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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조회수 :
359,602
추천수 :
5,086
글자수 :
1,239,628

작성
18.08.24 18:19
조회
104
추천
3
글자
5쪽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DUMMY

한서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려던 손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사방을 틀어막고 있는 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붕대를 이용한 응급 처치가 치료의 전부인 사람들이 전면으로 나섰고, 약품을 사용한 사람들은 후면으로 빠져 한서준을 둘러쌌다. 한서준은 후면에 선 사람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한서준은 사람들 사이에 섞인 소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단발머리에, 어울리지 않은 정장을 입고 있는 소녀는 왼쪽 눈과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왼팔도 깁스를 하고 있었고 보기와는 달리 다리 또한 불편한 듯 소녀는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소녀는 한서준과 시선이 얽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입을 큼지막하게 벌려 몇 가지 글자를 만들어 낸 뒤 오른손을 뻗어 자신의 옆을 가리켰는데, 그곳엔 단발의 소녀와 똑같은 꼴을 하고 있는 금발의 소녀가 있었다. 금발의 소녀는 토끼 눈을 한 채 한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단발의 소녀와 매한가지로 몇 가지 글자를 만들어 내었고, 즉시 손을 움직여 한서준을 가리켰다.

"···있나?"

옅은 한숨을 내쉰 한서준이 중얼거렸다. 그리곤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두 소녀를 바라보았다. 단발의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의 의혹에 찬 시선이 따라붙었지만 단발의 소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금발의 소녀가 단발의 소녀를 제지하며 손목을 잡아당겼다. 한서준에게 눈짓한 금발의 소녀가 단발의 소녀를 끌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때까지 한서준을 뜯어보던 여성이 눈썹을 치세우며 손짓했다. 소년의 손이 앞으로 기울었고 한서준을 겨냥한 잡동사니들이 여성의 등뒤에 바짝 달라붙었다. 여성은 그 상태 그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여성은 다시 한서준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를 말하려던 입을 다문 여성이 즉각 손을 들어올렸다. 여성을 감싼 불꽃이 잡동사니에 옮겨 붙어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불꽃은 파도처럼 모든 잡동사니에 눌어붙었다. 그리고 주변 일대를 커다란 불꽃의 울타리로 얼싸안았다.

여성의 손이 좌우로 움직였다. 소년의 두 손이 움직이며 공중에 떠 있던 적빛의 울타리가 지면과 맞닿았다.

허울 뿐인 어둠이 물러났다. 하늘과 땅이 반전된 듯 붉은빛의 구름이 피어 올랐고 유성우 같은 불티가 지면을 가로질렀다. 사람들이 뒷걸음질을 치며 울타리의 중앙에 모여들었다. 그 누구도 울타리 가까이에 다가가는 이는 없었다.

한서준은 아직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네 명의 사람들을 차례대로 집어던졌다. 전부 울타리 밖 사람들이 뭉쳐 있는 곳이었고 네 명은 별다른 이상 없이 울타리를 벗어났다. 그들은 바로 들것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졌다.

한서준은 이마를 살짝 들어 사람들의 후면을 쓸어보았다. 거짓으로 붕대를 감고 있던 소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서준은 다시 시선을 내리고 건빵 주머니를 들여다보았다.

생명체는 여전히 옷을 붙잡고 있었다. 여전히 표정이 없었고 여전히 한서준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서준은 담배를 하나 꺼내 사탕으로 바꿔 생명체에게 건네 주었다. 생명체는 잡고 있던 옷을 놓고 사탕을 받아들었다. 사탕은 이전처럼 가루가 되어 흡수됐다. 생명체가 다시 물끄러미 한서준을 응시했다.

한서준은 검지를 집어 넣어 생명체의 머리를 톡 건드렸다. 생명체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한서준의 검지를 밀어냈다. 검지는 맥없이 밀려났고 생명체는 한서준의 검지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자주빛 머리카락이 여지없이 검지에 휘감겼다. 가려져 있던 생명체의 나신이 드러났다. 명치에서부터 배꼽을 가로질러 국부에 이르는 흰색 살결 위엔 이전에 없던 물방울 모양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생명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서준도 마찬가지였다.

생명체가 머리카락을 풀어 냈다. 머리카락이 전부 떨어지길 기다리던 한서준이 잠시 후 검지를 거둬들이며 여성을 바라보았다.

여성의 입매가 씰룩였다. 그러나 여성은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거듭 손을 들어올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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