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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이 서커스를 보고 한 말은?

착각계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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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3.26 12:37
최근연재일 :
2024.05.12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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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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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황립 전쟁대학(3)

DUMMY

마법학과 강의실은 높은 층고와 넓은 면적에 비해 실제로 사용되는 공간이 적어 휑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긴. 마음껏 마법을 날려대려면 이 정도 공간은 있어야겠지.’


적당히 자리에 앉아 책상 위에 비치된 두꺼운 서적을 집어 들었다. [마법의 기초]라는 제목이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기초가 중요하지.’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았을 다른 생도들과 달리 나는 마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마법학과의 강의실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책의 목차를 다 읽어갈 즈음, 어느새 강의실에 들어온 교수가 수업의 시작을 알렸다.


“앞으로 일 년간 너희의 마법 교육을 전담할 교수 다르스라고 한다.”


다르스 교수는 신경질적으로 생긴 중년 남자였다. 일부러 기강을 잡을 의도는 없어 보임에도 얼굴에 피로와 짜증이 깃들어 있었다.


긴 군생활로 관상학에 조예가 생긴 내가 단언하건대, 잘못 엮이면 인생이 피곤해지는 타입이다.


“너희들은 마법사다. 마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존재로서 제국의 적들을 불태우기 위해 이곳에 왔지. 볼품없이 쇠붙이를 휘두르는 얼간이들로는 결코 대체하지 못할 숭고한 일을 위해서 말이다.”


초장부터 기사들과 일선의 병사들을 모욕하는 발언이 튀어나왔다.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앞으로 이런 오만함을 마주하는 일이 잦을 테니까.


마법사란 마법을 다루는 자신들이 가장 우월하며, 나머지는 열등하다는 인식이 뼛속 깊이 새겨진 오만한 족속이다.


‘목숨 걸고 싸울 때 뒤에서 꿀이나 빨면서 싸가지는 뒤지게 없는 새끼들.’

‘하지만 싸가지가 없어도 될 만큼 귀하신지라 참을 수밖에 없는 얄미운 새끼들.’


전장의 병사들이 가진 마법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었고, 이는 대다수의 마법사에게 통용되었다.


잠시간 마법사의 우월함과 기사들의 열등함에 대한 열변을 토하던 다르스 교수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희들 중 일부는 막연한 기대를 했을 것이다. 전쟁대학의 마법학과라면 시작부터 특별한 마법을 배우리라고.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교수의 말대로였는지 그 말에 몇몇 학생들이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쉽게도 아니다. 시작은 어디든 똑같다. 기본기야말로 가장 중요하지.”


그렇다. 기본기야말로 가장 중요하지.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설렁설렁 임할 생각은 하지 마라. 내 강의를 따라오지 못하는 순간 교수의 권한으로 강력하게 퇴교 처리를 할 테니까. 전쟁대학 마법학과에 애매한 재능을 가진 녀석은 필요 없다.”


나는 그의 말을 받아적을 준비를 하며 책장을 넘겼다. [마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챕터였다.


“지급된 교재의 172페이지를 봐라.”


응?


아니.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빠른데요?


내가 얼이 빠진 사이 정적 속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부산했다. 나도 다급히 지정된 페이지를 폈다.


[마나란 무엇인가]

[마법의 역사]

[마법사의 마음가짐]


등등의 쉬워 보이는 챕터들이 빠르게 넘어가고 [기초 마나 조작 수련 : 염동을 이용하여] 챕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염동은 실전에서 잘 쓰이지 않는 마법이다. 사물이나 신체에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는 일은 다른 마법에 비해 마나 소모가 극심하지. 그렇지만 마나를 조작하는 감각을 기르기에는 최적화된 마법이다.”


동시에 다르스 교수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푸른 입자가 모이더니. 길게 늘어나는 손의 형상을 취한 채 앞으로 뻗어나갔다.


“염동은 가장 순수한 마력의 조작. 요령이라고 할 것도 없다. 마나를 감응한 상태로 물체를 옮기는 심상을 떠올리면 될 뿐이니까.”

“어어어어?”


생도 한 명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돌연 그의 손에서 책이 스르륵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주인을 떠난 책은 천천히 비행해 자비네 교수의 손에 안착했다.


“혼자 다른 페이지를 보고 있더군. 내 강의가 지루해 혼자 예습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이걸 받아낸다면 용인해 주도록 하지.”


─ 슈우웅!


책이 마치 투척 무기처럼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주인에게 쇄도했다.


“히이익!”


전공책이 그 난해함 때문이 아니라 운동에너지로 주인의 머리를 깨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직전, 생도의 코앞에서 움직임을 멈추더니.


