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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70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09.27 23:55
조회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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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20화

DUMMY

“빨리 내고 오자.”


명단과 파트를 휘갈겨서 쓴 나는 신속히 의자에서 일어났고 레베카와 레오나드도 군말 없이 움직였다.


근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걷는데 때마침 복도를 지나다니는 학생을 발견했다.


미리 말이라도 맞춘 것처럼 누구할 것 없이 우르르 다가갔다. 갑자기 여럿이서 맹렬하게 쫒아가니 학생은 화들짝 놀라 양어깨를 감싼다.


“어어엇!”


이상한 소리를 내는 학생에게 앞장서서 물었다.


“저기 혹시 헨리 교수님 연구실 어디인지 아시나요?”


학생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더니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음······. 잘은 모르겠는데, 교수동은 저기 복도로 쭉 가시면 있어요.”

“아, 고마워요.”


짤막하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속히 복도를 걷는다.


레베카는 마치 장군의 행진처럼 위풍당당하게 걸었고 레오나드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걸었다.


교수동이 모여있는 복도에 도착한 우리들은 게시판으로 다가갔다. 흰 종이 위에 교수들의 이름이 적혀 있고 연구실 호실이 적혀 있었다.


눈으로 열심히 훑고 있는데 레오나드가 대뜸 종이의 한구석을 콕 찝는다.


“여기 있네.”


확인해보니 맞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은 거지. 글자를 읽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신기한 레오나드의 능력에 감탄하며 나는 어서 호실을 확인했다.


바로 옆에 건물 내부 위치가 그려진 내부도가 있었다. 위치를 파악한 나는 게시판에서 떨어졌다.


곧장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레베카와 레오나드도 뒤를 쫓는다.


“벌써 찾았어?”


레베카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대답을 생략하고 고개만 끄덕여주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헨리 교수가 연구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레바카도 헨리 교수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어! 저기 있다!”


레베카가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당황하면서 뒤따라 뛰기 시작하는데 레베카가 너무 빠르다.


있는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뛰는데 문득 이 상황이 골때린다.


무슨 추노 찍는 것도 아니고 고작 명단 하나를 빨리 제출하겠다고 셋이서 뭐 하는 거람.


앞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면서도 지체할 것 없이 곧바로 문손잡이를 잡았다. 갑자기 레오나드가 문과 벽 사이를 손바닥으로 막는다.


뭐하냐는 짓이냐며 레오나드를 쳐다봤다.


“노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아, 그리고 보니 그랬었다. 저택에 있을 때 노크 없이 다녔더니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붙어버린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여주고 노크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문이 열리고 헨리 교수가 고개를 내민다. 헨리는 입술을 달싹이더니 친절하게 문을 활짝 연다.


"음! 안으로 들어오세요."


대답 대신 명단과 파트를 적은 종이를 내밀자 헨리가 움찔하며 종이를 받아 든다. 이게 무엇인가 고민하는 것처럼 눈을 깜빡이더니 글자를 읽는다.


헨리는 우리들의 얼굴을 차근히 보더니 레오나드를 발견하고 순식간에 화색이 돈다.


"다들 빠르시네요. 4챕터라 쉽진 않으실 텐데 괜찮겠어요?"


밑밥을 까는 헨리의 대답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고 레오나드를 쳐다봤다.


‘레오나드 이새끼······.’


서슬 퍼런 기색을 느꼈는지 레오나드는 딴청을 부리며 먼산을 보고 있다.


레오나드의 기준이 이상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 안일하게 넘겨버린 내가 멍청했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파트를 다시 정할 수도 없는 노릇.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헨리에게 대답했다.


"네."


헨리는 환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종이를 옆구리에 낀다.


"학구열이 있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다들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하시겠어요?"


혼자서 밝게 웃는 헨리를 보자니 얄미워서 도무지 분이 풀리지 않는다.


레오나드에게 이 기분을 돌려주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꼭 레오나드를 뼈 빠지게 부려먹겠노라 결심했다.


