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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2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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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85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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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59,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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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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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쪽

Reoccurrence. 묻고 싶었던 말

DUMMY

휴가가 하루 남은 토요일 저녁. 서희는 은별을 제 집에 불러 함께 저녁을 먹고 드라마를 시청했다.

은별은 서희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건조대에 걸린 빨래를 걷어서 전부 개어놓았다.


“놔두지 이걸 네가 왜 해?”

“심심해서요.”

“그러니까. 나도 오죽 심심했으면 잡채를 했을까. 그치?”

“풉! 네.”

“친구들은 불토라고 나오라는데, 나가봤자 돈만 깨지고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고 술도 싫어. 얻다 대고 씨밥바 2차 예선 붙었다고 말도 못하고.”

“네.”


서희의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은별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이 허전한 이유를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음 그냥 오늘부터 트레이닝 하자고 할 걸.”

“매일 하다가 갑자기 안 하니까 되게 이상해요.”

“내 말이.”


두 사람은 팀을 결성한 후 매일 저녁에 만났고, 함께 노래하고 토의하며 2차 예선을 통과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 큰 성과를 이뤄냈다는 점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는데,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기에 외출이 꺼려졌다.


“우리, 다음엔 어떤 노래할까?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죠.”

“PD님이 큰 틀은 잡아주시겠지?”

“오빠가 첫날 그랬잖아요. 다음부터는 미션이나 우리 의견 먼저 듣고 곡 쓰겠다고.”

“아.”


언젠가부터 서희도 은별도 트레이닝하러 올 때면 오늘은 뭘 할까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한편 이때 서희의 ‘아’는 뭔가 깨달아서 낸 소리가 아니라 ‘난 PD님이라고 하는데 넌 꼬박꼬박 오빠니?’ 같은 뜻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은별은 지금까지 정완을 PD라고 부른 적이 없다.


“PD님은 지금 뭐하실까?”

“어디서 또 고된 일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어요.”

“고된 일?”

“전에도 공연 없으면 하루짜리 일해서 일당 벌고 그랬어요. 저 중간고사 기간에 지방 공연 때문에 한 달 동안 못 만나니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놓고 건설 현장 가고.”

“그러면서 나한테는 차 기름 값도 못 내게 하시는 거야?”

“그러니까요.”

“하아.”


서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천장을 보았다.


“너 한겨울에 감기몸살 나고 생리 터졌을 때 생리대 사오고 속옷까지 빨았다는 남자도 PD님이지?”

“네.”


이때 정완은 은별의 옷을 널다 말고 ‘딱 하루만 이 속옷으로 살고 싶다.’라고 빙충맞게 말해서 안 그래도 열나던 은별의 온몸을 시뻘겋게 만들었다.

은별은 그것을 떠올리고 씁쓸히 웃었다.


“PD님은 뭐 하나 하면 아주 죽어라고 하는구나.”

“네. 오빠는 죽어라고 하는 것밖에 몰라요. 적당히, 대충, 그런 게 없어요.”

“그 성격으로 공부를 했음 하버드도 갔겠네.”


서희의 말에 은별이 조심스레 말했다.


“하버드는 아니고, 서울대랑 연세대 붙었어요.”

“어?”

“서울대 작곡과랑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둘 다 붙었는데 한터예대 간 거예요.”

“문헌정보? 음대가 아니라 문과에 붙었다고?”

“오빠 수능 때 사탐 한 과목 빼고 다 1등급이었어요.”

“뭐어? 헐!”


서희의 얼이 턱 빠졌다.

예술고등학교 학생이 서울대 작곡과에 합격한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렇다 쳐도, 당시 연세대 인문계열이면 정시 입시에서 수능뿐 아니라 논술시험까지 보았다는 뜻이다.


“고 2때 콩쿠르 우승한 뒤부터는 피아노는 거의 안 치고 기타랑 공부만 했대요. 하루에 네댓 시간이나 잤나?”

“연세대까지 붙어놓고 왜 한터예대를 갔어?”

“집에서 가깝고 전액 장학생으로 붙어서요. 연세대는 첫 학기 등록금 내기도 빠듯했대요. 2학년까지 다니고 군대 갔다가 제대하고 서울에서 밴드 하니까 대학 다닐 시간 없다고 그만뒀어요.”


서희는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2차 예선 직후 정완이 합격을 장담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헐. 죽집 대박. 그런 죽집으로 트레이닝을 하니까 우리가 붙은 거네.”

“죽집이요?”

“죽일 놈의 집중력. 그 죽집으로 너한테 그렇게 했으니까 네가 PD님을 지금도 못 잊는 거구나?”

“아니요. 잊었어요.”

“어?”

“그냥, 제 추억이 그때밖에 없는 것뿐이에요.”


서희는 고개를 돌린 은별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완도 은별도 추억만 남았다고 말하지만 혹시 서로를 잊지 못하는 건 아닐까. 서희는 그게 궁금했지만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다.