“응?”


툭. 힘을 잃고 떨어졌다.


마법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실로 절묘한 완급조절이었다.


“와아!”

“염동을 저 정도로 쓸 수 있구나.”

“그냥 마력량을 자랑하는 용도로나 쓰는 줄 알았는데.”


다른 생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는지 곳곳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 중 나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


“마나의 흐름을 하나도 못 봤어.”

“캐스팅 과정을 거의 생략했잖아! 역시 염동 마법의 대가구나···.”

“무섭네. 저런 적이 갑자기 나를 노리면 보호막을 치기도 전에 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내 눈에는 분명 마나의 흐름이 보였는데.


“지금부터 염동의 실습을 진행한다. 마나 조작 능력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니 내키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도록. 내 권위에 도전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교수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생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실습에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책들이 공중으로 붕 뜨고, 곡선을 그리며 자유비행을 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진풍경이 일어났다.


이 안에서도 편차치가 큰지 마법을 구사하는 능력이 각기 달랐으나, 다들 마법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만은 확실했다.


물론 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남들한테 신경 쓸 때가 아니지.’


나도 곧장 실습에 들어갔다.


‘마나 감응을 한 상태로 물체를 옮기는 심상을 떠올리면 된댔지.’


까짓거, 대충 띄우기만 하는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지.


근거 없는 낙관은 아니었다.


마나감응이란 마나와 나를 연결하는 마법의 준비 과정.


오러 수련으로 착각하기는 했으나, 나는 이과정을 지난 10년 동안 반복했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마나를 내게로 집중시킨 후, 다르스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손의 형태로 빚어내었다.


그대로 마나로 빚은 손이 책을 집는 장면을 상상했다.


효과가 있었다.


책이 밀려났다. 5mm가량의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된다!’


마법사라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마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니.


이런 재능을 두고 기사가 되겠다고 검을 휘둘렀던 과거의 내가 등신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는 책을 집은 마나가 그대로 책을 들어 올리는 상상을 하며 손을 뻗었다.


정말로 책이 살짝 들렸다.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해 마무리를 지으려 할 때-


틱. 허무한 감각과 함께 마나와의 연결이 끊겼다.


책은 평화롭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너는 뭘 하고 있지? 나는 분명 염동을 연습하라고 했을 텐데.”


어느새 다르스 교수가 내 앞에 있었다.


“지, 지금 하는 중이었습니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다르스 교수의 눈에는 농땡이를 피우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나는 다급히 염동 마법을 시도했다.


틱. 이번에도 실패했다.


“···”

“···”


잠깐의 정적 후.


“뭘 하는 거지?”

“죄송합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나는 몇 번 더 같은 시도를 했으나 결과 또한 같았다.


미칠 노릇이었다.


분명 이대로 조금만 더 하면 될 텐데, 마지막 순간에 마나와의 연결이 끊기는 것이다.


“그만. 도저히 못 봐주겠군.”


다르스 교수의 인내심은 길지 않았다.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쳐도 꼭 너 같은 생도들이 한두 명씩은 있는 법이지.”


한심해하는 말투였음에도 나는 그의 말에서 약간의 위안을 찾았다.


나 같은 꼴통이 그래도 매년 있긴 한 모양이군.


“자기 재능을 과신하고 교수의 권위에 도전하는 놈들 말이야. 이런 촌극으로 나를 우롱해서 즐거움을 얻나?”


어라?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이다.

나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교수님. 그게 아니라···.”

“아니라면 뭐지? 마법의 자질이 있다면 코흘리개들도 할 수 있는 걸 못 하는 머저리가 내 강의실에 있다는 뜻인가?”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이어지는 교수의 말이 내 입을 막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이라면 너를 퇴교시키겠다. 애초에 오면 안 될 녀석이 온 거니까.”


오해를 풀지 않으면 교수를 능멸한 괘씸한 놈이 되고 오해를 풀면 자격 미달로 퇴교.


진퇴양난의 괴로운 시간이 흘렀다.


─ 딩! 딩! 딩!


때마침 울린 종이 나를 살렸다.


다르스 교수는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너희의 이해도를 가늠하기 위해 다음 강의에서는 염동의 활용법과 출력 향상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겠다. 학점이 부여되는 테스트이니 신중하게 고민해 와라.”


그러고는 다시 나를 노려보았다.


“너는 특히 신중해야 할 거다. 오늘의 무례를 만회하고 싶다면 네가 특별한 사람임을 증명해야 하니까. 젊은 날의 치기를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재능이 충분한 젊은이뿐이다.”


