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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악당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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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lita
작품등록일 :
2013.05.23 22:23
최근연재일 :
2013.11.12 23:57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9,637
추천수 :
478
글자수 :
51,694

작성
13.06.05 19:13
조회
422
추천
17
글자
7쪽

(006. 정말로 이름을 불러주면 살아나게 될까요

DUMMY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칼라디아는 저들이 지나온 숲의 아래쪽을 살폈다. 그들이 숨어있는 비탈의 작은 굴은 여간해선 보이지 않을 것이다. 굴과 아래쪽의 오솔길 사이에는 커다란 덤불이 자라있었다. 칼라디아는 굴로 돌아갔다. 한때 즈카미니르, 희대의 마녀라 불렸던 앳된 얼굴의 여자가 지친 모습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게 넓은 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몸을 웅크릴 정도로 좁은 굴도 아니다. 여자는 아직도 죄책감에 몸을 떨며 속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을 터였다. 그에게 잡혀 황성으로 향하는 내내 여자는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그 후로 먹은 것이 있긴 했던가. 황성 깊은 곳의 지하감옥 속에서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추적이 끈질기군요. 좀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견딜 수 있어요. 그렇게 약하진 않아요. 그런데, 저기..."

"왜 그러시죠?"


칼라디아는 굴로 들어가 여자와 입구의 사이에 앉았다. 여차하면 제 몸으로 입구를 막고 여자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줄 생각이었다. 고된 수련으로 오랫동안 단련된 몸뚱이는 생각보다 질기고 튼튼했다. 칼질 몇 번 하는 것으로는 너덜거리게 만드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여자의 마력이라면, 그동안 충분히 도망갈 수 있겠지.


"경어를... 쓰지 말아주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전 마녀예요. 마녀따위에게 존댓말을 쓰는 사람은 없잖아요."

"제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칼라디아에게 어설프게 몸을 기댔다. 여자가 칼라디아를 이렇게나마 대하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처음에는 이것이 함정은 아닌가하여 의심하고 필요에 의한 접촉조차 꺼렸다. 칼라디아는 망토를 넓게 펼쳐 여자와 자신을 함께 감싸고 여자의 어깨를 차분히 도닥였다. 제 큰 손 안에 들어오는 여자의 어깨가 참 작았다. 그 작은 어깨가 체념한 듯이 축 처졌다.


"즈카미니르가 본명인 겁니까?"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뺨을 대고 있지 않았다면 느끼지도 못했을 정도로.


"그러면..."

"사실... 그것 말고는 이름이랄 게 없어요."

"없다니요?"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거든요."


여자는 어느새 허리까지 길어버린 제 검은 머리를 우울하게 잡아당겼다. 머리색을 바꿀 방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의 검은 마력으로는 불가능했다. 오히려 이것을 더욱 까맣게 만들어버린다면 모를까.


"저어... 칼라디아 룩셀러?"


칼라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의 손이 제 손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서툴고 어색하다. 작고, 거칠고, 또 뜨거웠다. 이 손으로 사람들을 죽인 걸까? 이 여자라면 분명 울고 또 울면서, 미안하다고 사죄하면서, 그렇게 죽였겠지.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없게 죽어간 선배 기사들이 생각났다. 이제 와서 원망할 생각은 없지만, 그들의 얘기를 하면 이 여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분명 또 속절없이 울어버리고 말 것이다. 도망가지 않겠다며 발버둥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것을 말할 이유는 없었다.

여자는 칼라디아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얇은 천 너머로 옅은 숨결이 느껴진다. 이 여자는 확실히 지쳐있었다.


"당신이... 당신이 내 이름을 지어주세요."

"..."

"난... 사랑받고 싶었던 것 뿐이예요..."

"..."

"...룩셀러."

"..."

"당신의 이름도... 계속 사용할 수는 없겠죠.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줄테니, 당신도 내 이름을 지어줘요."


여자는 칼라디아의 이름이 유명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이름을 가진 그 나이 또래의 남자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칼라디아의 머리가 꿀로 빚어낸 것 같은 금발은 아니지만, 그의 맑은 푸른빛 눈동자는 감히 따라할 방도가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지금 칼라디아의 눈동자는 갈색이 섞인 혼탁한 푸른빛이었다.