***



그 시각 정완은 한울의 집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한울과 정완은 삼겹살이 구워진 후에도 고기를 쌓아놓고만 있다가 한울의 형인 한결이 집에 오자 비로소 함께 먹기 시작했다.


“자주 좀 와.”

“제가 갑자기 바빠서요. 그리고 요새 좀 피곤했습니다.”

“알아. 안 하던 거 밤새 하는데 당연히 바쁘고 피곤하겠지.”

“예.”

“그럴수록 와서 고기도 먹고 그래. 나도 혼자 있으면 제대로 안 차려먹는데 넌 더할 거 아냐. 너 온 김에 우리도 고기 좀 먹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형이 좋아도 어떻게 우리보다 형한테 더 자주 가냐?”

“내 말이. 네가 큰형 안 게 내 덕인 거 몰라?”

“푸후후. 죄송합니다.”


정완이 정한수, 정한결, 정한울 삼형제 중 가장 먼저 안 사람은 두 살 위이며 군대 선임인 한울이었다.

한울과 정완은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 엄마를 잃은 공통점이 있어 친해졌고, 먼저 제대한 한울이 두 형을 데리고 정완을 면회하여 정완이 세 형을 모두 알게 되었다.

삼형제는 이름만 비슷할 뿐 친형제가 아닌데, 정완은 친형제처럼 사는 이들을 매우 부러워했다.


이들 중 큰형인 한수는 몇 년간 연극판에서 허드렛일만 하다가 무대에 서겠다는 꿈을 이룬 후 미련 없이 배우를 그만두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는 뮤지컬 배우 홍설하와 결혼하고 아내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재작년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수는 설하와 동생들, 정완 등 모두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노력했다. 정완이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한수인 이유가 이것이다.


한수는 암 판정 후 설하와 이혼했고, 한결이나 한울은 한수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설하와 연락한 적이 없다.

따라서 설하는 지금도 한수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뿐 아니라 암에 걸렸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얼마 전 은별이 서희에게 말한 뮤컬트 소속 뮤지컬 배우가 바로 설하다.


“넌 그 여자애들이 뮤컬트 갔으면 좋겠다고?”

“예. 걔들 미래 생각하면 그게 좋아요.”

“그러면 형수님이 아실 수도 있겠네?”

“은별이는 배우님 이름 모릅니다. 거기 간다고 해도 그땐 저랑 계약 끝이에요.”

“형수님이 물어보시면 얘기하면 되지.”


한결의 말에 한울과 정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수는 자신의 병과 죽음에 대하여 설하가 묻기 전에 먼저 말하지 말라는 유언을 동생들에게 남겼다. 당시 설하는 처음으로 조연을 맡았던 데다 뮤지컬 공연 일정이 너무 빡빡했기에 거기에만 집중하게 하고 싶어서였다.

물론 한결과 한울은 형의 유일한 유언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갑자기 음악은 왜 하는 거야?”

“솔직히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습니다. 헌데 은별이랑 한 약속이 있으니까 그러죠.”

“그걸 꼭 지켜야 하냐? 네가 그쪽 엄마한테 어떤 짓을 당했는데.”

“어머니한테 당한 거지 걔는 아니었죠. 이번에 약속 지키고 마음의 빚을 확실히 털어내려고요.”

“은별 씨랑 다시 잘해볼 생각은 없고?”


한결의 말에 정완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 정완의 전화에 서희의 메시지가 왔고, 정완이 인상을 찌푸리자 한울이 메시지를 보고 말했다.


[PD님! 저희 다음 노래 어떻게 할까요?]


“이게 왜?”

“휴가 보내라고 했더니 이런 거나 보내고 있네요.”

“심심한가보네.”

“그래서 제가 어제까지만 휴가 주려고 했는데 얘가 더 달라고 한 거예요.”

“흐흐. 걔들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한다며? 매일같이 하다가 갑자기 안 하니까 이상하겠지.”

“그거 붙었다고 다른 데 얘기하면 안 되지 않아?”

“그렇죠.”

“답답하겠네. 전화해줘.”


정완은 바로 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여보세요. PD님?]

“휴가 기간엔 노래에 대한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니까.”

[솔직히 심심해요. 은별이 불러서 밥해먹었는데 할 일이 없어요. 노래방이나 갈까···.]

“안 돼. 성대한테도 휴식 줘.”

[알아요. 근데 오죽하면 제가 PD님한테 메시지까지 보냈겠어요.]

“지금도 은별이랑 같이 있어?”

[네.]

“그럼 스피커폰으로 해서 같이 들어.”

[···했어요.]

“은별이 듣고 있어?”

[네.]


은별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완이 곧바로 말했다.


“1라운드 기성곡은 너희들이 기본 틀을 정하게 하려고 했어.”

[어떻게요?]

