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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2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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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3
추천수 :
623
글자수 :
659,060

작성
20.05.14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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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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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Friendship. 내일 일어날 일

DUMMY

서희와 은별은 커피를 다 마시고 들떴던 정신을 추스른 후 객석으로 올라왔지만, 곧바로 12번 팀의 경연이 끝나 점심시간이 되었다.

두 사람이 휴게실에서 컵라면을 놓고 도시락을 먹던 도중에 서희의 전화가 진동했다.

서희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은별에게 전화를 보여준 후 통화 버튼을 눌렀고, 은별도 커진 눈으로 서희의 옆에 달라붙어 스마트폰에 귀를 가까이했다.


“여보세요. 아리?”

[축하해! 진짜 잘됐다. 앞으로 매일 보겠네.]

“고마워.”

[너희 덕분에 나 되게 기분 좋아졌거든? 정말 잘됐어.]

“다행이다. 근데 어떻게 알았어?”

[여원쌤 매니저한테 너희 결과 보내달라고 했거든. 행사 하나 끝나고 와보니까 우리 회사에 캐스팅됐다고 해서 완전 좋았어.]

“응.”

[저번에 내가 여원 선생님한테 여우비 캐스팅해 달라고 말했는데 선생님이 단칼에 거절하셨거든. 자기는 인사 청탁 같은 거 안 받는다고.]

“그랬어?”

[너희 노래는 아직 못 들어봤는데 영상 받는 대로 꼭 볼게. 그리고 미안했어.]

“어? 뭐가?”

[신행 갔다 오자마자 연락하려고 했는데 정신없이 스케줄 하다가 연락 못했어. 미안해.]

“으응! 아니야. 그날 진짜 고마웠어.”


사실 아리는 신혼여행지에서도 서희와 통화하고 싶었다.

이에 대해 우진은 정완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고, 아리는 조금 더 고민해보고 전화하기로 했다.


어쨌든 아리의 목소리는 첫 통화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밝았다.

그래서일까. 서희의 말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했다.


“신혼여행은 잘 다녀왔어?”

[응.]

“우진 씨도 잘 있지?”

[응. 근데 나 아무래도 개인 스케줄 만들까봐.]

“어? 왜?”

[어제 아침에 이 인간이랑 싸우고서 하루 종일 같이 스케줄 하니까 짜증나더라고.]

“뭐어?”


서희뿐 아니라 그녀의 스마트폰에 얼굴을 맞대고 통화를 듣던 은별의 눈까지 커졌다.

서희는 순정남녀 팬들 사이에서 아리가 ‘리틀 담여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결혼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 인간’이라니.


“싸우긴 왜 싸워. 식장에서 그렇게 좋아한 게 얼마나 됐다고.”

[내가 자다가 너무 더워가지고 깨 보니까 이 인간이 나한테 아주 딱 붙어 있더라고. 그래놓고 지는 덥다고 나한테 이불 다 떠넘겼더라?]

“···어?”

[땀띠가 하필 목이랑 가슴에 나서 노래할 때마다 되게 간지러웠거든. 사람들 앞에서 긁을 수도 없고.]

“헐.”

“풉!”


서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천장을 보았고, 은별은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참았다.


“염장을 이런 식으로 지를 수도 있네. 그러니까 가슴에 땀띠가 나도 신랑은 껴안고 자야 한다 이거지?”

[아니! 이 인간이 지 덥다고 나한테 이불 다 떠넘겼다니까?]

“그러니까 뜨거운 신혼에게 이불 따위 필요 없다는 말이지.”

[아니거든? 이 인간 나한테 오늘까지 혼났어. 스킨십 못하게 하니까 아예 대놓고 삐치더라.]


서희는 입을 비죽 내밀었지만 은별은 이 말을 듣고 씁쓸히 웃었다.

정완은 늘 자신의 혼전순결 신념을 존중했고 1박 2일 여행을 가서 한 침대에 누워 손도 잡지 않고 하룻밤을 보낸 후에도 표정조차 바꾼 적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힘들어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지 말고, 다음부터 더우면 이불이고 신랑이고 뻥 차버려.”

[풉! 그래. 그래야겠다.]

“지금 뭐해? 토요일이라 바쁘지?”

[용인에서 행사하고 이동하고 있어. 여주에 결혼식 가는 중이야.]

“그럼 지금 우진 씨 옆에 있는데 그런 소릴 한 거야?”

