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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육아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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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작품등록일 :
2024.02.12 01:14
최근연재일 :
2024.03.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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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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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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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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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사는 사표를 쓴다(2)

DUMMY

다음날, 월요일이 되자 기사단으로 출근했다. 셋집 근처의 공용 마구간으로 가서 자신의 말을 찾았다. 여기도 매달 월세를 주고 자리를 빌렸다.


“히힝?”


“마룬?”


그녀의 말, 마룬이 그녀와 마주친 순간 고개를 갸웃거린다. 평소 그녀가 살뜰하게 보살폈기 때문에, 평소 만나면 얼굴을 비비고 핥으며 친근하게 굴던 마룬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내 그 이유를 깨달은 아델라이데는 쓴웃음을 지었다.


동물은 본능에 충실하고, 자신을 해칠 수 있는 포식자에게 예민하다. 그래서 주말 사이에 갑자기 강해진 아델라이데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이다.


경계를 하면서도 피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행이었다. 마룬이 평소 주인을 얼마나 따랐는지, 아델라이데가 얼마나 자신의 말을 아꼈는지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콧잔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히히힝.”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주인의 모습에, 마룬도 안심하고 몸을 맡겼다. 그 모습에 아델라이데는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10년 뒤 전쟁터에서 죽은 그녀의 말, 그 이후 그녀가 탄 말들은 이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워낙 살벌한 시대이다 보니 말과 친숙해질 시간도 없었고, 수시로 바뀌는 말을 채찍과 살기로 말을 굴복시켜서 타고 다녔다. 그래서일까, 자신에게 애교를 부리는 마룬의 모습이 감격스러웠다.


“그럼 오늘도 잘 부탁해.”


그녀는 안장을 얹고, 말 위에 올라탔다. 말은 채찍질을 안 해도 알아서 마구간을 나서고, 걷기 시작했다. 말은 매일, 아침마다 주인이 똑같은 장소로 향한다는 것을 이해할 만큼 영리했다.


그녀의 직장인 청사자 기사단에 도착하자, 평소와 다르게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여어, 프랑젠 경.”


그녀가 말에서 내리자,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누구였더라? 얼굴은 익숙한데 잠깐 이름이 생각나질 않았다. 잠시 뒤 불렀다.


“헨슨 경.”


그녀의 기사단 동료 조엘 헨슨 경이었다. 금발 머리에 녹색 눈을 가진, 쾌활한 사내였다. 이름을 부르자, 그는 깜짝 놀랐다는 듯 과장된 몸짓으로 뒤로 물러났다.


“어이, 왜 그래.”


“뭐가?”


“언제나처럼 내 엉덩이를 걷어찰 줄 알았는데. 피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뭔가 허무하네.”


“훗.”


그랬다. 그녀는 자신이 여자라 치근덕거린다고 생각해서 친근하게 구는 동료가 있으면 더 까칠하게 굴었었다.


그렇지만 이젠 안다. 그렇게 걷어차이면서도 다가서는 게 나름 같은 부대 동료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것 이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델라이데는 평민 출신이라 귀족 출신인 대다수 동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았고, 헨슨은 그런 게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연무장에 안 보이더라? 평소라면 휴일에도 연무장에 나와 수련하······.”


“미안해,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한 거 같아.”


걷어찬 일에 솔직하게 사과했다. 경박해 보일 수 있는 말투로 주절거리던 헨슨의 말문이 막혔다.


“어······.”


갑자기 부드러워진 아델라이데의 태도가 당황스러웠다.


어렵게 자라서 그런지 성실하지만 날이 서 있는 게 아델라이데였다. 평민 출신이라 귀족 출신과 갈등이 생기면 불리한 것도 있었고, 묘하게 사회성이 부족했다. 오로지 기사로서 훈련하고, 일하는 거 외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상관들이야 그녀가 착실하다고 좋아했지만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어서 동료로서는 피곤했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헨슨은 워낙 붙임성이 좋아서 개의치 않고, 기사단의 화합을 위해 아델라이데에게 다가왔을 뿐이었다.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야? 원래 안 이랬잖아.”


“봐, 세상이 아름답잖아.”


