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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시간 님의 서재입니다.

불을 사랑한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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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무서운시간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3
최근연재일 :
2021.05.29 10:11
연재수 :
1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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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80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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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29,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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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4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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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6쪽

불행은 아득히 (2)

DUMMY

아그리나는 자신의 뺨에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 고소공포증은 없으시죠? ”


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은 인도자의 질문에 아그리나는 고개를 숙여 그에게 빙그레 웃어주었다.


이런 자유로운 느낌은 실로 오래간만에 느끼는 것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모두 저 아래 땅 밑에 두고 온 것 같은 느낌.


책임도, 의무도, 숭고한 사명도 없는 이 끝없는 창공.


“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을 매일 날 수 있다니, 여러분들이 참 부럽네요. ”


아그리나는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잿사람의 날개에 군데군데 나 있는 부드러운 솜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 위로 햇살이 비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인도자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셨던 모양이네요.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거나. ”


“ ········· 있었죠. ”


“ 저도 그럴 때는 몇 시간이고 하늘을 날아다니거든요. 날갯죽지가 뻐근해져도 머릿속은 차분해져서 좋아요. 음, 괜찮으세요? ”


“ 네. 덕분에요. ”


“ 엇, 저건. ”


그녀는 인도자의 말에 문득 고개를 들었다.


구름 사이로 잿사람 한 명이 빠른 속도로 둘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충돌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인도자는 속도를 줄이며 공중에서 멈춰선 다음 큰 소리로 상대방에게 외쳤다.


“ 무슨 일이신가요? ”


“ 당신이 드레 아그리나 사제가 맞습니까? ”


아그리나는 가까이 다가온 상대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챘다.


“ 맞습니다. ”


“ 사제님께 급한 전갈을 드리러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부탁하신 겁니다. ”


“ 선생님께서요? ”


내가 올 것을 알고 계셨던 걸까?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잿사람이 건넨 편지를 펼쳤다.


[ 아그리나,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날 만나러 와주서 고맙네. 아마 지금쯤이면 아나메노의 푸른 하늘 위에서 이 편지를 읽고 있겠지. 참 아름다운 장소, 아름다운 날이 아닌가? 난 언제나 아나메노에서 마지막 눈을 감고 싶었네. ]


아그리나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치받쳐 오르는 슬픔 때문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은 너무 늦었다.


“ 사제님? ”


어린 인도자가 옆에서 걱정스레 물어왔다.


그녀는 가까스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 그러니 아그리나, 자네가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이곳은 태양이 저무는 장소, 죽음의 땅이네. 슬픔에 잠겨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말고, 옆에 있는 것을 움켜쥐게. 죽어가는 늙은이는 내버려두고 태양이 떠오르는 곳으로, 자네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돌아가. 난 다만 자네의 추억 속에 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네. ]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마라.


그녀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지나갔다.


유독 어두워보였던 얼굴.


무언가를 얘기하려다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던 뒷모습.


해사 사제.


그녀는 검게 보이던 시야가 하얗게 변할 때까지, 빨개진 두 눈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손바닥을 떼어냈을 떼에는, 눈물 때문에 뿌옇게 흐려졌던 눈앞은 다시 맑아져있었다.


‘ 그를 혼자서 떠나게 내버려두는 게 아니었어. ’


아버지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그녀는 늦게 도달했지만, 하슬라에게만큼은 절대 늦고 싶지 않았다.


슬픔도 죄책감도 나중에, 모든 걸 끝마친 다음에 생각하자.


미처 읽지 못했던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선생님이 죽기 전 남긴 마지막 부탁은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 이건 ··· ! ”


“ 왜 그러십니까, 사제님? ”


인도자는 전전긍긍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 선생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


아그리나는 대답 대신 그의 어깨를 세게 붙잡았다.


“ 인도자님, 부탁 좀 하겠습니다. 해사 사제가 아까 물어봤던 그곳으로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 ”


“ 예? 거꾸리 선생님은 어떡하고요? ”


“ 선생님 덕분에 깨달았습니다. 어서, 최대한 빨리 해사 사제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


어린 인도자는 그녀의 말을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시 반대로 가기 위해 급선회했다.


