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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악당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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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작품등록일 :
2013.05.23 22:23
최근연재일 :
2013.11.12 23:57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9,647
추천수 :
478
글자수 :
51,694

작성
13.08.02 16:08
조회
581
추천
18
글자
7쪽

(014. 꿈꾸는 것은 죄가 아니라지요

DUMMY

점원이 피오니를 위해 준비해 준 옷은 짧은 가죽 자켓과 살짝 다리를 조여주는 발목까지 가리는 가죽바지, 무엇인지 모를 튼튼한 가죽 재질의 부츠였다. 데르옌을 위해 준비해 준 옷은 마찬가지로 질긴 가죽으로 만든 바지와 자켓, 그리고 부츠였고 피오니와는 다르게 각반과 팔뚝 보호대, 가슴 보호를 위한 경갑이 딸려있었다. 점원은 그들을 여행자로 본 것 같았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데르옌은 옷을 전부 차려입고 나왔다. 아니나다를까 아직 피오니는 목욕탕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였다.

데르옌은 목욕탕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피오니를 기다렸다. 피오니 혼자 방으로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기에는 불안하다. 지금은 마력을 쓰면 안 될 때이고, 마력을 쓰지 않는 피오니는 일반인보다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적으로 데르옌, 본인만의 추측이다.

마력을 얻기 전에도 피오니의 몸은 좋지 않았을 것이라 감히 예측해보고, 마력이 들어온 이후 애써 근력을 늘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 감히 추측해본다. 오는 길 동안 피오니는 체력이 아닌 정신력으로 버텼다. 짐이 되기 싫어 악착같이 따라왔다. 마침내 체력과 정신력, 그 둘이 한계에 다달아서야 피오니는 스스로 휴식을 제안했다.

데르옌은 벽에 등을 기대 선 채로 고민했다. 자신이 항상 피오니의 곁을 지켜줄 수는 없다. 피오니도 제 한 몸 지킬 줄은 알아야 할 터이다. 분명 무언가 무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했었는데. 그것을 사주어야겠다.

데르옌은 피오니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피오니를 언제까지고 보듬고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데르옌은 눈을 감고 머리를 뒤로 기댔다. 지금은 일단 주어진 것을 추스를 때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저편에서 작고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곧 붉고 작은 머리통이 보였다.


"데르옌? 설마...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래 기다리진 않았습니다. 조금 더 걸릴 줄 알았는데요. 옷은 편안합니까?"

"아, 예... 괜찮아요. 편해요."


피오니는 어째서 데르옌이 저를 기다리는 지 알지 못한 채로 어설프게 웃었다. 그 후로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피오니는 짧은 계단을 금세 올라와 데르옌의 곁에 섰다. 데르옌은 피오니를 앞세워 계단을 올라갔다.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나서야 데르옌은 다시 피오니에게 말을 걸었다.


"뭘 하고 살고 싶습니까?"

"예?"


너무나 뜬금없이, 갑작스레 던져진 질문에 피오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피오니는 한 번도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주어진 삶에 순응하듯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데르옌은 피오니에게 그것을 묻고 있었고, 피오니는 대답을 해야했다.

고개를 푹 숙인 탓에 흘러내린 푸석푸석한 붉은 머리가 저물녘의 햇빛을 받아 한층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데르옌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답을 기다렸을 뿐이다.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피오니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데르옌은... 내가, 뭘 하고 살길 바래요?"

"피오니가 원하는 걸 하고 살길 바랍니다."

"난... 하고 싶은 것이 없는 데도요?"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피오니. 단지 모를 뿐이죠. 하고 싶은 것도, 하는 방법도."

"...그렇지만, 난 내가 뭘 잘하는 지도 몰라요, 데르옌..."


잔뜩 처진 목소리였다. 자신에 관해 그 어떤 것도 모르는, 자괴감으로 가득 찬 목소리. 피오니는 괴로웠다.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이 처음이라 괴로웠고,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해 괴로웠고, 제 앞에 답이 주어지지 않아 괴로웠다. 피오니는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다르게 태어났고, 다르게 커서,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피오니는 침대 위로 다리를 끌어올려 한껏 몸을 웅크렸다. 낮은 한숨이 입밖으로 흘러나갔다.


"피오니."


피오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피오니."


데르옌이 연거푸 이름을 불렀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데르옌은 그런 피오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동그스름하게 보이는 정수리를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다르지 않다. 희대의 마녀이고, 그런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또래의 소심한 소녀들과 다를 것이 없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끝없이 외로움을 타는 것은 그 또래 소녀들의 점유물인 풍부한 감수성 탓이었다. 물론 그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장담하지 못할 터이나, 그렇다고 해서 유별나게 다른 것도 아니었다. 데르옌은 왠지 슬퍼하는 것 같은 피오니를 위로하고 싶다, 고 느꼈다.


"당신은, 식물을 잘 구별할 줄 압니다."


반쯤 장난으로 시작한 말이었다. 피오니에게 당신이 잘하는 것이 어떤 건지 알려주고 싶은 생각으로 시작한 말이었다. 그러나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피오니를 주시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분명 자신이 보는 피오니는 피오니 본인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풍성한 선물을 지니고 있는 사람일 것이었다.