“지금까지 너희들이 같이 부른 노래 다 들어보고, 그 중 각자 제일 좋았던 곡 세 개씩 뽑아서 1위부터 3위까지 순위 매겨봐. 그리고 신나는 것, 잔잔하고 행복한 것, 잔잔하고 먹먹한 것, 슬픈 것 중에 어떤 게 제일 좋을지 합의해 놓고.”

[알았어요. 근데 혹시 내일부터 트레이닝 할 수 있어요?]

“없어. 지금 내가 하라고 한 것도 시간이 꽤 걸려. 푹 쉬면서 천천히 해.”

[네. PD님 지금 뭐하세요?]

“몸보신 마음보신 중이다.”

[마음보신이요?]

“형님들이랑 삼겹살 먹고 있거든.”

[헐. 맛있겠다.]

“죽은 돼지가 산 사람을 부른다. 쉬어.”

[네.]


정완이 전화를 끊자 한결이 그의 등을 툭 쳤다.


“이야. 멋진 말이네. 죽은 돼지가 산 사람을 부른다.”

“그러고 보니까 이 돼지가 형을 소환했네.”

“하하. 그러네.”

“네크로맨서 돼지, 먹자!”

“크흐! 예.”


정완은 형제와 삼겹살을 먹으면서 오랜만에 크게 웃을 수 있었다.



***



여우비의 트레이닝은 8월 13일에 다시 시작되었다.


“할 때는 힘든데 안 하니까 되게 이상하고 허전하고.”

“무슨 마약 같아요.”

“마약 해본 사람처럼 말하네?”

“아 진짜!”

“풉!”


서희는 순간 발끈했지만 자신이 이런 투덕거림을 그리워했음을 금세 깨달았다.

자신에게 한 마디 툭 던지며 미소 짓는 정완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과제부터 확인할까? 순위 어떻게 매겼어?”

“여기요.”


이전에 불렀던 노래 중 좋았던 것으로 서희는 <잘 지내고 있니>(윤미래 & 펀치)와 <그날에 우리>(어반자카파), <우울한 그날>(모성일)을, 은별은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다비치)와 <그날에 우리>, <걱정하지 마>(순정남녀)를 꼽았다.

정완은 두 사람의 선곡을 보며 한참 고개를 끄덕였다.


“교집합은 <그날에 우리>밖에 없네. 근데 죄 이별 노래야?”

“이상하게 이별 노래가 더 잘 들리더라고요.”

“그럼 먹먹하거나 슬픈 쪽이겠네?”

“신나는 노래는 부를 때나 신났지, 막상 녹음한 걸 들어보니까 그렇게 신나지 않더라고요.”

“관객들도 같이 신나야 진짜 신나는 노래라고 생각해요.”


서희와 은별이 한 마디씩 하자 정완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했다.


“그래. 좋은 전략이야.”

“전략이요?”

“너희들이 아픈 노래하면 같이 아파할 남자들은 꽤 많겠지.”

“네?”

“남성 팬 확보하는 방법은 잘 아는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은 안했거든요?”

“그래. 안했겠지. 근데 누가 뭐래도 여우비의 첫 팬은 나야.”

“네?”

“내가 팬이니 팬심대로 말한 것뿐이라고.”


난데없는 말에 두 사람의 눈이 커졌지만, 정완은 무심한 표정으로 컴퓨터를 켜며 말을 이었다.


“난 너희들이 아주 신나거나 아주 슬픈 쪽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 결국 잔잔하고 먹먹한 쪽이네.”

“네.”

“지금부터 네 곡을 들려줄 거야. 잘 들어.”


첫 곡을 듣자마자 은별의 눈이 커졌고, 서희는 미소 띤 얼굴로 입을 벌린 채 노래를 들었다.


“와아.”

“노래 좋아요. 이런 곡을 어떻게 찾아내셨어요?”

“마음에 들어?”

“네! 파트도 저희한테 딱 맞고, 랩 가사만 조금 바꾸면 될 것 같아요.”

“이걸 부르라는 건 아니야. 연습곡으로 해보려고 하는 거지.”

“어쨌든요. 이 노래 뭐예요?”

“MJ의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MJ면 차은우랑 같은 그룹이요?”

“아니. 아스트로 말고, 이분은 써니사이드라는 그룹의 래퍼야.”

“네.”

“이제 다음 노래 듣자.”


서희와 은별은 노래 제목을 듣자마자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즐겨찾기를 해두었다.

반면 정완은 굳은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 다음 노래를 재생시켰다.


전주의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자마자 은별의 커진 눈이 정완을 향했다.

이것은 그가 도저히 못 듣겠다고 한 노래였다.


“후우. 이걸 처음부터 끝까지 안 끊고 들은 건 처음이네.”


노래가 끝나고 헤드셋을 벗고 나서야 정완은 벌게진 얼굴로 참았던 한숨을 몰아쉬었다.