[뭐 어때. 이 인간 고생 좀 더해야 돼.]

“여긴 지금 점심시간인데, 밥은 먹었어?”

[여주에서 먹을 거야.]

“배고프겠다. 든든히 먹고 다녀.”

[응. 고마워.]

“뭘.”

[아! 서희야.]

“어?”

[회사 근처에 우리가 쓰던 숙소 있는데, 앞으로 너희들이 거기 쓰면 되겠다. 내가 얘기해놓을게.]

“숙소?”

[응. 우리 며칠 전에 이사했는데, 거기 아직 우리 짐 다 안 뺐어. 연습하다보면 힘들고 그래서 집에 가기 싫을 때 있거든. 그럴 때 거기서 쉬면 돼. 아예 살아도 되고.]

“그래도 돼?”

[어차피 캐스팅된 애들한테 숙소는 다 주거든. 우리 숙소가 다른 데보다 조금 더 좋아.]

“어. 고마워.”

[그리고 너희들은 화목토에 연습할 거야. 다른 날은 나와도 되고 안 나와도 되는데, 애들 보니까 특별한 일 없으면 평일엔 나오더라고.]

“혹시 내일도 가도 돼?”

[응. 연습실은 항상 들어갈 수 있고 구내식당은 일요일에도 해. 난 일요일이 조용해서 연습 더 잘 되더라. 요새는 못 가지만.]

“내일 당장 가야겠다. 회사도 구경하고 밥도 먹어보게.”

[그래. 우린 모레 볼까? 난 내일 스케줄 꽉이라서 회사 못 가거든.]

“와아! 좋지.”

[이 인간 골방에 던져놓고 우린 같이 차 마시고 놀자.]

“어. 진짜?”

[아! 다 왔나봐. 전화 끊어야겠다.]

“응. 노래 잘하고 많이 축하해드려. 밥 잘 챙겨먹고.”

[고마워. 내일 전화할게.]

“응.”


서희는 전화를 끊으며 입을 떡 벌렸다.

당장 내일이 <C-POP Artist season 5>의 첫 방송이지만, 조금 전까지도 그녀는 제 최근 일상이 단지 연습과 경연, 평가의 반복일 뿐 연예인이 되는 과정이라는 사실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진과 아리가 자신을 결혼식에 초대한 것도 순전히 우진이 정완과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리와의 첫 통화를 스스럼없이, 며칠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와 이야기하듯 마치고 나니 갑자기 주위의 뭔가가 달라져 보였다.


“신기하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랑 친구 먹고 통화를 다 하네?”

“그러니까요.”


서희의 시선이 다시 천장으로 올라갔다.


“우린 PD님한테 큰 선물을 엄청 많이 받았네.”

“그렇죠.”

“지금껏 나한테 이만큼 해준 사람은 부모님 말고 없었어. 아무 대가도 없이···. 이걸 어떻게 갚지?”


은별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했다.


“난 갚을 방법 있어요.”

“뭔데?”

“언니요.”

“어?”

“난 PD님한테 언니 주고 땡 칠 거예요. 나머지는 언니가 알아서 하세요.”

“뭐?”


눈이 마주쳤다.

서희는 흔들렸고 은별은 담담했다.


“다른 여자라면 몰라도 언니라면 난 마음껏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보다 착하고 예쁘고 그 사람 많이 좋아하니까.”


서희는 은별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서희와 은별은 여원의 뒤에 앉아 다른 참가자들을 관찰하고 각자의 수첩에 적는 한편, 경연이 끝날 때마다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정완의 당부가 아니어도 과제는 두 사람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경연이 끝난 후 3라운드 합격자 스무 팀은 캐스팅된 회사에 따라 구분된 장소로 안내되었다.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된 팀은 여우비를 비롯하여 혼성 듀엣 ‘하트헤르’, 인디뮤지션 윤도진, 소울 보컬리스트인 선우예린과 작사가 양미란이었다.

서희와 은별은 미란을 사이에 앉혀 놓고 차를 마시며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었다.


“2차 예선에서 너 대단했어. <Without You>(이미쉘) 진짜, 와아.”

“거기다 <검은 하늘>이었나? 자작곡도 진짜 좋았고.”

“언니들 노래가 훨씬 좋았죠.”

“잠깐만. ···예린아!”


