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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육아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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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작품등록일 :
2024.02.12 01:14
최근연재일 :
2024.03.26 12:19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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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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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글자수 :
198,092

작성
24.03.01 20:01
조회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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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기사는 사표를 쓴다(3)

DUMMY

“프랑젠 경, 사귀는 사람 없었지 않아?”


다들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을 본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를 키운다고 하니 아델라이데가 임신한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이 기사단밖에 모르는 사람이 안 들키고 연애를 하고 속도위반으로 아이까지 가졌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독신 맞는데. 그럼 아이를 키우면 안 되는 거야? 부모 양쪽 없는 것보다 낫잖아?”


아델라이데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고아 출신이란 것을 떠올렸다.


고아라고 주눅 들어 살았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둔감함이 이럴 때는 좋게 작용했다. 남들이 뭐라 이야기하든 남의 눈 신경 안 쓰고 살았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 재능이 출중한 것으로 유명해서 일찌감치 후원자가 생기기도 했다. 흔히 고아라고 하면 연상되는 가난이나 멸시는 그녀와 연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경멸한다고.”


헨슨이 어이없어하며 지적했다. 아비 없는 자식을 가졌을 때 여자나 아이나 얼마나 손가락질을 당하는지 생각하며.


“그런가?”


아델라이데는 왜 경멸당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이가 경멸당한다는 이야기에 덜컥 두려워졌다. 세상의 편견을 경험한 아이가 마왕으로 각성하면 어쩌지?


그녀가 고민에 빠져 있자, 헨슨은 그걸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될 수도 있는데.”


지난주의 그녀와 다르게, 태도도 부드러워지고 그의 말을 받아주는 아델라이데의 모습에 헨슨은 꽤 호감을 느꼈다. 그녀가 어떤 놈팽이에게 홀려서 아이를 가졌는지는 몰라도, 까짓것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델라이데 경이 안 꾸며서 그렇지, 아주 박색도 아니고, 그간의 돌덩이 같은 성격만 개선되면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라스티 백작과 카트라이트 경이 오 하고 복잡한 탄성을 지른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함과 그들 앞에서 맘을 고백하는 대담함, 아무리 그래도 누구 자식인지도 모르는 사생아를 첫째로 들이냐는 비아냥이 같이 담겨 있었다.


“싫은데.”


아델라이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모습에 헨슨이 당황한다.


“하, 하지만 뱃속의 아이가.”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왜 아이가 내 뱃속에 있어?”


아델라이데는 지금 헨슨의 말을 청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로서 자신을 도와주려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녀는 돌려 말하는 고백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둔감했다.


헨슨이 운명의 아이를 안다면 죽이려 들 테니, 헨슨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거절했을 뿐이다. 실로 세상을 구하는 사명을 가진 용사에 어울리는 성격이었다.


“······실례인 건 알지만 물어볼게. 임신해서 그만두려 하는 거 아니었어?”


“아닌데?”


아델라이데의 반응에 세 기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기사 중의 기사 아델라이데 프랑젠이 여자 임신시키고 도망갈 정도로 무책임한 녀석에게 넘어갈 리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의문이 남는다.


“육아 때문에 사직한다며?”


헨슨이 물었다. 아델라이데가 누군가에게 놀아나지 않은 데 안도하긴 했지만, 그가 지금 가차없이 차였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찾아서 돌봐야 할 아이가 있어.”


“친척이 있었나?”


라스티 백작이 물었다. 생판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리는 없을 테니, 친척의 아이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ㄴ······, 맞습니다. 고아원에 맡겨져 있다는군요.”


아니라고 하려다, 아델라이데는 그렇다 치기로 했다. 누구를 왜 키워야 하는지 설명하자면 골치 아프니, 그냥 친척이라 하는 게 좋은 변명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사단을 때려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전 육아에 전념하고 싶습니다.”


‘전혀 아닌 거 같은데.’


딱딱한 아델라이데의 표정은 어머니의 얼굴과 거리가 멀었다. 뭐랄까, 세상을 구하러 떠나는 용사에 걸맞은 표정이라 보면 맞는 것 같다.


‘세상을 구하는 육아? 내가 생각하고도 안 어울리는 조합이군.’


백작은 스스로도 본인의 생각이 웃긴지 피식피식 웃었다.


“단장님.”


