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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시간 님의 서재입니다.

불을 사랑한 사제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무서운시간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3
최근연재일 :
2021.05.29 10:11
연재수 :
1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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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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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29,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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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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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KILLING GINGERMAN (10)

DUMMY

하슬라는 놀란 눈으로 자기 앞에 서 있는 야힐을 바라보았다.


그는 야힐이 혼자 오지 않은 것도 그랬지만, 데리고 온 사람들 중에 헤이든이 섞여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 사제님! ”


“ 나 이제 사제 아니야. 상아탑을 나왔어. ”


“ 왜요? ”


“ 그야 ··· 널 도와주려고 그러지. ”


하슬라는 어깨를 으쓱하는 야힐과 불만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것 같은 헤이든을 번갈아 보았다.


“ 여기 뒤에 있는 사제님들도 다 널 돕겠다고 오신 분들이야. ”


“ 설마 헤이든 사제님도요? ”


그 말에 헤이든은 얼굴을 확 구기며 야힐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하는 모습이 살벌하다.


“ 야, 지금이라도 그만하고 돌아가자. 어? ”


“ 왜 그래, 아까 말 다 끝내놓고서. ”


속닥거리는 둘을 보며 하슬라는 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 저 때문에 두 분이 괜히 싸우실 필요 없어요. 사제를 관둘 필요도 없고요. ”


“ 싸우는 거 아니야. ”


“ 야, 알면 넌 조용히 하고 있어! ”


헤이든이 하슬라를 향해 삿대질했다.


“ 너 때문에 얘가 눈이 뒤집혀져서 이상한 짓 하니까 내 속이 터지는 거 아니야! "


“ 알았으니까, 부부싸움 그만하고 돌아가시라니깐. 내가 언제 도와 달랬어요? ”


이제는 야힐이 눈을 부릅떴다.


“ 넌 또 왜 섭섭하게 그런 말을 하냐. 당연히 친구끼리 돕고 살아야지. 헤이든, 너도 그래. 굳이 날 따라와서 왜 싫은 티를 내? 나도 다 들었어. 하슬라랑 너랑, 둘이 원래 사이 안 좋기로 유명했다며. ”


“ 참 나, 남들 다 알고 있을 동안 지 혼자 눈치도 못 채놓고서 ··· ”


“ 너 그냥 가. 나야 없어도 되지만, 네가 없으면 상아탑에 큰 손실이라고. ”


“ 미쳤냐? 나보고 널 두고 가라고? 또 무슨 무모한 짓을 벌이시려고? 내가 같이 안 갔을 때 네가 어떻게 됐었는지 생각해봐라. ”


야힐은 입을 꾹 다물었다가 변명을 쥐어짜냈다.


“ 그건 임무를 마치려고 하다 보니까아 - ”


“ 똑바로 들어라. 네가 간다니까 나도 가는 거야. 저 재수 없는 놈 때문에 가는 게 아니고. 젠장, 야힐 네가 나와 관련된 기억을 잃지만 않았어도 ··· 이렇게 내 말에 토 달고, 안 듣고, 그러지 않았을 텐데, ”


“ 아, 둘 다 그냥 상아탑에 있으라니까요. 하여튼 노땅들이 더 나선다니까. ”


“ 떽! ”


하슬라가 볼멘소리를 하자 둘은 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 노땅이라니. 마음만은 신생아야, 이거 왜 이래? ”


“ 신생아라니 양심도 없지 ··· . 저 두 분 책임 못 져드려요. 나중에 힘들다느니, 죽겠다느니 투덜거리면서 저 탓하지 마세요. ”


“ 걱정을 마라. ”

“ 말도 진짜 재수 없게 한다, 너. ”


“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전투 중에 죽을 수도 있어요. 지금 우리는 그 붉은 군대랑 맞붙으러 가는 거라고요. ”


“ 지금 누구 겁주니? ”

“ 너나 잘하셔. 뭐, 사제 일은 언제 안 위험했나. ”


“ 고마워요. ”


헤이든은 ( 사제 일을 하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났던 )야힐을 노려보다가 하슬라에게 홱 고개를 돌렸다.


“ 뭐라고? 왜 이렇게 중얼거려, 안 들리게. ”


“ 고맙다고요, 형님들. ”


둘은 애매한 표정을 짓다가 과장되게 몸서리쳤다.


“ 어우, 느끼해. ”

“ 목소리 까는 거봐. 토 나오게. ”


“ 에이씨, 이 아저씨들이 진짜,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


“ 알았어, 알았어. 그래, 고마워해야지, 그럼. ”

“ 당연히 평생 고마워해야지. ”


유치하게 키득거리는 둘을 보던 하슬라는 피식 웃어버렸다.