칼라디아는 허전해진 제 손가락을 더듬었다. 그곳에 끼워져있던 하얀 빛의 싸구려로 보이는 반지는 여자의 손가락에 끼워져있었고, 여자의 눈동자는 짙푸른 색이 되어있었다. 그 반지는 갈색 눈을 지녔던 칼라디아의 어머니가 아들이 가문의 푸른빛 눈동자가 아닌 저의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날까 걱정하며 마련했던 것이었다. 이윽고 태어난 아들의 눈동자는 푸른빛이었지만 그녀는 그냥 착용하라며 그것을 아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칼라디아는 그것을 여자에게 주었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머리색을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칼라디아는 여자의 어깨를 감쌌던 손으로 여자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머리가닥이 두껍고 결이 좋다. 그 방법을 쓰면 형편없이 망가지게 될테지만, 바뀌는 것이 어디냐. 칼라디아는 여자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내가 말한 건 그런 게 아니..."

"그러면, 붉은 머리가 되겠죠."

"...룩셀러."


여자는 자꾸만 제 말을 끊고 돌리는 칼라디아에게 화가 났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소리를 치지는 못했다. 추적이 두렵기도 했거니와 수년에 걸쳐 침잠한 성격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피오니, 라는 붉은 꽃이 있습니다. 꽃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신과 어울려요."

"..."

"이 이름은 어떻습니까?"


여자는 뭐라 단정할 수 없는 표정으로 칼라디아를 응시했다. 처음으로 달리 목적이 없이 오로지 부르기만을 위한 이름을 받았다. 피오니, 라는 꽃이 무슨 꽃인지는 모르지만 제 곁에 있는 사내의 머릿속에 든 꽃의 이름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사랑받는다. 사랑받고 있다. 지하감옥으로부터 빠져나와 그를 따라 도망가는 내내, 여자는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칼라디아는 말을 걸어주지 않았고, 여자는 감히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단지 곁에 있어주는것만으로는 사랑 받는다 느낄 수 없다. 날 정말 사랑하는 지를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보편적인 것은 아닐테지마는, 사랑해주되 정을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유년기를 보낸 여자에게는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문제였다.


"피오니."


칼라디아가 여자를 불렀다. 아니, '피오니'를 불렀다. 피오니는 고개를 숙이곤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칼라디아는 피오니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울 것, 같아요."

"울어도 상관 없습니다."

"안 돼요... 체력이 떨어지니까."


칼라디아는 아무 말 없이 피오니의 등을 도닥였다. 피오니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칼라디아도 피오니의 등을 도닥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작가의말

피오니는 작약입니다. 정확히는 peony root 지만요.

뭔가 잡담을 더 쓰고 싶은데 학원에 늦었어요, 에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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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016. 선택이라 해서 언제나 행운이 되는 법은 없는 걸까요 +2 13.11.12 308 7 7쪽
16 (015. 평범한 일상이란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아요 +2 13.10.02 511 1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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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12. 의도하지 않은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나요 +4 13.07.12 494 25 7쪽
12 (011.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요 +4 13.07.02 761 30 8쪽
11 (010. 그냥 주어지는 건 너무 믿으면 안된다는데 +2 13.06.25 578 62 7쪽
10 (009. 경고는 이유없이 나타나지 않지요 +2 13.06.21 1,223 48 7쪽
9 (008. 사람이 제일 믿을 게 못 되는 거 아닌가요 +2 13.06.15 442 30 7쪽
8 (007. 개구멍은 막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4 13.06.10 565 9 7쪽
» (006. 정말로 이름을 불러주면 살아나게 될까요 +2 13.06.05 423 17 7쪽
6 (005. 영웅은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예요 +2 13.06.03 431 26 8쪽
5 (004.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있긴 하던가요 +2 13.05.29 518 47 7쪽
4 (003. 원래 그렇게 태어나면 끝까지 그렇다고들 하던데 +2 13.05.28 466 28 7쪽
3 (002. 부모 잃은 계집애는 개만도 못하다데요 +2 13.05.25 512 11 7쪽
2 (001. 어디서부터 써야할까요 +2 13.05.23 558 35 7쪽
1 (000. 시작합니다 +8 13.05.23 792 4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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