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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2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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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59,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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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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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Round 2. 치열하게 따분한 날

DUMMY

본선에 올라온 162개 팀 중 81개 팀이 2라운드에 진출했다.


본선 2라운드는 일대일 오디션으로, 심사위원들이 정한 두 팀이 한 조에서 일대일로 대결한다.

두 팀은 대부분 여우비와 언클리셰처럼 비슷한 성향을 띠고 있다.


이 대결을 통해 1위와 2위가 가려지지만, 다음 라운드에 두 팀 모두 진출하거나 모두 탈락할 수도 있는 것이 2라운드의 특징이다.

이것은 조 편성의 운이 없어 우수한 팀이 떨어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다만 일대일 오디션에서 1위로 3라운드에 진출한 팀에게는 향후 주어지는 미션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1회에 한해 주어진다.



***



9월 23일.

정완과 서희, 은별은 CBC 미디어센터에 도착하자마자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오전 조 경연이 끝나지 않아서 스튜디오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찍 출근하여 오전 조 참가자들의 경연을 보던 오후 조 참가자들도 대기실에 들어왔다.


“참가자들 다 오면 여기서 순서 추첨하고 인터뷰할게요. 연주자 분들은 지금 연주자 대기실로 가시면 됩니다.”


정완이 악기를 놓으러 간 사이에 참가자들이 모두 출근했고, 제비뽑기 결과 여우비와 언클리셰는 9조가 되었다.


“우리 9조 후순위야.”

“그럼 스무 팀 중에 열여덟 번째예요?”

“순서가 너무 뒤지? 미안해.”

“어쩔 수 없지. 시간 여유 충분하니까 좋게 생각하자.”


정완은 상황을 파악한 후 서희와 은별에게 말했다.


“오늘은 과제 안 해도 돼.”

“할게요. 인터뷰 들어가기 전까지.”

“더 긴장될 수도 있어. 괜찮겠어?”

“안 그럼 시간이 안 갈 것 같아요.”

“연주자 분들은 연주자 대기실로 이동할게요!”


정완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서희와 은별이 굳은 얼굴로 그를 빤히 보았다.


“긴장돼?”


정완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물었지만 두 사람 모두 말을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긴장되면 긴장해. 속일 필요는 없지.”

“속이다니요?”

“욕심이 생겼으면 욕심이 생긴 대로 행동하면 돼. 애써 아니라고 할 것도 없어.”

“···.”

“스탠바이 때 보자. 갈게.”


정완은 미소 띤 얼굴로 서희에게 말하고 출연자 대기실을 나갔다.

은별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솔직히 욕심이 생기는 건 맞잖아. 그치?”


서희의 말에 은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귀가하는 차 안에서 서희는 정완에게 “처음엔 그냥 노래하는 게 좋았는데, 이젠 자꾸 무대에서 잘하고 싶어져요.”라고 말했고, 정완은 빙그레 웃으며 그것이 바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다만 정완은 서희와 은별이 성장하려는 이유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1, 2, 3조는 인터뷰실로 갈게요. 다른 조는 스튜디오 객석에 대기해 주시고요.”

“가자.”


서희와 은별은 긴장을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희와 은별은 오후 내내 다른 참가자들의 노래를 들으며 과제를 했다.

이들의 인터뷰는 오후 5시가 가까워서야 시작되었다.


“저희가 이번 라운드에서 받은 미션은 <C-POP Artist season 3>에서 처음 발표된 창작곡과 거기에 관련된 자유곡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선택한 노래는 시즌 3의 우승자 신나지오의 <어느 따분한 날>, 그리고 자작곡 <망한 하루>예요.”

“아. 제목만 들어도 연관성이 느껴지네요.”


작가의 말에 서희와 은별이 미소를 지었다.


“<어느 따분한 날>은 수휘 심사위원님께서 시즌 3 결승전 때 신나지오와 전현수에게 공통으로 주었던 미션곡이었죠. 물론 이 노래는 우승자였던 신나지오의 곡이 됐고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나지오는 그때 이후 어느 무대에서도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없는데, 선곡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저희는 1라운드 녹화를 마치고 잠시 휴가를 보냈습니다. 휴가 마치고 모여서 휴가 때 정말 따분했다고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이 노래를 고르게 됐어요.”

