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한서준은 다시 한 번 의족을 연결했다.
그래도 한 번 장착을 해 봤던 것이 경력이 된 모양인지, 의족을 거듭 연결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움직여 봐.》
한서준은 곧장 오른쪽 다리의 신경에 명령을 내렸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허리까지 간신히 내려갈까 말까한 명령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문제가 될 만한 건 아니었다.
지금의 한서준에겐 '비교적 최근'이라는 특수성이 있었다.
다리가 잘린 지 대강 스무날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오른 다리가 붙어 있을 때의 감각은 그래도 선연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괴사'라는 병이 진행되고 있던 다리라 평소에도 그저 아무런 통각 없이 마냥 '움직인다.'라는, 마치 내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고깃덩이가 달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매일에 걸쳐 받기 일쑤였지만, 어쨌든 그의 머릿속엔 아직 오른 다리를 움직이는 일종의 노하우가 생생하게 저장돼 있었다.
때문에 한서준은 진짜 다리의 감도와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티타늄 발가락에 비교적 정확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뇌의 명령대로, 발가락은 즉각 움직였다.
흡사 해류에 떠밀리는 말미잘처럼, 발가락은 모두 부드럽게 펄럭였다.
머리가 의도한 대로, 달리 한서준이 원한 대로 발가락은 아무 이상 없이 작동했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그중 저 혼자만 괴이하게 꺾이는 발가락은 없었다. 모두 새로운 머리의 명령을 고분고분하게 따르고 있었다.
《좋아. 다음은?》
다음으로 한서준은 이미 앞서 한 번 실패한 움직임인 '무릎 굽히기'를 거듭 시도해 보았다.
우웅.
그러자 의족에서 활성화된 수많은 모터와 컴퓨터가 일순 자극적인 소리를 토해 내는가 싶더니, 이내 의족의 은빛 관절을 서서히 굽히기 시작했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마주보는 구도로, 부들부들 떨어 대던 아까와는 달리 특별한 이상 하나 없이 굽혀진 것이었다.
드디어 영 불편하기만 했던 기울어진 책상다리를 벗어날 수 있게 된 한서준이 문득 고개를 들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어디가 더 얇지?"
《왼쪽.》
주어라곤 찾어볼 수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권지아의 대답은 즉각 튀어 나왔다. 그것도 아무 망설임도 없이, 마치 한서준이 그런 질문을 날릴 줄 알았다는 양 그건 무척 극단적이기까지 한 대답이었다.
한서준은 즉각 왼팔을 움직여 왼쪽 벽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그런 뒤 가만히 눈을 감고 흐트러졌던 정신력을 끌어모았다.
《근데··· 확실한 건 아니야. 사람의 기억은··· 그래도 눈이라는 매개체가 있으니까 읽기가 쉽거든. 하지만 이런 무생물들의 기억은··· 솔직히 어디가 눈이고 입이고 코인지 모르니까··· 좀 어려워. ···거기다 당신 눈으로 보는 거잖아. ···아마 정확하진 않을 거야. ···음, 그러니까 내 말은··· 조심하라구.》
자신의 말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행동하는 한서준의 모습이 살짝 걱정스러웠던 모양인지, 언제나 나른하기만 했던 권지아의 목소리가 살짝 부정적인 감정을 담은 채 잇따랐지만, 한서준은 권지아의 말을 통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일부러 무시하는 듯, 그는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의 물건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손과 맞닿은 벽에 그 형태를 집중해서 그려 내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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