#


교수가 냉기를 풀풀 풍기며 나간 탓에 싸늘함이 감도는 강의실 안.


‘조졌네.’


나는 망연자실한 가운데서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왜 마법을 쓸 수 없지?

마나감응만 할 줄 알면 염동은 코흘리개도 쓴다며?

어쩌면 그냥 재능이 없나?

재능이 있다며? 법무관이 나를 속였나?


“저 에단이라는 사람. 미친 건가 봐. 어떻게 다르스 교수에게 대들 생각을 했지?”

“이전 기수에서 퇴교한 사람 절반은 다르스 교수 때문이라던데.”

“얼굴부터가 험상궂잖아. 저 흉터 좀 봐. 기사지망생도 아니고 마법사가 저런 상처라니, 성격이 사나워서 싸움질을 하고 다녔을 테지.”


생도들이 떠드는 말이 내 속을 긁었다.

좋을 대로들 생각하라지.

따질 여력도 없어서 고개를 처박고 있자니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전략은 좋았어요. 이미 알고 있었겠죠? 다르스 교수는 까탈스러워 보여도 재능 있는 생도들에게는 관대하다는 점을요.”


세라 제피르였다.


얘는 또 뭔 개소리지?


“그런데 용기가 대단하네요. 다르스 교수는 염동 마법에 대해서는 참 까탈스럽거든요. 실전성도 없는 마법을 몇십 년째 파고들 정도로요.”

“교수님에 대해 알려 준 건 고마운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또 발뺌을. 이미 다 알고 있어요. 다음 강의에서 본 실력을 드러낼 생각이죠? 배우의 등장이 화려할수록 깊게 각인되는 법이니까요.”


영문 모를 말에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니 세라가 ‘거봐, 내가 맞췄지?’라는 듯한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직 당신의 정체는 몰라도 속셈은 알 수 있어요. 모르는 부분도 곧 알게 될 테고요. 우리 가문의 반대파에서 나를 견제하려 보낸 거죠?”


그러고는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훽 몸을 돌려 사라졌다.


뭔지는 몰라도 기분이 좋아 보이니 그냥 두었다. 기분이 나쁜 미친년보다는 기분이 좋은 미친년이 나았으니까.


무엇보다 혼자 있고 싶었다.

이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에단, 역시 너는 대단해. 다르스 교수의 말에 화가 났던 거지?”


이번에는 로엠이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다가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기는. 다르스 교수가 기사와 병사들을 모욕해서 화가 난 거잖아? 적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이들을 얼간이라고 말하다니, 심히 부적절한 발언이었어.”


이 녀석도 자기 좋을 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 분노가 정당하다고 해도 이번엔 경솔했어. 교수의 권위를 존중하고 강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생도의 본분이야. 다음 강의 때라도 전력을 다해서 상황을 바로잡아야 해.”


한참씩이나 헛소리를 들어 줄 생각에 벌써 머리가 아팠다.


“에휴. 너까지 왜 이러냐. 나 좀 혼자···.”


잠깐.


로엠은 나를 과하게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녀석이야말로 내가 유일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상대였다.


“네 말이 맞아. 로엠. 나 좀 도와줘.”

“응? 물론이지. 내가 도움이 된다면 뭐든 말만 해.”


똥을 싸고 손을 안 닦는다는 사소한 단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로엠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그게 실은 말이지······.”


주변에 듣는 귀가 없음을 확인하고 로엠에게 내가 겪는 문제를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본래 기사가 되고자 검만 10년을 휘둘렀다.

그래서 마법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

염동을 시도했으나 마나와의 연결이 끊기며 실패했다.


“짐작되는 바가 있기는 한데,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한담.”

“가능하면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차근차근 얘기해줘. 오크를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흐음. 일단 여길 봐봐.”


로엠이 펼친 교재를 펼쳐 인간의 뇌를 그려놓은 페이지를 보였다.


“여기, 뒤통수쯤에 마나회로가 있지? 이 기관이 활성화되어 마나를 감응할 수 있는 사람을 마법사라고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회로는 팔다리처럼 눈에 보이는 기관이 아니잖아? 대신 마나와의 연결을 통해 심상을 구현하지. 음···. 미안. 오크한테는 조금 어렵나?"

“계속해. 내가 진짜 오크는 아니니까.”

“마법사들은 어릴 때부터 가문의 명상법을 통해 마나회로를 가공해. 특정한 심상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면서 거기에 적합한 형태로 바꿔 가는 거지.”


얼추 이해가 가는 설명이었으나 의문은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다.


“나는 그 훈련이 생략되어서 마법을 못 쓰는 건가? 간단한 염동은 갓 마나감응을 시작한 코흘리개도 할 수 있다며?”