“ 꽉 잡으세요! ”


그는 날개를 뒤로 젖힌 채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


그러나 하슬라는 죽음 씨의 정체를 찾기 위한 두 번째 목적지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세 명의 용의자 중 루세르바에 있던 사제는 백골 시신이 된 지 오래였지만, 다행히 이번 용의자는 아직 살아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죽음 씨는 아니었다.


“ 누구라고? ”


나이 지긋한 잿사람의 눈가는 웃는 모양으로 주름져있었다.


젊었을 적 필히 아름다웠을 그녀의 얼굴 반쪽은 목까지 이어지는 화상으로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나, 그 상처가 그녀의 영혼까지 일그러뜨리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이 잿사람의 발치에는 선한 영혼 곁에 머물기 마련인 조그만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재잘대고 있었다.


“ 누구? ”


“ 가운데 땅의 사제인 해사 하슬라래요! ”


아이의 말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슬라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애야, 안경을 좀 가져와 보겠니? ”


“ 여기요. ”


아주 느린 동작으로 안경을 낀 은퇴한 사제는 그제야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 아하, 이 붉은 머리. 흐뷔에,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 ”


“ 예? ”


“ 자네는 어째 늙지도 않고 그대로구먼. ”


혼란스러워하는 하슬라의 곁에 그녀의 아들이 스윽 다가왔다.


“ 어머니, 여기는 해사 하슬라 사제님이에요. 대제사장님이 아니라요. ”


“ 넌 누구니? ”


“ 전 어머니 아들이죠. ”


“ 으음, 당최 무슨 소린지, 원. ”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하슬라에게 돌아섰다.


“ 미안합니다, 사제님. 저희 어머니가 보시다시피 상태가 조금 ······ 나중에 괜찮으실 때 다시 들러주시겠습니까? ”


“ 아닙니다. 저, 이렇게 되신 지는 얼마나 ··· ? ”


“ 6년 전부텁니다. ”


“ 어쩌다 이런 화상을 입게 되셨는지 혹시 아십니까? ”


“ 부름을 받고 샤롯에서 임무를 맡던 중에 이렇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하시더군요. ”


샤롯이라, 정말 죽음 씨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걸까.


“ 혹시, 이렇게 몸 전체에 큰 화상을 입은 사제를 알지는 못하십니까? "


“ 글쎄요, 어머님께서 아실 수도 있겠지만. ”


“ 흐뷔에, 내 말 좀 들어봐. ‘ 리아 ’ 가 요새 통 보이지 않아. 어디에 정신이 팔린 건지 모르겠어. 파토스에 다녀온 뒤로 이상해졌다니까. ”


아들이 내미는 물을 받아 마시며 그녀는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하슬라는 늙은 사제를 향해 마주 웃어주고는, 그녀의 아들에게 속삭였다.


“ 나중에 사제님께서 정신이 돌아오시면, 한번 여쭤봐 주세요. ”


“ 그러죠. ”


“ 벌써 가려고, 이 친구야? ”


“ 네. 건강히 잘 지내세요. ”


“ 리아를 만나거든 꼭 전해줘.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야. ”


커다란 산양의 경쾌한 발굽 소리가 길 위에 다시 나기 시작했다.


마지막 용의자의 집은 아주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면 집이 있는지도 알아채기 힘든 그런 장소에.


문이 열리며 나는 삐이걱 소리가 그의 몸을 긴장시켰다.


“ 이게 뭔 ··· ”


하슬라는 마주한 풍경에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뿌옇게 부유하는 먼지들 속에 놓인 물건들은 이런 황량한 장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조그만 요람, 백마가 그려진 흔들의자, 누군가가 가지런히 정리한 동화책들, 표지에 파랑새와 아이들이 그려진 것, 여자가 창문가에 턱을 괴고 있는 것, 노인과 괴물이 마주보고 있는 것 ··· 황금색 고대 글자 카드와 홀수, 짝수, 동물무늬가 조각된 나무 주사위들, 이미 말라붙어버린 물감과 도화지들.