헨리에게 한 번 붙잡혔다가는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에 신속히 선을 그었다.


"아뇨. 저희는 과제를 해야 하니까요."

"아! 그런가요. 다들 고생이네요."


과제를 한 움큼 얹어준 헨리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누가 끼어들세라 재빨리 선수를 치며 쐐기를 박는다.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


헨리는 아쉬운 눈길을 보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한숨 돌리고 되돌아서 복도를 걷는다. 아까와는 달리 느긋한 속도였다. 헨리의 연구실과 멀어지자 레오나드가 불쑥 말했다.


"근데 차는 왜 거절한 거야? 교수님과 대화해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며 나는 질겁했다. 도대체 저 말에다가 대고 무슨 답변을 해줘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런 걸 광기라고 하는 건가. 주인공이라 그런지 예사롭지 않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다며 한발 빠르게 선수를 친 나 자신을 칭찬했다.


나는 레오나드의 질문을 얼버무리며 말했다.


"응. 그러게. 개인 과제는 어떻게 할 거야? 같이 모여서 할까."


내 질문에 레베카는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인다. 반면에 레오나드는 어물거리며 한 박자 늦게 대답한다.


"음, 나는 이번 과제는 혼자서 할래.“


아니나 다를까 거절이었다.


아쉽긴 했지만, 조별과제라는 한배를 타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순순히 물러서주기로 했다.


“그럼 이번 과제는 우리 둘만 같이 하는 거로 하자.”

“그러자!”


오늘이 자선 경매일로부터 이틀째니 노엘이 도착할 터였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 기숙사에서 대기를 타고 있을 예정이었다.


‘어차피 과제는 다음 주까지만 하면 되니까.’


갑자기 레베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포효한다.


“아악! 근데 생각해보니까 오늘 할 일이 있었다!”


하필이면 바로 옆에 서 있어서 깜짝 놀랐다. 제발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 줄래.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놀랐어.”

“히히 미안.”


애교스럽게 사과한 레베카는 엄지와 검지로 턱을 감싸며 앓는 소리를 낸다.


“으음······.”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 다음에 날 잡고 같이 하자."

"그래! 좋아!"


면박을 받든지 말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레베카였다. 아까 보니까 수업도 제대로 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혼자서는 많이 막막했던 것 같다.


레베카도 일정이 있는 듯했고 나도 노엘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졸이는 중이었다.


“그럼 이제 해산할까?”


레베카와 레오나드는 금방 동의를 했고 우리들은 해산했다.


기숙사로 향하면서 문득 생각이 났다. 레오나드가 뭘 쓰고 있었는지는 결국 못 봤다. 대체 뭘 쓰고 있는 거였을까.


조를 짜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진상을 밝히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물어봐야지.’


기숙사에 도착해보니 묘하게 휑한 분위기가 난다. 조용한 걸 보니 마리도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연수원에서 아직 안 돌아온 걸까?'


나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 모처럼 시간 여유가 있어서 느긋하게 목욕까지 했다.


옷을 입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안경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나와보니 연수원 복장을 한 마리가 테이블 위에 동그란 원형 판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게 뭐야?"

"앗, 아가씨! 오늘은 일찍 돌아오셨네요. ······이건 자수틀인데 심심할 때 자수 놓으려고 챙겨왔어요."


흥미가 생겨 테이블로 가까이 다가갔다.


하얀 천 위에 되게 조그만 튤립이 수놓아져 있었다. 자수틀 위에 마리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서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귀엽다. 손수건이야?"


마리가 허둥지둥하며 자수틀을 품에 안아 숨겼다. 민망한 지 두 뺨에는 옅은 홍조가 돌고 있었다. 마리의 어깨가 기운 없이 처진다.


"네에······."


갑자기 바뀐 마리의 기분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 누군가가 몰래 일기장을 훔쳐본 심정일까. 근데 그러면 화가 나지 않나.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연수원은 어때?"

