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원래 그렇게 태어나면 끝까지 그렇다고들 하던데
그녀가 8살을 넘어서던 해, 그러니까 그녀가 9살이 되던 해의 첫날에 고아원에는 포근하고 넉넉해보이는 인상의 평범한 부인이 찾아왔다. 인상도 나빠보이지 않고, 옷도 적당히 좋은 것으로다가 골라 입었다. 그렇다고 그게 가진 것 중 특별히 좋아보이지도 않는 것이, 그 옷을 입고도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풍만한 인상의 부인은 곧장 원장실로 향했다. 자신에게 아양을 떠는 아이들에게는 한 번씩 웃어주기만 하고, 그 이상의 접근은 일체 허용하지를 않았다. 그녀는 멀리 나무 뒤에 숨어 아주머니를 지켜봤다. 부인의 시선이 이쪽을 향할 때는 나무 뒤에 숨어버렸다. 그곳을 떠나고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러기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치게 컸던 탓이라 했다. 그녀는 부인이 원장실로 들어가고 나서야 나무 뒤에서 나왔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부인은 한참이 지나서야 원장실에서 나왔다. 하늘 중천에 떠 있던 해가 큰 나무 꼭대기에 걸릴 때 까지의 시간이었으니 꽤나 오랜 시간이었다. 당당하게 보이려 어깨에 힘을 준 원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이 버러...! 아니, 아니지. 흠 흠. 야,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아! 당장 이리로 모여서 일렬로 쭉 서지 못하겠니!?"
평소의 원장과는 전혀 다른 화법에 아이들은 저들끼리 수근거리면서도 주춤주춤 원장의 앞에 모였다. 그녀는 나무 뒤에 숨은 채로 나오지 않았다. 원장도 굳이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의 뒤에 선 부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녀를 찾은 것은 원장이 아니었다.
"아까, 까만 머리 여자애가 있던데. 그 아이는 어디에 있죠?"
부인은 웃으며 원장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원장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얘는 여기 없수다. 뭔 그딴 불길한 소리를 합니까?"
"그렇지만, 아까 저쪽에 서 있는 걸 봤는 걸요."
그녀는 나무에 몸을 찰싹 붙였다. 부인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기를 바랬다. 익숙한 일상이 깨지는 것이 싫었다. 한편으로는 발견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일상이란 것은 홀로 견디기가 굉장히 힘든 것이었다.
낮은 구두굽 소리는 그녀가 숨은 나무 곁으로 다가왔다. 한껏 웅크리고 앉은 그녀의 머리 위로 부인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는 텁수룩한 머리카락으로 가린 얼굴을 들어 부인을 쳐다봤다. 고아원에 온 첫날 이후로 사람을 그렇게나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부인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빗겼다.
"안녕, 애야?"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못하는 거니?"
"...아뇨."
단지, 입을 열기에는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던 것 뿐이었다. 그녀는 그만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부인은 그녀를 안아들었다. 깜짝 놀라 발버둥치려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부인이 속삭였다.
"이 아줌마랑 같이 가자."
그 목소리가 어쩐지 그녀의 아버지와 비슷한 것 같았다, 라고 했다. 한없이,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 그녀는 부인의 목을 끌어안았다. 부인은 정말로 그녀를 입양했고, 그녀는 부인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입양은 굉장히 빠르고 간단하게 끝이 났다. 원장은 불길한 그녀를 빨리 치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부인이 타고 온 마차를 타고 고아원을 떠났다. 잠깐 졸다 깨 보니 밖은 이미 어두컴컴했다. 마차에서 먼저 내린 부인이 그녀를 마차에서 내려주었다. 마차가 도착한 곳은 집이 아니라 커다란 동굴이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그녀를 부인이 억지로 잡아끌어 데리고 들어갔다. 동굴 안쪽 벽엔 횃불들이 걸려있었고, 사방에 무언가 복잡한 수많은 문양들이 새겨져있었다.
그녀는 점점 불안해졌다. 들어가지 않으려 발버둥쳤지만 부인은 굉장히 힘이 셌다. 통로를 다 지나 커다란 홀로 들어오자마자 들어온 곳은 커다란 소리와 함게 막혀버렸다.
커다란 홀 안에는 그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어두운 색의 머리였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부터 성인에 다다른 아이까지 굉장히 연령대가 다양했다. 그러나 그녀와 같은 검은 색의 머리는 없었다.
나갈 길이 사라지고나서야 부인은 그녀의 팔을 놨다. 그녀는 황급히 가장 구석진 곳을 찾아 틀어박혔다. 부인은 그녀를 신경쓰지도 않은 채 가장 안쪽에 높게 쌓인 단으로 향했다. 그 위에는 바싹 말라 피골이 상접한 노파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앉아있었다. 옷은 거의 벗다시피 했고, 머리는 치렁치렁하게 늘어져 완전히 새하얬다. 손에는 나무로 된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부인은 노파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그녀에게는 그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다른 아이들을 보니 들리는 아이는 없는 것 같았다.
"...마지막... 시작... 이제... 없..."
그녀는 구석에 쪼그려앉았다. 마차를 처음 탄데다가 오랜시간을 탄 지라 금방 잠이 쏟아졌다. 그녀는 잠결에 주변의 아이들이 단으로 모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녀가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그녀는 지독한 냄새에 코를 막아야했다. 그녀가 잠들었던 커다란 홀이 온통 벌건 피로 가득했던 것이다.
「정말, 그 곳을 묘사하라면 삼일 밤낮을 쉬지 않고 떠들 수 있어요. 바닥도 모자라선 기둥까지 전부 칠해버린 피, 이곳 저곳에 널려있는 피웅덩이, 그 웅덩이에 떠 있는 잘게 갈린 살점, 사방에 흩어진 뼛조각과 살덩어리들, 하마터면 밟고 미끄러질 뻔 한 눈알. 지독한 냄새에 지독한 광경. 삼사십명 정도 되어보이는 인원이 로브를 쓰고 가장 피가 많이 고인 웅덩이에 모여있었죠. 그 사람들 머리 위에 새카맣고 기분 나쁜 덩어리가 몽글거리면서 떠다녔는데,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서 그 광경을 넋을 놓고 보다가 갑자기 번쩍 뜨인 눈과 눈을 마주쳤어요. 덩어리는 새까만데 눈은 하얗더라구요. 그것이 '웃었다', 라고 생각했고, 사방에서 몰려들던 검은 연기가 모두 갈무리되자 그것은 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덩어리는 온데간데 없이 그 사람들이 저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있던 피웅덩이에는 처음 그곳에서 봤던 노인이 죽어있었고. 저를 둘러싼 사람들의 로브에서 풍기는 퀘퀘한 피비린내에 기절을 해버렸던 것 같아요.」
- 작가의말
아 조금씩 늘어지는 느낌입니다 짧게 짧게 간단하게 담담하게 가려고는 하는데 어려워요 그래도 꿋꿋이 쓰고는 있습니다
지금껏 올린 것 중에 이렇게 조회수가 높은 건 처음이네요
빨리 즈카미니르 얘기 끝내고 룩셀러도 끝내고 싶다
얘네 둘 얘기 끝난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도망치는 걸 잊은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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