자신이 가진 모든 걸 걸고 나서는 위험한 길이었다.


실패는 곧 죽음이었다.


그래도 그 길을 가는 동안 친구가 동행해준다면, 어쩌면 그는 죽는다 해도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그리나도 곁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떠올린 생각에 그는 금방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뒀다.


“ ······ 모드니 사제님께서는 상아탑에 잘 계시는 거죠? ”


“ 응. 혹시 같이 가시겠냐고 여쭤봤는데, ”

“ 상아탑에 있어야 할 거 같다고 하시더라. 지킬 사람은 있어야 되잖아. ”

“ 서운하냐? ”


“ 전혀요. 사제님이 거기 계신 것만으로도 가운데 땅 사람들은 안심될 거예요. ”


“ 그럼. 사제님은 불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잖아. ”


“ 하슬라. ”


갑옷 차림의 룩스 무하가 그들에게 다가와 가볍게 묵례했다.


“ 그리고 사제님들. ”


“ 지휘관님. ”


“ 저희와 합류하기로 하셨나요? ”


그녀의 어깨 위에 있던 검은 매가 하품을 하자 뿌연 입김이 위로 뿜어져 나왔다.


“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


“ 잘 됐네요. 지금은 조금의 전력이라도 귀한 상황이니까 ··· 이제 다들 모였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


“ 모여서 ··· 뭘 하는데요? ”


“ 작전을 짜려고요. 갈까요, 하슬라? ”


“ 가시죠. ”


하슬라는 멀뚱히 서 있는 사제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 뭐해요, 빨리 안 따라오고. ”


퍼뜩 정신을 차린 그들은 재빨리 무하를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


서둘러 가방에 빵 몇 덩이와 여분의 옷을 쑤셔 넣던 아그리나의 팔을 누가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녀는 고개만 돌려 그 사람이 지스크라라는 것을 확인하고서, 표정 변화 없이 팔을 뿌리치고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 뭐 하는 거야, 지금? ”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야무지게 가방을 메고 일어선 아그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러 가는 겁니다. ”


“ 하슬라 그 자식한테? 지금 그 놈한테 가겠다는 건가? ”


“ 가야죠. 지금 당장 가서 해사 사제를 말릴 겁니다. 그가 잘못된 선택을 했잖아요. 뭔가 실수가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전쟁을 하겠다고 나서다니 ··· 해사 사제는 절대 이럴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를 해치고 죽음으로 몰아넣을 사람이 아니라고요. ”


지스크라는 나가려는 아그리나의 소맷자락을 다시 잡았다.


“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지? 응? ”


“ ········· ”


그는 손가락이 하얗게 질리도록 힘을 준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


“ 가서 뭘 하려고. ”


“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죠. 알고 나서, 이 전쟁을 멈추게 할 겁니다. ”


“ 겨울 동안 내 곁에 있겠다고 했잖아. 약속은 지켜야지. ”


아그리나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지금 당신과 싸우려고 샤롯과 아나메노의 군사들이 오고 있다고요. ”


“ 약속을 지켜, 아그리나. 난 당신과 약속을 지켰어. 이길 수 있는 순간에, 싸움을 멈췄다고. ”


“ 다시 돌아오면 되잖습니까. ”


“ 다시 돌아온다고? ”


그는 발작적으로 웃었다.


“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당신은 날 증오하잖아. 하슬라 곁에 서서 날 공격할 거잖아. ”


“ 대체 무슨 말입니까? 제가 왜 폐하를 증오합니까? ”


“ 내 말이 틀려? 말해봐, 드레 사제. ”


옷이 다 구겨지도록 양 팔을 잡은 억센 손아귀에 그녀의 눈이 서서히 공포로 물들었다.


몸을 빼내려고 용을 써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 이거 놓으십시오! ”


“ 못 보내. 여기 있어. ”


“ 가고 말고는 제가 정합니다. 제 자유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


“ 날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아니, 증오해도 상관없어. ”


“ 폐하! ”


“ 하지만 그놈 곁에는 절대 못 보내! ”


펑 - !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지스크라는 구석에 처박혔다.


아그리나도 폭발의 반동으로 반대편으로 튕겨나갔다.


먹먹해진 귀와 어질어질한 머리 때문에 그는 일어나려다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날아가며 어디에 부딪히기라도 했는지 그의 눈썹뼈 위로 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 너 ······ ! ”


새빨개진 그의 눈이 아그리나를 향했다.


