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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물의 망나니 공작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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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날
그림/삽화
봉급날
작품등록일 :
2022.09.22 02:14
최근연재일 :
2022.10.29 23:55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168
추천수 :
88
글자수 :
275,051

작성
22.09.22 02:21
조회
72
추천
3
글자
12쪽

9화

DUMMY

시간은 빠르게 흘러 아카데미로 출발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그동안 뻔질나게 도서관과 연무장을 들락날락하며 시간을 보냈다.


안면이 있는 둘에게는 오늘 떠난다고 미리 말해뒀는데, 유독 밀러가 아쉬워해서 떼어놓느라 고생했다.


골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 무릎까지 오는 하얀색 원피스를 골라 입었다.


마리는 옆에서 얇은 은색 줄에 푸른 보석이 박힌 펜던트를 걸어주었다.


"이게 제일 마음에 드네."

"아, 아가씨께 정말 잘 어울려요."


나는 마리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들어 낯빛이 많이 안 좋아졌다.


‘무슨 일이 있었나?’


겁먹는 일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도돌이표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통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너도 얼른 짐 챙겨와.“


내 재촉에 마리는 방에서 커다란 갈색 가방을 끌어안고 낑낑거리며 나왔다.


"아가씨, 방금 집사님께서 왔다 가셨는데요. 주인님께서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전해달라셔요······."


계속 공작을 피해오긴 했지만, 아카데미에 가면 한동안 볼 일이없을 테니 오늘만큼은 얼굴을 비출 생각이었다.


"잠깐만. 네 짐도 챙겨줄게."


마리는 머뭇거리며 입을 달싹거렸다. 부탁한다고 말하기는 부담스러운가 보다. 지레짐작한 나는 마리의 가방을 챙겨주기로 했다.


허리를 굽혀 마리가 내려놓은 가방 위에 손을 올렸다.


눈을 감고 속으로 인벤토리를 외치자 티타니아 앞에 게임처럼 네모난 박스에 칸이 나눠진 창이 떠오른다.


마리는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했다.


아공간은 부피에 상관없이 한 칸당 하나의 물건을 넣을 수 있었다. 가방을 아공간에 넣자 한 칸을 차지하며 눈앞에 가방이 사라진다.


감쪽같이 사라진 가방에 마리는 조금 찜찜한 표정이었다.


봐도 봐도 신기하다며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했다.


'이제 공작을 만나러 가야겠지.'


집무실에 도착해보니 마리처럼

눈 밑이 거뭇해진 공작이 있었다.


공작은 흉흉한 얼굴이었다.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며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연다.


"너무 늦게 자는 건 건강에 안 좋으니 일찍 자는 게 좋겠구나. 그리고 식사는 입맛이 없더라도 꼭 챙겨 먹어야 하고, 혹시나 친한 척하며 다가오는······."


얼마나 벼르고 있었는지 잔소리가 청산유수로 흘러나온다.


건성으로 듣고 있었는데 그새 눈치챈 모양이다.


공작은 잔소리를 멈추고 못마땅한 눈초리를 한다. 한마디 들으려나. 공작은 한숨만 푸욱 내쉬었다.


"이렇게 빨리 갈 필요가 있겠니?"

"어차피 여기 있어 봐야 할 일도 없는걸요."

"그래도 타지에 있는 것보다는 편한 집이 낫지."

"구경도 하고요."


결국 말리지 못한 공작이 한발 물러났다.


"그럼 방학에는 꼭 집으로 돌아오렴."


앞으로 저택으로 돌아올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고개를 까딱이며 공작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도시마다 워프 게이트가 설치되어있어서 금방 아카데미까지 갈 수 있었다.


물론 간단히 이용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티타니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리는 긴장한 얼굴로 마차를 타고 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긴장이 탁 풀렸는지, 창밖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와! 저기가 황성인가 봐요."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황성.


산 중턱쯤에 세워진 황성 앞으로는 커다란 호수가 감싸고 있고 호수와 황성 사이를 잇는 커다란 다리가 놓여있다.


가까이서 보면 호수에 하늘과 황성의 모습이 맑게 비쳐서 장관이겠지. 아쉽지만 거리가 멀어 호수는 하얗게 보일 뿐이었다.


멀어져 가는 황성의 모습과 함께 수도의 전경을 구경하다 보니 금방 아카데미에 당도했다.


