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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남화북룡전 南花北龍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4 15:56
최근연재일 :
2020.04.22 17:16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21,972
추천수 :
174
글자수 :
181,617

작성
20.02.2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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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잠룡출도(潛龍出道)

DUMMY

광승은 이전 파문 때 소림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조를 했었고,

강호를 횡행하며 사용한 무술들은 자신이 창안한 무공이긴 했지만, 기왕 소림의 후배들에게 보복하기로 한 이상, 소림의 무공으로 그들을 깨뜨리려고 했다.

잔뜩 내공을 끌어올린 광승이 자신의 앞에 감히,

한꺼번에 나서도 시원치 않을 판에 홀로 걸어 나온 한창 풋내기 같은 승려를 향해 백보신권을 지른 것은 놈의 시건방짐을 고쳐주려는 생각도 없는, 그냥 살기로 가득한 주먹질이었다.

한방에 쳐 죽여서 나머지 놈들에게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건 정당한 비무였다는 핑계로.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아주 단순한 박투술에 의해 자신이 진 것이었다.

새카만 후배에게.

심지어 금강승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면 자신의 머리통이 깨어져 있었을 것이다.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하는 광승에게 조용한 전음이 전해졌다.

“ 광희 서숙. 저는 광명 대사의 제자입니다.

사숙께서 천하의 기재라는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오직 나한권 한 가지로 현재의 위치에 오른 입장입니다.

때로는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많은 샘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조금 나을 때도 있다는 점. 혜량(惠諒)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장문께서 강호의 소식을 듣고 제게 사형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이제 광희 사숙은 다시 소림의 제자가 되셨습니다. 소림 무술을 사용하셔도 됩니다.

지금의 장문 방장은 광오대사이십니다.”

광승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사형이었던, 자신에게 집법전 무승으로써 패배를 맛보았던 사형.

하지만 광승을 원망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의 파문을 막아보려고 장로 원에 대들다 집법당에 의해 징계까지 받았다는 것은 나중에 강호를 방랑할 당시에 들었었다.

어쩌면 광승이 이곳에서 느닷없이 팔대 금강을 만난 것도 실은 그 사형의 배려가 아니었을지.

본인이 장문 방장이 되었고 자신을 사면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은 아닌지.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난데없는 광승의 통곡이 이어졌다.


소룡은 조용히 가부좌(跏趺坐)를 튼 자세로 노인, 광승이 담담히 말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광승의 긴 이야기가 끝나고 소룡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구명지은(救命之恩)을 입은 터에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왜 스님께서는 제 마을을 몰살시킨 저 도적들을 살려 보내셨습니까?

저를 구해주셨지만, 충분히 그 비적 무리들을 ....”

소룡이 울분에 찬 눈빛으로 모닥불 너머의 광승에게 질문을 하자 광승은 픽, 하고 웃었다.

“ 자, 일단.“


광승이 불에 구워진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을 했다.

“ 난 스님이 아니다. 비록 본산에서 내 파문을 철회했다곤 하지만 그건 내 의지가 아니다. 그리고 난 소림의 명성에 기대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난 힘을 믿는 자다.

게다가 세상이 말하는 정의와는 무관한 인생을 살아왔었으면서 이제 와서 소림사 승려들처럼 정파입네 할 만큼 낯가죽이 두껍지도 못하다.

평생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고, 저 비적들도 나름 자신들의 살아가는 방법대로 사는 거지.

그들이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치자. 내가 왜 정의를 지켜야 하지?

국가가 법치를 제대로 못 하는데 내가 왜? 그건 내 몫이 아니다. 네 복수는 네 것.

내 복수는 아닌 거지. 더구나 정의는 또 뭐냐? 국가가 저지르는 온갖 불의도 법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정의가 아니냐?

네겐 저 도적들이 불행이자 불의겠지만 국가에서 산골 촌마을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은 또 뭐냐? 그것은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광승의 대답에 소룡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화난 얼굴이 되었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배운 무공의 근간은 협(俠)이었다.

협 이 없는 힘은 악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구명을 받은 저 파계승의 논리는 좀 해괴했다.

“ 그럼 왜 저를 구해주셨습니까?

말씀대로라면 저 역시 그들의 밥이 된다 해도 그들 나름의 힘의 논리 아니겠습니까?

굳이 저를 구해주시거나 할 아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

광승은 지그시 소룡을 바라보았다.