앞으로 쭉 뻗은 그녀의 손바닥은 찬란한 금색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숨을 격하게 몰아쉬며 아그리나는 충격에 빠진 그를 응시했다.


“ 움직이지 마십시오. ”


“ 아그리나. ”


“ 움직이지 마시라 했습니다. ”


그녀는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지스크라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두서없이 주절댔다.


“ 아니야. 그러려던 게 아니었어. ”


“ ········· ”


“ 제발, 아그리나. ”


“ ········· ”


그녀는 여전히 손을 앞으로 뻗은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걱정에 잠겨 있긴 해도 순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였는데, 이제 내 앞에 있는 그녀의 눈은 궁지에 몰린 상처 입은 짐승의 것 같다.


“ 내 옆에 있어줘. 내 옆에만 있어줘. 부탁이야. 아그리나 ······ ”


지스크라는 간절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하면 그녀가 마음을 돌리기라도 할 것처럼.


미동도 없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고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와 동시에, 아그리나는 바닥을 박차고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잠깐의 자유를 누릴 틈도 없이, 보좌관에게 목을 잡혔다.


“ 으읍! ”


아스트라타는 한 손으로는 그녀의 코와 입을 천으로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목을 세게 쥐어 감았다.


목구멍까지 찔러오는 싸한 냄새와 숨 막히는 고통에 그녀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모자란 호흡을 찾기 위해 목 근처로 올라온 그녀의 손톱이 보좌관의 팔에 긴 상처를 냈다.


“ 잠시만 잠에 빠지는 것뿐입니다. ”


아스트라타는 그녀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 눈을 감으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예요. ”


다시 기적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 힘겹게 손을 들어 올리려던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안개가 서리는 것을 아스트라타는 유심히 지켜보았다.


결국 아그리나는 약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 잘했어요. ”


보좌관이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을 받아 안고 머리를 어깨에 기대게 하는 동안, 지스크라는 비척거리며 걸어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 아그리나 ······ ”


그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색색 숨을 내쉬는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비참했다.


“ 다치셨습니다, 폐하. 어서 치료를. ”


“ 신경 쓰지 말게. 지금 그녀는 어떤 상태인가? ”


“ 위험한 약물은 쓰지 않았습니다. 짧게는 하루, 길면 이틀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겁니다. ”


“ 그래. 다행이군. ······ 내 부탁을 기억해줘서 고맙네, 아스트라타. ”


“ 폐하. ”


“ 이 사람이 날 떠나 다른 이에게 가게 할 수는 없었어. 그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 ”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보좌관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침착해지려고 노력하는 자신의 왕을 바라보았다.


“ 아스트라타, 부디 사제를 그곳으로 옮겨주게. ”


“ 알겠습니다. 몸을 구속해 놓을까요? ”


“ 구속? 아니야, 아니야. ”


지스크라는 괴롭게 고개를 저었다.


“ 그저 지켜만 봐주게. 깨어나면 날 부르고. ”


“ 또 사제가 기적을 쓸 수도 있습니다. 왕께서 위험해지신다면, ”


“ 난 괜찮아. 탈출을 시도하거든, 다시 이 방법으로 부탁하네. 최대한 그녀가 다치지 않게. ”


“ ······ 명령 받들겠습니다. ”


보좌관은 그녀의 무릎 사이에 손을 넣어 안아 올렸다.


축 늘어져 흔들리는 그녀의 손을 보며 지스크라는 말없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절박하게 살아남으려고 손을 내밀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잔상처럼 남아 흔들렸다.


지키려고 했던 거였는데, 오히려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포기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어서.


그게 죽기보다 싫어서,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이제 그녀는 절대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좋아.


당신이 나를 욕하고 상처 입혀도 상관없어.


당신 곁에 조금만 더 머무를 수만 있다면 ······


✣✣✣✣


무하는 커다란 지도를 펼쳐 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지도에는 네 나라와 가운데 땅, 이를 둘러싼 산맥, 강, 호수, 도시, 사막, 초원, 숲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긴장한 병사들과 사제들을 휘 둘러보다 심각한 얼굴로 지도를 들여다보는 하슬라에서 시선을 멈췄다.


“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


흠칫 놀라서 자신을 가리키는 하슬라에게 그녀는 조곤조곤 말했다.


“ 네, 당신에게 물어본 겁니다. ”


그는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었다.