은별은 말없이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던 예린을 데려와 자기 자리에 앉혔고, 하트헤르의 여성 보컬인 박지혜도 이들에게 왔다. 팀원 일곱 명 중 남은 두 남자들 역시 멀뚱거리다 나란히 앉아 이야기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들어와 이들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의 매니지먼트 파트장 민운형입니다. 담여원 부대표님 매니저예요.”

“와아아!”

“우리 회사에 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와아아아!”

“먼저 이거 받으시고 계약서 작성 부탁합니다. 작성 끝나면 부대표님 모셔올게요.”

“네!”

“감사합니다!”

“와아아!”

“아니 제, 제가 뭐라고 이러십니까들···.”

“요새는 매니저가 대세예요!”


운형은 팀원들의 환호에 머쓱해 하며 서류파일을 나누어 주었다. 거기에는 매니지먼트 위탁 계약서와 함께 회사 출입증, 사내수칙, 여원과 직원 몇의 명함 등이 있었다.

비록 여우비 등 다섯 팀이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되었다고는 하나 이들의 현 소속사는 엄연히 CBC 방송국이다. 이들이 뮤컬트에 출근하는 것은 CBC가 이들의 트레이닝을 회사에 위탁하는 개념이며, 이들에 의해 사내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모두 방송사에서 부담한다.

이 계약서는 방송국과 기획사 사이의 법적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지만, 참가자들은 이 계약서로 인해 소속감을 얻고 전속계약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다. 이것은 회사 측에도 이미지와 실적 향상, 인재 조달 면에서 매우 긍정적이었다.


“방송사와의 계약기간은 내년 3월 첫 주까지지만 그 전에 탈락하면 그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회사와 전속계약을 할 수 있죠.”

“아아.”

“우리 회사에서는 계약기간 동안 여러분들에게 숙소를 제공합니다. 이건 여러분 집이 서울이든 독도든 마찬가지예요. 가급적 2인 1실 권장 드리고, 룸메이트 정해서 지원실에 알려주세요. 명함에 있는 연락처는 꼭 저장해 두시고 트레이닝하는 날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쪽으로 연락하면 돼요. 저희 회사가 외진 곳에 있어서 대중교통 이용하기는 불편할 텐데, 지하철역 도착하기 10분 전에 판윤길 씨한테 연락하면 픽업하러 오실 겁니다. 윤길 씨가 연락이 안 되면 마정희 팀장한테 연락하고요.”

“네!”

“그리고 여러분들은 앞으로 화, 목, 토에 트레이닝을 받게 됩니다. 오전은 9시에서 12시, 오후는 2시에서 5시, 야간은 7시에서 10시까지인데 그 중에 한 타임씩 정해서 부대표님 오시면 말씀드리세요. 그리고 토요일에는 오후 3시에 전체 미팅이 있을 예정이라 오전 팀도 그때까진 있어야 하고, 오후 팀은 트레이닝 하다가 미팅하고 또 하면 됩니다. 이해되시죠?”

“네.”

“다른 날짜에는 자율 연습이니까 안 와도 돼요. 연습실은 24시간 개방이고, 빈 연습실은 항상 있겠지만 없으면 지원실에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출입증은 개인별로 한 장씩인데, 노란색은 2층까지만 들어갈 수 있고 파란색은 2층이랑 3층 모두 들어갈 수 있어요. 3층에 녹음실이 있어서 그렇고, 여우비랑 하트헤르 팀에는 파란색 한 장씩만 드렸어요.”

“감사합니다.”


서희는 짐짓 고개를 끄덕였지만 3층 출입증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녹음실에 들어간다고 해도 장비 하나 만질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운형은 팀원들로부터 계약서를 모두 받은 후 말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어요. 부대표님 오시면 트레이닝 일정 알려드리고 말씀 들으시면 됩니다. 부대표님 오늘 힘드셨으니까 감안해 주시고요.”

“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도 잘해주셨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주셔서 부디 우리 회사를···.”

“운형 씨 때문에 나 점점 더 힘들어지는데요?”

“···!”

“까르르르!”


여원은 아까부터 운형의 뒤에 서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팀원들은 그 모습을 다 보면서도 여원의 ‘쉿!’ 동작 때문에 모른 체했던 것뿐이다.


“이제부턴 내가 얘기할게요.”

“예. 차 대기하겠습니다.”

“쉬고 있어요. 20분쯤 걸려요.”


