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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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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39,628

작성
18.06.18 17:17
조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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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8쪽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DUMMY

그리고 그 활용도는 즉각 다음 티타늄 기둥으로 이어졌다. 작업은 간단했다. 다시 눈앞을 가로막은 벽을 손으로 짚고, 정신을 집중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서준은 그렇게 모든 벽을 티타늄 기둥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런 그가 다시 세상의 빛과 마주한 것은 총 세 번의 부여를 끝내고 난 뒤였다.

좁고 긴 통로의 끝에서 시리도록 눈부신 빛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은빛의 티타늄 기둥에 정확히 반절로 갈려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자칫 멀어버릴 것만 같이, 한서준이 느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빛은 오랫동안 자신의 축복을 받지 못한 공간에 조금 과하다 싶은 관심을 쏟아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보이는 않는 것도 있었다. 어둠 속에 앉아 있을 때만 해도 보였던 수많은 돌멩이와 먼지, 그리고 서릿발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었다. 까닭에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입구에서부터 물크러지는 하얀빛뿐이었다. 고개를 아래로 내려도 마찬가지였다. 빛은 이미 그의 눈동자를 점령한 상태였다. 닷새 동안 보이지 않았던 천변만화한 빛의 얼룩이 일순 새카매진 통로 곳곳에 둥둥 떠다녔다.

마치 수십 점의 유화가 벽면마다 내걸린 듯했다.

한서준은 반사적으로 빛을 피하기 위해 눈꺼풀을 내리닫는 신체의 움직임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리곤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길을 재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귀를 자극하는 돌과 티타늄 기둥의 기싸움에 대강이나마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기에 길을 선택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거기다 어차피 이 통로는 일직선의 통로였다. 애초에 길을 잘못 들 가능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가 없는 단순한 길이었던 터라,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라 할지라도 무척 쉽게 통과가 가능한 길이었다. 자아가 부화한 생명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빛은 점점 가까워졌다. 빛이 머금은 아주 약간의 열기가 싸늘하게 식어 버린 어둠 속의 공기를 슬그머니 덮히는 게 느껴졌다. 더욱이 그건 곧 피부로도 전해져 왔다.

한서준이 돌연 우뚝 멈춰섰다. 한서준은 고개만 슬쩍 들어 손등을 간지럽히는 밝은 빛무리를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밝다. 순간 눈이 찌푸려질 만큼, 분명 온갖 모래와 먼지로 시커멓게 변해 있을 손등에서 반사된 빛은 눈이 다 아플 정도로 밝았다. 잘못하단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았다. 한서준은 서둘러 손을 끌어당겨 빛에 점령당한 피부를 다시 어둠으로 에둘러 안았다.

한서준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다행히 통로는 그의 거대한 체구를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마련된 상태였다. 그런 뒤 그는 빛과 마주보지 않는 상태로, 티타늄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는 곧 숨을 들이쉬었다.

감았던 눈을 뜨자, 기둥과 하나로 합쳐진 울룩불룩한 그림자가 흡사 호리병 같은 모습으로 바닥에 떨어진 것이 보였다.

어떻게 보면 파초선의 형태와 비슷한 그림자였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건 무게추와도 같은 모습의 그림자였다.

그때, 한서준이 크게 숨을 뱉어 냈다. 그렇게 모든 잡념들을 단숨에 내던져 버리고, 그는 다시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

헌데 이번에 그가 들이쉰 것은 먼지와 모래가 만들어 낸 퀴퀴한 공기가 아니었다. 바깥에서부터 흘러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비릿한 쇳내가 뒤섞인 지독한 악취가 포함된 한기였다.

물이 있고, 식량이 있고, 하늘이 있고, 빛이 있고, 짐승이 있고, 건물이 있고, 사람이 있는 바깥이건만, 그 냄새는 오히려 콘크리트 잔해 속의 먼지보다 끔찍하게 뒤틀려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서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냄새와 더불어 망설임 없이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리곤 다시 눈을 감았다.

이젠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하나뿐인 눈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라도, 빛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마냥 기다려야 하는 시기가 왔다. 그렇지 않으면 저 스스로 상어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저 얌전히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빛에 익숙해지는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었다.


《이상하지 않아?》


문득, 권지아의 말이 울려 퍼졌다.

그건 문득이란 단어를 사용해도 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무척 낮은 톤에 머물러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탈출을 앞둔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란 것이었다.

물론 평소의 권지아를 생각해 보면 그건 그렇게 이상하게 여겨질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지금의 목소리는 '문득'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그만큼 급작스럽다는 뜻이었다.

권지아는 한서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상당히 작위적이지? 그러니까··· 지금 상황 말이야.》


권지아와 같은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한서준도 이미 의심을 품고 있었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상황은 상당히 인위적인 부분이 많았다.

우연히 전신 수축이 일어난 것까지는 그저 운이 안 좋았다 치더라도, 우연히 들어간 건물이 그 건물의 주인인 몬스터조차 모르는 모종의 이유로 무너졌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으로 보기가 힘들었다.

거기다 운 좋게 생명의 삼각지대가 형성되어 살아남았다는 것 또한 이상했다. 하물며 몬스터와 같은 장소에, 그것도 몬스터만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같이 갇혀 있었던 상황도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덧붙여 그 몬스터가 가진 능력이 하필이면 이 잔해를 혼자서도 빠져나갈 수 있는 '부여'라는 것도 이상했다. 아니, 이상하다를 넘어 기괴하기까지 했다.

우연은, 일단 겹쳐지기 시작하면 더이상 우연이 아니게 된다. 그저 우연이란 가면을 뒤집어쓴 필연이 되며, 필연은 대체로 자의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의도대로 만들어지는 게 대다수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지금 이 모든 상황은 한서준, 권지아가 모르는 어떤 이의 의도대로 흘러간 일종의 계획일 수도 있었다.


《그럼 그 사람은··· 우리가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상대야.》


꽤 흥미롭다는 기색이 역력한 권지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서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눈을 뜬 채, 물체와 빛이 만들어 내는 이차원적인 공연을 말없이 들여다볼 뿐이었다.

빛이 가져다주는 충격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빛에 형태를 잃고 물감처럼 번져 있던 물체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고, 빛에 노출된 손등은 아까처럼 내려다봐도 기겁을 하며 치우지 않아도 되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못해도 한 시간 이내에 빛은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당신이 Messorem. 그러니까··· 능력자를 먹음으로써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일 테니까. 그렇다는 건··· 나나 당신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 ···어쩌면 당신에게··· '일그러짐'의 힌트를 알려주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


이어지는 권지아의 말에, 한서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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