“정말 따분했나 보네요.”

“네. 친구들이 대부분 취업했거나 준비 때문에 바빠요. 그리고 아직 방송 전이라 친구들 만났다가 혹시 말실수라도 할까봐 못 만나겠더라고요. 혼자 지내다 보니 그랬어요.”

“여우비는 기성곡도 가사를 바꾸거나 편곡을 달리 하던데, 이번에도 그런가요?”

“네. <어느 따분한 날>에는 저희가 새롭게 추가한 가사가 있어요.”

“알겠어요. 그리고 자작곡 <망한 하루>도 설명해 주세요.”

“이 노래는 <어느 따분한 날>처럼 따분한 노래이고 노래 속 배경도 같다고 보시면 돼요. 친하지도 않은 선배가 밥 먹자고 불러내는데 너무 따분하다보니까 나가겠다고 해요. 그 에피소드로 만든 노래입니다.”

“언클리셰와 한 조로 대결하게 되었는데, 어때요?”

“언클리셰는 2차 예선 때부터 봤습니다. 자작곡의 감성이 남다른 팀이라고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가사에 독특한 멜로디가 정말 좋고, 배울 점이 많은 팀이라 함께하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클리셰 세 사람 다 저보다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해요.”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하죠.”


카메라가 멈추자 다른 제작진이 말했다.


“9조는 저녁 먹고 경연할게요.”

“네?”

“오전 조부터 조금씩 늦어졌는데 지금도 지연되고 있어서요. 휴게실에 저녁식사 있으니까 드시고, 6시 30분까지 스탠바이하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서희와 은별은 인터뷰를 마친 후 연주자 대기실에 들렀다. 정완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키보드를 연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정완의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 왔음 얘길 하지.”

“PD님. 저희 스탠바이 6시 30분이래요.”

“응. 들었어.”

“저녁 드셔야죠?”

“난 이따 먹을게. 너희들 먹어.”


정완은 경연 전까지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집중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서희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점심도 굶었는데 조금이라도 드셔야죠. 제가 죽 사다 드릴까요?”

“아니. 차라리 한 숨 자는 게 나아.”

“···.”

“나가 봐. 아까 여기 출연자 들어왔다가 혼나던데.”

“하아.”


서희는 한숨을 쉬었다. 다른 팀은 연주자와 함께 복도에서 간식이라도 먹고 있는데 정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은별이 말했다.


“알겠어요. 갈게요.”

“연습 너무 많이 하지 마.”

“왜요?”

“안 따분하면 곤란하니까.”

“네. 쉬세요.”

“이따 보자.”


은별이 뒤돌아 나가자 서희가 정완에게 인사하고 후다닥 그녀를 따라갔다.


“하여튼 오빠는 다 자기 마음대로예요. 밥 안 먹음 언니랑 내가 걱정할 거 뻔히 알면서.”

“PD님이 우리 때문에 억지로 밥 먹었다가 연주 제대로 못하시면? PD님은 당장 자기 때문에 떨어졌다고 미안해하실 텐데, 넌 그래도 좋아?”

“그럼 계약 끝이잖아요.”

“아니. 우리 아직 노래 다 안 받았어.”

“아.”

“넌 PD님한테 미안하단 소리 듣고 가슴 아픈 것보단 차라리 밥 늦게 먹는 게 낫잖아.”


계약 당시 정완은 듀엣곡 다섯 개와 각자의 솔로곡 하나씩을 주겠다고 말했고, 합격 및 탈락뿐 아니라 이 약속까지 지켜져야 계약이 끝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들이 받은 노래는 <망한 하루>를 포함해도 듀엣곡 셋뿐이었다.

은별이 서희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 말이 제 심정을 말한 게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따 나 먼저 내려달라고 할 테니까, 넌 PD님한테 뭐라도 먹여.”

“그건 언니가 하는 게 나을 거예요.”

“아니야. 네가 해줘.”

“···.”

“나 화장실 갔다가 갈게. 먼저 들어가.”

“네.”


서희는 대기실로 들어가는 은별의 뒷모습을 씁쓸한 얼굴로 바라보다 뒤를 돌았다.





