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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65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09.22 02:24
조회
70
추천
3
글자
11쪽

15화

DUMMY

회색의 머리를 길게 기르고 옆으로 묶고 있는 남자. 심지어 옷도 같은 색이다.


천을 걸치고 허리끈을 매는 옷. 이집트 느낌의 복식을 입고 있다.


‘저러니까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지.’


천막도 하필 회색이다.


신기하게 보였던 분홍색 구름은 학생이 들고 있던 길쭉한 곰방대에서 나온 것이었다.


남자는 곰방대를 든 손을 내리며 눈매를 접는다.


“아, 들켜버린 것 같아.”


대체 뭐를 들켰다는 걸까. 숨어있다가 놀라게 하려고 할 작정이었던 것인지. 의심쩍은 눈빛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무엇인가 오해를 하는 것 같아. 그냥 나는 농땡이를 부리는 중이고 너한테 발견되어진 거야.”


남자는 미소를 짓는다. 두 손을 보이며 무해하다며 어필했다.


처음부터 애먼 소리만 안 했으면 모르지 않았을까. 딱히 초면인 사람에게 참견하고 싶지 않다.


그냥 지나칠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붙잡는다.


“신입생이구나. 여기는 어떻게 알고 들어오게 된 거야?”


회색 머리는 동아리 쪽 사람인 것 같다. 게다가 뭔가 상습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고. 나는 내가 들어온 틈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저기 틈이 있길래요. 밖에는 너무 사람이 많고.”

“아아. 그런 거구나.”


미미한 미소를 지은 남자는 느릿하게 곰방대를 들어 올리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또다른 천막 틈이 보인다.


“여기로 나가면 사람이 많이 없을 거야.”


도움을 받을 줄을 몰랐는데, 고맙다며 고개를 까닥이고 틈으로 향한다. 갑자기 앞에서 가로막으며 훼방을 놓는다.


너무 황당해서 올려다본다. 남자는 또, 빙글빙글 웃는다. 어떻게 저렇게 웃음이 헤픈지 모르겠다.


대체 뭐가 불만이라서 그러는 거야? 한심하다는 시선을 던지자, 남자가 하하 웃었다.


“알려준 대가로 나를 도와주면 어떨까?”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더니.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 나는 소매의 단추를 풀고 말아 올리려는데 내 팔을 덥석 잡는다.


“뭐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무서우니까 거기까지만 해주면 안 될까?”


멈춰주면 이제 비켜줄 거냐며 무언의 고갯짓을 보냈다. 남자는 재빨리 팔을 놓아주더니 몸을 사린다.


“어려운 건 아니야. 사실 나도 동아리 홍보를 해야 하는 처지라서, 널 데리고 가면 알리바이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방금 들었는데 도와주지 않을래?”


남자의 말대로 어려운 부탁은 아니긴 했다. 근데 그게 흔쾌히 어울려줄 이유가 되진 않았다.


정보를 알려준 건 고맙지만. 처음 보는 사람을 선뜻 나서서 도와줄 마음이 생기진 않았다. 그래서 단호하게 선을 긋기로 했다.


“아뇨. 전 이미 들어갈 동아리를 정해서요.”

“그렇구나. 많이 바쁜 것 같아. 사정이 어렵다면 어쩔 수 없겠어.”


한 번만 더 질척거리면 같잖은 존중을 치워줄 생각이었다만.


순순히 물러나며 부드럽게 눈매를 휘며 웃는다. 어쩐지 석연치 않은 예감이 들어서 미간을 찡그렸다.


이 자리가 불편해진 나는 어서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재빨리 걸었다. 남자가 말한 틈은 정말로 한산했다.


이제 무얼 하지. 그래도 모처럼 온 건데 그냥 돌아가기는 아쉽지 않나. 나는 가입하기로 결정한 동아리 부스를 찾아보기로 했다.


각양각색의 동아리 부스가 보인다. 그런데 하나 같이 열의가 없어 보인다. 부스를 꾸며둔 것도 성의가 없다.