“?”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야지. 그렇게 결심했을 뿐이야.”


아델라이데가 농담조로 말하자, 더 귀신을 본 듯한 얼굴이었다. 아델라이데가 농담이라니, 지금까지 상상을 못했던 일이다.


“넌 주말에 숙직이었으니 이제 퇴근하는 거지?”


아델라이데는 말을 돌렸다. 자신의 태도를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의 비밀이 들통날 것 같았다.


“아니, 못 돌아가.”


헨슨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웃음이 사라지자 눈가가 시커매진 것이 눈에 띈다.


“잠깐 집에 갔다 돌아왔어. 지금 아직 쉬쉬하고 있지만 근위대 쪽에서 난리가 났거든. 우리 기사단에도 전원 대기하란 명령이 떨어졌어.”


“왜?”


“수정검이 한 자루 없어졌대. 원래 수장고에 5자루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4자루밖에 없다네.”


가슴이 철렁했다. 왜인지 알 거 같았다. 분명 그녀의 검, 아스카리온이 사라진 것이었다.


‘한 시기에 같은 검이 2개가 존재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네.’


그녀가 수정검을 얻은 건 지금부터 4년 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영혼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게 미래에서 따라왔으면 현재 주인 없는 검까지 한 자루가 늘어나는 것인지, 남아 있다면 그걸 다른 사람이 계약하면 어찌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긴 했다.


천천히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빨리 풀렸다. 검도 영혼과 같이 미래에서 오고 기존에 있던 검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영혼만 시간을 거슬러오자 수장고의 검이 그녀를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가 회귀했다고 검이 한 자루 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심각한 일인데 어제 기사들을 소집하지 않은 거야?”


“동네방네 떠들 일이 아니니까. 오늘 다들 출근하면 다들 어제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볼 거야. 아무래도 수정검을 탐낼 사람이면 기사가 유력하니까. 궁전의 수장고 안에서 장검을 차고 다녀도 의심받지 않을 사람은 기사밖에 없으니 몰래 들고 나가기도 쉬울 거고.”


“비밀인데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범인(?)인 아델라이데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얻었는지 설명하기도 궁색하고, 그렇다고 앞날을 생각하면 반납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운명의 아이를 지키기로 결심한 이상, 반드시 그 칼이 필요했다.


숨겨야 했다.


“네 성격상 자격을 얻어내서 시험을 치르면 모를까, 훔쳤을 거 같지는 않거든. 그러니까 말해 줘도 되겠지.”


헨슨은 아델라이데가 그 사라진 수정검의 주인이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밝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흠, 그런데 말이야, 오늘 태도가 변한 거 보니 내가 알던 그 융통성 없던 기사는 없는 거 같고······. 혹시 내가 실수한 건가?”


“장난하지 말고. 난 결백해.”


수정검을 가진 건 맞지만 훔친 건 아니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헨슨은 이전보다 훨씬 유들유들한 아델라이데의 태도에 낄낄거렸다.


“아,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앞으로 꽤 재밌겠어.”


아델라이데의 태도가 변했으니 앞으로 더 친교를 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헨슨은 밝게 웃었다.


‘미안.’


아델라이데는 속으로 사과했다. 그녀는 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



아침 조회가 끝나자, 정말로 어제 무얼 했는지 한 명씩 물러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델라이데 프랑젠 경, 어제 뭘 했지?”


“일어나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집 가까이 있는 카페에서 차와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그 외에는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그 말에 단장인 에밀 라스티 백작은 대놓고 수상하단 얼굴이었다.


“프랑젠 경이 카페?”


평소 미식과는 인간계와 마계만큼 떨어져 있는 사람인 걸 다 알았다. 그런데 단 것을 먹고 있었다?


거기다 평소 그녀는 휴일에도 기사단에 출근했는데, 어제는 그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처음부터 수상하다 생각하고 있는 참에, 변명이라고 대는 것도 평소 그녀가 절대 할 일이 아니었다.


“잠깐 여기서 나가지 말게. 헨슨 경하고 카트라이트 경은 아델라이데 경이 도망치지 못하게 잘 보고 있어. 블린 경은 지금 바로 가서 진짜인지 확인해 봐.”


