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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3.10.23 13:25
최근연재일 :
2024.03.04 08:1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4,945
추천수 :
277
글자수 :
784,850

작성
23.11.10 07:55
조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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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이게 뭐냐?

DUMMY

눈 떠보니 다른 장소였다. 최아연은 뻑뻑한 눈을 겨우 떴다.


"여기... 어디야... 으윽!"


쿵! 겨우 몸을 일으켰던 그녀가 도로 주저앉았다.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게 아니었다. 정체 모를 무언가가 그녀의 어깨를 마구 짓누르고 있었다. 마치 1톤이 넘는 거대한 바위가 누르는 것처럼.


[죄인은 고개를 들라-]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다가는 어깨가 부서질 것 같다고 생각하며, 최아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개를 약간 비트는 것조차 버거웠다.


"누구, 누구야...?"


심지어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죄인은 고개를 들라-]


고개를 들라니. 고개를 들 수가 있어야 들든 뭘 하든 하지. 고개를 들기는 커녕 겨우 버티고 있는 것조차 힘들다. 아니, 마음 같아서는 머리를 똑 떼어내고 싶다. 이건 너무 괴롭다.


[죄인은 고개를 들어라-]


"그만, 그만 좀, 하라고!"


시끄러웠다. 듣고 싶지 않았다. 목소리는 여자 같았는데, 인간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마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전지전능한 어떤 존재가 말을 거는 것 같다고나 할까.


[죄인에게 허가된 기회가 모두 박탈되었다-]


이번에는 또 뭐야? 허가된 기회라고?


"그게 무슨, 소리, 끄아아아악!"


공포에 질린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황금빛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최아연에게 아직 이렇다 할 어떤 일이 벌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질렀다.

정체모를 목소리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고통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그녀의 살점을 톱으로 도려내기라도 하듯이.

최아연이 느끼는 고통은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의 몸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그만, 그마아아아안!"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잠시 후, 비명소리는 멈추었다.

황금빛으로 가득 찬 이곳에 남은 것이라고는, 여전히 몸에서 피를 뿜어대는 한 인간의 시체 뿐이었다.


바로 그때.


찰박-


바닥에 흥건한 붉은 피를 밟으며, 누군가 이곳에 나타났다.


*

*

*


슈우우-


피죤에게 부탁해, 나는 죄인에게서 떨어져 나온 거대한 마력덩어리를 흡수했다.

이곳은 여신님의 공간인 재판의 방. 여신님과 동급인 다른 신들이 아닌 겨우 인간들은 속세에서 아무리 잘난 재산과 직급을 가졌다 한들 이곳에서 힘을 쓸 수 없다. 재판의 방은 여신님의 독무대나 다름 없는 곳이니까.


그러니 해당 죄인을 재판하고, 마력덩어리를 흡수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만 죄인을 뒤쫓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죄인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마력덩어리는, 내가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독하고 강력했다. 여전히 입문사제에 불과한 내가 마음대로 조종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만약, 내가 좀 더 강했다면 그 할머니는 살았을까. 그 강아지는 죽지 않았겠지. 그 남자도 다치는 일은 없었을 테고.


'변명의 여지는 없어.'


약한 자는 누군가를 지키지 못한다.

약한 나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던 마스터를 지키지 못했다. 그렇기에 빼앗겼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강해져야 한다.

무고한 목숨이 희생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해.


사라라락-


판결의 방 한 가운데에 흉측한 모습으로 놓여있던 죄인의 시체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가볍게 쌓인 눈이 바람에 흩어지듯, 언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냐는듯이 사라졌다.


"피죤."


피죤이 내 곁으로 왔다. 쉴 새 없이 코를 찌르던 악취 역시 사라졌고, 황금빛 바닥을 적셨던 죄인의 더러운 피 역시 증발해버렸다.


"집으로 가자."


*

*

*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동안 모은 마력덩어리를 확인했다. 모든 마력덩어리는 사제의 신성력을 통해 확인하거나 관찰할 수 있다.


"마력덩어리가 더 이상 힘을 쓰지 않으니 악취도 나지 않는군."

{힘들다구구......}

"그래, 힘들지. 좀 쉬고 있어."