"독이 든 식물을 잘 골라내고 몸에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죠. 당신은 위험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잘 가려냅니다. 그 감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벌써 잡혔을 겁니다. 당신은 깊게 인내할 줄 압니다. 힘든 것을 참고 견디며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버텼으니까요. 당신은 남에게 기댈 줄 압니다.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피오니. 다른 이의 품에서 취하는 휴식은 혼자서 회복하는 것보다 훨씬 충만한 감정을 가져다주죠. 당신은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압니다. 상황에 적응하고 금세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재능을 가졌어요."


데르옌은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피오니와 함께 한 이래로 한 번에 가장 많은 말을 한 것 같았다. 어느새 피오니의 고개가 들려있었다. 저를 바라보는 푸른빛 눈동자를 응시하며 데르옌은 그 뒤의 새까만 눈을 상상했다. 피오니는 혼란에 잠겨있었다. 데르옌이 말하는 저 사람이 정말 자신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은 저렇게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저렇게 훌륭한 사람도 아닐 터인데, 그런데 어째서.

피오니가 데르옌을 향해 무어라 말을 하려는 것 같았으나 피오니는 곧 입을 다물어버렸다. 피오니는 시트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는 데르옌에게서 돌아누웠다. 해가 기울어가고는 있었지만 자기에 그리 적당한 시간은 아니었다.

곧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고, 데르옌도 제 침대에 누웠다. 솔직히, 데르옌 자신이야말로 아무짝에도 하등 쓸모가 없는 사람일 터인데. 데르옌은 눈을 감았고, 곧 그도 그간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한 잠에 빠져들었다.


작가의말

데르옌과 피오니 얘기만 나오니 슬라이체의 이야기를 넣어보려고 했습니다만, 지금까지 써왔던 것과 좀 달라질 것 같다고 생각되어서 뺐습니다. 간만에 잡아서 그런가, 뭐라고 해야하지? 붕 뜨는 느낌입니다. 그냥 저 스스로가 악딜과 분리되어 붕 떠 있는 느낌이예요. 그렇지만 다시 쓰자니 시간이 안 되네요...
사실 지난 주에 올렸어야 하는데... 쓰다가, 꽤 길게 썼고,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 갈 쯤 인터넷 창이 한번에 꺼지더군요. 그 충격이 꽤 컸습니다. 일단 좀 쓰자, 쓰자 해도 자꾸 날아간 내용에 대한 아쉬움이 머릿속을 맴돌아서...
그래놓고서도 아직 진도도 나가지 못한 먼 훗날의 이야기를 자꾸만 짜고 있더군요. 일단 이 둘 진도를 먼저 빼야할 텐데, 정작 짠 줄거리의 앞부분만 깔짝이고 있는데, 짜놓은 스토리가 아까워서라도 해야겠습니다.
그게, 도쿄구울이라는 만화를 아실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 년쯤 전에 썼다가 에이포 30장 정도를 전부 날려먹고 나중에 제대로 다시 써야지, 하고 다짐했던 내용이 그거랑 너무 비슷했거든요. 사람의 고기를 먹고, 피를 마시고. 그러나 뱀파이어와는 다르고. 제 소설이 ‘사냥꾼’이고, 고기는 무조건 일주일 이내의 것, 그 수가 극히 희박하고 여러 제약이 더해지며 사람과는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것만이 다릅니다만... 뭐라고 해야할까요. 그 소재가 너무나도 희귀해서, 다른 여러가지가 더해진다고 해도 온전히 제 것이 되지는 못할 것 같더라구요. 임시저장 기능이 사라지니 여러모로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빨리 복구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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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73 지나가는
    작성일
    13.08.02 18:47
    No. 1

    뭔가 귀여운 소년 소녀들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3.08.03 15:38
    No. 2

    소년이라기에는 뭣한 나이이기는 하지만... 풋풋하죠. 표현하려고 한 감정이 제대로 표현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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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016. 선택이라 해서 언제나 행운이 되는 법은 없는 걸까요 +2 13.11.12 309 7 7쪽
16 (015. 평범한 일상이란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아요 +2 13.10.02 512 19 7쪽
» (014. 꿈꾸는 것은 죄가 아니라지요 +2 13.08.02 582 18 7쪽
14 (013. 평범한 곳에선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4 13.07.20 475 22 7쪽
13 (012. 의도하지 않은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나요 +4 13.07.12 494 25 7쪽
12 (011.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4 13.07.02 762 30 8쪽
11 (010. 그냥 주어지는 건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데 +2 13.06.25 578 62 7쪽
10 (009. 경고는 이유없이 나타나지 않지요 +2 13.06.21 1,224 48 7쪽
9 (008. 사람이 제일 믿을 게 못 되는 거 아닌가요 +2 13.06.15 442 30 7쪽
8 (007. 개구멍은 막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4 13.06.10 565 9 7쪽
7 (006. 정말로 이름을 불러주면 살아나게 될까요 +2 13.06.05 423 17 7쪽
6 (005. 영웅은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2 13.06.03 432 26 8쪽
5 (004.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있긴 하던가요 +2 13.05.29 518 47 7쪽
4 (003. 원래 그렇게 태어나면 끝까지 그렇다고들 하던데 +2 13.05.28 467 28 7쪽
3 (002. 부모 잃은 계집애는 개만도 못하다데요 +2 13.05.25 513 11 7쪽
2 (001. 어디서부터 써야할까요 +2 13.05.23 558 35 7쪽
1 (000. 시작합니다 +8 13.05.23 794 4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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