"으음······."


마리는 입술 위에 검지를 올리며 고심하더니 무언가 떠오르는 듯 입을 뗐다.


"아! 연수원에서 진짜 대단한 메이드를 봤어요."

"그래?"


마리는 할 말을 정리하는 듯 눈동자를 위로 굴리더니 말했다.


"그, 이름이 리사님인데 꼭 새싹, 아니 거대한 산 같으신 분이에요."


낯설지 않은 이름에 멈칫했다. 그리고 보니 레오나드의 메이드인 리사도 연수원을 다니고 있으리라. 설명을 들어보니 맞는 것 같다.


리사는 새싹 같은 연둣빛 머리카락에 녹음을 닮은 녹안을 가진 우드 엘프 혼혈이었다. 레오나드를 데리고 오면 알아서 딸려올 멤버라 영입을 따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리사는 정령을 이용해서 동료들과 소통을 원활히 돕는 역할을 했다. 정령친화력이 높지 않아 전투에 참여하는 멤버는 아니지만 전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계약한 정령이 많았다.


후반부로 가면 무전기 비슷한 게 나오긴 하지만 현재는 연락 수단이 편지 말고는 없다.


"그렇구나.“


마리가 문득 젖은 머리를 본다.


"아! 머리를 먼저 말리는 게 좋겠어요. 잠시만요!"


마리는 자수틀을 든 채로 자신의 방으로 호다닥 들어가더니 맨손으로 나왔다.


“아가씨, 얼른요!”


나는 마리의 재촉에 못 이겨 함께 트왈렛 룸으로 들어갔다. 참고로 트왈렛 룸은 화장대가 놓여 있고 옷방이 딸려있어서 치장을 할 때 사용하고 있다.


화장대에 나를 앉힌 마리는 서랍에서 아티팩트를 꺼내왔다. 헤어드라이어와 닮은 아티팩트를 켜자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머리칼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손길에 노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잠이 몰려와서 느리게 눈을 끔뻑거렸다.


“머리를 잘 말려야 감기도 안 걸리고 건강해요!”


나긋한 마리의 목소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때 밖에서 차임벨 소리가 울린다.


"잠시만요. 아가씨!"


마리의 손길이 멈추더니 아티팩트를 껐다. 늦은 저녁에나 도착할 줄 알았는데 벌써 온 것일까.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난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남자 목소리가 웅얼거리며 들렸다. 대화 소리가 잦아들고 발걸음 소리가 미세하게 들린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


마리는 귤색 눈동자를 크게 뜨고서 입을 벌린 채로 들어왔다.


“······경매장에서 나왔다고 갑자기 노예를 두고 갔어요! 혹시 잘못 온 걸까요?”


마리조차도 설마하니 동부의 사람인 내가 노예를 샀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


"아냐. 제대로 온 거야."


마리가 눈이 더 커진다. 여기서 조금만 더 커지면 그대로 눈알이 빠질 것 같다.


“노, 노예를요?”


마리의 발음이 마치 노엘처럼 들려왔다. 어쩜 이름도 찰떡으로 지어둔 것인지.


‘노엘이랑 노예랑 어감이 너무 비슷하잖아.’


작가의 센스에 헛웃음이 다 나온다.


계속밖에 세워둘 수는 없었다.


노엘이 열 받는다고 대뜸 죽이려 들진 않을까. 혹시나 해서 경매장에서 받은 노예용 인장 반지를 검지에 끼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자 노엘의 모습이 보인다. 노엘은 아직도 문 앞에서 서 있었다.


흑색 머리카락에 흑요석 같은 눈동자.

아래로 내려다보는 눈빛에 서린 눈빛이 서늘하다.


부담스러운 것과 별개로 아름다운 노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감동적이다. 계속 봐도 질릴 것 같지 않은 얼굴이다.


초면인데 얼굴을 오래 쳐다보는 건 부담스러울 테니 재빨리 시선을 떼어냈다.


“일단 들어오지 그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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