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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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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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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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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39,628

작성
16.11.10 10:49
조회
4,203
추천
50
글자
7쪽

종이

DUMMY

한서준은 아직 바닥을 굴러다니는 몬스터의 다리를 대충 바깥으로 던져버리고, 다시 평상 위에 올라가 오른발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 너무 급작스런 이방인의 방문과 그에 따른 여러가지 상황들을 겪음으로써 잠시 잊고있던 오른 발목의 이상유무를 이제서야 생각해낸 것이었다.

꼬박 이틀을 뒹굴어다니며 보냈다는 말이 사실임을 증명해주듯, 발목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붓기보다 확실히 그 크기가 작아져 있었고, 단단히 묶어두었던 천은 어느새 헐렁헐렁하게 공간이 남아 간신히 발등 위에 매달려 비로소 제 역할이 끝났음을 고하고 있었다.

단지 천을 묶어두었을 뿐인 응급처치가 이토록 효과가 좋았었는지 잠시 눈을 끔뻑이며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던 한서준은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한번 발목이 멀쩡해졌음을 확인한 뒤, 천을 제거함과 더불어 평상 위에 뒹굴어다니는 쇠구슬들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어디 한 군데 흠집난 곳 없이 깨끗하게 빛나는 반면, 가슴팍에 파고들었던 쇠구슬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시커먼 액체와 덩어리가 잔뜩 묻어나 있었는데, 필시 '그' 의 부산물일게 분명한 그것을 방금 벗겨놓은 천으로 닦아내던 한서준은 얼마안가 기이할 정도로 천과 천 사이를 달라붙는 끈끈한 액체의 질감에 표정을 팍 찌푸리며 더 이상 만지는 것도 싫어지는 쇠구슬의 참담한 말로를 살펴보다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마치 쇠구슬과 하나로 융합한 듯한 액체의 접착력이 이 총알은 그만 처분하라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발한발이 소중한 와중에, 언젠가 이 한발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한서준은 이젠 천까지 집어삼켜버린 정체불명의 끈끈이를 흡사 벌레라도 본 것 마냥 크게 손을 휘저어 서둘러 바닥에 내팽개쳐버리고, 그나마 회수한 쇠구슬과 주머니 속의 쇠구슬을 이용해 공기총의 정비를 끝마치고 나서야 다시한번 검은 액체에 녹아들은 쇠구슬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천을 방패삼아 그 누구의 손길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양 게거품처럼 잔뜩 물은 검은색 액체를 이젠 사방팔방으로 흩어내고 있는 쇠구슬에게서 곧 시선을 돌려 부숴진 외벽 너머로 보이는 바깥을 내다보던 그가 이내 고개를 갸웃, 눈을 끔뻑거리며 뒷통수를 긁적였다.

건너편의, 정확히는 분식집 앞의 허물어진 도로 사이로 언뜻언뜻 빛나는 파란색 무언가가 자꾸 그의 눈을 시릴만큼 자극시킨 탓이었다. 해가 다 저물어가는 시간에, 그러니까 붉은 석양을 머리 끝에서부터 갉아먹으며 차근차근 만천하를 뒤덮는 새카만 천막이 머물고 간 장소에서, 이상하리만치 청월한 빛줄기가 스스로 제 존재를 세상 모든 만물에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빛 하나 반사되지 않는 콘크리트 무덤 틈 속에서 자체발광을 하듯, 순수할 정도로 깨끗한 파란빛을 뿜어내는 '무언가' 가 점점 다가오고있음을 느낀 한서준은 문득 안개 속처럼 자신의 머릿 속이 뿌옇게 흐려져있음을 알아챔과 동시에, 어느샌가 바깥으로 나와 건너편으로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허리춤의 대검을 뽑아들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 마냥, 분명 평상 위에 앉아있어야할 몸뚱이가 갑자기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것이었다. 그것도 공기총은 가져오지 않은 채, 대검을 제외하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상태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바깥을, 설상가상으로 돌아가기도 모호한 도로의 중앙선 너머까지 겁 없이 걸어나왔다는 뜻이었다.

