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Tiphareth 님의 서재입니다.

티페레트 온라인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Tiphereth
작품등록일 :
2019.04.04 00:01
최근연재일 :
2019.06.19 10:38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9,095
추천수 :
128
글자수 :
323,057

작성
19.04.14 07:35
조회
241
추천
4
글자
12쪽

1. 접속 (11)

DUMMY

바깥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무슨 일인가 싶어 조심스레 밖으로 나가려는데, 뒤늦게 나온 예른이 지훈에게 물었다.


“응? 시온 님은 어디에 갔어요?”


“모르겠어요. 제가 나왔을 때 이미 없었어요. 바깥에서...”


리저드가 나오며 예른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라? 시온은요?”


쾅.


이번엔 바깥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뭐지? 습격인가?”


예른과 리저드가 불안감이 깃든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단탈리온 님, 무슨 일인가 보고 올게요. 혹시 모르니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 숨어있어요. 거울에는 들어가지 말고. 깨지면 못 나오는 수도 있어요.”


방 밖으로 나갔다가 바로 돌아온 리저드가 지훈에게 자신의 옷장을 열어주며 말했다. 그리고 급히 그를 그곳에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발소리가 빠르게 멀어져 갔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의 폭발음이 들리고, 건물이 흔들렸다.



짧지 않게 느껴진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이어지던 폭음이 잦아들었다.


지훈이 주먹을 꼭 말아쥔 채 건물의 그림자에 숨어 폭음이 이어지던 곳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


길의 끝에 있던 광장,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 여기저기에 많은 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자신이 아는 이들이 있었다.


지훈은 자신이 있는 건물 바로 앞에 누워있는 예른에게 다가가 그녀 옆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에서 바닥의 한기가 느껴졌다.


기괴하게 뒤틀린 그녀의 몸을 바로 눕혀주고 예른의 눈을 감겨 주는데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NPC인데. 그저 NPC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데도 어째서인지 마음이 허전하다.


허전하다 못해 아려왔다.


어째서 방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하던 이들이 차디찬 바닥에 누워있는 것일까.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지훈이 조심스레 모퉁이로 다가가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광장의 한쪽에서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주황빛 뿔을 가진 거체가 남자의 손에 잡혀 있었다. 남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축 늘어진 그 몸에 천천히 검을 밀어 넣었다.


고통에 찬 비명이 ‘그것’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남자는 비명이 멎고서야 칼을 빼냈다.


지지대를 잃은 그 거체가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지며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남자는 검을 휘둘러 묻어 있던 피를 털어내었고, 그 피는 바닥에 쓰러진 주황머리의 소녀, 리저드의 몸 위로 흩뿌려졌다.


남자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품에서 검은색 광택이 도는 조각을 꺼내 리저드의 심장 어림에 올려두었다. 축 늘어져 있던 그녀의 몸이 크게 꿈틀거리더니 이내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었다.


그 꿈틀거림으로 리저드의 고개가 돌아가며 그녀의 눈이 지훈을 향했다.


하지만 이미 초점을 잃고 탁해진 그녀의 눈은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지훈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또 달랐다.


그 눈을 보며 지훈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 극에 달한 분노의 감정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육신의 통제권이 해당 감정에 넘어갑니다. ]


떠오르는 메시지, 그 말대로 단탈리온의 육신은 지훈의 통제를 벗어났다.


남자가 리저드의 위에 놓아두었던 검은 조각을 다시 집어 들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혼돈의 결정?’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결정 창에서 보았던 혼돈의 결정과 비슷해 보였다. 지훈이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지훈의 손에 투명한 결정이 생겨났다.


[ ‘투명한 질서의 결정’을 사용합니다. ]


환영의 숲을 완료한 보상으로 받은 투명한 결정은 지훈의 의사와 상관없이 서서히 사라졌다. 동시에 결정 속에 깃든 기운이 단탈리온의 육신으로 흡수되며 주변 대기를 일그러뜨렸다.


[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질서의 결정 안에 잠재된 힘을 만나 하쉬말림의 각성을 유도합니다. 일시적 각성이 이루어집니다. ]


동시에 단탈리안의 등 뒤로 거대한 검은색 날개가 펼쳐졌고 이마를 뚫고 나온 그의 뿔이 순식간에 자라났다.


[ ‘은신’을 사용합니다. ]


지훈의 의지와 무관하게 마력이 빠져나가며 스킬이 시전되었다.


[ 이동 속도가 20% 증가하였습니다. ]


[ ‘돌진’을 사용합니다. ]


발을 딛자 그와의 거리가 한 걸음 만에 좁혀졌고,


[ ‘강격’을 사용합니다. ]


그의 앞에서 두 번째 걸음을 내딛으며 광휘에 싸인 주먹을 휘둘렀다.