“ 하필 그놈들이 내 앞에서 그랬기 때문이지. 내가 그놈들보다 더 세잖아?

네가 불쌍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광승은 잠시 말을 끊었다.

“ 저 도적놈들이 감히, 내가 그만두라 할 때 그만두지 않고 시건방지게 대들었다는 거다.

내겐 그들을 징치할 힘이 있었고, 그들은 약했다.

그들이 너를 저녁거리 삼아 사냥하며 희롱했듯이 말이다. 같은 거지.”

소룡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저 파계승은 진짜 미친 중이 맞았다. 논리도 정의도 없는.

그저 약육강식의 짐승 같은 논리에 기대는 해괴한.

그에게서 구명을 받음으로써 언젠가 복수를 할 기회를 잡았지만,

당장 눈앞의 적들을 두고도 어찌할 수 없는 게 현실적인 자신의 상태이니.

“ 그럼, 감사했습니다.

저는 제 나름의 방식과 정의를 가지고 복수에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

깊이 엎드려 절을 하는 소룡을 바라보던 광승이 킬킬대며 웃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 해도, 기분이 나빠진 소룡은 광승을 흘겨보았다.

“ 왜, 기분 나쁘냐? 이놈아. 네 주제를 알아야지.

넌 지금 팔 병신이 된 거야. 알아?

게다가 부모도 잃고 마을도 잃고. 할 수 있는 게 비렁뱅이 나 비역질 정도겠지.

너 같은 꼬마들이 강호에 얼마나 많은지 아나?

어디 가서 복수할 실력을 쌓겠다는 거냐? ”

“ 무당파에 찾아갈 생각입니다. ”

지체 없이 소룡이 대답을 하자, 광승의 웃음은 아예 포복절도할 지경이 되었다.

“ 세상 물정 모르는 놈. 너 같이 팔이 하나만 남은 놈을 검파에서 누가 받아주겠느냐?

소림이라도 마찬가지다. 넌 이미 보통 사람들의 자질에서 반절이 없어진 몸이야.

산골에서 자라 모르겠지만 세상은 힘의 원리대로 움직이는 거다.

정신 차려라. 이놈아.

네가 정파 나부랭이들의 집단에 들어갔다고 치자.

아무런 돈 들어올 일 없는 병신을 대상으로 누가 무공을 알려주겠으며,

그러면 네가 그런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야 남들 밥 지어주고 땔감이나 주워오고 밭이나 일구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다름 아닌 내 어린 시절이 그러했다.”

광승의 냉정한 말에 반쯤 일어서던 소룡은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쩌란 말인가. 그러면. 저 원수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갈 자신이 없는데.

제아무리 당돌한 아이라곤 해도 역시 아직은 어린아이.

그야말로 천애 고아가 된 지금, 살아갈 목적이라면 오직 복수, 그것뿐이다.

그것은 정의 와 불의를 떠나 당연히 일생의 목표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광승의 비웃음 같은 말을 듣자니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 누가 팔 병신에 아무 가족도 없는 자신을 받아주겠으며,

설혹 받아준다고 하더라도 무공을 전수해 주겠는가.

강호 거지들의 방파인 개방에서조차 쉽지 않을 일이다.

소룡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참 동안 소룡의 우는 얼굴을 바라보던 광승이 호로병을 들어 술을 마시곤 다시 입을 열었다.

“ 사내자식이 제법 결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애는 애구먼.

너, 그러지 말고 나랑 거래하는 게 어떻겠느냐? “

뜬금없는 거래라는 단어에 소룡은 다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광승이 다시 술 한 모금을 마시고 소룡을 향해 말을 걸었다.

“ 말했다시피 나는 소림에서 쫓겨난 몸이다. 내가 봤을 때 놈들은 글렀어.

전통만 찾다 보니 새롭게 발전시킨 무공을 받아들일 생각을 않는단 말야.

비록 내가 나한권만 익힌 사질(舍姪) 놈에게 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만든 무공들은 강하다. 실전에서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지.

난, 소림의 냄새 나는 중놈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싶다 이거야.

네가 내 제자가 되어라.

팔 병신인 놈을 내가 가르쳐서 본산 제자들을 능가한다면 놈들도 할 말이 없겠지.

그게 내 거래 조건이다. “

소룡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벌떡 일어나서 구배지례(九拜之禮)를 올렸다.