“단장님.”


아델라이데와 헨슨이 다른 눈으로 라스티 백작을 바라본다. 아델라이데는 어떻게든 사직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헨슨은 아델라이데를 잡으라고 대놓고 눈치를 주고 있었다.


감히 상관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헨슨은 나중에 신나게 굴려 주기로 마음먹었다. 백작은 우선 아델라이데의 사직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프랑젠 경, 심사숙고해서 결심한 건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네.”


이대로 기사 생활을 계속해 봐야 마왕의 출현과 마족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막지 못한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육아를 하는 수밖에.


그렇기에, 아델라이데의 대답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라스티 백작도 몇 년간 그녀를 봐 왔다. 다들 꽉 막힌 사람이라 생각할 정도로 올곧게 기사의 일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단호하게 기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으면 한순간의 충동으로 지른 것이 아니란 건 누구든 알 수 있다. 결국 라스티 백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만두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감사합니다.”


“나중에 곤란해지면 언제든 찾아오게.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면 다시 받아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델라이데는 솔직히 고마웠다. 라스티 백작이든, 헨슨이든, 회귀 전에도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자들이었다. 단지 그들이 기사이기에, 그녀가 할 일을 용납하지 않을 걸 알기에 떠날 뿐이었다.


“지금처럼 운명의 아이가 나타난 시기에, 실력 있는 기사가 떠난다니 안타까울 뿐이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아델라이데를 흠칫하게 만드는 말이 툭툭 나오니 표정관리가 어려울 뿐이었다. 그녀의 속은 모르고, 백작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금요일 쯤 퇴임식과 송별연을 할 테니, 그때까지만 머물러 주게. 그때쯤이면 지금 있는 문제도 해결될 테니.”


“알겠습니다.”


셋집을 비우고 짐을 싸려면 그녀에게도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했으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에 악감정을 가진 것도 아니니, 마지막까지 성실히 임무에 임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경례를 한 뒤 나왔다. 뒤통수에서 단장의 말이 들린다.


“자, 프랑젠 경의 사직이 워낙 충격적이라 잊었는데, 남은 사람은 할 일 해야지. 다음 사람 불러. 그리고 헨슨 경, 경은 일과 끝나고 장작 다섯 짐을 다 패 놓도록. 이유는 경이 더 잘 알 걸로 믿는다.”



@



며칠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기사단의 말들이 아델라이데만 지나가면 공포에 떨긴 했지만, 어찌어찌 의심을 안 받고 넘길 수 있었다.


조촐한 퇴임식, 그리고 기사단 식당에서의 송별연이 이어졌다.


“자, 아델라이데 프랑젠 경의 밝은 앞날을 위해 건배.”


“나중에 편지 해. 행복한 미래를 위해 건배.”


“역병과 전쟁이 세상을 뒤덮기를 기원하며 건배!”


“헨슨, 마지막은 좀 그렇지 않아?”


“왜 그래? 평소 잘만 쓰던 구호인데.”


딴 게 아니라 병과 전쟁으로 상관들 다 죽고 빈자리 났으면, 그런 심보의 건배사였다. 헨슨이야 퇴직한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멋지게 출세한 모습이고파 한 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아델라이데가 다시 군대로 끌려오길 바라는 악담으로 들렸다.


“후훗.”


아델라이데는 티격태격하는 동료들을 보며 작게 웃었다. 다들 불콰하게 취해서 입이 가벼워지고, 그래서 이런 말실수도 나왔다. 일주일 간 기사단 분위기가 어땠는지 생각해 보면 이렇게 지금이라도 웃고 떠드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수정검을 훔쳐간 범인을 못 찾았고, 그래서 기사단 전체의 분위기도 엉망이었다. 아델라이데도 들킬까봐, 그렇다고 자백할 수도 없으니 모른 척 하는 것이 힘들었다.


“프랑젠 경, 그렇게 웃을 줄도 알았구나.”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 다들 새삼스럽다는 듯 보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술도 거절하지 않고 마시고 있지?”


“맞아, 평소에는 기사라면 언제나 최상의 정신과 몸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 모금도 입에 안 댔잖아.”


“엄청 오래간만에 마시는 것일 텐데, 괜찮은 거야?”