오후 6시 30분.

서희와 은별이 무대 뒤편 출입문 앞에 섰고, 정완은 선글라스를 쓰고 기타를 들고 왔다.


“화장 바꿨네?”

“네.”


두 사람은 저녁식사를 하고 화장을 고쳤다. 더 좋게 고친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바꾼 것이다.

서희가 정완을 바라보다 말했다.


“기타 안 가져갔어요?”

“응.”

“죄송해요. 저 때문에.”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사과하지 말라고.”


서희는 <어느 따분한 날>에 랩을 넣으면서 라임을 맞추다 ‘기타 든 분 디스’라는 가사를 고안했다.

그것을 본 정완은 키보드로 완성했던 곡을 기타로 편곡한 후 그 부분에서 자신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 퍼포먼스를 하라고 말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서희가 정완을 가리킬 때 정완이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한다. 그래서 정완은 밴드 시절 즐겨 착용했던 선글라스를 썼다.


“자! 이제 두 조 남았습니다. 끝까지 집중하시죠.”


문 밖에서 인길의 목소리가 들리자 서희와 은별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러자 정완이 말했다.


“노래할 때 미치라는 말, 기억하지?”

“네.”

“누가 뭐래도 너희들은 빛나는 존재다. 들어가.”


서희와 은별뿐 아니라 언클리셰 멤버 세 사람도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완을 제외한 이들이 모두 출입문으로 나갔고, 정완은 문이 닫힌 후 계단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9조. 언클리셰와 여우비의 경연입니다.”


인길의 말에 참가자들이 박수를 쳤고, 선공을 맡은 언클리셰 멤버들이 무대 한가운데에 모여 앉았다. 서희와 은별은 무대 뒤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수휘가 말했다.


“9조의 미션은 <C-POP Artist season 3>에서 발표된 창작곡 및 그것과 관련된 노래입니다. 먼저 나설 언클리셰가 고른 곡은 시즌 3에서 5위를 차지했던 다랑화가 2라운드에서 불렀던 자작곡 <인형 뽑기>네요.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또 다른 곡은 전기장판의 <반짝이던 소녀>고요.”

“네.”

“언클리셰 팀은 인디밴드 좋아하나 봐요? 1라운드에서도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브로콜리 너마저)을 불렀는데.”

“그렇습니다.”

“다랑화는 혼성 트리오, 전기장판은 혼성 듀엣이죠. 같은 혼성팀이 한다고 하니 기대됩니다. 노래 들어보죠.”


서희와 은별은 언클리셰가 부르는 <인형 뽑기>를 들으며 서로를 마주보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되게 잘한다.”

“쟤들이 다랑화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요.”

“가창력이야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다음 노래인 <반짝이던 소녀>가 진행되자 은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노래가 혼성 듀엣곡이에요?”

“나 이 노래 몰라.”

“이거 카페 아르바이트 할 때 많이 들었어요. 여자 솔로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그런가? 남자애들 파트가 좀 어색한 것 같아.”

“네.”


노래가 끝나자마자 지노가 먼저 심사했다.


“노래 잘 들었습니다. 필요한 부분에 포인트가 들어갔고, 누구 하나 큰 실수한 곳이 없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두 곡이 어떤 점에서 관련돼 있죠?”

“서투르면서도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렇군요. 저는 두 곡을 듣고서도 연관성을 확신할 수가 없었는데, 제가 그랬다면 시청자 분들도 그랬을 겁니다. 제가 언클리셰에게 이걸 물어봤다는 것 자체가 이미 미션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뜻이에요. 언클리셰도 싱어송라이터 팀이니까 두 곡의 연결고리 같은 걸 가사로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 좀 아쉽네요.”


이어서 여원과 인길, 수휘도 평가를 내렸다.


“다랑화는 남자 하나, 여자 둘이고 언클리셰는 여자 하나, 남자 둘이죠. 임효길 군이 다랑화 최미랑 양의 파트를 맡아 불렀는데, 미랑 양의 음역이 낮고 효길 군의 음역이 높다고 해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분명히 있어요. 미랑 양은 다랑화에서 잔잔하게 부르는 부분을 맡고 있는데, 그걸 효길 군이 비슷한 높이로 처리하다보니 좀 터져 나왔고 이게 곡의 흐름을 방해했어요. 차라리 가성으로 불렀으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예요.”