운형이 대기실을 나가자 여원이 의자를 한가운데에 끌어놓고 앉았다.


“올해도 멤버들이 좋네.”

“감사합니다!”

“피곤하니까 빨리 하자. 나 무서운 여자 아니야. 알지?”

“네!”

“트레이닝할 시간은 정했어? 아, 운형 씨가 상의할 시간도 안 줬네?”

“까르르!”

“지금 상의하고, 다 정한 팀은 손들고 얘기해.”


상의 결과 하트헤르는 오전, 미란과 도진은 오후, 여우비와 예린은 야간으로 정해졌다.

여원이 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루 종일 연습하고 밤새도록 연습하고, 이게 좋은 게 아니야. 목도 쉬면서 기억할 시간이 필요해. 음악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는 것도 좋을 거야. 알았지?”

“네!”

“우리 회사 입장에서 너희들은 복덩어리야. 너희들한테 눈치 줄 인간들 없으니까, 회사에선 밥 제때 다 먹고 맛있는 반찬 싹 긁어. 휴게실에서 드립커피랑 과일주스 물처럼 마시다가 소파에서 자도 되고 숙소에서 보일러 빵빵하게 켜놔도 돼.”

“감사합니다!”

“아니야. 어차피 너희들이 우리 회사에서 쓰는 비용은 전액 지원되는데, 씨팝은 벌써 광고 완판됐어.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많이 써봤자 KP보단 적어. 닝기리 오빠는 애들 캐스팅하자마자 댄스 연습실 바닥부터 바꾸거든.”

“까르르르!”

“너희들 덕분에 회사 운영비가 절감되는 거야. 그러니까 사내에서 아무 걱정 말고 어깨 쭉 펴고 다니고, 필요한 거 있음 지원실에 다 말해. 대신 당분간은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놀아도 회사에서 놀아. 알았니?”

“네!”

“오늘 중으로 내 폰에 각자 이름 써서 문자 보내. 사흘 뒤에 회사에서 보자. 연습 30분 전에는 출근해야 해. 이 밤에 어디 새지 말고, 노래는 생각도 하지 말고 집에 가서 그냥 자. 여우비만 남고 해산!”

“감사합니다!”


다른 팀원들이 모두 나가자 여원은 출입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앉아.”

“네. 선생님.”


여원은 유난히 긴장한 은별을 보고 픽 웃었다.


“은별아.”

“네, 선생님.”

“쫄지 마. 나 무서운 여자 아니야. 알았니?”

“네.”

“네가 나한테 지적받은 건 기본기 문제가 아니야. 전에 장점이었던 게 안 느껴져서 그랬던 거지. 그 정도는 금방 좋아져. 그리고 내가 그렇게 지적을 해놔야 다음에 개선됐을 때 더 커 보이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너희들한테 궁금한 것도 있고 할 얘기도 있어서 남으라고 했어.”


이 말에 은별은 긴장을 풀지 못했고 서희마저 긴장했다.

여원은 그걸 눈치 채고 두 사람에게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았다.


“아까 너희랑 같이 있던 잘생긴 애가 SS야?”

“네? 네.”

“걔가 너희 얼마나 가르친 거야?”

“7월 중순부터요. 전에 다녔던 학원에서 저한테 보컬 가르쳐줬는데, 씨팝 홍보영상 보고 저희끼리 듀엣 할까 싶어서 트레이닝 부탁했어요. 다음 날부터 매일 했고요.”

“하루에 몇 시간이나 했어?”

“기본 네 시간이었는데 보통은 한두 시간은 더 했어요.”


서희는 정완과의 트레이닝 과정을 설명했다.

한 곡 부를 때마다 일일이 녹음하여 여러 번 들어가며 의견을 나누고, 쉬지 않고 여러 곡을 부르는 훈련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노래한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듣고 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휴가 땐 노래도 못하게 했어요. 쉬는 것도 훈련이라고.”

“목 컨디션 많이 따졌어?”

“네. 하 PD는 녹음하다가도 목 아프다고 하면 바로 노래 멈추고 물 엄청 먹이고 말도 소곤거리게만 했어요. 그땐 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든가, 여러 노래 듣고 토론했고요.”

“그래? 으응. 우리 씨바는 SS가 지 제자라던데, 어째 그 인간한테 배운 사람 같지가 않네.”

“···!”

