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번째 괴식- 호떡믹스 쭈꾸미 콩나물
오늘은 어떤 괴식을 만들어볼까?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많은 음식을
요즘은 집에서 쉽게 간편하게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피자도 그렇고 우동, 호떡, 팬케익 등등
식품회사에서 간편식 상품을 많이 출시한다.
그런데 이게 항상 잘 팔리는 건 아니다.
여름에 호떡 믹스가 안 팔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 가을에 출시된 호떡믹스가 유통기한을 다 채우고 폐기 처분이 내려졌다.
오호 오늘은 한 여름의 호떡?
괴식의 계절음식은 거꾸로도 간다.
해산물코너에 쭈그러져 있던 쭈꾸미도 폐기가 결정되었다.
살짝 비린내가 짙은 게 맛이 가기 직전이다
웰컴 투 마이 위장!
내 위장은 맛 간 폐기음식물을 언제든지 환영한다.
그다음, 오늘 폐기식품은....
아. 드디어 그 분이 오셨다.
콩나물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콩나물.
난 콩나물의 맛도 아니고 값도 아니고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
“도대체 쟤는 왜 저렇게 생겼지?”
콩나물의 외모를 심판자인 듯 디스하는 중에
어디서 거울을 강제 소환하는 소리가 들린다.
‘거울아 거울아 가서 처묵이 면상 좀 비춰줘라’
...
나도 안다.
내가 누구 외모 탓할 입장 아니라는 거.
그런데 콩나물은 정말 너무 기괴하게 생겨먹었다.
대가리만 딥다 크고 몸은 호리호리하고
무게중심을 무시한 비과학적 신체 구조.
꼭 못생긴 외계인 같지 않냐??
그냥 얘는 비주얼은 패스하고
국같은 데 때려 넣어서 시원한 맛 내라고 있는 애다.
그런데 그 콩나물이 오늘 괴식의 재료네?
자, 이렇게 해서
호떡 믹스, 쭈꾸미, 콩나물로 만들어질
오늘의 괴식을 시작해보자.
???
햐~~ 이런 조합은 처음이라 뭘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호떡믹스의 포장지에 적힌 레시피를 읽어보았다.
가루에 물을 붓고 40도 물?
물 온도를 꼭 맞추라네? 그걸 어케 맞추냐 온도계도 없는데.
거기다 반죽을 해서
오므려서 뭘 넣고 그걸 예열한 프라이팬에....
됐다. 패스
나만의 괴식 호떡을 나만의 레시피로 만들어보자.
혁명은 내 안에 있다.
호떡믹스여 깨어나자!
틀에 박힌 공장형 레시피를 벗어던져라!
혁명을 부르짖으며
콩나물이랑 쭈꾸미로 무슨 호떡을 만들까 머리를 굴리는데.
!!!
아 그래 씨앗호떡!
호떡 안에 씨앗이 들어있어서 히트 친 그거.
호떡 안에 콩나물 대가리를 넣는거다.
씨앗과 콩나물 대가리.
일단 비주얼상 싱크로율 98프로는 되니까.
오케.
콩나물을 대충 씻어서 대가리만 딴다.
엄지와 검지로 힘을 주어
딱딱 대가리를 떼어낸다.
아~~~ 꼭 외계인들 목 따는 기분이다.
외계인의 단두대.
함부로 지구에 들어와 콩나물 행세를 하며
불법으로 아무 음식에나 침입해
그 음식 고유의 맛을 변하게 하고
어떤 음식이든지 콩나물이 들어가기만 하면
콩나물이 메인인양 이름도 콩나물 000 으로 바꾸게 만든 죄.
그 죄값으로 딴 목들이 벌써 수북히 쌓였다.
자, 그다음 쭈꾸미.
쭈꾸미를 물에 박박 씻었다.
문어 미니멀 같이 귀엽게 생긴 놈들,
얘들도 콩나물 대가리와 함께
호떡 안에 넣어줄거다.
타코야키 같은 맛이 될 것 같다.