다들 아델라이데가 지금 보이는 태도를 신기해했다. 평소 이랬으면 좀 더 친밀하게 지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아델라이데는 워낙 꾸미는 데 관심이 없고 종일 땡볕 아래서 훈련하는지라 피부가 그을리고, 피부에 잡티도 많았다. 언제나 맨얼굴이었다. 그럼에도 이목구비 자체는 반듯한 편이라, 평소 태도가 딱딱하지 않았다면 남녀노소 상관없이 호감을 가지는 사람도 없진 않았을 터였다.


“아, 좀 취하긴 하는데, 아직은 견딜 만해.”


아델라이데는 의자에 몸을 묻었다. 다들 웃으며 그녀의 술잔을 채웠다.


“술이야말로 기사의 강함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셔.”


그렇게 모든 기사단원들이 돌아가며 건배를 외친 후에야 송별회가 끝났다.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단장인 라스티 백작이 따라나왔다.


“많이 마시던데 괜찮은가? 그놈들도 참 사람이 약점 보인다고 이렇게 술을 퍼먹이다니.”


이 송별회장에서 가장 높으신 분인 백작에게 술을 강요할 인간은 없었다. 그렇기에 기사단원들이 다 만취해서 연회장에 나뒹굴고 있는 지금도 백작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론은 똑똑하니까요오, 알아서 잘 찾아갈 거예요오.”


아델라이데는 혀가 꼬인 소리로 대답했다.


“종자를 붙여 주겠네.”


“괜찮아요오.”


백작은 몇 번이나 말을 끌어 줄 종자를 데려가라 권했지만, 아델라이데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렇다면 부디 무사히 돌아가게. 경은 내가 거느렸던 기사 중 단연 최고였네. 장차 내 귀에 경의 이름이 들릴 때도, 그 이름이 명예로울 것이라 믿고 있네.”


“에헤, 고맙습니다.”


아델라이데는 삐딱하게 경례한 뒤 말을 몰아갔다. 구태여 그녀가 고삐를 당기지 않아도, 마룬은 수백 번을 왕복한 길을 익숙하게 걸어갔다.


기사단의 주둔지를 벗어나고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그때까지 삐딱하게 앉아 있던 아델라이데의 등이 꼿꼿해졌다.


“이럴 때도 조심해야겠네.”


혼잣말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취한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사가 체내의 마나를 다스릴 수 있게 되면 신체가 전투를 펼치기에 최적화된다. 그리고 마나가 신체를 보조한다.


그건 단순히 전투 시에 도움을 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전반적인 신체 능력이 향상되다 보니 피로도 덜 느끼고, 이렇게 술을 마셔도 취하지도 않았다.


‘마스터가 되기 전에는 술에 취한단 것을 깜박했어.’


안 취하다 보니 마스터가 된 뒤로는 음주를 굳이 피하지 않았다. 굳이 찾지는 않지만 피할 이유도 없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번에도 무심코 술을 권하는 대로 마셨고, 동료들이 변한 그녀를 신기해하자 아차 싶었다.


그 뒤로는 적당히 취한 척을 하다 사라졌다. 지금도 멀쩡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니 한시름 놓았다. 이제 이 도시를 떠날 것이니까.



@



아델라이데는 곧바로 제도를 떠났다.


사직 전 이미 정리를 끝내 놓았다. 마룬에 실을 수 있는 배낭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팔아서 여비를 마련했다. 기사단의 제복과 갑옷까지 모조리. 무장이라고는 애용하던 검 하나만 남겨놨다.


누가 보더라도 기사 일을 완전히 때려치우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마스터가 되어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된 이상 갑옷이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었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정리한 아델라이데는 가벼운 여행복 차림으로, 마룬에 올라타고 길을 떠났다. 제국의 수도이자 지금껏 살아온 아난타라를 떠나, 말을 타고 일주일 가량 걸리는 루텐 공작령으로 향했다.


작가의말

다음 챕터는 '운명의 아이, 그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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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운명의 아이, 그 이름은(1) +2 24.03.02 88 1 13쪽
» 기사는 사표를 쓴다(3) 24.03.01 87 4 12쪽
3 기사는 사표를 쓴다(2) 24.02.29 92 4 12쪽
2 기사는 사표를 쓴다(1) +1 24.02.28 106 6 11쪽
1 Prologue- 실패한 용사 +3 24.02.28 157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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