“ 이상하군. 이 집 주인에게는 아이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 ”


어디부터 살펴봐야 할지 아득해진 그는 우선 흔들의자 옆 바닥에 떨어져 있던 목도리를 주워들었다.


검은색 털실로 짠 목도리 끝에 금색 실로 수놓아진 태양 문양.


이건 아나메노에서는 보기 힘든 파토스의 것이다.


하슬라는 불안해진 채로 책꽂이에서 아무 동화책이나 뽑아 펼쳤다.


섬뜩한 자장가와 온갖 교훈이 섞인 이야기들이 촤르륵 넘어갔다.


중간에 한 페이지가 거칠게 뜯어낸 것처럼 찢겨져 있다.


너덜거리는 페이지 왼쪽 상단에 ‘ 용서 ’ 라는 단어가 보인다.


“ 책 주인이 이 교훈을 지독하게도 싫어했나본데. ”


그는 책을 다시 집어넣고 실내를 휘 둘러보았다.


거실 하나, 방 한 칸짜리, 둘이 살기에 아주 적당한 집이다.


아이 한 명, 어른 한 명 ··· 인적도 드문 외진 곳이니 귀찮게 하는 방해꾼들도 없었겠지.


‘ 어린 해사 하슬라와 함께 살기 위해 이 집에 하나하나 책을 사들이고, 방 안을 아기 물건으로 채웠을 사람을 생각하니 못 견디겠군. ’


똑 - 딱 - 똑 - 딱 -


어디서 느리게 흘러가는 시계바늘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 이름, 이름만 알 수 있다면 불의 심판을 내릴 수 있다. 실체가 없는 그 여자를 옭아맬 수도 있고, 어쩌면 죽일 수도 있겠지. 이 집 주인의 이름이 죽음 씨의 이름이라면. ’


끝이다.


무고한 사람들을 자비 없이 죽였던 살인마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기쁨 대신, 피로가 파도처럼 덮쳐왔다.


‘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응? 이 자를 잡으면 전쟁이 멈추기라도 할 줄 알았어? 마법처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어? ’


그는 바닥에 내려앉은 먼지 더께를 훑어내며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 그러니 청컨대, 왕이시여, 파토스의 왕에게 사과의 의사를 표현하십시오. 오해로 비롯될 비극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 그런 행동들도 모두, 혁명이 끝난 후여야 할 수 있네. 이런 때에 그런 행동은 ··· 국민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 걸세. ]


혁명이 끝난 지금, 아이기스 왕은 약속을 지킬까?


사과를 받으면, 지스크라는 자기 손으로 시작한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하슬라의 두 손이 붉은 머리칼 사이를 헤집었다.


‘ 죽음 씨가 죽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전쟁 앞에서 무력하게 죽어갈 거야.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


벌써 해가 지려 하는 건지, 그의 등을 따라 기다란 그림자가 늘어졌다.


세상에 자기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턱 밑까지 차올라 하슬라는 숨이 막혔다.


그때, 툭 - 손끝에 무언가가 걸렸고,


그는 누가 읽어주기를 바란 것처럼 활짝 펼쳐놓은 일기장과 마주쳤다.


✣✣✣✣


“ 해가 벌써 다 졌어요. ”


아그리나는 인도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 고마워서 어떡하죠. 그리고 미안해서 ······ ”


“ 저언혀 아닙니다. 사제님들께 보탬이 되는 일인데요. ”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어린 인도자의 머리에도 오랜 비행으로 인해 땀이 맺혀있었다.


“ 생각보다 마지막 집이 머네요, 붉은 머리 사제님께서도 가는 길에 꽤 애먹었겠어요. ”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아그리나의 머릿속에는 계속 불길한 단어가 둥둥 떠다녔다.


‘ 뒤늦음 ’이라는 단어가.


“ 동트자마자 출발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한 치 앞도 안 보이니까 우선 쉬고요. 사제님도요. ”


인도자의 배려 섞인 말에 그녀는 비와 추위를 간신히 피할 수 있을 정도의 낮은 정자 아래에 앉았다.


후우 -


그녀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한 채 높게 굳어있던 어깨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밤이 되면 제법 춥다.