“그 인간은 다른 사람들한테 욕질이나 할 줄 알지, 토론이나 소통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거든. 지가 최곤 줄 알아. 생긴 거 빼고 볼 것도 없는 인간이.”


여원의 말에 서희의 눈이 커졌다.

정완이 채병안 PD에 대해 가르친 게 없다고 잘라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근데 걔 좀 대단하던데?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

“뭐가···.”

“너희들이 실수 안 했음 정말로 내가 캐스팅 안 했을 것 같아.”

“···!”

“그리고 그 말 좀 좋던데? TYK에서 트레이너 백 명을 영입해도 나는 없다고?”


서희와 은별의 말문이 막혔다.

설마 여원이 그 대화까지 들었을 줄은 몰랐다.


“나 귀 밝아. 험담도 아니고 칭찬을 하는데 무조건 들어야지 않겠어?”

“···.”

“걔가 내 방송 모니터했나 보네. 방송 나갈 때마다 프로그램 분위기 맞춰서 창법 바꿨으니까. 그리고 자기평가 얘기까지 하던데.”

“네.”

“걔 몇 살이야?”

“스물아홉이요.”

“인디밴드에서는 기타 쳤고 고등학교에선 클래식 피아노 전공했다면서 보컬트레이닝은 또 어떻게 했대?”

“노래도 잘하고, 대학에서 보컬트레이너 과정도 배웠다고 들었어요.”

“무슨 종합선물세트 같네. 생긴 건 영화배우에다.”

“네.”

“띠동갑 연하에 잘생긴 남자애가 남편보다 나를 더 잘 안다 이거지? 와아. 간만에 설레는데?”


여원은 제 말에 표정이 묘해진 서희를 보고 픽 웃었다.

그녀는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는 정완의 말만큼은 분명히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희들은 당장 내일부터 일이 터질 거야. 그래서 지금 얘기하는 거야.”

“···?”

“너희 내일 방송에 나가. 엔딩에.”

“네?”


<C-POP Artist>의 손봉규 PD는 첫 방송에는 항상 싱어송라이터들을 등장시켰고, 엔딩은 그 중 화제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팀을 넣어 왔다. 시즌 2의 스페이시(Spacy)나 시즌 3의 순정남녀가 그랬다.

첫 방송의 엔딩을 장식한 팀은 검색어 및 음원 순위에 예외 없이 들었을 뿐 아니라 Top 10만 설 수 있는 생방송 무대에도 대부분 진출했다.


“씨팝 첫 방송은 항상 싱어송라이터 판이었어. <비 오는 아침>은 충분히 엔딩에 내보낼 만 해.”

“감사합니다.”

“난 아무것도 안 했어. 봉규가 알아서 한 거지···. <비 오는 아침>은 내일 밤에 순정남녀 라디오프로에도 오프닝 곡으로 나갈 거고, 월화드라마에도 삽입곡으로 들어간대. 거기 음악감독이 분위기 딱 맞는 신 있다고 입 째졌더라고.”


순정남녀가 본선 1라운드에서 부른 <편의점 별곡>도 많은 화제를 낳았고 음원 순위에 들었지만 같은 날 라디오프로에 나오지는 않았다. 따라서 여원의 말은 CBC 방송국에서 참가자들을 지속적으로 띄움으로써 화제성을 유지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진과 아리가 진행하는 라디오프로 <순정남녀의 편안한 밤>에서는 <C-POP Artist>가 방송되는 동안 거기에서 나온 노래를 많이 방송할 예정이며 노래와 관련된 뒷얘기도 전할 것이다. 아리가 그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과 폭넓게 교류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CBC에서는 씨팝 애들 많이 밀어 줘. 자기네들이 직접 인지도 만들고 거기에 네 기획사가 동참하는 구조니까. 특히 씨팝은 신선한 얼굴 찾으려고 드라마랑 라디오 PD들도 다 봐. 솔직히 그 노래에 너희들 비주얼이면 어디서든 써먹겠다고 혈안이 돼 있겠지.”

“···.”

“너희들은 지인들한테 연락 많이 올 거야. 되게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연락 적당히 받고, 혹시 SNS 해?”

“다 닫았어요.”

“그래. 가급적이면 씨팝 끝날 때까지는 하지 마. 지금은 메시지에 일일이 대응한다고 좋을 게 없어. 기사 떠도 댓글은 안 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고.”

