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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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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조회수 :
359,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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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6
글자수 :
1,239,628

작성
16.10.06 10:32
조회
8,152
추천
81
글자
6쪽

탈출

DUMMY

그렇게 한 자루의 훌륭한 공기총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낸 한서준은 어깨에 견착해 가며 스코프, 망원경으로 대체한 조준경을 자신의 신체에 맞게 조절한 뒤 총을 가지고 베란다로 나갔다.

모아놓기만 하고 전혀 처리하지 않은 쓰레기봉투들로 가득한 베란다에선 집 안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심한 악취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지만, 애초에 편하게 자세를 취할 수만 있다면 그 장소가 어디든 상관은 없었다. 한서준은 오히려 쓰레기봉투들을 한 곳으로 모아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나무로 만든 방열손잡이 뒤쪽에 있는 펌프를 움직여 압축기 안에 공기를 꽉꽉 채워 넣었다. 그는 총신 바로 아래에 붙여 놓은 거치대를 펼쳐 난간 위에 총을 거치하고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정확히 십 년 만에 다시 저격총을 쥔 것이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미묘하고 찝찝했다. 그러나 한서준은 애써 그 기분을 무시하고 떨리는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이 떨림이 단지 힘이 부족한 결과로써 표출된 것인지, 아니면 긴장감으로 인한 것인지는 몸의 주인인 한서준조차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른손은 아직 저격총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오른손을 활용할 오른쪽 눈알이 텅 비어 있기는 했지만 왼팔을 보좌하며 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거치대를 뗀 공기총의 방열손잡이를 꽉 쥔 오른손은 아무 미동도 없이 총을 든든하게 지탱했다.

한서준은 상체를 들고 총구는 아래로 내렸다. 그는 한쪽만 남은 눈알로 망원경 너머의 세상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커다란 구덩이들이 콘크리트 도로 위에 뚫려 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깨끗하게 외벽까지 관리했던 고층 건물은 허리부근이 잘려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옆으로 엎어져 있었다. 그 위엔 시커먼 고깃덩이가 가득했다.

4차선 도로는 연쇄 추돌 사고로 엉망이었다. 도로를 덮은 검붉은 장판은 망원경 전체를 뒤덮고도 모자라 끝이 보이지 않았다.

중간중간 멀쩡한 건물들도 많았지만 겉모습만 그럴 뿐이란 걸 한서준은 알 수 있었다. 한서준은 건물 안에 있는 수많은 몬스터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단순한 상상은 아니었다.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건물 안의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지금 당장 저 건물을 노리고 쏜다면 몬스터의 머리 부근에 정확히 맞출 자신이 들 정도였다.

심지어 몸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바람의 세기와 목표 건물의 바람조차 머릿속으로 들어와 한순간에 이해가 되기까지 했다.

이 알 수 없는 상황에 조금 멍하니 앉아 있던 한서준은 일단 머리가 시키는 대로 총을 움직여보았다.

하지만 한서준은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머리가 노리는 것은 전방의 커다란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몬스터인데 총구는 희한하게도 북서쪽, 건물의 왼쪽으로 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백중백 빗나갈게 뻔한 총구의 배치였지만, 한서준은 실험을 해본다란 생각으로 가볍게 방아쇠를 당겼다.

퓩.

충분한 공기압과 스프링의 탄성을 머금은 쇠구슬이 맹렬한 속도로 튀어나갔다. 한서준은 서둘러 총구를 돌려 건물 안, 머리가 노렸던 몬스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는 357.81M. 쇠구슬이 날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3.9782초.'

거의 무의식이다 싶을 정도의 계산을 마치자마자 유리창이 깨짐과 동시에 몬스터의 머리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한서준은 이에 그치지 않고 길길이 날뛰는 몬스터의 이동경로조차 파악해 버리는 자신의 머리에 또다시 놀라며 다시 한 번, 이번에도 머리가 말하는 대로 총을 움직인 뒤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날아가는 쇠구슬의 궤적마저 머릿속에 그려졌다.

한서준은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몬스터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맨 처음 쇠구슬을 박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그 장소에 쇠구슬을 박아 몬스터의 뇌를 아예 헤집어 놓겠다는 머리의 판단이 결코 망상이 아님을 깨닫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뇌가 자신의 뇌가 아닌 듯한 이질감이 소름처럼 번져나간 탓이었다. 하지만 이 뇌는 확실히 자신의 것이며, 방금 전의 믿지 못할 계산도 분명 자신이 한 것이었다.

한서준은 스코프에서 눈을 떼고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쓰레기봉투 쿠션에서 내려와 컴퓨터 책상 의자에 몸을 묻었다.

'끼익'하는 요란한 소리가 의자 전체에서 울려 퍼졌다. 그의 몸에 알맞게 변형된 의자가 온몸을 감싸안자 한서준은 그제야 깊은 숨을 토해 내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시험 삼아 천장의 높낮이를 계산해보려 했지만 머리는 평소처럼 멍한 상태로 움직이질 않았다. 한서준은 '천장의 높이는···' 이란 단어만 계속해서 되뇌는 중이었다.

결국 밀려오는 두통에 못 이겨 생각을 멈추고 눈을 감은 한서준은 유일하게 귓속을 파고드는 캐릭터의 음성과 스킬 사운드를 들으며 두통이 가라앉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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