아직 주변에 몬스터라고 할만한 흔적은 없어 다행히 꽤 조용한 편이긴 했지만, 그 소름끼치는 고요함과 공기압에 절로 숨결이 떨려 나오는 것은 도저히 막을 길이 없었다.

한서준은 잔뜩 몸을 움츠리고 사방을 경계하며 천천히, 허나 종종걸음으로 재빨리 콘크리트 무덤 근처로 가 서둘러 몸을 숨긴 다음, 다시한번 주위를 살펴보다 이내 파란빛이 뿜어지는 장소,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쌓아놓은 것 같은 무덤의 커다란 틈 속에 손을 집어넣어 빛이 발하는 장소를 무작정 더듬어대었다.

꽤 겁 없이 손을 집어넣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은 한서준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흘러나간 말이니, 그는 그저 잘근잘근 입술만 깨물고는 오히려 더욱더 깊게 손을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손가락 끝에 걸린 무언가를 끌어당겨 꽉 쥔 그는 그게 바스락거리는 종이 비스무리한 것임을 그리 어렵지 눈치채고, 다시한번 손가락을 뻗어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여러번 매만져대다 이윽고 종이 한 장만을 손에 꼭 쥐고 불쑥 팔을 그 안에서 끄집어내었다.

한순간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파란색 광선이 얼굴 표면을 강타함과 동시에 삽시간에 사그라듬을 느낀 한서준은 곧 자신의 손에 잡힌 무언가가 별 특별하지도 않아 보이는 종이가 확실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최대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까지나 이 곳은 바깥. 자칫 큰소리를 내면 생명선이 끊겨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까닭에 종이에 대한 연구는 일단 접어두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총과 배낭이 있는 가게까지의 거리를 눈 대중으로 가늠해보던 그는 아직까진 조용한 도로의 주변을 끊임없이 둘러보며 한발한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나올만큼의 날 선 긴장감을 유지한 채 가급적 천천히 걸음을 옮겨나갔다.

무턱대고 튀어나온 방금 전을 떠올리며 이 도로엔 몬스터의 존재가 없다라는 머릿 속 안일함은 한 쪽 구석에 밀어넣고, 서둘러 가게 안까지 달려가자는 충동적 발상은 '만약' 이란 예를 들어 억누르며, 이성과 이성이 충돌하는 전쟁터와도 같은 머릿 속 상념은 그저 입술을 핥는 것으로, 그러니까 그 싸늘한 감촉을 어떻게든 되새기며 냉정을 유지시킴으로써 마침내 가게 앞까지 도착한 한서준은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를 슬쩍 훔쳐낸 다음, 마찬가지로 땀으로 절여진 옷들로 인해 찝찝해진 기분을 얼른 물을 꺼내 마심으로 다소 해소시킨 뒤,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덥혀진 몸뚱이는 잠시 옷가지를 열어젖혀 본래의 체온을 유지시키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는 오른쪽 어깨는 거의 반사적이다 싶을 정도로 주물러 그나마 상태를 호전시키고나서야 비로소 공기총을 다시 반찬 진열대 위에 거치해놓은 후, 그 뒤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더할나위 없이 긴 한숨을 '후우' 몇 초간 흘려내었다.

그건 살았다는 안도감에서 흘러나온 작은 보상 심리 비스무리한 한숨이었다.

물론 이것에 이어 무서울 정도로 들이닥치는 극심한 나른함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한서준은 어쩐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지는 괴상한 느낌에 사로잡혀 알게모르게 반찬 진열대 위에 엎드리려던 자신의 몸을 억지로 멈춰세우고, 다시한번 한숨을 토해냄과 동시에 주머니를 뒤적여 방금 전 목숨을 담보로 가지고 온 종이를 꺼내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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