{구...}


마세라테의 차주, 다시 말해 죽은 죄인을 잡는 건 힘든 일이었다. 피죤이 도와주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해당 죄인이 무고한 사람을 몇 명 더 죽였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내 달리기 수준으로는 죄인의 차를 따라잡기 어려웠으니까.


"이 마력덩어리... 상당히 탁한 기운이군."

{......}


색색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무릎 위에 기대 잠든 피죤의 등을 쓰다듬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마력덩어리는 마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거라고 했지."


당시 유스티아신전이 멸망하고 있었을 때, 마스터께서는 내게 말씀하셨다.

당신께서는 분명 마신을 봉인했지만, 그때 마스터의 상태는 좋지 않은 상태. 따라서 봉인을 해도 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마신은 마스터의 기운이 약한 틈을 타 자신의 일부, 즉 마력덩어리를 인간 세상에 날려보냈다.


그러니,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시커먼 형체는 마신의 일부라고 볼 수 있겠지.

이것들을 전부 모아야 마신을 완전히 봉인시킬 수 있다.


"죽이긴 어렵다."


신이라는 존재는 참 까다롭다.

인간이야 유한한 생명을 가진 피조물이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죽을 수 있고 또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신은 아니다.

신은 유한한 존재가 아니다.

신의 종류는 다양하고, 그 급도 천차만별이지만 가장 낮은 급의 신이든, 높은 급의 신이든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신은 불사의 존재라는 것.


'하지만 완전 봉인은 좀 달라.'


신을 죽일 수는 없지만, 거의 죽음이나 다름 없다시피 만들어버릴 수는 있다. 그것이 바로 봉인. 그 중에서도 완전봉인.


{구구구구~}


피죤이 깨어났다. 내 무릎 위에 누워있던 녀석은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더니 시원하게 하품을 했다.


"일어났냐?"

{구구~}

"배고파? 그래, 밥 좀 먹자. 배고프겠네. 뭐 먹지?"

{만두 먹고 싶다구구~}

"알았어, 알았어. 기다려봐. 나 마력덩어리만 좀 어떻게 하고. 이것들 정리 좀 해야지. 보관해야 하잖아."

{싫다구구!}

"뭐? 싫어? 뭐가 싫어?"


얘 갑자기 왜 이래?


{밥부터 내놔라구구!}

"아니, 왜? 이거 금방 한다니까?"

{밥부터!!!}

"야. 그럼 이거 어떻게 보관하라고? 정리를 해야 할 거 아녀?"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아, 그렇지.

지금까지 마력덩어리는 피죤이 도맡아서 관리하고 보관했었지.

귀찮아서 그런 건가, 설마?


{이걸 받아라구구.}

"이게 뭐냐?"


피죤이 내게 상자 하나를 건넸다. 황금빛이 나는 상자였다. 이건 또 어디서 난 거야, 저 놈은?


{앞으로 마력덩어리는 여기에 넣어라구구. 내가 보관하기 귀찮고 번거롭다구구.}

"뭐?"


이제 보니 상자에는 황금비둘기가 새겨져 있었다.

이 상자는 보통의 상자가 아니었다. 바로 마스터 피데스가 만든 황금빛의 봉인상자였다. 다시 말해, 마력덩어리를 보관하기 위한 특수 상자.


"이런 게 있으면 진작 줬어야지?"

{까먹었다구구.....}


까먹었었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어쨌든 잘 됐네. 마력덩어리는 여기에 보관해 둬야지.


아, 그리고 집에 두고 다녀야 하니까. 혹시 모르니 신성마법도 걸어두자. 인생은 혹시 모르는 거니까.


*

*

*


다음날. 아침으로 피죤과 함께 매운 푸라면 다섯봉지를 끓여먹은 후 집 밖을 나섰다.

우리 집 주차장에 주차된 황금마티쥬를 타고, 나는 킹마트로 이동했다. 집에 먹을 게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피죤이 생각보다 다 잘 먹기도 했고, 나도 적게 먹는 편은 아니라 그런지 음식을 자주 자주 구매해야했다.


