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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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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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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651
추천수 :
5,086
글자수 :
1,239,628

작성
16.10.20 11:45
조회
5,438
추천
65
글자
8쪽

종이

DUMMY

기도를 후벼내다 못해 폐를 꽉 붙잡아 비명을 만들어내듯, 추위가 가져다 준 얼어붙은 입김이 천장까지 미처 나아가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가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한서준은, 지난 십 년 동안 익숙하게 겪어온, 이젠 몸이 건네는 아침 인사와도 같은 저릿저릿함을 미처 음미할 새도 없이 '뚜둑뚜둑', 마치 거대한 고목이 움직이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와 함께 소파에 들러붙은 몸을 억지로 떼어놓았다.

고작해야 하루지만, 한서준은 어쩐지 그 하루 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비일상적인 일들이 문득 현실이 아닌 TV속 미스테리 영화와도 같다고 느껴졌다.

다만 아직까지 팽팽하게 묶여 있는 함정의 모습에서 지금이 확실히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 인식하기는 했지만, 약간의 피곤함과 놀람, 그리고 뜻 모를 흥분과 이상한 상쾌함이 뒤섞인 묘한 기분으로 한서준은 어쩐지 기이하리만치 가벼운 몸을 풀고, 바로 뒤에 있는 창문을 통해 바깥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해가 서서히 고개를 들이미는 시점이라, 동화 속 그림 같은 그림자들이 길쭉길쭉한 몸통을 쭉쭉 뻗어내며 드리워져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거리는 어제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그제야 소파로 돌아온 그는 배낭 안의 통조림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마치 불에 덴 것처럼 빠르게 배낭과 공기총을 챙겨 메곤,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가 어제의 걸음을 계속해서 이어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엉망진창, 제대로 된 모습이라곤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건물들을 지나는 중, 돌연 그의 걸음이 우뚝하고 멈춰 섰다. 그곳은 다름 아닌 ‘PC‘라고 적힌 간판이 있는 건물 앞이었다.

각종 게임 캐릭터들로 꾸며진 외관과, 그 옆의 박살난 문짝 안엔 겨울이란 계절도 잊어먹은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부글부글, 흡사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이 꼬여 있었고, 그 아랜 인간의 시체 조각과 더불어 커다란 살덩어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인간의 몸보다 몇 십 배는 더 큰 살덩어리인 점을 보아, 분명 어제 보았던, 그러니까 감히 그 크기조차 짐작 되지 않던 거대 몬스터의 신체 조각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PC방의 천장은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어마어마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아마 미사일에 폭사당한 거대 몬스터의 살점들 중 하나가 폭격처럼 이곳을 덮친 것 같았다.

한서준은 코가 뒤틀릴 것 같은 냄새를 풍겨대는 몬스터의 살덩어리를 무시하고, PC방답게 수백 대의 컴퓨터를 들여 놓은 건물 안을 슥 훑어보다 그나마 멀쩡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제만 해도 집에서의 컴퓨터는 잘 작동이 되었다. 다시 말해 아직 이 도시의 전기가 끊기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때문에 굳이 시내로 갈 필요가 없어진 지금, 일부러 힘들게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는 것 보단 빠르게 인터넷을 이용해 탈출로를 모색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기대대로 별 문제없이 켜진 컴퓨터와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뒤지기 시작한 한서준은, 뜬금없이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반짝이는 '연예인 김성운 깜짝 결혼 발표!'란 글자를 보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 속속 눈에 들어오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 '1번지'에 예능의 신 강림!', '월화드라마 '기다리는 곳'이 첫 회 시청률 5%로 순조롭게 출발.' 등으로 도배된 뉴스들의 제목에 순간 욕지거리가 터져 나올 뻔한 입을 다물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별 문제없이 인터넷 게임이 돌아가거나, 평소처럼 다른 유저와 만났다는 점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돌출해 낼 수 있는 결론이었다. 이 도시, 그러니까 이곳 대구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모두 평소대로의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안정화되었다는 것을.

편안함에 중독된 사람들은 생사가 오가는 지역을 굳이 쳐다보려 하지 않는다. 그건 대구도 마찬가지라, 검색창에 '대구'를 써 봐도 나오는 건 죄다 쓸데없는 관광 안내문이나 주요 명소 같은 내용이 전부. 그 뒤에 '몬스터'란 단어를 덧붙여도 되도록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화면 가득 바이러스처럼 우글우글 생겨나 더 이상의 검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가장 정보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에서, 아예 대구에 대한 정보는 콱 틀어잡고 누구도 볼 수 없게 차단해 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의 불안함을 증폭시키지 않기 위한 정책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냥 눈 거리고 아웅 하는 식보다 더 얄팍한 속임수일 뿐이었다.

정보를 차단한다 해도 몬스터란 존재가 없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몬스터들이 대구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된다면 필시 다른 지역들도 대구와 똑같은 상황을 맞이할 게 분명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극히 적은 정보의 소통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오감을 신경계에서 절단해 버리는 꼴이나 다름없는 탓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기본적인 위기는 전달해 주는 모양인지, 뉴스의 맨 끝자락에 위치한 '몬스터'란 카테고리를 클릭한 한서준은 간단하게 '몬스터가 나왔다.', ''단군'의 활약.', ‘헌터라는 직종의 전망’ 등 그저 몇 줄밖에 적혀 있는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읽어가며 혹여 몬스터가 나온다면 '헌터'나 '단군'에게 연락을 하라는 마지막 글을 연거푸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한서준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PC방을 둘러보았다.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전화를 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직원 휴게실로 보이는 장소에 놓인 유선 전화기를 발견한 한서준은 곧장 '헌터'라는 단체의 공용 전화번호인 '001'을 눌렀다.

비교적 평범한 벨소리를 들으며, 오래간만의 대화를 위해 머릿속으로 내뱉을 말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가던 한서준이 이윽고 귓속을 파고드는 야리야리한 목소리가 미처 끝을 맺기도 전에, 낚아채듯 입을 열고 말했다.


[민간 헌터 기업. '아머'입니···]


"대구로도··· 올 수 있습니까?"

흡사 성대라는 것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양, 심하게 긁히는 목소리로 족히 몇 달 만에 말을 흘려 낸 한서준이 문득 기묘할 정도로 어색한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곤 연신 헛기침을 토해 내었다.


[그건 저희가 해결할 수 있는 등급이 아니군요. 다른 곳을 연결해드리겠습니다.]


허나 이런 상황은 익숙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직업 정신인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매끄럽게 그의 말을 받아 낸 안내원에게서 빠르게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한서준의 귓속으로 이번엔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네. 민간 헌터 기업. '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무슨 홈쇼핑 고객 센터의 직원과도 같은 작위적이고 형식적인 말투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한서준이 다시금 이전과 똑같은 내용으로 남자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엔 수용이 가능한 모양인지, 남자는 딱히 부정적이지 않은 어조로 또 다른 질문을 그에게 날렸다.


[대구 어디에 계십니까?]


"중앙로입니다.“


[저희의 등급에선 현재 불가능한 장소로군요. 대신 근처에 있는 단군의 임시 거처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서진 고등학교로 가십시오. 단군에서 도와줄 겁니다.]


하지만 역시나 안 된다는 결론과 함께 멋대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안내원의 행동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던 한서준은, 그만 수화기를 내려놓고 미적거림 없이 PC방을 나섰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오히려 예상했던 결과와 정확히 일치하는 통화 내용 덕분에 한서준은 더 이상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았다. 한서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나마 수확이라고 할 만한 ‘서진 고등학교’를 확인하기 위해 또다시 길을 따라 걸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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