콩나물 대가리와 쭈꾸미를 최대한 높은 열로 빠르게 익혀준다.
익어서 자꾸 튀는 콩나물 대가리와
열 받아서 더 오그라드는 쭈꾸미
쭈꾸미. 이름만으로 정감이 가는 생물체다.
네이밍은 정말 중요하다.
어떤 물체 또는 생물체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
첫인상과 이름이다.
첫인상은 그냥 생긴 게 그 모양이라 어쩔 수 없다만
이름은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고
이름 짓는 사람 마음에 달린 거다.
그런데 그 이름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이름도 아닌데 평생 그 이름의 이미지를 안고 살아야 한다.
내가, 그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김처묵.
작명 실패 사례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그 이름
꺼이꺼이꺼이
뜻은 좋은 뜻이라지만 발음도 신경을 쓰셨어야죠 부모님.
이름대로 인생이 풀린다잖아요.
자식 새끼가 그렇게 처먹고 살길 바라셨나요??
언젠가 정식으로 부모님께 항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부모님의 반응이 딱 이랬다.
ㅋㅋㅋㅋ
“변명이라도 하시지 자식이 정식으로 항의를 하는데 ㅋㅋㅋ이 뭡니까”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누나와 여동생.
“그 와꾸에 딱이구만 그럼 그 얼굴에 원빈이면 괜찮을 거 같냐? 길 가다 처맞을 수도 있어”
“인정. 차라리 욕 먹는 게 낫지.“
“그래서 이름이 욕이잖아. 처묵이”
혈육들아. 니들 와꾸도 만만치 않아. 유전자가 나만 망친 줄 아니?
쭈꾸미만 해도 이름이 쭈꾸미니까
종족이 생존하는 그 날까지 문어나 오징어 옆에서 쭈구리고 살아야 할 것 같잖아.
이름이 업보다.
또 들린다 거울 강제 소환하는 소리.
‘거울아 거울아 가서 처묵이 면상 좀 비춰줘라’
...
면상도 업보다. 강제인정
드디어 외계인 대가리와 문어 미니멀을 포용해 줄
문제의 믹스 반죽 시간이 돌아왔다.
물 온도고 뭐고 무시하고
계량 무시하고
그냥 물을 조금씩 넣어준다.
그리고 반죽을 친다. 떡을 친다.
치고 또 치고 계속 치고 폭풍같이 치고 지칠 때까지 치고 쉴 틈 없이 치고 미친 놈처럼 친다.
다른 떡도 따로 쳐둔다.
이 떡도 다시는 떡 칠 일 없을 것처럼 죽을 힘을 다 짜내서 끝장 볼 때까지 친다.
....
다 쳤냐?
하~~~~~ 긴 떡침이 끝나고 떡 친 후 피로가 몰려온다.
나가서 담배 한 대 피면서 인생에서 떡의 의미를 생각하고 싶다.
잔잔한 현타가 지나가고
이제 씨앗으로 위장한 콩나물 대가리와 문어 미니멀 쭈꾸미를
떡 친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그 위에 얹어준다.
양념 삼아 msg를 섞은 올리고당을 한 숟갈 떨어뜨린다.
그리고 따로 친 떡을 그 위에 포개서 잘 봉합시켜 준다.
이제 큰 냄비에 넣고 약한 불에 뒤집어 가며 완전히 익힌다.
흠~~ 익어가는 냄새 굿~~~~
한참 익은 후에 노릇노릇해진 호떡을 꺼낸다.
이건 정말 맛이 궁금해진다.
솔직히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망했거나 개망했거나.
그런데 한 입 먹는 순간
최소 망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콩나물 대가리에서는 익힌 콩의 고소한 맛이 났고
콩 비린내를 쭈꾸미의 짭쪼름함으로 가려주면서
msg 섞은 올리고당이 호떡 본유의 달짝지근을 완성시켜 준다
이 호떡의 진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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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라니까?
못 믿겠으면 해 드셔 보세요. ㅎㅎ
혼밥괴식회 ... 오늘도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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