“다른 부분은 앞 분들 의견이랑 같습니다. 저는 <반짝이던 소녀>에 대해서 한 말씀만 드릴게요. 전기장판은 혼성 듀엣이지만 이 노래는 여성 멤버인 장판숙 양이 거의 다 불렀죠. 그래서 언클리셰의 노래에서도 유주연 양에게 너무 집중되었던 것 같고, 다른 두 사람의 파트에서 어색하게 들렸던 부분이 있었어요.”

“담여원 심사위원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헌데 저는 특정 부분만 가성으로 부르는 것은 곡 전체가 아닌 일부를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언클리셰가 <인형 뽑기>를 원키 그대로 부르면서도 감성 흐름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면 어느 지점에서는 분명히 편곡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이건 꼭 이 노래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자작곡을 만들 때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에요. 다른 부분은 지적할 게 없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이제 여우비 팀 나오세요.”


인길의 말에 언클리셰와 여우비 멤버들이 자리를 바꾸었고, 정완이 기타를 멘 채 무대로 올라와 스포트라이트 바깥에 무대와 90도를 이루며 앉았다.

태블릿 PC와 멀티비전에 여우비가 선택한 노래가 나타나자 몇몇 사람들이 놀라운 표정을 지었고, 수휘와 인길이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와아. 제가 만든 노래를 골랐네요.”

“여우비 팀은 그러니까, 우리 신나지오가 결승전에서 불렀던 <어느 따분한 날>을 부르겠다는 뜻이죠?”

“네.”

“수휘 심사위원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노래는 그 날 이후 저도 신나지오에게 부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들어봤자 에너지도 없고 맥만 툭 빠져서 그랬죠.”

“우리 휘민락 멤버들은 이게 신나지오 노래가 되니까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수휘의 말에 객석의 참가자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우비 팀이 이 노래를 고른 이유를 알고 싶네요.”

“1라운드 녹화를 마치고 휴가를 보내는데 따분했습니다.”


서희의 간단한 설명에 은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똑같은 질문에 여러 번 답하는 게 지루했고, 곧바로 따분함에 감정이입이 되어 버렸다.


“그렇군요. 그리고 자작곡 제목이 <망한 하루>인데, 혹시 이 두 날이 같은 날인가요?”

“그렇습니다.”


서희가 답할 때 은별은 고개를 돌리고 하품하는 시늉을 했다.

사실 이것도 두 사람이 의논했던 퍼포먼스였는데, 그걸 안 여원이 픽 웃었다.


“노래하라고 해요. 쟤들 벌써 감정 잡고 있어요.”

“하긴. 여우비는 감정부터 잡고 무대 올라오죠. 노래 들어볼게요.”


인길의 말이 떨어지자 은별은 무대의 의자가 제 방의 것인 양 주저앉았고, 서희가 그녀의 어깨를 짚고 삐딱하게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서희가 발끝으로 무대 바닥을 툭 치자 정완은 한 마디에 한 음씩 대충 튕기다가 전주를 시작했다.


기타 반주와 함께 <C-POP Artist season 3>에서 수휘가 남겼던 심사평이 나왔다.





<어느 따분한 날> 작사, 작곡 : 수휘 / 노래 : 신나지오


(수휘's voice sampling)

따분한 것과 의욕이 없는 것은 다릅니다.

따분하면 다른 것을 하고 싶고, 의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겠지요.


(전주)


(서희's rap)

따분하다. 국어사전엔 재미가 없어 지루하고 답답하다.

착 까부라져서 맥이 없다. 몹시 난처하거나 어색하다.


난 재미없고 지루해. 답답하고 맥없어.

베개에 침대에 껴안았던 인형까지 싹 다 어색, 어색, 어색해.


난 분명 따분한 거야. 의욕도 없는 거야. 그러니까.

따분한 거랑 의욕 없는 건 서로 소가 아니야.

수휘님은 따분하심 기타 들고 버스킹 하시겠지.

서희년은 따분하니 기타 든 분 디스 킹 하는 거지.


