우왕좌왕하고,
개중에는 한참 사거리에 미치지도 못하는 함포를 무작정 쏴대어 해적선과 군함들 사이 바다는 요란한 포성과 물기둥이 계속 치솟는다.
“ 치우야.
너와 무기의 내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저 많은 함선을 그런 식으로 다 침몰시키기는 어렵지 않겠느냐? ”
선실 앞의 의자에서 불편한 몸을 의자에 기댄 왕태구가 입을 열자 치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왕태구의 곁에는 여빙심과 왕방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여빙심의 눈에는 놀라움이, 왕방의 표정은 시무룩함이 보였다.
그들의 뒤에 있는 단 대사도 놀란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 물론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적선을 공격한다 해도 한계가 있겠지요.
다만 저들이 우리 배에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만 해도 괜찮은 효과라 생각했습니다. ”
잠시 말을 끊은 치우는 곁에서 여전히 목봉과 죽창을 날리는 양무기를 흘깃 보았다.
“ 일단 저들은 우리 배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고,
대만섬 해협은 넓으니 우리는 그들을 지나쳐 도망가는 것이 계획입니다.
어쨌거나 철갑선인 저들의 배보다 우리 배가 훨씬 빠르기도 하고요. ”
“ 아, 왜요?
난 이제 몸이 좀 풀리는 듯하구먼!
이대로 계속하면 저 수군들의 태반은 수장되지 않겠소? ”
양무기의 의기양양한 고함에 단 대사가 크게 불호를 외운다.
“ 아미타불!
양 시주. 우리가 비록 목적이 있어 이리 전투를 벌이긴 하지만,
저 수군들은 무슨 죄가 있겠소.
서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도리요.
손속에 사정을 봐두시오. ”
단 대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양무기가 투덜거린다.
“ 대사님. 우리야 그렇다 쳐도 저놈들은 우리가 함포 사거리에만 들어가면 바로 공격을 할 건데요?
누가 누구 사정을 봐줍니까?
지금 배 숫자로만 따져도 저들이 몇십 배로 많은데요······.”
“ 대사님 말씀이 어떤 의미에서는 옳다. ”
강치우가 입을 열자 양무기와 단 대사 둘 다 강치우를 돌아보았다.
“ 우리가 어차피 저들 수군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포위망을 뚫는 게 목적이니 불필요하게 공격할 이유도 없고,
너와 내가 아무리 공격을 한다 해도 내력에 한계가 있으니 그렇게 해도 안 된다.
일단 우리 둘이 일정한 간격으로 저들의 포위망 측면을 돌파하고,
재빨리 도망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일단 포위망을 벗어나면 저들의 육중한 철갑선은 우리를 쫓지 못하니까. ”
그들이 갑론을박하는 사이에 진등이 갑자기 크게 고함을 질렀다.
“ 두목! 저들 중앙에 있던 장군 선이 갑자기 우리 쪽으로 속도를 내서 달려오고 있소! ”
양무기가 휙 돌아보자 적들의 배 가운데 가장 커다란 장군 선이 다른 배들의 진을 놓아둔 채,
자신의 배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양무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에 놓인 목봉 중 가장 육중한 놈을 골라 들며 단 대사에게 투덜거렸다.
“ 봐요. 대사님.
저들은 저렇다니까?
우리가 잠시 공격을 멈추자 때는 이때다 하고 나서지 않소?
저 장군 선은 크기도 크고 철갑이 두꺼워서 내 공격으로도 피해를 줄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른단 말요. ”
그들이 투덜대는 사이에도 꽤 멀리 떨어져 있던 장군 선이 점점 빠르게 해적선으로 다가온다.
“ 어쩌면, 저 배 만큼은 우리가 포위망을 빠져나가도 쫓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
장군 선의 속도를 가늠해보던 강치우가 말하자,
진등이 나서서 대답한다.
“ 보통의 군선과 달리 저 배는 노를 젓는 것과 돛을 병용해서 사용하는 배입니다. 그러므로 덩치는 커 보여도 속도가 빠르지요.
어쩌면···. 우리 배보다도 빠를지 모릅니다. ”
진등이 강치우에게 말을 하는 사이에 양무기는 가장 큰 목봉을 두 손에 들고 어깨 위로 치켜올려 기를 집중했다.
사나운 눈길로 장군 선을 가늠하던 양무기의 손에서 파공음이 일어나며 목봉이 날아갔다.
“ 온다! “
잠잠하던 해적선에서 섬광이 번뜩이자 염황교가 경고했다.
함장과 당가령, 선우 공덕, 팽덕영은 일제히 해적선을 보았다.
뭔가 번쩍이는 것이 보이자,
그다음에는 맹렬하게 날아오는 빛 덩어리가 보였다.
세 명이 본능적으로 움찔하는 사이,
염황교의 오른손이 서서히 어깨높이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흐릿하게 검의 형상을 한 기공의 덩어리가 모이기 시작했다.
선우 공덕은 아까 경황 중에서 보았던 것과 달리 제대로 형상을 맺는 심검을 보며 속으로 탄식했다.
‘ 저토록 유형화를 할 수 있는 기공이라니···.
당대에 저렇게 심검을 마음먹은 대로 유형화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필 그런 고수가 정파도 아닌 정사지 간의 악당이라니.
이번 대의 무림사에는 어째 이토록 괴이한 자들이 나타난단 말인가. ’
선우 공덕이 탄식하는 사이에 완전히 거대한 검의 형상을 손에 맺은 염황교가 손을 번뜩이자,
그의 손에서 검의 형상이 빛줄기처럼 날아갔다.
해적선에서 날아들던 빛의 덩어리에 검의 형상이 충돌하자 눈 부신 빛이 양 배의 중간 바다 위에서 번뜩였고,
잠시 후 커다란 굉음과 함께 거센 파도가 두 배의 사이에 일어났다.
‘ 쾅! ’
마치 함포라도 폭발한 것 같은 커다란 소리에 양측의 배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수부들이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했다.
” 뭐, 뭐야? 왜 내 기공 탄이 막혔지?
설마 저 장군 선에도 기공 탄을 쏘는 놈이 있단 말인가? “
당황한 양무기의 말에 단 대사가 대답했다.
” 저건 양 시주가 쏘아 보낸 것 같은 기공 탄이 아니오,
저 배에서 날아온 것은 물리적인 물체가 아니었소. “
양무기는 단 대사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고함을 질렀다.
” 거 대사님!
이상한 소리 하는구려.
그럼 대체 뭐가 내 기공 탄을 중간에서 막았단 말이오? “
” 대사님 말이 맞는다. “
다시 강치우가 단 대사의 말에 동조하자 양무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공 탄을 쏠 수 있을 정도로 무공수위가 오른 이후로 양무기는 강치우를 제외하곤 이 배에서 자신보다 강자는 없을 거라 자신만만했었다.
물론 단 대사의 일양지 무공은 과거부터 독보적인 것으로 유명했지만,
그것으로 왕태구를 치료한다는 것은 보았으나 실전의 위력은 모른다.
그런데 그 단 대사가 자신보다 더 나은 수위의 눈을 가졌다곤 믿기 어려웠다.
” 내 보기에 저 배에서 날아온 것은 심검이오. “
” 심검? “
일행은 일제히 경악했다.
당대에 전설의 심검을 쓰는 무인이 있던가?
그때였다.
장군 선에서 다시 한번 커다란 검 형상이 해적선의 정면으로 날아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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