“명심하겠습니다.”


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서서 서희와 은별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오늘 수고했어. 회사에서 보자. 갈게.”

“선생님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서희와 은별은 여원을 보내고 조금 지나서 미디어센터 스튜디오를 나왔다. 10시 30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문득 둘의 마음이 급해졌다.


“PD님한테 늦게 나온다고 연락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러니까요.”


둘은 뛰듯이 걸어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두워진 주차장 한가운데에 정완의 자가용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두 사람이 가까이 온 후에야 정완이 차에서 내렸다.


“고생 많았어. 타.”

“많이 기다리셨죠?”

“다른 애들은 다 나오는데 너희들만 안 나와서 누구한테 잡혔나보다 했지. 3라운드 끝나자마자 첫방은 처음이라 제작진도 정신없겠지.”


서희와 은별이 차에 타자마자 정완은 차를 출발했다.


“지금 시간 있어?”

“네.”

“학원으로 갈게. 커피 한 잔 하자.”

“네.”

“근데 PD님, 저희 내일 방송에 나온대요. 엔딩으로.”

“잘 됐네.”


서희는 여원과 나누었던 대화를 정완에게 모두 이야기했고, 이어서 은별이 운형으로부터 들었던 말을 전했다.

여원이 정완에 대해 했던 이야기 역시 모두 나왔다.


“제가 보기엔 선생님이 PD님 트레이닝 방식에 만족하신 것 같았어요.”

“난 그분이 추구하시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해. 그래서 따라했는데 많이 부족했지. 너희들 면전에서 나를 까지는 못하셨을 거고.”

“깔 게 있어요?”

“나야 모르지. 너희들이 전문적으로 훈련받으면서 알아내야 하지 않을까? 내리자.”


세 사람은 커피를 손에 들고 인디펜던트 학원에 올라갔다.

서희는 주위를 둘러보다 여기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생각했다.


“여기 안 왔으면 아쉬울 뻔했어요.”

“쌀쌀하면 히터라도 켤까?”

“아니요. 괜찮아요.”


서희와 은별이 출근할 때마다 학원은 깔끔했고, 어제 출근할 때 있었던 물건은 오늘 출근해도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정완은 학원에 나오면 가장 먼저 모든 방의 사진을 찍었고, 트레이닝을 마치고 서희와 은별을 데려다주고 돌아와 자기 일을 마친 후 학원을 청소하고 모든 물건을 사진대로 돌려놓은 뒤에야 퇴근했다.

승철과 태호가 여우비가 녹음실에서 노래하는 영상을 보고서야 세 사람이 학원의 시설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만큼, 정완은 세 사람이 사용했던 티가 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미소 띤 얼굴로 학원을 둘러보던 정완의 눈에 짙은 회한이 어렸다.


“서희야. 파일 줄 게 있어서 그런데 USB 좀 줄래?”

“네? 네.”

“며칠 뒤에 돌려줄게.”


정완은 서희에게 USB 메모리를 받아 넣고 커피를 마셨다.

서희가 말했다.


“PD님 저희한테 줄 거 다 주시지 않았어요?”

“보너스쯤으로 생각해.”


서희는 ‘그럼 그냥 톡으로 보내시지요.’라고 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정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본 후 녹음을 실행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지금부터는 중요한 얘기라 녹음할게.”

“네.”

“서희는 과제 있어.”

“뭔데요?”

“리아(Riaa)의 <눈물>이라는 노래인데, 알아?”


서희가 고개를 저었고 정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랑 감성에서 네 스승 같은 노래야. 반드시 외우고, 노래 속 주인공이 어떤 마음으로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지 느껴봐. 내가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꼭 했으면 해.”

“네.”

“그리고 앞으로 회사 사람들이랑 작사에 대해서 많이 얘기해. 매아리야 친구니까 알아서 할 거고, 한미연사의 명유경이랑 글래드의 박혁민도 가사 잘 쓰더라.”

“네.”


정완은 잠깐 틈을 두고 은별을 보며 말했다.


“은별이는 알 거야. 내가 너랑 만날 때 대학가에는 안 갔다는 거.”

“네.”

“그나마 난 거기서만 활동했으니까 다른 데 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너희들은 TV에 나오는 순간부터 너희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깔리는 거야. 대부분은 호의적이겠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서희와 은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많은 데 다닐 때 조심해. 특히 밤에.”