남자는 검집을 들어 갑자기 접근한 단탈리안의 주먹을 막았지만 불안정한 자세에서 그 힘까지 상쇄시키지는 못한지라 뒤로 튕겨지듯 날아갔다.


하지만 유효타는 그게 다였다.


단탈리안이 그의 뒤를 쫓아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을 이어 나갔지만 허공에서 몸을 돌려 자세를 바로 잡은 남자는 그 공격들을 모두 막아냈다.


‘강격’의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스킬을 사용했지만 그 역시 다른 일반 공격과 마찬가지로 남자의 검에 막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아무리 힘이 늘어났다고 해도 여전히 그와 단탈리안 사이에는 확연한 격차가 존재했다.


발산되는 기운이 줄어들며 공격이 점차 느려지고 약해졌지만 남자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 상태 이상 : 마력 탈진 – 마력의 과도한 사용으로 육신의 유지에 필요한 마력마저

소진되었습니다. 일시적으로 행동 불가 상태에 빠집니다. ]


메시지가 떠오르며 생긴 경직, 그 순간에 단탈리안은 휘둘러진 그의 검에 어깨를 가격당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어느새 뿔도, 날개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남자는 검집을 다시 매만지며 단탈리안을 내려다보았다.


“마력 탈진이라니, 미숙하구나.”


그제야 남자가 검집에서 검조차 빼 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지훈.


“나는 자유로운 영혼의 베네 엘로힘, 비형이다. 그 옷을 보아하니 새로운 여행자 같은데, 맞는가?”


숨소리조차 흩트려지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딱딱했지만 적의가 담겨 있지 않았고, 눈빛에는 의외로 자신을 향한 약간의 흥미마저 깃들어 있었다.


지훈은 그 관심 덕분에 자신이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단탈리안은 그의 질문에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그의 얼굴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제 갓 여행자가 된 이가 이들의 죽음에 이렇게 분노하다니, 신기하군. 하지만 원망은 마라, 하쉬말림. 우리 역시 저들이 그랬듯 피의 부채를 받으러 온 것일 뿐이다.”


남자, 비형은 한쪽 구석에 놓아둔 자루를 들어 올려 단탈리안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그가 전혀 무방비한 상태였음에도 단탈리안은 갑작스럽게 힘을 사용한 반동으로 인해 바닥에 누워있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영혼이 들어있는 영혼석이다. 제국군이 죽이고 가둬 둔 우리 동지들의 영혼이 들어있지.”


비형은 단탈리안이 갓 여행자가 된 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 것인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딱히 그를 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차분한 목소리로 그 이유를, 자신의 이야기를 서서히 풀어나갔다.


“이곳에 있는 것을 보니 제국을 선택했나 보군. 그런데, 그거 아나? 저들이 말하는 평등은, 결국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 이룩되는, 이름뿐인 평등이다. 자발적 평등? 윤회라는 족쇄를 걸어 강요하는 데 그게 어떻게 자발적이 되는 거지? 결국 강요된 평등이라는 거다. 거짓된 평등의 미명에 속지 말고, 연합으로 와라.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찾아라. 그대의 안에 내재된 가능성을 확인하고, 꿈을 제대로 펼치는 것은 제국이 아닌 연합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감정이 살짝 격앙되는 것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그가 말하는 사이 약간의 마력이 회복된 것인지 화면 한쪽에서 깜빡이던 ‘마력 탈진’의 아이콘이 사라졌다.


하지만 단탈리안은 바로 근처에 쓰러져 있는 시온을 눈에 담고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 그까짓 대의가 무슨 소용입니까. 전 제가 아는 이들을 잃었고 그들은 당신이 죽였어. 난 그 사실만을 기억할 겁니다.”


복수를 하겠다는 뉘앙스를 담은 단탈리안의 말에도 비형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여행자여, 그래, 아직은 모르겠지. 하나 저들의 미망에, 거짓에 너무 깊이 현혹되지 말라. 그대가 제국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추악한 진실을 마주할 터, 그때 그대의 앞에 놓인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진실이 그대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때 연합으로 오라. 연합은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열려있다.”


비형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어느새 그의 주변으로 그와 비슷한 복장을 한 이들이 모여 있었다.


“지원군이 오기 전에 빠르게 돌아간다.”


그의 말에 그 뒤의 건물에서 몇 사람이 뛰쳐나왔다. 그들의 손에도 자루들이 들려 있었다. 그 안의 내용물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단장님, 어딘가에 속해 있지 않은 영혼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비형이 단탈리안을 힐끔 쳐다보며 그도 들으라는 듯이 답했다.


“저들이 숨기고 싶은 허물이겠지. 체제를 위협하는 이들이라던가 말이야. 일단 모두 챙겨간다.”


그리고 돌아서는 비형.


