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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악당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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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작품등록일 :
2013.05.23 22:23
최근연재일 :
2013.11.12 23:57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9,646
추천수 :
478
글자수 :
51,694

작성
13.05.23 22:35
조회
793
추천
44
글자
5쪽

(000. 시작합니다

DUMMY

"...그녀가... 내게 묻더군.

왜... 전, 사랑받지 못하나요...?

라고."


그의 입이 물부리를 짓씹었다.


"흔하고, 진부한 이야기지... 어려서부터 사랑받은 소년과 사랑받지 못한 소녀가 있어. 사랑받은 소년은 기대를 채우기 위해 악당을 무찌르려 하고, 사랑받지 못한 소녀는,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그 어떤 짓이라도 서슴치 않지... 사실 그 둘 모두 불쌍하기 그지없는 인생이지만서도. 사연 없는 악당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아픔 없는 영웅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나는 그게 꼭 알고 싶어. 시점을 조금만 돌려보면 영웅은 희대의 잔악무도하기 그지 없는 악당일텐데도, 어째서 사람들은 악당을 지탄하고 영웅만을 추앙하는 건지를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그는 분명 울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마차의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평온한 사람들의 일상이 있었다. 악당이 잡히던 잡히지 않던, 그들은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정녕 죄인이라 칭해질 수 있는 걸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그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할 터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던 그의 그 순간의 모습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으리만치 아득하고 슬펐다. 그는 어쩌면 그 짧디짧은 면회의 시간 동안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조차 없던 그녀의 처연한 눈동자가 그를 붙잡은 걸까?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이것을 그녀의 치밀한 계략으로 치부할 터이지만, 그 둘의 실제의 모습을 지켜본 나로서는 결코 그리 생각되지 않는다.

마녀로서의 그녀와 여자로서의 그녀. 영웅으로서의 그와 남자로서의 그. 마녀와 영웅이 만난 것이 아니라, 여자와 남자가 만난 것일 테다.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치던 여자와, 사랑을 줄 곳을 찾지 못해 미쳐가던 남자가 만난 것일 테다.

그것을 어찌 질타할 것이며, 그것을 어찌 탄식할 것인가. 칼과 그 칼의 칼집처럼 서로에게 완벽하게 맞물려, 부족한 점을 메꿔보려 울부짖던 서로를 보듬어주는 그들은 결코 죄인이 아닐 테다.

침묵에 휩싸인 마차가 조용히 달려가는 동안 그와 나는 단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는 생각할 것이 많아보였고 난 그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또 나는 나대로 아까의 그의 모습을 곱씹고 있었다. 마차가 멈춘 뒤에야 그는 내게 말을 건넸다.


"그들에게 말하게. 궁금한 것은 내 검이 답해줄 것이라고. 반드시 전하게. 영웅은 영웅이기에 영웅의 일을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을까, 그게 옳은 일이지 않을까..."

"영웅은 영웅의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기에 영웅이라 불리는 것일 테지요."


대답을 바라지 않은 질문에 대한 우매한 답. 정작 답을 한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고 말았으나 그는 나를 한심하다고 여기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져있었다.


"전언은 그대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이트 룩셀러. ...저도 한때는 영웅의 길을 꿈꾸던 기사 지망생이었습니다.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죠. 기사는 기사로서 태어났기에 기사인 것이 아니라 기사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행동하기에 기사다. 영웅도 별다를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 눈에 담긴 미미한 경탄이 부담스러워 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기사 교본의 가장 첫 장의 첫째 줄에 실린 말입니다. 단순한 말이지요. 그만큼 잊는 사람이 많긴 하겠지만... 그만큼 기본이 되는 말이겠지요. 물론, 이미 알고 계실 거라 압니다. 요즘 어린애들은 세 살만 되어도 기사 교본을 보려 들기 마련이니, 전혀, 전혀 특별할 게 없습니다."


마차가 멈춘 뒤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내리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낀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 때까지, 나는 오래도록 그와 시선을 맞추고 있어야 했다. 실지로 그것은 별로 오랜 시간도 아니었을 것이나 그것은 마치 억겁의 시간과도 같았다. 그는 마부의 무언의 성화에 마차에서 내리며 내게 짧은 말을 남겼다. ...부탁하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마녀의 악마적인 유혹에 나이트 룩셀러가 넘어가 마녀를 데리고 사라졌으며, 그는 더 이상 영웅으로 추앙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소식을 들었다.


작가의말

저는 사실 잡담이 많은 편입니다. 잡담이 읽기 싫으시면 안 읽으셔도 돼요.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안 담을 것 같으니까요.

가끔씩 줄거리라던지 원래 내용이라던지 올라오기는 할테지마는 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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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1.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4 13.07.02 762 30 8쪽
11 (010. 그냥 주어지는 건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데 +2 13.06.25 578 62 7쪽
10 (009. 경고는 이유없이 나타나지 않지요 +2 13.06.21 1,224 48 7쪽
9 (008. 사람이 제일 믿을 게 못 되는 거 아닌가요 +2 13.06.15 442 30 7쪽
8 (007. 개구멍은 막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4 13.06.10 565 9 7쪽
7 (006. 정말로 이름을 불러주면 살아나게 될까요 +2 13.06.05 423 17 7쪽
6 (005. 영웅은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2 13.06.03 432 26 8쪽
5 (004.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있긴 하던가요 +2 13.05.29 518 47 7쪽
4 (003. 원래 그렇게 태어나면 끝까지 그렇다고들 하던데 +2 13.05.28 467 28 7쪽
3 (002. 부모 잃은 계집애는 개만도 못하다데요 +2 13.05.25 513 11 7쪽
2 (001. 어디서부터 써야할까요 +2 13.05.23 558 35 7쪽
» (000. 시작합니다 +8 13.05.23 794 4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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