서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이 노래 알아요. <끝없는 사랑> 아니에요? 녹색지대.”

“맞아.”

“이게 백화점 붕괴 사고를 모티브로 만들었댔나 그랬는데.”

“응. 우리 엄마가 그 사고로 돌아가셨어.”

“···!”


서희의 눈이 커졌고 은별이 물었다.


“괜찮아요?”

“어. 난 이제 이거 다 들을 수 있겠다.”


정완은 감정을 추스르고 서희를 보았다.


“이걸 들은 건 다음 노래를 듣기 위해서야.”

“뭔데요?”

“작년 12월 18일에 관한 노래야. 서희 그날 어땠어?”

“···하아.”


은별의 커진 눈이 이번에는 서희를 향했다.

서희는 샤이니 멤버인 故 종현의 팬으로, 정완에게 트레이닝을 받을 때에도 종현의 솔로곡인 <So Goodbye>나 <데자-부>를 부를 때 가장 행복해했다. 언젠가 그녀는 정완에게 ‘종현이 결혼하기 전까지 자신도 결혼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고, 정완은 ‘그냥 네가 종현 씨랑 결혼하는 게 더 현실적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그녀가 종현이 세상을 떠난 날 어떤 마음이었겠는가.


서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쉬다가 말했다.


“<끝없는 사랑>부터 들려주신 이유 알았어요.”

“미안하다.”

“아니에요. PD님은 제가 그분 노래를 제대로 부를 정도가 돼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정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혹시 <Lonely>(종현 & 태연)예요?”

“부를 노래는 정하지 않았어. 지금 들을 노래는 <네가 남겨둔 말>(샤이니)인데 이거 부르자는 얘기도 아니야. 일단 듣자.”

“알았어요.”


세 사람은 굳은 얼굴로 한 사람이 빠진 샤이니가 부른 <네가 남겨둔 말>을 들었다.

노래가 끝난 후에도 셋은 말이 없었는데, 한참 후에야 정완이 무겁게 침묵을 깼다.


“서희 혹시 이거 영상 봤어?”

“본방 봤어요.”

“종현 씨가 빠진 네 사람의 샤이니는 방송 무대에서 이 노래를 완벽하게 불렀지. 형제나 다름없는 동료를 잃었는데 안 슬퍼서 그랬을까?”

“···.”

“그게 프로야. 종현 씨도 프로고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니까 동료들이 잘 부르길 원했겠지.”


서희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이제 마지막 곡인데, 난 이 곡 안 들을 거야. 못 들을 노래는 아닌데 듣기가 싫어.”

“네?”

“노래 다 듣고 20분간 쉬자. 헤드셋 절대 빼지 마.”


정완은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일어섰다.

노래가 시작되자 은별의 얼굴이 굳어졌고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희의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왔다.


[이건 내가 SS라는 이름으로 만든 마지막 곡이야. 미투리 밴드의 <여전히 별은 빛나는데>.]


“손끝에 닿은 별빛을 느끼며 웃는 일도 이제 마지막이겠지···.”

이 곡은 은별과의 이별을 앞둔 정완의 마음이 담긴 노래였다.


정완의 고음이 카랑카랑 울릴 때마다 은별의 입술은 질끈질끈 깨물렸다.

은별은 서희의 어깨에 기대어 <여전히 별은 빛나는데>를 끝까지 들었다.



***



다음 날 저녁, 서희와 은별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출근했다.

이날 오전 <C-POP Artist>로부터 여우비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고 연락받았기 때문이었다.


“PD님!”

“축하는 하는데 당연한 거였어.”

“치잇.”

“경연 날짜는 정했어?”

“9월 2일 오후요. 먼저 신청한 팀이 많아서 밀렸어요.”

“잘됐다.”


<C-POP Artist season 5> 본선에는 총 162팀이 진출하였으며, 1라운드는 9월 1~4일 오전과 오후에 20개 팀씩 경연하게 된다.

한편 서희의 표정이 밝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저 MJ 노래 많이 들어봤어요. 다 좋던데요?”

“그렇다니까.”

“특히 <꽃, 그리고 너> 진짜 좋았어요.”

“알겠는데 그분 노래 안 해. 절대.”


정완의 단호한 말에 서희의 얼굴이 금세 뾰로통해졌다.


“왜요?”

“그분 노래는 실습하려고 들어보라고 한 거야. 특히 듀엣에서 랩은 배워야 할 점이 많아 보였으니까.”

“그럼 경연에서 불러도 되죠.”

“그분은 랩만 했고 피처링은 여자 보컬이라 너희들이 불러도 파트가 그렇게 나뉘는데, 그렇게 부르는 순간 원곡자들밖에 생각 안 나.”

“<어땠을까>나 <눈물샤워>도 그랬잖아요.”

“그건 예선이고 이건 본선이야.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하지 않겠어?”