“응. 오줌싸개도 할 수 있어. 네 경우는 훈련의 ‘생략’보다는 ‘대체’가 문제야. 명상 대신 검술로 마나 회로를 가공해 왔으니까.”


나는 불안한 결론을 예감하며 물었다.


“설마···.”

“나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확신은 못 하는데, 어쩌면 네 마나회로는 검이 있어야만 제대로 작동하는 쪽으로 가공되지 않았을까?”


#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검이 필요하다!


로엠의 설명으로 문제점을 깨달은 나는 곧장 방으로 돌아왔다.


넓직한 1인실 기숙사는 전쟁대학에서도 마법학과 생도들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였다.


함께 제공된 푹신한 침대에 드러눕고 싶다는 유혹을 억누르며, 전선에서 이곳으로 올 때 챙긴 가방을 열었다.


이전에 쓰던 물건들은 죄다 부대의 후임병들에게 넘겨주고 왔기에 짐이라고는 손에 익은 검 한 자루뿐이었다.


“버리지 않기를 잘했네.”


검에 미련이 남았기 때문은 아니다. 어차피 기사가 되지도 못할 거 검은 휘둘러서 무얼 하겠는가.


잘 보관해서 먼 훗날 손주들을 앞에 두고 ‘할애비가 너희 나이 때는 전선에서 이 검으로 오크들의 대가리를 수확했단다’라고 무용담을 떠드는 용도로나 쓸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생각과는 다른 의도로 검을 잡게 되었다.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익숙한 물건을 잡아서일까.


잡다한 고민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나는 검을 쥔 채로 마나감응을 시도했다.


그리고 염동 마법을 발동했다.


대상은 1M쯤 떨어진 선반 위에 올려진 컵.


“된다!”


컵을 옮기는 데에 성공했다.


아주 느린 속도이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기는 했지만, 컵은 허공을 부유해 내 손에 잡혔다.


“처음 치고는 괜찮은 것 같기는 한데···.”


첫 마법 사용에 성공했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다른 생도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 정도로는 다르스 교수를 만족시키기에 택도 없었다.


그 인간에게 밉보인 채로는 전쟁대학에서 쫓겨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이곳에서 졸업장을 따고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부임해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겠다는 내 계획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뜻이다.


각성해라, 내 재능.


나는 해가 질 때까지 컵을 대상으로 염동의 연습을 반복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컵이 선반과 내 손 사이를 수십 번씩 왕복했음에도 눈에 띌 만한 성과는 없었다.


“이대로면 나가리인데···.”


나는 잠시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다른 마법사들과 내 차이는 역시 ‘검’이다.’


남들이 명상을 통해 마나회로와 마나의 연결을 강화할 때, 나는 오러 수련이랍시고 검을 휘두른 탓에 마법의 발동에 기형적인 조건이 생겼다.


마나회로 - 마법 발동

마나회로 - 검 - 마법 발동


이렇듯 과정이 한 단계 추가된 것이다.


수중에 검이 있으면 마법의 발동은 가능하나 하찮은 수준이다.


‘그러면 아예 검 자체를 마법의 매개로 하면?’


시험 삼아 손에 쥔 검이 선반 위의 컵을 꿰뚫는 심상을 빚어내며, 염동을 발동해 보았다.


“응?”


내가 자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손에서 검이 빠져나가더니-


─ 쨍그랑!


어느새 컵을 부수고 벽에 박혔다.


다르스 교수가 시범을 보였을 때와 비슷한 속도였다.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이번에는 벽에 박힌 검이 을(乙)자를 그리며 비행해 내 손에 잡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움직임에도, 검은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내 손에 안착했다.


“허허···.”


오러는 각성하지 못했다.


대신 어검술을 다루는 마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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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형벌대대(3) +8 24.04.29 3,462 84 14쪽
28 형벌대대(2) +13 24.04.27 3,553 91 13쪽
27 형벌대대(1) +3 24.04.26 3,641 83 13쪽
26 제국 감찰관(2) +6 24.04.25 3,807 85 12쪽
25 제국 감찰관(1) +11 24.04.24 4,008 10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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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도구는 장인을 탓하지 않는다(3) +6 24.04.20 4,162 92 13쪽
21 도구는 장인을 탓하지 않는다(2) +4 24.04.18 4,321 93 14쪽
20 도구는 장인을 탓하지 않는다(1) +6 24.04.17 4,524 104 14쪽
19 전쟁영웅의 삶(2) +8 24.04.16 4,687 1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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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서부 전선 이상 많다(5) +8 24.04.13 4,747 11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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