광승은 소룡이 하는 양을 바라보더니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 넌 어린놈이 하는 짓은 영락없이 무당의 말코도사 들 하고 판박이구나.

내게 그런 예의 따윈 통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너는 나의 손에 죽을 수도 살수도 있지.

그리고. ”

광승이 모닥불 옆에 드러누우며 호로병을 집어 던졌다.

“ 네놈이 사부로 모실 나에게 공짜란 없다.

넌 구걸을 하건 비역질을 하건 내가 먹을 밥과 술을 매일 구해 오거라.

구해 오지 않는다면 나도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병신인 네 놈을 받아 줄 만한 사부가 있을 줄 아느냐? 고마운 줄 알라고. “

황당한 사부와 제자 간 거래.

어리지만 의심이 많은 소룡이 입을 열었다.

” 그렇지만 왜 제게 그런 혜택을 주시는 겁니까?

그래 봐야 고작 입에 풀칠하는 것뿐, 스승님 능력이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돈을 버시거나 상점이나 표국의 빈객이 되셔도 호의호식할 터인데.“

어린아이치곤 세상 물정을 궤 뚫은듯한 소룡의 말에 잠시 광승은 기가 막힌다는 듯 어린 소룡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 누구누구의 집에 빌붙어 사는 것, 혹은 신세를 지는 것. 내 취향은 아니다.

난 하루 세끼만 잘 먹고 값싼 백건아 같은 술이라도 떨어지지 않으면 그만이지.

탁발승 흉내도 좀 그렇고. 도적질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네가 날 먹여 살린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해.

뭐가 더 필요해? 내 멋대로 살겠다는데. “


강호의 괴걸 이라 물리는 광승이 어리고 팔 하나가 없는 꼬마를 데리고 다닌다는 풍문이 강호를 떠돌았다.

실상 제자라기보다는 일종의 종복 같아서,

구걸하거나 객점의 심부름 같은 것을 해서 광승을 보필하고 있다는 풍문.

어린아이를 이용해서 밥벌이한다고 수군거리는 자들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광승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진 못했다.

그들은 멀리 북해에서 나타난 적도 있고,

늘 태양이 작열하는 남해도 인근에서 목격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숭산 소림사(嵩山 少林寺) 로 오르는 초입에 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청년은 삐쩍 마른 얼굴에 마치 굶주린 들개 같은 안광을 빛내고 있었는데,

낡아서 너덜거리는 한쪽 소매가 헐렁이는 외팔이였다.

그의 한쪽 손에는 죽장이 들려 있었고, 등에는 작은 자루가 매여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진 상태로 거친 새끼줄 같은 것으로 묶여 있었다.

개방 제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차림으로 청년은 거침없이 산문을 오른다.

이따금 참배객을 태운 마차가 지나가기도 하고,

소림을 구경하고 참배하려는 순례객들이 종종 보였다.

청년은 산문으로 가는 대로를 벗어나 좁은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숭산의 초입을 걷는 걸음에서는 거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올라가던 청년의 앞에 어디선가 젊은 승려 두 사람이 나타났다.

“ 아미타불······.”


숭산 (嵩山)은 중국 오악(五岳) 중 중악(中岳)이다.

옛 이름은 외방(外方), 숭고(嵩高), 숭고(崇高)라 하여 허난 성(河南省) 중부에 위치하여 푸유 산계(伏牛山系)에 속하며, 행정구역으로는 덩펑 시(登封市) 서북면(西北面)에 위치한다.

태실산(太室山)의 남쪽 산기슭에 위치한 숭양서원(嵩阳书院)은 중국 고대 4대 서원의 하나로 꼽히며, 법왕사(法王寺)는 중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지어진 사원 건축의 하나다. 숭산은 72개에 달하는 봉우리마다 하나씩 절이 있는데, 북위의 효문제가 495년에 천축의 승려 발타를 위해 지어주었다는 절로써 소림무술로 유명한 소림사도 그 중 하나이며, 여러 고승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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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잠룡출도(潛龍出道) 20.02.25 710 3 8쪽
7 잠룡출도(潛龍出道) 20.02.24 745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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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약육강식 弱肉强食 20.02.20 817 5 8쪽
4 당랑거철 螳螂拒轍 20.02.19 902 9 9쪽
3 허허실실 虛虛實實 20.02.18 936 10 8쪽
2 첩첩산중 疊疊山中 20.02.17 1,062 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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