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관께서 지켜보신다(1)
전투가 끝나고 보름. 내가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린 지는 나흘이 흘렀다.
나와 13대대는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6군단으로 후송되었다.
“후우···. 평화롭구만.”
나는 6군단 본진의 고급 막사 안에 틀어박힌 채 간만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물론, 13대대에서 꼬박 하루를 개처럼 구른 탓에 몸 상태가 말이 아니기는 했다만, 이게 오히려 좋았다. 덕분에 나는 다른 모든 업무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으니까.
‘분명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래야만 하고.’
내 몸이 정말로 한 자루 검처럼 휘둘러지던 감각을 떠올렸다. 그건 분명 마검술이 다음 경지로 도약할 실마리였다.
‘쓸 때마다 몸이 박살나는 것만 해결하면, 오크 족장 모가지 따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텐데.’
지금은 그 부작용으로 한쪽 팔에 부목을 댄 채 움직일 때마다 뼈와 근육이 통증을 호소했다.
단련을 거듭하면 강해진 몸이라 하더라도, 직접 마법의 매개로 삼기에는 아직도 충분하지 못했던 탓이다.
여타의 기사나 마법사였다면 더 강해질 방법을 찾았다는 데에 어마무시한 고양감을 느꼈을 테지만, 나는 어쩐지 입이 썼다.
나는 오늘 저녁 뭐 먹을지가 하루의 가장 큰 고민인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강해져서 오크 족장 모가지를 딸 수 있을까나 고민하는 신세라니.
“에휴.”
아무튼, 해야 할 일은 해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한 일이라면 더더욱.
새로운 수련법을 고안하며 종이에 이런저런 발상을 끄적이고 있을 때,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감찰관님. 차를 준비했습니다. 본진에는 꽤 좋은 찻잎이 있더군요.”
내 충직한 부관, 올렉이 차를 내온 것이다.
“고맙네. 여러모로.”
나는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올렉을 방패로 삼은 덕분에 폭격의 중심지에 있었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되먹은 몸인지, 올렉은 나 대신 그 폭격을 받아냈음에도 나보다 훨씬 멀쩡했다.
잘된 일이지만, 나 살겠다고 그를 방패로 삼았다는 데에 찝찝함이 남았다.
“자네, 몸은 좀 괜찮나?”
“예. 몸이 튼튼한 건 자신이 있으니까요. 다 감찰관님이 구해주신 덕분이지요.”
올렉은 또 그걸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때 일이 기억이 나지 않나?”
“솔직히 조금 가물가물합니다만···. 폭격이 떨어지기 직전 감찰관님께서 저를 데리고 구덩이로 몸을 던지신 건 기억이 납니다.”
의심 한 점 묻지 않은 맑은 눈망울이 내 양심을 자극했다.
“그게 사실은···. 내가, 자네를 방패로 사용한 거야. 물론 자네의 경이로운 내구성을 믿기는 했다만, 지금이라도 사죄를···.”
“감찰관님, 제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그러시는 건 잘 압니다만···. 거짓말이 서투르십니다. 감찰관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잖습니까?”
이미 올렉의 머릿속에서 나는 ‘더없이 훌륭한 제국의 충신’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탓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 그, 그래. 좋게 생각해 주니 고맙군.”
나는 진실을 묻어두는 대신 앞으로 이 충직한 부관을 잘 챙겨줘야겠다고 다짐했다.
“헌데, 감찰관님. 산책이라도 다녀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재활을 겸해 몸을 움직여두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흐음···.”
나는 절대안정을 핑계로 모든 면회를 거절하고 막사 안에서 두문불출했다.
덕분에 그토록 바라던 고요한 평화를 즐겼으나, 이것도 나흘이 지나니 슬슬 답답하던 참이었다.
“그러지. 잠시 다녀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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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에 띄는 감찰관 제복 대신 제국군 군복을 입은 채 6군단의 병영을 거닐었다.
13대대에서의 기적적인 승리 덕분에, 초상집 분위기였던 6군단에는 전보다 활기가 돌았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6군단장 크레닉이 부식을 통 크게 분출했기에, 병사들은 곳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군대식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너희들, 제국 감찰관 에단 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
삼사오오 모여서 떠들던 병사들 가운데 내 이야기가 들렸다.
‘기억나는 얼굴인데.’
이름이 무스. 루니. 기예르모였던가. 전투 중 고립된 걸 구출해 준 적이 있던 13대대의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부대의 병사들을 붙잡고 영웅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랬더니 감찰관님께서, 우리 부대에 온 지 삼십 분만에 그 빌어먹을 대대장의 목을 확 베어버리셨다니까?”
