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Messorem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조회수 :
359,600
추천수 :
5,086
글자수 :
1,239,628

작성
18.07.09 18:34
조회
134
추천
2
글자
10쪽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DUMMY

《그럼 가만히 있어 봐. ···벽은 계속 보고 있는 상태로.》


권지아의 주문에 따라 한서준이 우뚝 멈춰섰다.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기보다는 거의 반사적으로 멈춘 것이었지만 한서준은 권지아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려는 생각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침묵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이 안에 있긴 하네. 입구는··· 음, 왼쪽으로 세 걸음.》


그에 한서준이 흡사 목각인형처럼 뻣뻣하게 세 걸음을 떼었다.


《아, 아니야. 너무 갔어. 다시 오른쪽으로··· 그러니까··· 반절 정도. ···응, 좋아. 그럼 이제 벽을 만져 봐.》


한서준은 손을 뻗어 역시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벽을 걸터듬었다.

빛을 흡수하는 거친 돌벽과는 달리 빛을 뿜어내는 대리석의 벽은 그 외형에 걸맞게 상당한 매끈거림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한 대리석 특유의 마찰력이 손바닥의 피부를 소용돌이처럼 말아 대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매끈거림 이외의 이질적인 감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문은커녕 티끌조차 걸려들지 않았던 것이다.

"···없군."

손이 닿는 모든 부근을 기계적으로 훑어 낸 한서준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상한데, 벽의 기억을 보면 이곳이 문이거든. ···아, 맞아. 당신의 키를 고려하지 않았어.》


꽤 그럴싸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한서준의 키는 거의 3M에 육박했다. 일반적인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의 크기보다 거의 반절 가량이 커다랗다는 뜻이었다. 까닭에 이 벽의 숨겨진 문도 필시 그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을 터.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몸으로 주구장창 그 윗부분만 살폈으니 문을 발견하지 못한 건 응당 당연한 일이었다.

한서준은 거의 앉다시피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런 뒤 다시 한 번 겉으론 아무 이상 없는 대리석 벽을 차례차례 쓸어 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서준은 마치 방전된 전자기기가 그러하듯 갑자기 손을 멈춰세웠다. 무언가가 검지 손가락의 옆구리 부분을 톡하고 건드렸기 때문이다.


《어때? 있지?》


한서준은 손을 치우고 그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과연, 다른 장소에선 발견할 수 없었던 작은 돌출부가 그곳엔 보란 듯이 튀어나와 있었다. 흡사 혹을 하나 박아 넣은 것처럼, 그건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금방 발견할 수 있는 돌멩이였다.

하지만 그만큼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무척이나 찾기 어려운 위치와 적당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또 색깔마저 대리석과 똑같은 맑은 흰색이었기에, 돌멩이는 처음 이곳에 온 사람이라면 더욱더 발견하기 힘든 감쪽같은 보호색을 가지고 있었다.


《좋아. 눌러.》


돌멩이는 생각보다 쉽게 움직였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돌멩이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벽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생각보다 그리 크지만은 않은 진동이 울려 나왔다. 한서준은 접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무릎을 꿇고 있었던 탓에 꽤나 감쇄되었던 모양인지, 진동은 무릎을 편 한서준의 몸을 격렬하게 두드려 대었다.

하지만 한서준은 꼼짝도 하질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고 있던 대리석 벽이 직사각형 모양의 선과 함께 갈라지자, 한서준은 뒤로 한 발자국을 물러나며 바로 가슴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곤 담배 한 대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 놓았다.

발밑의 진동에 의해 담배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떠들렸지만, 한서준은 진동을 무시하며 가만히 담배를 내려다보았다.

담배는 즉각 하얀빛을 뿜어내었다.

동시에 빛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질량과 부피를 무시한 채 무시무시한 속도로 부풀더니, 담배를 익숙하기 그지 없는 철덩어리, 다시 말해 K-2 소총으로 바꾼 뒤 사라져 버렸다.

30발들이 탄창과 그 외 세부적인 요소들을 간단히 확인한 한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직사각형으로 갈라진 대리석 벽이 슬그머니 튀어나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 발자국을 더 뒤로 물러날까란 생각을 검토해 봤지만 한서준은 곧 그 생각을 관두었다. 아니, 관두었다기보다는 변형시켰다. 한서준은 오히려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딛었다.

마치 미닫이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뜸 오른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직사각형의 대리석 조각 너머로 깨끗하기 이를 데 없는 하얀 복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소총을 어깨에 견착하고, 한서준은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는 다시 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진입하는 문에서부터 잔뜩 몸을 수구려야 했던 탓이었다. 거기다 폭 또한 넓지 않았기에, 한서준은 필수적으로 총을 아예 포기하다시피하며 몸을 접어야 했다. 그러니까 거의 다이빙을 하는 자세를 취해야만 간신히 통과가 가능한 문이란 것이었다.


《···상당히 웃긴 자센데.》


권지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서준은 이를 무시했다. 물론 머릿속의 생각이 읽혀진다는 점에서 권지아를 무시한다는 건 그 자체가 성립조차 되지 않는 행위였지만, 한서준은 어쨌든 권지아를 무시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행동했다.