“ 음, 저에게 일일이 허락을 구하실 필요는 없으신 ······ ”


“ 필요가 있습니다. 우린 모두 당신을 파토스의 왕으로 만들기 위해 모인 겁니다. 전 지휘관일 뿐, 지도자는 아닙니다. 지금 지도자는 당신이죠. ”


그제야 하슬라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여기 모인 모두가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황급히 볼을 긁던 손을 내리고 허리를 곧게 세운 뒤, 무하를 향해 말했다.


“ 네. ”


그녀가 눈썹을 치켜뜨자 그는 재빨리 덧붙였다.


“ 우리에게 막 합류하신 분들도 계시니 먼저 간략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 알겠습니다. ”


그제야 지휘관은 웃음을 띠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곧은 손가락이 지도 위를 움직였다.


“ 모두들 아시겠지만, 우리의 거점은 이곳입니다. 가운데 땅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샤롯과 아나메노가 있지요. 그리고 왼쪽에 우리와 대항하는 루세르바와 파토스가 있습니다. ”


왼쪽 맨 아래에 위치한 파토스의 땅을 짚으며 그녀의 손가락이 멈췄다.


“ 그리고 험한 산이 이 사이를 가로막고 있죠. ”


주욱 - 그녀의 손가락이 다시 루세르바와 샤롯 사이를 가르고 가운데 땅을 감싸며 덧그린 후에 멈춰 섰다.


“ 파토스에서 샤롯과 가운데 땅으로 군대를 보내려면 이곳을 넘어야 합니다. 대규모 군대를 보내기 힘들죠. 특히 겨울에는 더요. ”


“ 가운데 땅을 지키던 병사가 몇 없었던 게 그 이유였군요? ”


잿사람 한 명이 말했다.


“ 그들은 붉은 군대도 아니었어요. 평범한 부대원들이었죠. ”


“ 그 말은, 우리도 넘어가기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유리한 상황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불리한 점을 더 많이 가지고 있죠. 상대는 지금까지 패전한 적이 없어 기세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데다, 수많은 전투 경험까지 쌓인 상황입니다. 오래 전부터 전쟁을 계획했고 준비해온 만큼, 우리의 전력도 이미 생각해놓은 상황일 겁니다. ”


하슬라는 무하의 말에 동의했다.


“ 룩스 지휘관님 말대로 우리에게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실패하면 큰 타격을 입을 겁니다. 상대에게 덤비더라도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을 가지고 덤벼야 한다는 거죠. ”


“ 잿고양이를 이용해서 군대를 옮기는 건 어떻습니까? ”


샤롯의 병사 한 명이 손을 들었다.


“ 그건 안 됩니다. 잿고양이로는 많은 물자와 인원을 옮기기가 힘듭니다. 게다가 퇴로를 확보해 놓지 못한 상태에서 적진에 들어갔다가 고립되면 우리는 끝장입니다. ”


헤이든이 말했다.


크흠.


여기저기서 불편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 다들 우리 잿사람들이 날개를 장식으로 달고 있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


야힐이 고개를 갸웃했다.


“ 산을 넘어 공격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우리가 나서줄 수 있습니다. 잿사람들은 모두 일당백의 전사들이라고요. ”


아나메노 사람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


무하는 생각에 잠겨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 그래요. 어쩌면 여러분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 , 하지만 위험한 작전이에요.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봅시다. ”


더 뭔가를 말하려던 야힐은 급히 허리를 숙였다.


헤이든이 그의 배를 아프게 찔렀기 때문이다.


“ 어쨌든 첫 번째 전투는 무조건 이곳에서 벌어질 겁니다. 이곳이 뚫리느냐, 뚫리지 않느냐에 따라 전쟁의 당락이 결정될 테니까요. 루세르바에 있는 유다 발카가 아래로 내려오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전진해서 파토스의 수도를 압박해야 합니다. ”


사람들은 하슬라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파토스와 아나메노의 국경, 숨을 곳도 없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광야.


“ 치열하겠군요. ”


“ 상대도 절대 지지 않으려 할 겁니다. ”


“ 맞습니다. ”


하슬라는 무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니까 이건 우리의 첫 번째 전투이자 최후의 전투가 될 겁니다. ”


그들은 숨을 죽인 채 종이 위의 작은 땅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만한지 실감이 나지도 않는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게 될 것이다.


“ 그리고 우리는 이길 겁니다. ”


그들은 하슬라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주먹을 가볍게 쥐고 눈은 지도에 고정한 채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 후손들이여, 그것만은 알아주시길.


나는 오직 평화를 지키고 싶었소.


우리의 나라와 이 작은 세계에 영원한 평화가 있기를 바랐소. ]


- 『 해사 하주트의 유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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