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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육아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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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작품등록일 :
2024.02.12 01:14
최근연재일 :
2024.03.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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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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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운명의 아이, 그 이름은(1)

DUMMY

루텐 공작령의 수도 마하루텐은 우중충한 도시였다. 공작가의 성은 강가의 언덕에 요새처럼 자리잡고 있고, 그 언덕 아래로 외성을 둘렀다. 그 바깥쪽 강과 강으로 흘러드는 복잡한 지류 사이로 무질서하게 허름한 건물들이 펼쳐져 있었다.


아델라이데는 기사가 머무를 법한 성 바깥이 아니라, 저지대의 빈민가로 향했다.


강줄기 사이의 저지대니, 이곳은 본래 조금만 땅을 파도 물이 솟아나올 정도로 습한 땅이었다. 그런 곳에 사람이 살며 온갖 오물이 쌓이니, 아델라이데가 지나는 골목길은 하수가 흐르며 흙이 질척하게 썩어 있었고, 쥐와 해충이 들끓었다. 비천한 사람들이 자리잡고 살며, 공간 또한 비천하게 변했다.


이런 공간에 반듯한 옷을 입은 여행자가 말을 타고 지나가자 사람들의 눈길이 집중되었다. 다들 그녀의 햇볕에 그을린 얼굴, 가죽 장갑과 승마용 장화, 허리에 찬 검을 바라보았다. 군복을 벗었다고는 하지만 기사 티가 줄줄 흘렀다.


‘희한하네.’


루텐 공작은 빈자에게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러니만큼 영지의 기사단이 자선을 베풀거나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빈민가에 오는 일은 없었다. 보통 귀족이 연관되어 있거나 반역 등의 대역죄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그들은 괜히 기사랑 엮여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골목길을 지나가는 여기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동행하는 사람이 없으니 공무로 온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아니면 혼자서도 이런 곳에 거리낌 없이 드나들 만큼 실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 치기엔 젊단 말이지. 갑옷도 안 입었고.’


그녀 정도의 나이에 강해 봐야,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사가 평생 전투기술만 익히는 인간흉기라지만 어디까지나 인간, 지나가는 여기사가 담대하거나, 무모하거나, 그들은 알 수 없는 믿는 구석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주민들이 보기엔 여러 모로 묘한 방문자였다.




아델라이데는 눈앞에서 어디론가 달려가는 사내아이를 보았다.


“거기 멈춰라.”


그녀는 그 등 뒤에 대고 크게 외쳤다. 그럼에도 아이가 무시하고 계속 달려간다.


다시 한 번 외치는 대신, 곧장 품에 손을 넣었다. 품속의 손이 빠져나온 직후, 정확히 아이의 발밑에 꽂힌 비수가 바르르 떤다. 언제 던졌는지 알아보기도 어려운, 전광석화같은 손놀림이었다.


“두 번 경고하지 않겠다. 멈춰라.”


아델라이데가 차갑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한 다음에야 아이가 멈춰서고,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녀가 혼자 이 위험한 거리를 활보할 만한 실력자란 것을 알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베르사에 알리지 마라.”


그녀의 말을 들은 아이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사는 이 구역을 지배하는 범죄 조직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별 거 아니니 거 같지만 조직의 정보원이다. 외부인이 빈민가에 출입하는 것을 감시하다 그것을 조직의 어른들에게 알린다.


그래서 조직원들이 출동하면 골치아파진다.


“조직과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니,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조용히 할 일만 하고 돌아가겠다.”


“아, 알았어요.”


조직의 이름을 정확히 언급하는 것과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본 소년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라이데가 루텐 공작가의 기사라고 여기는 것이리라.


아델라이데도 그렇게 착각하도록 유도했다. 조직에 대해 알고 있단 티를 내고, 굳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진 않는다. 타지의 기사가 이곳의 범죄 조직에 관심을 가지거나 굳이 찾아올 리 없으니, 영주의 기사라고 넘겨짚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이들의 존재 또한 회귀 전 운명의 아이를 색출해 죽이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었다.


“그 비수는 네가 가져라. 내 부탁을 들어준 대가다.”


“감사······합니다.”