서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완의 말을 딱히 반박할 수 없었다.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있다는 뜻이기에 한편으로는 궁금한 마음도 생겼다.


“아, 힘들어. 잘못 걸렸네.”

“그걸 이제 알았냐? 나한텐 적당히, 대충, 그런 건 없어.”


며칠 전 은별이 했던 말을 정완이 똑같이 하자 서희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일단 스케일링(목 풀기)부터 하자. 호흡이랑 자세도 보고.”

“네.”

“플랫(b) 났어. 더 깊이 마시고. 서희 또 밀었다. 다시!”


서희와 은별은 휴가 동안 이 시간을 기다렸지만, 보컬 트레이닝은 변함없이 힘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과정 속에서도 새로운 노래를 부르며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와아. PD님은 아는 노래가 뭐 이렇게 많아요?”

“귀에 꽂힌 노래는 종이에 써 가면서 외웠거든. 그 가수나 작곡가의 다른 노래도 다 들어보고, 좋은 거 있으면 또 외우고.”

“헐.”


하나의 개념을 이해했으면 그것과 연관된 개념도 함께 이해한다. 그렇게 한 단계를 넘기면 다음 단계는 더 수월할 것이다···.

서희는 얼마 전까지 들었던 공무원 시험과목 강사의 말을 떠올렸다.


“PD님은 노래를 공무원 시험처럼 외우시네요?”

“그것도 공부인데 그래야 하지 않나?”

“와아. 역시 연대 문헌정보.”

“너희들은 대졸, 난 고졸.”


보컬의 단점을 보완하고 나면 정완은 서희와 은별을 녹음실에 들여보내어 실습곡 몇 개를 연이어 부르게 한 후 함께 노래를 들어보고 토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서희가 가장 즐겁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바로 이때였다.

그런데 다음 날 정완은 실습곡 토의를 생략하고 두 사람을 원탁에 앉혔다.


“왜요? 오늘은 <꽃, 그리고 너> 하라면서요.”

“그보다 더 중요한 상의가 있으니까.”


정완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1라운드 곡 정했어.”

“벌써요?”

“보름밖에 안 남았는데 빠른 것도 아니야. 그리고 각자한테 미안한 점이 있는데 이건 맞춰줬으면 한다.”

“뭐가요?”

“이번엔 랩이 아예 없고 보컬의 비중이 똑같아.”


정완은 서희에게는 랩이 없다는 점, 은별에게는 메인보컬로서 가창력을 보일 부분이 적다는 점이 미안했다.

하지만 서희와 은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현 씨와 관련된 이야기로 가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은별이 괜찮아?”

“알겠어요. 난 좋아요.”

“이러다보면 담여원님은 아마 은별이 비중 늘리라고 하시겠지.”

“그런 것도 생각하시는 거예요?”

“응. 그분은 듀엣에서 메인보컬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니까.”


정완은 틈을 두고 말을 이었다.


“기성곡은 <화살>(샤이니)로 하자. 첫 곡으로 불러.”

“왜요?”

“종현 씨가 만든 노래로 하고 싶었는데 서희가 느꼈던 슬픔을 표현할 만한 노래는 없었어. <상사병>(샤이니)은 괜찮은데 서희의 감정은 남자에 대한 사랑보다는 존경심 쪽인 것 같아서 가사를 다 바꿔도 제목이랑 안 맞고.”

“네.”

“마음에 화살이 박혔다. 슬픈 인연 앞에 가로막혔다···. 그게 딱 맞다고 생각했어.”

“알았어요. 저 <화살> 좋아해요.”

“은별이 이 노래 빨리 외워.”

“알겠어요.”

“그 뒤엔 자작곡 하실 거죠?”

“응.”

“<화살>이랑 비슷한 방향으로 만드시려고요?”

“방향은 비슷하고, 만들었어.”

“벌써요?”


서희와 은별의 눈이 커졌다.

휴가가 끝난 지 사흘 만에 다음 자작곡이 나오다니.


“정확히 말하면 자작곡에 가장 비슷한 게 <화살>이었던 거지. 자작곡을 먼저 만들었으니까.”

“그래요?”

“노래가 어려워서 분위기 파악하려면 많이 불러봐야 해. 설명이 필요하니까 가사부터 보자.”


정완은 곧바로 자작곡 가사를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서희와 은별은 제목과 가사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리랑이면 민요처럼 불러야 하는 거예요?”

“곡 자체는 민요조 발라드지만 너희들은 여우비야. 여우비는 여우비의 방식대로 부르면 된다.”

“저희 방식이요?”

“상상되는 분위기대로 노래하는 거.”

“아, 네.”

“근데 이 노래는 그게 어려워.”