(은별's song)

책을 펴 봤어. 하기 싫어. 어우.

이럴 바에 날 잠재워 줘. 어우.


해야 할 일은 기약 없이 반복되고

지겹던 전화는 오늘따라 잠잠하고.

잠조차 오지 않아 답답한 시간엔

도대체 무얼 해야 시간이 잘 갈까.


(간주)


(서희's rap)

자취방 창살 밖 사진처럼 멈춘 풍경. 아. 내가 그래서 그런가, 풍경 속 세포마저 따분해 보인다.

한 발도 더 디딜 여력 없는 걸음마. 숨 쉬는 것조차 사치라는 취준생의 배부른 소리일까.

여기는 능력도 뭣도 없는 내겐 감옥. 아. 막힌 쇠창살 속 꽉 닫힌 공간, 내가 여기 있는 까닭.

그래 나는 죄수다. 부모님, 이 세상, 나 자신에게 죄수다. 우리 취준생은 전부 죄, 수, 다.


(은별's song)

해야 할 일은 기약 없이 반복되고

복잡한 머리에 굳어버린 팔다리.

내게 갑자기 찾아온 어느 따분한 날

난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의미 있을까.


십 년 후 기억되지 않을 이 따분한 날

무얼 해야 좋을까.

생각하기조차 귀찮은 이 한심한 날

어찌 해야 좋을까.


이 따분한 날.

이 한심한 날···.





뒤이어 드럼 비트가 재생되고 메신저 알림음이 울리자 서희가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누르는 시늉을 하며 다른 손으로는 마이크를 들었다.





<망한 하루> feat. 정한울 / 작사 : 강서희 / 작곡 : HAP


(BGM : 드럼 비트)

(알림음)


(conversation of 한울 & 서희)

[안녕? 나야.]

네, 선배.

[어디야?]

집이요.

[혹시 오늘 시간 있어? 내가 파스타 사줄게. 좋은 데 알아놨어.]

하아아.

[나올래? 오늘 날씨도 좋아.]

···알았어요. 몇 시요?

[어, 여섯 시. 아니, 다섯 시! 너희 집 앞 역에서 보자. 내가 갈게.]

조금 늦을 수도 있어요.

[응. 괜찮아. 기다릴게. 밤새.]

네···.


(전주)


(은별's song)

할 일이 없어 약속은 했는데 안 나간다고 할까.

지금 난 떡져 뻗은 머리에 퉁퉁 부은 눈.

화장대 앞에 앉았는데 스킨토너 안 열려.

하염없이 시계만 보다 다시 이불 뒤집어 써.


(서희's rap)

암 생각 없이 튼 TV. 다 아는 재방송에 채널 돌리니

아프리카 사자 교미. 쟤들도 상대 가려 짝 만나겠지.

기다린 웹툰 No 재미. 하트가 난무하니 이상한 건 나.

나에겐 전혀 No 의미. 뭘 해도 답답하니 쓸모없는 나.


But, 하지만, 그러나, 나. 아무리 따분해도 공부는 안 해!

하기 싫은 건 안 하련다. 미안해도 선배랑 밥 먹고 말래.


(은별's song)

화장 순서 틀린 것 같아. 얼굴 정말 맘에 안 들어.

만사가 귀찮아 짜증나. 화풀이라도 하고 싶어.

이러고 있는 날 엄마가 봤음 뭐라고 했을까.

[이년아, 할 거 없음 청소 설거지 빨래나 해!]


(간주)


(은별's song)

이 꼴인데 선배는 또 예쁘대. 난 또 집에 가고 싶어.

근데 이 넓디넓은 거리에 왜 하필 이때 네가 나타나.


[어어? 이렇게 둘이? 저 갈게요. 좋은 시간 보내요!]


(서희's rap)

내 옆에 선배 헤벌쭉에 넌 화들짝 자리 피해.

10퍼센트 확률이 1퍼센트 돼, 난 확인사살 망했어.


(은별's song)

파스타 별로여도 먹으니 시간은 가네.

영화는 보기 싫어. 차라리 TV나 볼래.

만 원 줄 테니까 누가 내 화장 지워줘.

이런 여자 때문에 설레는 선배 미안해.