“그냥 집에 머물렀다고 하지 변명을 해도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냐.”


헨슨도 의심받기 싫어 변명을 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충고했지만, 아델라이데는 왜 그런 말을 듣는지 이해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사는 언제나 진실해야 하는 법이었다.


······지금 숨기는 것이 있긴 했지만, 좋은 의도로 그러는 것이니 신께서도 용서해 줄 거라 생각했다. 어쨌든, 수정검을 숨기는 거 빼고는 평생을 진실하게 살았고, 세상도 믿어 줄 거라 믿었다.


한 시간 쯤 지나자, 블린 경이 돌아왔다.


“아델라이데 경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어제 노천카페에서 낮에 오랫동안 혼자 앉아 있었답니다. 뭔가 고민이 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합니다. 주인이 도움이 될까 해서 쿠키를 서비스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 쿠키가 그냥 서비스한 게 아니라 주인의 세심한 호의였단 것을 깨달았다. 돌아가는 길에 들러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맛있던데 쿠키도 한 상자 사고.


“프랑젠 경, 의심해서 미안하네. 사실 어제 근위대 수장고에 갔던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네.”


“이해합니다.”


본의는 아니지만 그 수정검을 가져간 건 사실이니, 별로 화가 나진 않았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안하던 행동을 한 것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가보게.”


“단장님, 드릴 말이 있습니다.”


아델라이데는 나가는 대신 라스티 백작 앞에 차렷자세로 서서 말했다.


“뭔가?”


한숨 돌리려는지 차가운 차가 든 머그컵을 든 백작이 물었다.


“기사단을 그만두려 합니다.”


아델라이데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쨍그랑.


바닥에 떨어진 머그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진다. 라스티 백작도, 다른 기사도 도자기 조각이나, 쏟아진 찻물을 치울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델라이데는 어제 기사단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운명의 아이를 지키는 일과 기사단 임무는 병립할 수 없다. 기사는 운명의 아이를 찾아서 제거할 임무를 가지기 때문에, 그걸 깨고 아이를 돌봐 준다면 그녀 또한 군법회의에 회부된다. 그럼 무조건 목이 잘린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세상의 적으로서.


그녀 개인의 양심에도 어긋났다. 의무를 다하지도 못하면서 기사로서 녹을 받아먹는다니 그녀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니 기사단을 그만둬야만 했다.


그녀의 말, 마룬이 아침에 보인 반응을 보면, 미련 남는다고 미적거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동물들이 경계하는 모습을 계속 보면 일반인은 몰라도 기사들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된다. 기사단에 오래 머무르면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아델라이데의 속사정은 모르는 에밀 라스티 백작은 아델라이데에게 손짓했다.


“잠깐 거기 앉게.”


그는 아델라이데의 맞은편에 앉았다.


“조금 전 의심한 것이 경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생각한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겠네. 불쾌하겠지만 해야 하는 사정이 있었고, 다른 기사들도 지위고하 할 거 없이 겪은 일이야. 나 또한 근위대에 가서 조사받은 건 마찬가지라네.”


기사는 명예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그러니, 도둑으로 의심받는 것이 일을 때려치우고 낙향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백작은 아델라이데가 자존심이 상해서 퇴직을 요청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으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경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젊은 나이에 정식 기사로 서임받았어. 그 정도로 재능이 있는데 제국의 중앙 기사단을 그만두고 귀족 가문의 기사단으로 갈 건가? 물론 경의 실력이라면 어디 가서 밥 굶진 않겠지만, 마스터가 돼서 수정검을 하사받을 수 있는 건 폐하 직속의 기사들 뿐이야.”


“기분이 상해서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다른 기사단으로 가려는 것도 아닙니다. 기사 일을 아예 그만두려고 합니다.”


“그 해야만 하는 일이 뭐기에 그러나? 기사를 하며 함께 할 수는 없는 일인가?”


“육아입니다.”


쿠당탕!


아델라이데가 대답하자, 깨진 컵 파편을 치우기 위해 청소 도구를 들고 오던 헨슨이 들고 오던 것들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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