"도착했네. 내리자."


아카데미의 한 건물 앞에 멈춰 선 마차에서 내렸다.


고개를 길게 빼고 서 있던 남자가 저벅저벅 다가온다.


"르웰 가문의 공녀님 티타니아 영애시지요?"


뻔질뻔질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경계하는데 대뜸 허리를 접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공녀님의 안내를 맡은 제롬이라고 합니다. 공녀님께서 오늘 도착하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롬은 양손을 비비며 한껏 미소를 지었다. 마치 우량 고객을 상대하는 상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제롬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짐은 없습니까?"

"이게 있어서 말이야."


목에 걸고 있던 아티팩트를 가리켰다. 제롬은 입을 쩌억 벌리며 과장된 액션을 했다.


"오! 아공간 아티팩트인가 보네요. 보아하니 최상급 물건인 것 같은데 역시 동부의 대귀족 르웰 가문이네요."

"그렇지."


어딘가 경직되어있던 제롬의 표정이 풀리며 넉살 좋게 웃는다.


"역시 듣던 대로 티타니아 공녀님께서는 영민하시군요. 저기 멀리서도 후광이 비춰서 바로 알아봤지 뭡니까."


아첨을 늘어놓는 제롬. 뭐라고 답을 돌려줘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칭찬을 해야 하나?


"아카데미에서 지급해주는 교복이 있긴 하지만 보통 귀족분들은 맞춤을 선호하시더라고요. 아카데미 근처에 카르텔 의상실이라고 있는데 거기가 유명합니다.“


제롬은 재빨리 화제를 계속 이어나가며 끊임없이 말했다. 약간 정신이 혼미해진다.


본능적으로 삐딱한 말이 나갔다.


"내가 직접 가야 해?"


제롬은 이마의 주름이 잡힐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는 손을 마구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당연히 불러드려야지요. 제가 금방 수배해서 부르겠습니다!"


날 위해 이런저런 정보들을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았지만 정신이 없어서 거의 흘려들었다.


제롬을 따라 도착한 곳은 기숙사 앞이었다.


귀족들은 입학 시에 거금의 기부금을 내는 것이 관례였고 아카데미는 기부금에 따라 특혜를 내줬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기숙사.


르웰 가문에서는 넉넉한 기부금을 보냈나 보다.


“여기 3층을 전부 사용하시면 됩니다!”


나는 앞으로 아카데미에서 지내게 될 거처를 둘러봤다.


슬쩍 봐도 방이 많아 보인다. 특별한 세공 없이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린 방이었다.


"이건 안내 책자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제롬은 두툼한 안내 책자를 마리에게 건네주었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신지요?"


제롬의 눈빛에서는 은근한 기대가 읽혔다.


‘아무렴 나도 눈치가 있지.’


얼른 돌려보내 줬으면 하는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 그럼 나가봐."

"네?"


제롬은 뻥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거 아니야? 그럼 대체 왜 그런 눈빛을 한 거지.’


말해보라며 제롬을 보는데 갑자기 혼자서 몸을 부르르 떤다. 제롬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다.


‘대체 왜 그러는데?’


어리둥절하게 보고 있는데 제롬이 인사를 하더니 붙잡을 새도 없이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너무 황당해서 말문이 턱 막힌다. 고개를 돌려 마리를 봤다.


마리는 측은하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디가 마음에 안 드셨어요?"

"아니."


조금 말이 많긴 했지만, 안내도 잘해줬고 말이야.


대체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마리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입을 막았다. 손이 덜덜 떨린다.


"죄, 죄송해요."


* * *


자신을 보며 웃는 아가씨의 모습이 떠올린 마리는 몸을 떨었다.


얼른 머리를 흔들며 무서운 기억을 털어낸다.


마리는 책상에 팔을 올리고 얼굴을 감싸며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요즘 아가씨께서 이상해지셨어.'


처음에는 새로운 방식의 괴롭힘인 줄 알았다.


무슨 참신한 방법으로 자신을 괴롭히려고 그러는 건가 싶어서 매일 밤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어떤 날에는 눈물을 몰래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티타니아가 친절하게 대해주니 마리도 점차 익숙해졌다.


마리는 슬슬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무언가 심경에 변화가 있으셨나?'