"어떤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카트를 끌고 냉동식품 코너로 간 다음, 내 겉옷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은 피죤에게 물었다. 녀석은 현재 황금비둘기상으로 변신한 상태였다.


"이거? 난 이게 좋은데. 이건 안 괜찮아?"

{凸, 싫다구구.}

"뭐 임마?"


오늘따라 반항이 심하네. 사춘기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욕하면 어떡해?"

{凸.}

"이런 나쁜놈."


냉동만두와 돈까스, 그리고 치킨을 카트에 잔뜩 실은 다음, 나는 빵집과 고기코너로 직행했다.


"자, 이번엔 골라봐. 소고기 중에 골라."


아, 혹시 몰라 말해두는건데.

나는 지금 이어폰을 꼽고 있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에 헛소리를 하는 미친놈처럼 보이진 않겠지.


그렇게 본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귀에 뭐 꼽고 있는 게 낫겠지.

물론, 이어폰에서는 어떤 노래도 안 흘러나오고 있었다. 디케여신님을 향한 찬송가를 듣고 싶었지만, 이 한국인들은 디케여신님을 위한 찬송가를 부르는 놈이 없어 들을 수 없었다.

찬송가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여신님을 위한 찬송가가 아니었다.


"너한테 선택권을 줄 테니까."


피죤은 내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한 곳에서 생활하니까.

그러니 마트에 올 때마다 장 보는 신혼부부마냥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의견을 물어봐야 했다.

피죤이 내게 도움을 준 게 한 두개가 아닌데, 녀석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물론, 툭하면 凸을 내뱉긴 하지만.


"등심이라... 특수부위로 다 사갈까? 치마살, 채끝살, 살치살 다 사가자. 제비추리도 사갈까?"


잠시 뒤 계산을 마친 후, 나는 차에 음식을 실었다. 아무래도 작은 차에 비해 짐이 많다보니, 조수석에도 짐을 실어야만 했다.


"이정도면 일주일은 먹겠지? 아니다, 가끔 중재가 밖에서 사주기도 하니까, 그럼 이주 정도는 여유 있을 거야."


이거야 원, 마스터께서 주신 황금을 죄다 식비로 쓰겠구만. 이렇게 비효율적인 몸뚱이가 다 있나.

그런데 마스터께서 남기신 사제의 길을 하면서 더 많이 먹는 것 같단 말이지. 폐와 심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먹는 양이 늘어나나?


"자, 다시 가자."


집에 마트에서 사온 먹을 것들을 잘 쟁여둔 후,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

집 주변에 있는 많은 도로를 순찰 나갈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늘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있다고 해봐야 끽해야 별 거 아닌 걸로 시비가 걸린 것들 뿐이다. 그러니까, 서로 양보해주면 될 거 가지고 괜히 크게 일 벌리는 경우 말이다.


뭐, 오늘은 금방 집으로 가겠군. 별 일 없겠어.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내가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길로 빠졌을 때였다. 그 길은 시골길 마냥 편도 1차선 도로로 이루어져있었다.


그래. 그렇게 잘 가고 있었다. 커브길도 제법 있는 편이라, 과속하지 않고 준수하게 이동 중이었는데.

그런데.

어떤 미친놈들이 도로에 불법주차를 해버렸다. 그것도 양 옆으로.


"이런 예의없는 것들."


그래, 한국은 많은 차에 비해 주차자리가 참 부족하지. 내가 이해해주자. 그래도 나름 끝에 바짝 주차했으니까. ......어라?


"저건 또 뭐야?"


불법주차된 차량들을 피해 중앙으로 겨우겨우 직진중이었다.


"아니,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데, 쟤 내 원수인가? 이따구로 주차하면 나보고 뭐 어쩌라는 거야 대체?"


파란색의 펠리세이도가 한 가운데에 주차를 떡하니 해 놨다. 그것도 가로로.

이건 뭐,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할 형국이다.

좌우로는 불법주차들이 잔뜩이잖아? 무식하게 뚫고 갈까? 아니다. 차라리 긁기만 하면 다행이지, 잘못하다가는 누구 범퍼 박살난다.


{凸凸凸凸凸凸凸凸!!!}


그래 피죤.

저건 욕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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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사각지대? +1 23.11.25 3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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