정완은 먼저 자작곡 <나의 아리랑>의 주제어 ‘아리랑’에 대해 설명했다.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완은 그 중 곱다는 뜻과 가슴이 아프다는 뜻이 모두 포함된 ‘아리’와 ‘랑(郞)’의 합성어, 즉 ‘가슴이 아릴 만큼 사무치게 그리운 임’의 뜻으로 보고 노래에 넣었다. 또한 그는 ‘아리랑 고개’를 ‘크고 높은 고개’라고 생각했지만, 해석에 혼선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여 그 해석이 가미될 부분을 뺐다.

그 전까지 아무 생각 없이 <아리랑>을 듣고 불렀던 서희와 은별은 정완의 사날없는 설명을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쓰리다’에서 ‘쓰리랑’이 나오고 ‘쓰라리다’로 강조된 것처럼, ‘아리다’에서 ‘아리랑’이 나오고 ‘아라리다’로 강조됐다고 볼 수 있겠지. 그래서 ‘아라리’는 상사병쯤으로 해석돼. 장윤정 노래 중에 <아라리>도 그렇지.”

“네.”

“이 노래가 어려운 건 노래 속 공간이 황천길 입구여서야. 임을 보낸 자리에서 나무가 되어서라도 다음 생까지 기다리겠다는 나. 비현실적인 공간이라 오로지 상상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많이 불러보면서 나름의 감성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는 거고. 그래서 시간이 많이 필요해.”

“알겠어요.”

“듣는 분들은 그냥 민요 <아리랑>의 뜻으로 받아들이겠지. 그래도 괜찮지만 너희들은 뜻을 알아야 해. 작사가는 뜻 모르는 단어를 가사에 넣으면 안 돼.”

“그럼 이 노래는 제가 가사 못 바꾸겠네요.”

“아니. 바꿔. 인터넷을 뒤지든 책을 찾든 한 글자라도 바꿔.”


서희의 말에 정완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나 이 가사에 신경 많이 썼어. 근데 네가 더 낫게 바꿔야 한다. 그러면 1라운드는 가볍게 패스야.”

“하아.”

“노래할 테니까 들어봐.”


서희와 은별은 정완이 직접 연주하여 부르는 <나의 아리랑>을 들으며 놀란 표정으로 수십 번 눈을 마주쳤다.

노래가 끝난 후에도 두 사람은 넋 나간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노래 어때? 괜찮아?”

“···.”

“이 노래가 마음에 안 들면 <화살>도 바꿔야 해.”

“아니에요. 해요.”

“저도 좋아요. 이 노래 정말···. 하아.”


서희는 특유의 ‘헐’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



1라운드 경연곡 <화살>과 <나의 아리랑>에 대한 종합 연습은 새벽 2시가 넘어야 끝나곤 했다.


“여기까지 하자. 피곤하지?”

“더 할 수 있어요.”

“저도 괜찮아요. 어차피 5시나 돼야 자는데.”

“그래도 쉬어. 내일 또 하면 돼. 고생했어.”

“네.”

“감사합니다.”


정완은 여느 때처럼 두 사람을 차에 태우고 은별을 먼저 내려주었다.

다시 운전을 시작한 지 5분쯤 되었을 때 서희가 잠깐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하더니 편의점으로 달려가 커피를 사왔다.


“마시고 싶음 얘길 하지. 내가 사오면 되는데.”

“그럼 커피숍에서 제 것만 사오셨겠죠. 그거면 편의점 커피 네 잔을 마셔요.”

“푸후.”


서희는 조수석에 앉아 정완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만약 그녀가 커피숍에서 커피를 샀다면 정완은 두고두고 부담스러워하며 억지로라도 두 잔을 살 것이다.


사실은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새벽 3시,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고즈넉한 거리 위의 차 안은 새삼스레 묘하고, 그런 호젓한 공간에서 정완과 단둘이 커피를 마시면 어떨까 궁금했다.

그래서 서희는 출발하려는 정완을 제지했다.


“잠깐만요.”

“왜?”

“PD님 또 학원 들어가서 작업하실 거죠?”

“어.”

“그러니까 다 마시고 가요. 천천히.”

“그래.”


서희는 고개를 끄덕이는 정완을 보며 제 뜻을 관철해낸 것이 내심 뿌듯했다.

한동안 말없이 커피를 마시다가 정완이 말했다.


“서희야.”

“네.”

“<화살> 인트로에 애드리브 대신 네 랩이 들어가면 어떨까?”

“어떻게요?”

“그 노래의 부제 콰지모도(Quasimodo)가 <노트르담의 꼽추> 인물이지?”

“네.”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바라보던 마음. 자신이 초라하고 선택받지 못해서 그저 바라볼 뿐 지켜주지 못했던 아픔을 네 것으로 해석해서 여덟 마디 정도로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래요?”

“응. 그냥 조곤조곤하게 내레이션처럼 만들면 좋겠어. 뒷부분도 힘을 완전히 빼고 불러야 하니까.”

“생각해 볼게요.”