썩은 오물과 뒤섞긴 진창에 박힌 단검을 굳이 회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겐 굳이 회수하고 싶지 않은 싸구려 칼이었지만, 빈민가의 아이에겐 뜻밖의 횡재였다. 표정이 많이 풀렸다.

정보원 소년을 침묵시킨 그녀는 다시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 안쪽에 있는 고아원, 이 근방의 빈민들이 아니면 그 존재를 알기도 어려운 고아원이 그녀의 목적지였다.




고아원은 아주 낡은 목조 2층집이었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된 목조 주택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아원의 문 앞에 서자, 신경질적인 고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상 못한 소리에 멈칫했다.


“이 쓸모없는 것들아, 더 힘줘서 닦지 못해! 너희가 빌붙어 있는 이 건물이 어미 없는 너희들 전부를 합친 것보다 훨씬 귀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냐? 근본없는 놈들답게 귓구녕이······.”


이곳의 아이들은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약자일 터였다. 부모가 없고, 몸은 나약하고, 가진 것도 없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해 줄 어른들은 아이들을 돌봐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값싼 노동력 정도로 본다.


작게 한숨 쉬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떤 자식이······, 무슨 일이십니까?”


회초리를 들고 고함을 지르고 있던 여자는 아델라이데의 허리에 자리잡고 있는 장검을 보고 급격히 공손해졌다.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서 왔는데.”


“입양을요?”


뚱뚱하고 인상 고약하게 생긴, 화장이 짙은 여자, 이 사람이 고아원의 원장이다. 그녀는 아델라이데의 말을 듣고 당황스러워했다.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요.”


그걸 노렸으니까.


이 고아원의 소유주는 베르사였다. 베르사는 이곳에서 부모 없는 아이들을 모아서 노동을 시키고,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인력으로 키웠다. 남자 아이는 도둑이나 폭력배로, 여자 아이는 매춘부로.


아이를 상품으로 보니, 여기서는 입양을 하러 오는 사람을 반기질 않았다. 입양을 보내더라도, 양부모가 아이가 가져다 줄 기대 수익을 벌충해 주길 바란다. 특히 여자는, 비싸게 젊음을 팔 수 있는 반반한 아이는 더욱 그랬다.


그러니 미리 온단 이야기를 들었으면 얼마나 바가지를 씌울지 결정을 해 놓게 된다. 그리고 조직원들이 상대를 둘러싸고 그 바가지 씌운 가격을 뜯어낼 것이었다.


그러니 원장이 이야기를 못 듣게 했다.


“다른 곳에서 구하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보아하니 명예로운 신분이신 것 같은데 이곳에서 근본 없는 아이를 찾으실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나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델라이데는 어떻게든 그녀를 쫓아내려는 원장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바닥에 걸레질을 하면서도 흘끔흘끔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호기심과 기대가 실린 눈이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이 그랬다.


임금을 주지 않고 부려먹기 위해 수양딸을 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홍등가에서 웃음을 팔고, 그 와중에 성병에 걸리고, 종국에는 건강과 젊음, 아름다움, 모든 것을 잃고 쫓겨나 길거리에서 마지막을 맞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삶이었다.


아델라이데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키도 작고 바짝 마른 아이, 멋대로 잘리고 오랫동안 감지 않아 떡이 진, 검은 머리칼에 초록 눈을 가진 소녀였다. 키가 작고 비쩍 마른 볼품없는 소녀, 오늘 누군가에게 맞았는지 뺨이 좀 부어 있었다.


‘아.’


아델라이데는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아이가 운명의 아이, 그녀가 3년 뒤 죽였던 아이란 사실을 말이다.


웃으며 아이를 데려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니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죽였던, 그것도 무고한 것을 알고도 죽인 상대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일식이 다시 일어나기 전까지는 잘못한 줄도 몰랐지.’


아이를 죽이고 한 달 뒤 일식이 일어나고, 다시 나타난 운명의 아이가 끝내 마왕으로 각성했을 때에야 그녀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무의미한 살생이란 게 판명된 뒤에야, 죽은 소녀의 잘못은 없단 생각이 들었으니 그녀의 후회는 퍽 이해타산적인 것이었다. 일리엔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속 심연에 가라앉은 죄책감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그녀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가 걸레를 쥐고, 바닥에 엎드린 채로 그녀를 빤히 보았다. 혼란스럽거나 두려워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소녀는 바닥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언니는 잘못한 것이 없어요.”