“에이. 그건 과장이 심한 거 아니야? 감찰관이라 해도 절차라는 게 있는 법인데······”
다른 병사가 의문을 표하자, 13대대의 병사들이 하나같이 코웃음을 쳤다.
“쯧쯧. 우리 감찰관님은 그런 고리타분한 규율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야. 대대장을 데리고 지휘실로 들어가시더니, 몇 분 만에 슥삭해버리셨다니까?”
“그토록 엄격한 사람이 왔으니 우리도 징벌을 받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대대장이 꿍쳐놨던 맥주와 담배를 베푸셨지.”
“맞아. 우리 감찰관님이야말로 장교에게 한없이 엄격하고 병사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진정한 군인이시구나!”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13대대의 다른 이름은 형벌부대. 얼마 전까지는 범죄자 출신이라며 다른 부대 병사들에게마저 차별받던 처량한 신세였다.
기적적인 승리로 평판이 오른 지금, 근래에 일어난 모든 일을 자랑하고 싶으리라.
“오크들한테 포위됐을 때는 진짜 답이 안 보였지. 괜히 나댔다가 개죽음당하는 거 아닌가 싶더라.”
“그런데 갑자기 검이 막 슈아앙 날아와 퍼버벅하더니, 오크들이 죄다 죽어 있대? 하늘을 보니 감찰관님께서 하늘을 날고 계셨지.”
“그때 드는 생각이 뭐였는지 알아? 아! 우리는 분명 역사에 기록될 싸움을 하고 있구나! 여기서 죽더라도 이름쯤은 남길 수 있겠구나!”
내 명성이 퍼지는 과정을 직관하는 건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어우. 닭살.’
나는 병사들에게서 돌리고 걸음을 재촉해 멀어졌다.
벨람 또한 다른 부대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계급만 병사이지 사실상 대대의 주임상사나 다름없던 그답게, 상대는 대부분 하사관들이었다.
“형씨들, 감찰관님께서는 신비한 마법을 사용하시는 거 아쇼?”
“댁 부대원들한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봤지. 마검술이라 부른다며? 그, 막 수십 자루의 검을 폭풍처럼 쏘아낸다지?”
“실은, 그거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게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
내가 마검술 말고도 뭔가를 할 줄 알던가?
나는 벨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바로 이거요. 감찰관님께서 사용하신 승리의 비밀.”
벨람이 웬 돌을 내밀었다.
그냥 돌이었다.
“그냥 돌이잖아?”
“하긴, 그짝이 마법의 마 자라도 알겠어? 여기에는 감찰관님이 배우신 고대의 마법이 담겨 있다고. 그분께서 전투에 돌입하기 전 병사들에게 이걸 하나씩 나눠줬는데, 이걸 지니고 싸우니 신비한 힘이 막 샘솟더라니까?”
물론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다.
“그게 말이 돼? 그냥 돌인데?”
“그러면 일개 대대가 흑마법사가 섞인 오크 수천 마리를 상대로 버티는 게 말이 되나? 거기에는 부샤쿠도 있었는데? 기사도 때려잡는 골통수집가 부샤쿠 말이야.”
“···. 그, 그것도 그렇지만···.”
“형씨도 병사들 갈구다 보면 안목이라는 게 생겼을 거 아냐? 이게 거짓말하는 사람의 눈처럼 보여?”
벨람이 그의 앳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그래. 그건 맞다 치고. 우리한테 왜 말해주는 건데?”
“거, 눈치 없기는. 같이 뺑이치는 신세에 자랑이나 하려고 하겠어? 딱 담배 열 개피에 넘겨준다고.”
어쩌면 벨람은 누명을 쓰지 않았더라도 사기 혐의로 13대대에 끌려왔을지도 모른다.
어딜 가든 이런 식이었다.
13대대의 병사들은 군인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들의 영웅담을 과장되게 늘어놓았다. 필연적으로 내 업적 또한 부풀려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는 내가 등에서 날개를 펼치더니 눈에서 빔을 쏘아댔다 그랬고.
또 어디서는 내가 함성을 외치자 죽어가던 병사들이 다시 일어났다고 했다.
신앙심이 깊은 어떤 병사는 나를 하늘이 내려 준 여신의 사도라는 이야기까지 해댔다.
물론, 그냥 사람인 나로서는 이런 대화들을 맨정신으로 들을 수 없었다.
‘음. 그냥 돌아가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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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도 내 마음은 평온하지 못했다.
“자네! 부상이 많이 좋아졌다지?”