서희는 정완을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거리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뒤늦게 가슴이 뜨거워짐과 동시에 조금 전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모습이 차창 밖 세상에 잔상처럼 나타났다.

아까의 궁금증이 해결되어 버렸고 편의점 커피를 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지나갔다.


서희는 차창을 열고 밤공기를 들이마신 후 천천히 말했다.


“이제 한 달 됐네요?”

“어?”

“이거 같이한 지 한 달이요.”


정완은 계약 얘기를 하려다 입을 닫고 고개만 끄덕였다.

서희는 계약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얼굴을 찌푸리기 때문이다.


“이번 트레이닝은 전이랑 달라요.”

“뭐가?”

“전에는 저 엄청 괴롭히셨잖아요. 발성에 자세에 연습곡에 바이브레이션이다 뭐다, 노래도 많이 시켰고 과제도 많았고 하나하나 다 지적받았고···. 근데 이번엔 노래 부르는 것보다 듣는 게 더 많고 토론 많이 하잖아요.”

“왜, 재미없어?”

“네?”


서희는 고개를 돌려 정완을 보았다가, 커피 향을 맡으며 자신을 향해 보낸 따뜻한 눈길을 마주하고 번개를 맞은 줄 알았다.

재미없냐는 말을 저렇게 달콤하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문득 설렜다.


“아, 아니요···.”

“넌 아직도 나를 보컬트레이너로만 보는구나.”

“네?”

“난 아닌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아직도 자기를 보컬트레이너로만 본다고? 근데 자기는 아니라고?

서희는 문득 정완을 향해 ‘처음부터 이상형으로밖에 안 보였다고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녀는 술이 떡이 돼도 이런 말은 못할 것이다.


“너는 지금 아티스트지 수강생이 아니야. 난 거기 맞춰서 하고 있는 거고.”

“아티스트는 트레이닝하는 게 뭐가 달라요?”

“그건 아니지만, 이번에 내가 중점을 둔 방향이 처음부터 트레이닝이 아니었어.”

“그럼 어떤 쪽인데요?”

“이번엔 트레이닝은 꼭 필요한 부분만 하고 프로듀싱에 집중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건 신인가수의 싱글앨범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돼.”

“저희 아직 가수라고 할 수 없는데···.”

“메이저 시장은 몰라도 내가 활동했던 대학가에서 노래하기는 충분해. 너희 정도면 이거 시작할 때 기준으로도 인디 신에서 욕먹을 실력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요?”

“넌 이제 많이 노래한다고 해서 실력이 팍 올라갈 레벨이 아니야. 수능시험도 5등급에서 4등급으로 가는 거랑 2등급에서 1등급으로 가는 게 다른, 그런 거겠지.”

“그러니까 제가 지금 2등급 정도란 말씀이시죠?”

“비슷해. 메이저 시장에 데뷔하기 전 단계쯤이라는 얘기야.”

“네.”

“나도 미투리 밴드 프로듀싱할 때보단 쉬워.”

“왜요?”

“그땐 멤버들이 내 말 안 들어서 힘들었지. 전부 형이었으니까.”


서희는 고개를 한참 끄덕이다 말했다.


“말씀은 쉽다고 하시면서도 영혼 갈고 계시잖아요.”

“어.”

“왜요?”


서희의 말에 정완은 답하지 않은 채 미소만 지었다.


“저희 트레이닝하신다고 매일 돈만 깨지잖아요. 제가 보기엔 이거 잘해서 누구한테 인정받으려는 거 같지도 않은데.”

“넌 이제 아티스트니까 더 성장해야지.”

“힘든데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은별이는 꿈이 크고.”


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난 정말 빨리 도망가고 싶었어. 그래서 약속도 정리하지 못하고 쌩하니 갔어. 시간이 얼마가 지났든 그건 내가 책임져야지.”

“하아.”

“하겠다고 했으니 영혼 정도는 갈아낼 각오를 해야지 않아? 본선만 가면 된다, 이 정도로 들어가면 예선탈락이니까.”


평소의 정완이었다면 ‘알 거 없어.’라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희는 그 사실을 모른 채 한숨을 쉬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난 너한테서도 도망갔었지.”

“그건 도망간 게 아니라 쫓겨난 거죠. 어쩔 수 없었잖아요.”


정완은 씁쓸히 미소 지었다. 서희는 제 말의 속뜻을 모를 것이다.

그는 학원을 옮긴 후 서희에게 전화할까 많이 고민했었다. 새로운 학원에서 계속 트레이닝 하자고 했으면 그녀는 분명히 자신에게 왔을 테고 자신 역시 그걸 바랐다. 그러지 않았기에 도망갔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인정은 받을 만큼 받았는데 달라지는 게 없더라. 뮤지션들의 인정한다는 말 뒤엔 항상 ‘내가 너보다 더 잘하니까 그걸 아는 거’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는 걸 알아버렸거든.”