“이년이 뭐하는 거야! 귀하신 분 옷 더러워지잖아!”


원장이 다시 한 번 히스테릭하게 고함쳤다. 하지만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델라이데를 안았다.


아델라이데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죽는 그 순간에도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소녀의 말 한 마디에 흘러내렸다.


원장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아이가 무척 지저분한 옷을 입고, 손도 더러워서 그녀의 옷까지 얼룩지는 건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 같은 운명의 아이의 말 한 마디, 그것이 소중했다.


아델라이데의 손이 아이의 머리 위로 향했다. 잠깐 멈칫하던 손이 머리에 얹힌다. 아이는 가만히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너······, 이름이 뭐니?”


“일리엔.”


아이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델라이데는 지금까지 아이의 이름을 몰랐었다. 그저 운명의 아이라고 알았고, 그렇게 불렀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운명의 아이는 일리엔이 되었다.




일리엔은 고아원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보고, 이 땅에 참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건강해 보이는 그을린 얼굴과 단정한 복장. 어딜 보더라도 이 빈민가의 사람이 아니었다.


불우하기 그지없는 운명을 타고난 소녀가 가지지 못한 일상을 가진 사람.


가난한 소녀가 겨울의 햇빛을 내리쬐도 태양신 헬리온께서 뭐라 하지 않는 것처럼, 저 햇빛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도 소녀의 시선을 불쾌해 하질 않기를 바랐다. 빛 속의 사람이 가진 것을 탐내는 것이 아니라, 동경하는 것뿐이니.


저 태양 아래의 사람을 의식하니, 조금 전 원장에게 맞은 상처가 다시 아파왔다. 그래서 흠칫했다. 저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용인하더라도, 저 사람이 떠난 후 원장이 또 때릴 것 같아서 무서워졌다.


다시 눈길을 내리깔려던 순간,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눈길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으로 상대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반가움, 미안함, 두려움, 안타까움, 기쁨, 슬픔······.


일리엔은 원하는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단순히 눈치가 빨라서 상대의 감정을 넘겨짚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일리엔은 그게 모든 사람이 가능한 것인 줄 알았었다.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단 것을 안 건 부모에게 버림받은 후였다.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가 소녀를 볼 때 느꼈던, 그녀에게 흘러들어왔던 감정은 생생하다. 공포와 혐오, 부끄러움. 그리고 그 감정은 폭력으로, 아이를 버리는 것으로 끝났다.

그래서 감정을 읽는 능력을 숨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능력을 숨기면 어른들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 줄 알았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에 잡혀온 이 고아원에서도, 이유없이 학대와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이 뒷골목에서 살아온 원장은 평생 폭력과 착취에 시달렸고, 이젠 그녀가 당했던 것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있었다.


이런 고아원에서 산 아이들도 살기 위해 악독해져야 했다. 자신보다 약한 아이가 빼앗고, 자신에게 할당된 일을 만만한 이에게 떠넘겨야만 버틸 수 있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다 그런 줄 알았다. 소녀에게 상처주는 데 거리낌 없고,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짐승 같은 존재 말이다.


그런 악귀 같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일리엔은 자신에게 호의를 품는 아델라이데의 감정이 기뻤다. 한편으로는 슬펐다. 그런 이가 왜인지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것이.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원장이 발작하듯 고함을 질렀지만, 이 순간만큼은 맞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왜인지 자신을 어려워하는 상대를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머리에 손이 얹혀졌다. 두려움이란 감정이 사라졌다. 고개를 들자, 눈물을 흘리면서도 온화하게 웃어 보이는 얼굴이 보였다. 말 그대로 햇빛 같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뭐니?”


상대의 마음에 공명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소녀는 비로소 자신의 호의에 호의로 답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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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의 아이, 그 이름은(1) +2 24.03.02 89 1 13쪽
4 기사는 사표를 쓴다(3) 24.03.01 87 4 12쪽
3 기사는 사표를 쓴다(2) 24.02.29 92 4 12쪽
2 기사는 사표를 쓴다(1) +1 24.02.28 106 6 11쪽
1 Prologue- 실패한 용사 +3 24.02.28 157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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