간판만 걸어두고서 지루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과 통행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혹시 동아리 배치도 같은 게 붙어있을까 기웃거려보지만, 소득이 없다.


저기 시간을 때우며 낙서하거나 넋 놓고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긴 뭐 했다. 결국,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도움을 받았다.


“어디보자, 던전 공략······. 여기 있네요. ······그리고 마녀의 항아리는 이쪽.”


마침 구역 배치도를 가지고 있던 학생이 위치를 찾아줬다. 여기서 던전 공략 쪽이 더 가깝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녀의 항아리가 있었다.


이름 모를 학생에게 감사를 전하고 걸음을 옮겼다.


[던전 공략 동아리]


오우거 모습의 커다란 등신대가 보인다. 실제 크기인지 상당히 크다. 북적이는 부스였다.


[던전 공략 동아리]는 수강 신청의 아쉬움을 달랠 겸 골랐다. 말 그대로 던전 직접 공략하러 다니는 동아리다.


나중가면 몬스터를 상대해야할테니 미리 실전 경험을 쌓아둘 요량이다.


“입부 희망자는 여기에 명단 쓰고 가세요!”


목소리를 키우며 외치는 양갈래 머리 소녀가 보였다. 입부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줄지어 서 있는 학생들. 그 앞에 만들어진 줄이 제법 길다.


‘여기 생각보다 인기 많네.’


하긴. 전투 학과들은 대부분 던전 공략에 관심 있겠지. 나도 대열에 합류해 줄을 섰다.


“오우거는······그래서······”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보이지도 않는다.


줄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목소리가 명료하게 들린다.


“던전 공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량 관리입니다. 일단 먼저 육포나 건조된 식량을 준비해야겠죠. 던전에 금방 상하는 음식을 챙겨갈 순 없잖아요?”


글쎄. 아공간이 있으면 또 다르지 않을까. 아공간에 넣어두면 신기하게도 상하지도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금방 내 차례가 다가왔다. 양갈래 머리의 소녀는 동물 귀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만년필을 건네준다.


“이거 작성하세요.”


만년필을 쥐었다. 입부신청서 칸을 채우며 글씨를 또박또박 써넣었다.


“어머~ 왼손잡이신가 봐요. 신기하다. 아, 여기 체크도 해주세요.”


눈빛은 영혼이 없는데 말투는 묘하게 발랄하다. 많이 힘들어 보인다. 소녀가 짚어주는 부분까지 마무리하고 종이와 만년필을 돌려준다.


“환영해요. 다음~주 월요일에. 저녁 7시! 오리엔테이션이. 있으니 필차암 부탁드려요.”


억양을 주면서 빠르게 말하는데 내용은 귀에 쏙쏙 들어온다.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따라 하면서 되돌아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왼쪽으로 꺾어서 7블록 떨어져 있다.


[마녀의 항아리]는 바로 약초를 다루며 연금술을 연구하는 동아리다.


특히 동아리의 지도 교수가 중요 인물이다. 그 교수는 5년만에 전염병 치료제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원작에는 아쉽지만, 제작법까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그래도 핵심적인 재료는 알고 있으니 힌트를 주면 조금 더 빠르게 치료제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


‘그리고 겸사겸사 연금술 같은 거 배워두면 좋잖아.’


사실 가입 가능한 동아리는 제한이 없었다. 단지 동아리에 가입하면 활동 내역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게 문제지.


앞으로 영입해야 하는 동료. 로렌스가 속해 있는 마공학 동아리도 떠올랐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무엇보다 지금 가도 로렌스는 부재중이다. 로렌스는 대대로 마공학을 해온 집안의 자식이다. 공방에서 실수로 주문을 너무 많이 받게 되서 로렌스는 아버지를 돕느라고 바쁜 시기였다. 그러면서 실력도 는다.


‘그러니 아직은 시기상조야.’