“그럴듯하네요.”


정완은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는 자리에서 연주하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조용히 사라졌고, 여우비 자작곡의 저작권도 본명이나 SS가 아닌 ‘HAP’라는 이름으로 등록했으며, 서희와 은별에게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서희는 정완이 사람들의 시선에 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안타까웠다.


“PD님.”

“어?”

“서우진이 PD님한테 뭐라고 했어요?”

“푸후후. 출발할게.”


정완은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리다 서희를 보았다. 출발한다고 말했는데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벨트를 매주기 위해 서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앗!’


얼굴이 가까워지자 서희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움츠렸다. 겨우 잠잠해지나 했던 가슴이 다시 뜨거워졌다.

정완이 벨트를 매고 자리로 돌아가자 서희는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

“갈게.”


정완은 차를 출발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게 궁금해?”

“네? 네. 초대장을 꼭 PD님이 개봉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중요하니까 그랬겠죠.”

“근데 내가 그 얘기를 너한테 해도 될까?”

“···.”

“그 친구한테 중요한 얘기라니 말은 못하겠는데, 나한텐 별 얘기 아냐.”

“제 생각엔 제안 같아요. 같이 일해요. 아니면 노래 몇 곡 만들어 주실래요? 이런 거.”

“유도신문 하지 않습니다.”

“치잇.”


군대 조교 같은 정완의 말에 서희는 콧소리를 내며 차창 밖을 보았다. 뒤로 달려가는 공간이 어느 새 집에 매우 가까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완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말, 즉 혼자 있을 때는 무엇을 하는지, 돈가스 말고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등은 또 꺼내지 못했다.


작가의말

화요일이 되어 하나 더 올립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 3회 연재한다고 했나 싶기도 한데, 화요일은 혹시 못 올릴 수도 있어서 될 때만 올릴게요.

본문에 MJ(써니사이드)의 <꽃, 그리고 너>가 언급됐는데,

2년 전 어느 상점에서 이 노래를 듣고 꽂혀서 노래를 찾아낸 후 한참 듣다가 <오디션>의 후속작을 쓰기로 결심했더랬죠.

저 노래 없었으면 이 작품 안 나왔을 겁니다.


이 작품은 전작과 다르게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많이 넣었습니다.

전작은 작품 분위기에 노래를 맞추었고, 지금은 노래에 작품을 맞추고 있다고 보심 돼요.

여튼 열심히 쓰겠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 코로나19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댓글 주시는 분들께 미리 감사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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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Aphrodite. 풀밭, 꽃, 그리고 꿀 20.06.16 169 10 21쪽
24 Round 4. 너를 잊지 않았듯 +2 20.06.14 155 9 24쪽
23 Burden. 그대에게 옮은 감기 20.06.09 164 9 27쪽
22 Clue. 또 다른 오디션 +4 20.06.04 168 10 25쪽
21 Slough. 그녀의 취미 20.05.31 162 6 31쪽
20 Tears. 한계가 아닌 줄 알았는데 +6 20.05.28 182 11 23쪽
19 Abyss. 눈물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때 +6 20.05.24 178 9 22쪽
18 Restart. 욕심이 되어버린 밤 +2 20.05.21 196 9 27쪽
17 Separation. 신데렐라처럼 +4 20.05.17 185 11 24쪽
16 Friendship. 내일 일어날 일 +4 20.05.14 194 8 23쪽
15 Limitation. 임무를 마친 자의 여유 +2 20.05.10 191 11 21쪽
14 Round 3. 자신과의 싸움 +4 20.05.07 199 11 23쪽
13 Preparation. 조금 덜 치열해도 괜찮은 곳 20.04.30 211 10 29쪽
12 Wedding. 순정남녀가 순정부부로 20.04.23 227 9 29쪽
11 Goodness. 이럴 줄 알았으면 +2 20.04.21 224 8 23쪽
10 Round 2. 치열하게 따분한 날 +2 20.04.12 203 8 23쪽
9 Deeper. 녹음이 잘 되지 않는 이유 +8 20.04.09 237 11 22쪽
8 Fangs. 그녀의 실수 +8 20.04.07 233 12 28쪽
7 Round 1. 화살은 누가 쏜 걸까 +4 20.04.02 227 11 29쪽
» Reoccurrence. 묻고 싶었던 말 +4 20.03.31 243 11 31쪽
5 Suggest. 좋은 제안이지만 +2 20.03.29 240 13 29쪽
4 Preliminary 2. 비 오는 아침 +2 20.03.24 268 11 29쪽
3 Preliminary 1. 저 사람들 또 +2 20.03.22 268 10 30쪽
2 Making. 만들어야 할 게 노래만은 아닌 팀 +4 20.03.15 354 13 28쪽
1 Prologue. 오래 전 약속 +4 20.03.15 714 16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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