그러니 이러지 마. 갑자기 폼 잡지 마.

나 땜에 설레지 마. 나한테 고백하지 마.

미안해 죽는 한이 있어도 안 되는 건 안 돼.

이런 날은 지웠으면. 망한 내 오늘 하루야.


(서희) 이런 날은 지웠으면.

(은별) 망한 내 오늘 하루야.





“와아. 저 임팩트.”

“지난번이랑 전혀 다른데, 어우.”


심사위원들은 <어느 따분한 날>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간간이 대화를 나누었다.


“하아.”

“진짜 잘하네요.”

“졌어, 우리.”


노래가 끝나자 언클리셰 멤버들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완이 어둠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서희와 은별이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


노래를 들으며 피식피식 웃던 참가자들이 함성을 질렀다.

지노가 마이크를 높이 들고 흔들어 함성소리를 가라앉혔다.


“하하. 이번엔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러시죠.”


지노는 인길의 답을 듣고 곧바로 심사에 들어갔다.


“<어느 따분한 날>이랑 <망한 하루> 잘 들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여우비 팀에게도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어느 따분한 날>은 아무래도 수휘 심사위원 디스 같은데. 맞아요?”

“아니요. 따분하다는 단어의 의미를 수휘 심사위원님과 저희가 다르게 해석한 것뿐입니다.”

“알겠습니다. 근데 저는 이 노래 들으면서 왜 사이다 한 병을 원샷한 것 같죠? 트림이 아주 시원하게 나왔습니다. 후후후.”


수휘가 지노의 모습을 미소 띤 눈으로 바라보다 대꾸했다.


“저는 디스 당한 것 같지 않은데요. 힙합에서는 겨우 이 정도 갖고 디스라고 합니까?”

“여우비가 의도했든 안 했든 이건 디스 맞습니다. 후후후.”


서희는 <어느 따분한 날>의 가사를 보완한 후 수휘에 대한 디스처럼 들릴까봐 걱정했는데, 정완은 디스 맞으니까 반드시 이대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지노는 심사를 이어갔다.


“여우비도 가사를 쓰는 팀이다 보니 아무래도 제가 할 말이 많네요. 제가 디스라고 생각한 이유는 뭐냐. <어느 따분한 날>을 전현수 군이 불렀을 때 수휘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샘플링으로 떠서 ‘따분하다’의 사전적 의미랑 비교하고, 따분한 거랑 의욕이 없는 게 다르다고 했던 부분을 콕 짚어서 지적했어요. 그래서 ‘수휘님은 따분하심 기타 들고 버스킹 하시겠지.’ 이게 나온 건데, 실제로 수휘 심사위원이 딱 이런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가사 보자마자 ‘아, 이 양반은 진짜 따분했던 적은 없었겠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거기에 ‘서희년은 따분해서 기타 든 분 디스 킹 하는 거지.’라고 붙여버렸잖아요.”

“그때 서희 양은 분명히 연주자를 가리켰는데요.”

“그럼 수휘 심사위원한테 대놓고 손가락질하겠습니까?”

“···.”

“거기다 수휘님, 서희년, 이름까지 라임이 됐어요. 까딱 잘못하면 ‘수휘년’이라고 들리게 말이죠?”


지노의 말에 수휘가 똥 씹은 표정을 지었고 객석의 참가자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망한 하루>도 따분한 분위기인 건 마찬가지인데, 너무 따분해서 선배 만나러 나갔다가 짝사랑하는 사람한테 오해 받고 마는 상황이 돼 버리죠. 그래서 두 곡이 하나의 흐름으로 들리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저 친구들이, ‘수휘가 따분을 알아?’”

“큭!”

“이런 심정으로 이 가사를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노의 난데없는 광고 패러디에 객석 참가자들이 웃음을 삼켰다.


“거기다 두 곡에는 그냥 따분함만 있는 게 아니에요. 서희 양의 랩은 미흡한 부분이 있어요. 일단은 힙합크루 같은 데서 활동하거나 우리 회사에서 트레이닝 받으면 해결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희 양의 랩이 멋지게 들린 건 정확한 딜리버리와 가사의 임팩트 때문이었죠. 보통은 가사에 기피하는 단어도 있게 마련인데 이 두 곡에는 그런 게 없었죠. 자기 자신을 ‘년’이라고 낮추거나, ‘교미’, ‘이년아’, 심지어 수학 용어인 ‘서로 소’까지 갖다 썼죠.”