솔직히 말하자면 로렌스는 영입이 가장 걱정되지 않는 동료 중 하나였다. 특히 티타니아라면 더더욱 전혀 문제없다.


로렌스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수전노.


특별히 짠내가 나는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로망을 이루기 위해 금화가 아주 필요할 뿐이다.


로렌스는 대장장이 포지션의 동료로 아티팩트라든지, 방어구라든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만들어준다.


여담이지만 이 모든 것들의 비용은 티타니아가 내준다. 사실상 티타니아가 레오나드의 물주였다.


말 나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레오나드는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선한 캐릭터는 아니다. 그러니까 회귀 후에 복수의 칼날을 서늘하게 세운 거고. 지금만 해도 능구렁이처럼 속을 숨기고 다니지 않나.


슬슬 더하면 험담이 될 것 같다.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마녀의 항아리 부스를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간판 밑으로 긴 천을 내려두고, 또 다른 색색의 천들은 겹치며 아치형으로 내려온다. 금색 줄 장식도 달려 있다.


부스 안에는 이국적인 향기가 감싸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떤 테마가 있는 모양인데. 덕분에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복잡하게 꼬아서 만든 줄 장식이 신기해서 유심히 보았다. 그때 부스 안쪽이 소란스러워진다.


호기심을 품고 고개를 내민다. 금발 머리 여자는 등진 채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굽이치는 머리카락이 오금까지 닫는다.


“부장이 되서 신입생 모집도 안하고 뭐하다 지금 와! 정원의 냄새는 벌써 5명이나 모집했다는데!”


독기 서린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며 짜증을 내고 있다.


동아리 이름은 듣기만 해도 라이벌의 냄새가 난다. 라이벌한테 뒤처지는 건 참을 수 없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누군가 싶어서 고개를 더 내민다.


얇은 천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손등으로 천을 슬쩍 위로 올렸다.


“······.”


회색 머리를 옆으로 묶고 있는 남자. 다시 눈을 비비고 앞을 본다. 아까 그 농땡이 피운다던 그 남자였다. 마녀의 항아리 사람이었나.


여기 부장인 줄 알았으면 협조해주고 점수를 땄지. 사실 솔직히 말해서 꼬시긴 하다. 부장이 돼서 부원모집에 손을 놓고 있다니 돼먹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부스는 지키고 있어야지. 지금 수업 빼먹고 온 애들도 있는 거 몰라? 그 애들 얼굴 보기 부끄럽지 않아?”

“······.”


욕을 바가지로 먹는 와중에도 남자는 가만히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걸 보고 안쓰럽다고 해야 할지. 여자를 보고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 저런 성격인지 금발은 지적도 하지 않았다.


“야! 저기 사람 왔잖아.”


누군가 외치는 말에 여러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날아와 꽂혔다. 짜 맞춘 것처럼 부스 안이 정적이 휩싸인다.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한다. 어쩐지 초상집에 난입한 기분이다.


금발 머리의 여자가 위로 머리를 쓸어올리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못 볼 꼴을 보였네. 거기 있지 말고 들어와서 봐.”


나는 금발 머리의 제안을 사양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라색 둥근 테이블 위 놓인 새하얀 티 세트. 여자는 차를 준비하는 듯했다. 시선을 돌린다.


커다란 보라색 항아리가 있고 선반 위에는 각종 약초 화분이 놓여있다.


보랏빛의 기다란 양초에 곳곳에 세워져 있고 불이 밝혀져 있다.


안락한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기 앉아.”


여자는 하얀색 나무 의자를 빼주었다. 아래로 처진 눈매와 하늘을 닮아 맑은 눈동자. 이목구비가 오목조목하다.


아까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친절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의자에 앉자 여자가 맞은 편에 앉는다.


“마녀의 항아리에 온 걸 환영해.”


둥근 테이블 위에 녹아내린 양초. 보랏빛 양초는 빛이 어딘가 모르게 음산하게 일렁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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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화 22.09.23 6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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