뒤늦게 그의 수하 중 하나가 단탈리안에게 다가와서 검집 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단장님, 이 하쉬말림은 그대로 둡니까?”


이번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답했다.


“그래. 미래의 동지가 될 수도 있으니, 그냥 두고 간다.”


그 말과 동시에 주변에 서 있던 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 튜토리얼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로 진행합니다. ]


“이게 튜토리얼?”


[ 분노할 대상이 사라졌습니다. 육신의 주도권이 넘어옵니다. ]


동시에 지훈에게 몸의 주도권이 넘어왔다.


그리고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얼핏 그의 시야에 눈을 부릅뜬 채 가까이에 누워있었던 시온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잠깐만요.”


다급하게 외치는 지훈.


아직 자신에겐 이 곳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시스템이 그의 의지를 받아들인 것인지 다시 화면이 밝아졌다.


동시에 주변에 펼쳐진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저곳 베이고 뒤틀린 시신들이 곳곳에 있었다.


당연히 대부분이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셋 만이라도....”


지훈은 시온에게 다가가 그녀를 바로 눕힌 뒤 눈을 감기고 얼굴을 닦아 주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예른도 안아 들고 그녀의 곁으로 데리고 왔다.


마지막으로 리저드의 곁으로 간 지훈은 문득 그녀의 시신 근처에서 반짝이는 것을 목격하고는 그것을 주워들었다.


아까 비형이라는 남자가 그녀의 위에 올려두었던 그 검은 광택의 돌과 같은 모양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그걸 보관함에 수납하겠다는 의사를 표하자 손에서 사라졌다.


[ 영혼의 돌 – 리저드 리 ]


보관함에 수납된 명칭이 리저드의 영혼석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리저드 님. 리저드 님, 들려요?”


다시 유형화시킨 영혼의 돌을 양손으로 꼭 붙잡고 말을 걸어보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영혼석이라도 다시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예른이 했듯,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는 소통이 가능할 테니까.


다시 보관함에 영혼석을 넣고 그녀의 시신을 안아 올려 예른의 옆에 눕혔다. 얼굴에 묻은 피를 닦고 고통으로 부릅뜬 눈을 감겨 주고는 나란히 누운 세 사람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훈은 그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애도를 표하고 하늘을 보며 입을 열었다.


“튜토리얼을 종료하겠습니다.”


[ 플레이어의 의지에 따라 튜토리얼을 종료합니다. ]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메시지 창의 테두리 없이 화면 가운데 흐릿하게 한 줄의 문구가 더 떠올랐다 사라졌다.


[ 엘 님, 저희들에 대한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티페레트 온라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3. 여러 개의 운명 (4) 19.05.05 63 1 16쪽
28 3. 여러 개의 운명 (3) 19.05.04 67 1 15쪽
27 3. 여러 개의 운명 (2) 19.05.03 50 1 14쪽
26 3. 여러 개의 운명 (1) 19.05.02 55 1 14쪽
25 Interlude 3. 로그 아웃. 19.05.01 73 1 12쪽
24 Interlude 2. 승계 19.04.30 65 1 11쪽
23 2. 레바나의 달 (10) 19.04.25 69 2 15쪽
22 2. 레바나의 달 (9) 19.04.25 70 2 15쪽
21 2. 레바나의 달 (8) 19.04.24 83 3 16쪽
20 2. 레바나의 달 (7) 19.04.23 90 2 12쪽
19 2. 레바나의 달 (6) 19.04.21 103 2 13쪽
18 2. 레바나의 달 (5) 19.04.20 122 3 12쪽
17 2. 레바나의 달 (4) 19.04.19 179 4 16쪽
16 2. 레바나의 달 (3) 19.04.18 152 3 14쪽
15 2. 레바나의 달 (2) 19.04.17 177 3 15쪽
14 2. 레바나의 달 (1) 19.04.16 225 3 13쪽
13 Interlude 1. 티페레트 온라인의 시작 19.04.15 224 4 10쪽
» 1. 접속 (11) 19.04.14 242 4 12쪽
11 1. 접속 (10) 19.04.13 236 3 14쪽
10 1. 접속 (9) 19.04.12 265 6 12쪽
9 1. 접속 (8) 19.04.11 281 5 12쪽
8 1. 접속 (7) 19.04.10 351 5 14쪽
7 1. 접속 (6) 19.04.09 361 6 12쪽
6 1. 접속 (5) 19.04.08 412 7 14쪽
5 1. 접속 (4) 19.04.07 430 8 11쪽
4 1. 접속 (3) 19.04.06 504 8 12쪽
3 1. 접속 (2) 19.04.05 567 7 13쪽
2 1. 접속 (1) 19.04.04 736 11 13쪽
1 0. Prologue +6 19.04.04 1,097 13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