“아프리카 사자 교미가 포인트이긴 했죠. 근데 서로 소는 공약수가 없다는 뜻 아닌가요?”


수휘의 질문에 지노가 답했다.


“아니요. 여기서는 집합에서의 의미로 교집합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따분한 것과 의욕 없는 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오오. 역시 퀴즈왕.”

“멍청한 퀴즈왕이라고 한 게 누구였죠?”

“까르르르!”

“그리고 은별 양의 보컬에서는 힘이 느껴졌는데 불안한 부분도 있었어요. 그래도 두 사람의 밸런스가 좋아서 노래는 잘 살렸습니다. 여우비 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노와 수휘의 만담 같은 대화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고, 여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작가의말


당분간 주 3회 연재하겠습니다. 연재요일은 화, 목, 일 입니다.
예고 없는 연참도 있을 수 있습니다.

***

이번 파트는 1만 자가 넘네요.
2회 연재분으로 찢을 수 없어서 한 번에 올립니다.
6천 자 이상은 무조건 올린다는 약속은 무조건 지키겠습니다.

한참 쓰다 잠시 왔으니 또 쓰러 가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코로나19 조심하시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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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2 f6******..
    작성일
    20.04.13 15:07
    No. 1

    작곡이 관심분야이다보니 너무 재밌게 잘 읽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0 진사로
    작성일
    20.04.14 00:50
    No. 2

    f6052_ejaehoon0514님! 닉넴이 긴데 재훈님이라고 부르면 됩니까?
    관심분야에 관련된 글이라니 다행이네요. 열심히 쓸테니 틈틈이 들러주세요.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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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Audition) 2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Aphrodite. 풀밭, 꽃, 그리고 꿀 20.06.16 168 10 21쪽
24 Round 4. 너를 잊지 않았듯 +2 20.06.14 155 9 24쪽
23 Burden. 그대에게 옮은 감기 20.06.09 164 9 27쪽
22 Clue. 또 다른 오디션 +4 20.06.04 168 10 25쪽
21 Slough. 그녀의 취미 20.05.31 162 6 31쪽
20 Tears. 한계가 아닌 줄 알았는데 +6 20.05.28 182 11 23쪽
19 Abyss. 눈물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때 +6 20.05.24 178 9 22쪽
18 Restart. 욕심이 되어버린 밤 +2 20.05.21 194 9 27쪽
17 Separation. 신데렐라처럼 +4 20.05.17 185 11 24쪽
16 Friendship. 내일 일어날 일 +4 20.05.14 194 8 23쪽
15 Limitation. 임무를 마친 자의 여유 +2 20.05.10 191 11 21쪽
14 Round 3. 자신과의 싸움 +4 20.05.07 199 11 23쪽
13 Preparation. 조금 덜 치열해도 괜찮은 곳 20.04.30 210 10 29쪽
12 Wedding. 순정남녀가 순정부부로 20.04.23 227 9 29쪽
11 Goodness. 이럴 줄 알았으면 +2 20.04.21 224 8 23쪽
» Round 2. 치열하게 따분한 날 +2 20.04.12 203 8 23쪽
9 Deeper. 녹음이 잘 되지 않는 이유 +8 20.04.09 237 11 22쪽
8 Fangs. 그녀의 실수 +8 20.04.07 233 12 28쪽
7 Round 1. 화살은 누가 쏜 걸까 +4 20.04.02 226 11 29쪽
6 Reoccurrence. 묻고 싶었던 말 +4 20.03.31 242 11 31쪽
5 Suggest. 좋은 제안이지만 +2 20.03.29 240 13 29쪽
4 Preliminary 2. 비 오는 아침 +2 20.03.24 267 11 29쪽
3 Preliminary 1. 저 사람들 또 +2 20.03.22 268 10 30쪽
2 Making. 만들어야 할 게 노래만은 아닌 팀 +4 20.03.15 354 13 28쪽
1 Prologue. 오래 전 약속 +4 20.03.15 714 16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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