아침부터 막사로 쳐들어온 6군단장 크레닉 때문이었다.
웬일로 깨끗한 갑옷을 입은 그는 본 적 없이 생기있는 얼굴이었다.
“예, 군단장님.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군요?”
“흐하하! 전부 자네 덕분이지! 내가 부탁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잘해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13대대의 승리는 서부 전선 전역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측면을 노린 정예부대가 증발하고 우두머리인 부샤쿠마저 일개 대대를 해결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으며, 6군단 본진을 양공하려던 적군의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도대체 그 문제 많은 놈들을 어떻게 교정한 건가? 거의 자네를 숭배하고 있더군.”
“하하하···. 제가 한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병사들 안에 잠들어있는 충성심을 일깨워줬을뿐입니다.”
“겸손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야. 그래도 밉지가 않군. 그러고 보니, 내 딸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지? 잠깐 기다려 보게. 내가 금방 딸의 초상화를 가져올 테니.”
“아니. 저는 아직 연애 생각은···.”
“연애는 무슨. 결혼을 해야지. 아! 설마, 제피르 공작의 딸 때문에 그런가? 이번에 둘이서 아주 애틋했다지?”
그것도 사실 오해가 있었으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다행히 군단장의 딸을 소개받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무서운 아버지를 둔 여자와 엮이는 건 세라 하나면 족하지.’
군단장이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부대를 재정비할 시간이 생겼어. 6군단은 지금부터 움브라 탈환 작전을 준비할 걸세. 그때의 치욕을 설욕할 거야.”
빼앗긴 본거지를 되새기는 군단장의 눈에 불길이 타올랐다. 나는 상투적인 말로 대답했다.
“다행이군요. 저도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응? 왜 멀리서 응원하다니, 무슨 말인가?”
“물론 마음은 함께 있을 겁니다. 다만 그, 황도와 여기까지는 꽤 거리가 있지 않습니까?”
“황도로 가겠다는 건가? 아직 자네가 해줄 일이 있어. 비교적 여유가 있을 때 다른 부대들의 군기를 점검해 줬으면 하네.”
나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군단장의 면전에 욕을 뱉을 수는 없었으니까.
“제 임무는 끝나지 않았습니까? 13대대의 정상화를 위해 저를 부르신 걸로 압니다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또 지금의 일이 있지 않나?”
나는 그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그뿐인가? 오크들이 쳐들어온 탓에 하루에만 수십 번을 죽을 뻔했다.
인간적으로, 이 정도 굴렀으면 다시 황도로 보내 줘야지. 이 거지 같은 오크밭에 더 있으라고?
나는 이 생각을 쌍욕 없이 입 밖으로 꺼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야 저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삼황자 전하의 승인 없이 움직일 수는 없는 몸인지라···.”
“흠. 그것도 그렇군. 어서 삼황자 전하께 보고하게.”
군단장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기는 했으나, 제국의 충신답게 삼황자라는 이름 앞에서 막무가내를 부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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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었다. 거기서 그대의 눈에 보이는 임무를 마치고 와라.》
나는 잠깐이나마 삼황자가 내 편이기를 기대했다는 사실을 후회했다.
“그, 황자 전하. 괜찮겠습니까? 서부 전선 말고도 제국의 감찰관이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제국을 걱정하는 그대의 마음은 잘 안다. 실제로, 그대가 내 곁에서 도와줬으면 하는 일들도 많았지.》
“그러니 말입니다. 어서 제가 황도로 가서 황자 전하의 옆을···.”
《그대를 밀어주지 못할망정 발목을 잡을 생각은 없다. 나 또한 불민하나마 노력을 하고 있어. 뒤는 나와 다른 충신들에게 맡겨도 좋다.》
“실은 제가 지난번 전투 때 입은 상처가···.”
《좋은 약을 보냈으니 곧 도착할 거다. 군단장 또한 그대의 일에 필요한 인력은 전부 지원하기로 했어. 그러니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이 인간도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았다.
《지휘관의 환영을 받은 걸로 모자라 그가 전권을 주며 붙잡으려는 하다니. 제국 감찰관 제도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삼황자가 방긋 웃었다. 어째, 저 인간이 웃을 때마다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대가 자랑스럽다, 에단. 그리고 고맙다. 내 그대를 위해 큰 상을 내릴 테니 일을 잘 마치고 오거라. 또 함께 술잔을 기울일 날을 기다리겠다.》
─ 티익.
통신이 끊긴 후.
나는 허탈한 심정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흐하하하하! 잘 됐군! 아주 잘 됐어!”
군단장이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흐하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미친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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