말로는 아무렇지 않다던 인도자는 날개가 고되었는지 꾸벅꾸벅 졸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만 홀로 어두운 밤의 한가운데를 응시하고 있다.


해사 사제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 딸깍 -


그녀는 여행으로 인해 쌓인 피로와 부족한 잠 때문에 헛것을 본 것 같았다.


아무도 없어야 하는 저편에 등불 하나가 일렁거렸던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소리는? 환청까지 들은 것일까?


딸깍 -


아그리나는 벌떡 일어났다.


잘못 본 게 아니다.


누군가가 그녀를 향해 등불을 비추며 천천히 흔들고 있다.


이쪽으로 오라는 것처럼.


‘ 마침내 죽음이 나에게도 찾아온 건가? ’


그녀는 인도자를 깨우지 않고 천천히 흔들리는 등불을 향해 걸어갔다.


불빛에 가까워질수록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커다란 인영이 일렁거리는 게 보였다.


“ 역시 똑똑해. ”


두 번째 만남, 죽음 씨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 인도자를 깨우지 않은 건 잘한 일이야. 어린 것들을 죽이는 건 내 취미가 아니거든. ”


“ 당신을 찾아다녔습니다. ”


아그리나는 호수처럼 고요히 말했다.


“ 나도 널 찾아다녔다. ”


“ 날 죽이러 온 겁니까? ”


“ 조금 서운하네. 사제님은 내가 평범한 살인마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잖아. 나는 살인을 즐기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필요할 때만 할 뿐이지. 더 큰 계획을 위한 수단으로. ”


“ 놀랍게도,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전부 단단히 미쳐있더군요. ”


“ 자아성찰에 대한 대화를 하러 온 것은 아니고. ”


죽음 씨는 미소를 흉내 내려 입을 비틀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 사제님의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왔지. ”


“ 해사 사제를 ··· ? ”


“ 소중한 연인과 함께 자네의 아버지를 죽이고 온 소감이 어때? ”


아그리나는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위가 어두워 자신의 표정이 가려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 선생님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모양이군. 불행은 항상 겹친단 말이야. 이상하게. ”


“ 어떤 말로도 우리 둘의 사이를 이간질할 수는 없을 겁니다. ”


“ 그럼. 어떤 말로도 진실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는 법이지. ”


“ 당신은 우리가 무섭군요. ”


아그리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 우리 둘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서운 거예요. ”


“ 나도 너처럼 가운데 땅의 촉망받는 젊은 사제였지. 신뢰할 수 있는 친구도 곁에 있었고. 그거라면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드레 사제. ”


사형선고를 내리는 시계초침소리처럼, 죽음 씨의 등불이 흔들리며 딸깍거렸다.


“ 살고 싶다면 가장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의심해야 해. 그의 과거를 들어본 적 있어? 그가 널 만나기 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 그에 대해 알아? ”


아그리나는 뒷걸음질 쳤다.


이 자가 어떻게 해사 사제에 대해 안단 말인가?


“ 그가 나와 한 대화를 너에게 들려준 적 있어? 레도가 죽었던 그 현장에서 나와 만났다는 이야기는? ”


죽음 씨는 그녀를 향해 미끄러지듯이 다가왔다.


“ 해사 하슬라는 내 이름까지도 알고 있어. ”


심장이 멈추고 숨이 틀어막혔다.


“ 하지만 너에게 이야기해주지 않겠지. 거짓말하겠지. 비겁과 위선 속에 숨어버리겠지. ”


저 어둠 속에 높이 솟은 교수형대가 보였다.


“ 단 한 순간도 너에겐 진심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이야. ”


누군가를 목매달기 위해 존재하는 고리가 바람에 천천히 흔들렸다.


그건 죄의 대가를 바라고 있었다.


“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 ”


훅 - 등불이 꺼졌다.


곧 완전한 어둠이 그녀를 까맣게 뒤덮었다.


[ 아나메노의 인도자는 죽은 자들과 가깝다.

그러니 그들이 가만히 서 있을 때에는 방해하지 말라.

죽은 자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니. ]

- 『 죽음의 날개 』


작가의말

아직 안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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