“네.”

“그리고 뮤컬트 소속이라는 거 잊지 말고 행동해. 통화는 항상 녹음해 놓고,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 같으면 그것도 녹음해 놔. 나중에 딴소리할지 모르니까.”

“알겠어요.”


정완은 은별의 또랑또랑한 대답을 듣고 땅을 바라보며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작가의말

문피아에 오랜만에 작품을 올리다보니 잊어버렸던 게 많네요..

이맘때는 공모전의 시기죠.


이미 연재중인 작품은 재연재하지 않는 이상 안 된다니, <오디션2>를 재연재하면 독자분들께 죄송하고...

그래서 쓰다가 두었던 작품 하나를 공모전에 응모하고 말았습니다.


로맨스&SF 미래물 판타지 <마지막 선물>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모두 쓰고자 했던 판타지 작가로서의 목표가 이 작품으로 인해 완성될 겁니다.

다만 이 작품은 제가 쓸 미래의 여러 이야기 중 시작일 뿐입니다.


근데 이 작품은 완결까지의 계획이 15만 자인데, 공모전 최소기준에 딱 맞아서...

그리고 두 작품 동시연재는 몇 년 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써야겠습니다.

<마지막 선물>에 응원과 댓글, 선작 등등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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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욱일302
    작성일
    20.05.14 00:59
    No. 1

    정완은 완전 쪽집게 과외선생님이네요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건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0 진사로
    작성일
    20.05.14 22:13
    No. 2

    정완은 음악으로는 모르는 게 없는 캐릭터죠..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2 평온하즈아
    작성일
    20.05.18 07:59
    No. 3

    마지막선물 보러 갈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0 진사로
    작성일
    20.05.18 12:38
    No. 4

    평온하즈아님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오디션2랑 다릅니다. 주인공들이 30대 후반이고 서로를 이미 기다릴만큼 기다린 상태예요.
    사이다까지 오래 안 걸릴 겁니다 그리고 제가 쓴 로맨스물 중 이게 수위가 제일 높아요..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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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Aphrodite. 풀밭, 꽃, 그리고 꿀 20.06.16 168 10 21쪽
24 Round 4. 너를 잊지 않았듯 +2 20.06.14 153 9 24쪽
23 Burden. 그대에게 옮은 감기 20.06.09 164 9 27쪽
22 Clue. 또 다른 오디션 +4 20.06.04 166 10 25쪽
21 Slough. 그녀의 취미 20.05.31 162 6 31쪽
20 Tears. 한계가 아닌 줄 알았는데 +6 20.05.28 181 11 23쪽
19 Abyss. 눈물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때 +6 20.05.24 177 9 22쪽
18 Restart. 욕심이 되어버린 밤 +2 20.05.21 193 9 27쪽
17 Separation. 신데렐라처럼 +4 20.05.17 184 11 24쪽
» Friendship. 내일 일어날 일 +4 20.05.14 193 8 23쪽
15 Limitation. 임무를 마친 자의 여유 +2 20.05.10 190 11 21쪽
14 Round 3. 자신과의 싸움 +4 20.05.07 199 11 23쪽
13 Preparation. 조금 덜 치열해도 괜찮은 곳 20.04.30 209 10 29쪽
12 Wedding. 순정남녀가 순정부부로 20.04.23 225 9 29쪽
11 Goodness. 이럴 줄 알았으면 +2 20.04.21 223 8 23쪽
10 Round 2. 치열하게 따분한 날 +2 20.04.12 201 8 23쪽
9 Deeper. 녹음이 잘 되지 않는 이유 +8 20.04.09 237 11 22쪽
8 Fangs. 그녀의 실수 +8 20.04.07 233 12 28쪽
7 Round 1. 화살은 누가 쏜 걸까 +4 20.04.02 225 11 29쪽
6 Reoccurrence. 묻고 싶었던 말 +4 20.03.31 242 11 31쪽
5 Suggest. 좋은 제안이지만 +2 20.03.29 239 13 29쪽
4 Preliminary 2. 비 오는 아침 +2 20.03.24 266 11 29쪽
3 Preliminary 1. 저 사람들 또 +2 20.03.22 267 10 30쪽
2 Making. 만들어야 할 게 노래만은 아닌 팀 +4 20.03.15 353 13 28쪽
1 Prologue. 오래 전 약속 +4 20.03.15 714 16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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