* * *


대리석 벽으로 감싸져 있던 건물 안은 깨끗했다. 수백 장의 종이가 질서정연하게 쌓여 있는 것만 해도 족히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종이들의 탑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만 차치한다면, 연구소라 추정되는 이곳의 모든 공간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깨끗했다.

시체는커녕 핏자국조차 없었고, 격렬한 싸움의 흔적 또한 없었다. 뭔가가 난리를 피웠다는 자국조차 없었으며, 인간, 혹은 몬스터 그 자체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가시적인 피해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것 같았다.


《거기다··· 이상할 정도로 밝아.》


게다가 권지아의 말처럼, 이곳은 대낮처럼 밝았다. 전등이 과다하게 깔려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의 빛은 그 허용치를 아득히 넘어선 듯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아무것도 없는 하얀 벽은 그저 바라만보고 있어도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것처럼, 하얗다 못해 순결하기까지 한 빛은 단순히 '비추다.'라는 개념을 넘어 '칠하다.'라는 개념을 새로이 알아챈 것만 같았다.

까닭에 빛에 칠해지는 것처럼, 시력이 실시간으로 감소하는 기분이었다.


"···누가 있다는 건가?"

온통 유리로만 칸막이를 세운 벌거벗은 공간 전체를 하나하나 훑어보며, 소총을 견착한 상태로 사방을 경계하던 한서준이 물었다.

헌데 그조차도 이만큼의 빛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던 모양인지, 그의 왼쪽 눈은 한껏 찌푸려진 상태였다.


《···그건 모르지. 하지만··· 누가 있다면··· 이렇게 깨끗하다는 건 말도 안 돼. ···몬스터라면 더 그렇고···.》


쿵!

뭔가 육중한 것이 떨어진 것 같은 소음이 귓속을 지배하자, 한서준은 즉각 몸을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와, 이게 얼마 만이야?"

고작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상당히 더러워져 까맣게 물든 옷을 탁탁 털어 내던 은발의 소녀가 한서준과 눈을 마주하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론 여전히 윤기 있는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고무줄로 묶어 늘어뜨린 흑발의 소녀가 있었다.

"어라···? 당신···."

소녀는 다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공간을 이동했다란 뜻밖의 상황에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은발의 소녀와는 달리, 흑발의 소녀는 지금의 상황이 영 이해가 안 간다는 양 넋 빠진 얼굴로 한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흑발의 소녀, 율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반가워. 또 만났네?"


* * *


한서준이 다소 짙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잔뜩 실망한 채 축 늘어진 율과 연을 보며 다시금, 방금 전에도 한 차례 소녀들의 꿈을 박살낸 입을 움직였다.

"···다시 말하지만, 욕조 같은 건 없다."

"으아···, 알겠어."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바닥에 달라붙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소녀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한서준은 거듭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빛을 함유한 공간을 쭉 훑어보았다.


《···그냥 만들어줘도 되잖아.》


보다 못한 권지아가 말했다. 옅은 한숨을 내쉰 한서준이 거듭 몸을 돌려 여전히 피곤하단 얼굴로 쓰러져 있는 소녀들을 돌아보았다. 그가 중얼거렸다.

"···물은··· 아마 만들 수 없을 거다."


《그거야··· 모를 일이지. 그 능력은 단순히··· 물건만 만드는 게 아니니까. ···'부여'를 하는 거잖아.》


그에 한숨을 거듭한 그가 곧 소리내어 말했다.

"···알겠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라."

"응?"

"뭘?"

소녀들이 의아해하는 사이, 한서준은 자신의 가슴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한 대를 꺼내들었다.

한서준은 궁금증 일색의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소녀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담배를 널찍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 뒤 그것에 검지를 가져다대고 뚫어져라 담배를 바라보았다.

"대체 뭘···."

고개를 갸웃거리던 연은 자신의 말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마치 젓가락질을 처음 배운 아이처럼, 연은 속절없이 말을 흘리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essorem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7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 18.07.18 114 3 6쪽
356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17 102 2 9쪽
355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16 107 3 5쪽
354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15 126 4 7쪽
353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14 130 2 5쪽
352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 18.07.13 119 3 5쪽
351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12 136 3 9쪽
350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11 129 3 12쪽
349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10 128 1 6쪽
»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09 135 2 10쪽
347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 18.07.08 125 3 5쪽
346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07 135 3 6쪽
345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06 118 3 6쪽
344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05 132 2 6쪽
343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04 127 3 10쪽
342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 18.07.03 111 3 5쪽
341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02 96 2 5쪽
340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7.01 103 3 6쪽
339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6.30 116 2 5쪽
338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6.25 145 3 4쪽
337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 18.06.23 139 3 10쪽
336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6.21 114 4 8쪽
335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6.20 129 3 4쪽
334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6.19 118 2 6쪽
333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6.18 118 3 8쪽
332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6.17 113 3 7쪽
331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 18.06.16 135 2 4쪽
330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6.15 131 3 5쪽
329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6.14 127 2 5쪽
328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18.06.13 122 3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