식사가 마음에 안 든다며 엎어버리거나 트집을 잡아서 소소하게 괴롭히고, 르웰 령을 돌아다니며 매일 같이 크고 작은 사고를 치던 아가씨께서 어느 날부터 갑자기 외출도 안 하시고 조용하시니 마리는 의문스러울 따름이었다.


부디 아가씨께서 이대로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며 마리는 크게 한숨을 폭 내쉬었다.


마리는 고개를 돌려 메를린을 바라봤다.


'마사지를 가르쳐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핼쓱해진 얼굴을 보니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메를린을 달래보자고 마음 먹은 마리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옆으로 쪼그리며 누워있어서 마치 애벌레처럼 보이는 메를린에게 다가갔다.


"메를린. 혹시 요즘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이불을 꼬물거리면서 대답없는 메를린을 보면서 마리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요즘 얼굴이 안 좋아."


마리의 말에 메를린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흐흐윽, 나눈······."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답답해진 마리가 이불을 살금살금 끌어 내렸다.


처음에는 이불을 쥐고 저항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불이 스르륵 내려가진다.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 지 이불이 흥건할 정도였다.


"왜 그래? 응?"

"마리!"


메를린이 마리의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는 대성통곡했다.


"으허헝!"


한참이나 마리가 등을 두드려 주고 나서야 겨우 진정한 메를린이 코를 흥하고 크게 풀었다.


"나, 이제 못 만나게 될 수도 있어."

"응?"

"난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애써 메를린이 미소를 지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도 보고······."


밝게 웃으며 시작했는데 점점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또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무슨 일이야 메를린."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한 걸 깨달은 마리가 심각해졌다.


겨우 울음을 삼킨 메를린이 눈물을 연신 닦았다.


"어떡하지. 나 무섭다. 아가씨께서 날 가만 두시지 않을 거야."

"메를린······."

"저번에 집사님께서 말씀하신 거 들었지? 하하. 그게 사실 나 때문이야."


자조하며 웃는 메를린의 처량한 모습에 마리가 눈썹을 내리며 물었다.


"메를린 때문이라니?"

"실은······. 줄리아랑 라나랑 아가씨 이야기를 하다가 들켜버렸어."


마리는 미간을 찡그리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에휴. 언제 경을 칠 줄 알았어."

"······."


줄리아는 귀족 출신으로 서열이 높은 편이었고 나중에 시녀장이 될거라면서 다른 메이드들을 휘어잡으려고 들었다.


최근 들어 아가씨를 깍아 내리면서 자기가 주인이 된 거마냥 귀족 영애처럼 대우받으려고 하더라니.


"이건 메를린이 잘못하긴 했어. 뭐하러 장단을 맞춰주니?"

"그래도 무서운 걸······."


사실 마리도 줄리아가 무서워서 말도 못꺼냈다. 할말이 없었던 마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줄리아는 귀족이고 우린 평민인데 어떻게 그래······."

"······."


'아가씨께 말씀 드렸더라면 좋았을까?'


불이 여기까지 붙을까봐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던 마리는 자신과 메를린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가씨께서 해고 하신대?"


메를린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벌을 내릴 지 고민해보신다면서 막, 막 웃으셨어······."


당시를 생각하며 표정이 굳은 메를린이 소름 돋는다며 팔뚝을 마구 비볐다. 마리의 표정도 덩달아 딱딱하게 굳었다.


"어?"

"얼마나 무서운 벌을 주시려고 그렇게 웃으신 건지 너무 무서워······."


잊으려고 애썼던 아가씨의 모습이 뭉게뭉게 떠오른다.


"허억!"


덩달아 파랗게 질리는 마리를 보며 메를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 그 미소는 뭔가 새로운 괴롭힘을 떠올리신 거야.'


그래서 즐거우셔서 웃으셨던 게 아닐까? 퍼즐이 딱딱 맞아 들어간다. 마리는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킨 마리가 비틀거리며 반대편 침대로 갔다.


풀썩 몸을 눕힌 마리가 이불을 돌돌 만다.


"미안해.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마리는 얼굴도 기억이 안나는 부모님이 강 너머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환영이 보였다.


"마리!"


당황한 메를린이 마리를 마구 흔들었지만 마리는 요지부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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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22.09.22 67 3 11쪽
12 12화 22.09.22 65 3 12쪽
11 11화 22.09.22 67 3 12쪽
10 10화 22.09.22 7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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