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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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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최근연재일 :
2022.05.29 21:2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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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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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730

작성
22.04.3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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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두 번째 재앙 (4)

DUMMY

27.


“······끝났네.”


허물어진 여왕개미의 사체를 뒤로하고 한지혁이 나지막이 중얼거린 말이었다.

아직 개미들의 군세는 여전했지만 한지혁은 실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왕개미는 죽었으니까.’


지저굴의 개미는 여왕개미의 명으로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꼭두각시다.

수백의 개미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연유는 여왕개미의 페로몬에 종속된 탓이다.

한데 녀석들을 움직이던 주체가 한 순간에 없어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조종간이 비는 거지.’


당장 병정개미부터 머리를 갸웃하며 렉이라도 걸린 것처럼 머뭇거리고 있었다.

허공을 선회하던 장수개미는 엔진에 불이 붙은 비행기처럼 추락하기도 했다.

변화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개미가 도망칩니다!”


구심점을 잃어 오합지졸이 되어버린 개미들은 각자의 생존을 택했다.

본능이 내린 결정이었다.

몇몇은 여전히 사람들을 향해 이를 드러냈지만, 두서없는 공격은 위협조차 되질 못했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끄, 끝난 건가?”


누군가가 중얼거리며 천천히 무기를 아래로 내렸다.

이곳이 언제 전장이었냐는 듯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직 현실 감각을 되찾지 못한 채 눈만 멀뚱멀뚱 떴다.

그렇게 얼마나 더 있었을까. 김도겸은 호흡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아직 긴장을 놓진 말아요. 이것도 놈들의 계략일 수도 있으니까.”


일주일이 넘도록 개미들의 게릴라 전략을 당해보면 안다.

빌어먹을 개미들은 죽은 척 숨어있다 헌터들을 기습하기도 한다.

어쩔 땐 구역 자체를 매몰시킨 탓에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개미들은 지독하게 악랄하다.


‘뭐, 이번엔 진짜 끝이지만.’


한지혁은 입가에 감도는 쓰디 쓴 쑥과 알싸한 마늘 향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엔 다치고 지친 표정의 사람들이 보였지만, 명백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50명 남짓인가.’


회귀 전의 세계에선 손에 꼽던 생존자 수는 이렇듯 수십 단위로 늘어났다.

비록 로툰을 사냥하진 못했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할 것이다. 하물며 당장 김도겸의 다리도 멀쩡하지 않은가.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이다.


“이번에 돌아가는 길은 훨씬 떠들썩하겠어.”


드드드드!


모두의 우려를 배반하고 서서히 벽면은 갈라지고.

서울로 돌아가는 귀환 게이트가 생성되고 있었다.


*


찰칵! 찰카악!


수많은 인파가 들끓는 창동역의 인근.

온갖 방송국의 취재진이 카메라를 들이밀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현재 상황을 알려주시죠! 게이트로 난입된 생존자는 찾은 겁니까?”

“창동역 게이트 공략으로 어떤 길드가 선발되었습니까? 하늘입니까? 흑사패입니까?”

“대답해주십시오! 국민들에겐 알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관리국의 직원인 백준호 팀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막말로 그는 왜 자신이 이런 곳에 파견된 건지 그저 한탄스럽기만 했다.


‘나보고 뭘 어쩌라고······.’


달리던 전철이 통째로 게이트로 난입해버린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관리국에서도 기민하게 반응했다.

벌써 일주일 전에 게이트를 공략할 파티도 완성했다.

인력도, 재력도, 모든 준비를 마친 그들은 게이트로 진입만 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창동역 게이트가 빌어먹을 폐쇄형이라는 거겠지.’


폐쇄형 게이트로의 진출을 해내려면 단 두 가지의 선결 조건이 필요했다.

난입한 사람이 어떻게든 탈출에 성공해서 게이트 내부가 텅 비어버리거나.


‘그들 모두가 죽는다거나.’


중간 난입을 불허하는 폐쇄형 게이트 특유의 특징 앞에선 그 어떤 S급 헌터도 무의미했다.


‘젠장······.’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기자들을 앞둔 백준호는 답답함에 한숨만 토해냈다.

그렇다고 오직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기엔 곤란한 일이다.

관리국의 위신이 걸렸다.


“하······ 진짜 돌겠네.”


미간을 팍 구긴 백준호는 철로 위의 게이트를 올려다보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특수한 임무를 맡은 다수의 화원의 헌터가 전철에 탑승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파악된 바로는 그 숫자만 대략 16명.

평균 D급 헌터였으니, 최악을 상상하진 않아도 될지도 몰랐다.


‘게이트의 등급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지. 하······.’


백준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시선을 기자들에게 돌렸다.

부하직원이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시려고요?”

“어쩌긴, 다른 방법이 있어?”

“······하지만 그래서는 팀장님이 경질될 수 있습니다. 상부에선 아직 그 어떤 진실도 밝히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백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마, 아무리 그래도 더 이상의 희망고문은 예의가 아니지.”


게이트로부터 흘러나온 마력량을 측정한 결과 값은 최소 이곳이 C급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리고 평균 D급인 헌터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C급 던전을 공략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김도겸이 있다지만······.’


설령 그가 게이트를 탈출한다고 한들 생존자가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추측할 수 있다.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번 사건은 오직 참극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빤한 결론이 보이는 데에 괜한 희망고문으로 유가족을 더 괴롭히고 싶진 않았다.


‘이젠 말해줘야 해.’


그것이 이번 사건을 맡은 그의 최소한의 도리였고 책임이었다.

그리고 부하직원이 대뜸 백준호의 어깨를 짚은 건 그때였다.


“어, 어······ 팀장님.”

“됐어. 말려도 소용없다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게이트가 움직이는데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눈만 깜빡인지 얼마나 되었을까.


츠츠츠츠츳!


일주일은 족히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던 게이트가 화려한 빛무리를 일으켰다.


*


게이트를 벗어나자마자 한지혁을 비롯한 일행은 두 눈을 번쩍이는 플래시 세례에 일단 미간부터 팍 구겨야만 했다.

SBT, KBT, MBD, YTM······.

현존하는 각 방송국에서 취재차 나왔던 기자들이 연신 마이크를 들이밀며 냅다 질문부터 던져온 것이다.


“김도겸 헌터! 게이트는 공략된 겁니까? 대체 안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소감 한 마디 해주십시오! 전 세계에서 보고 있습니다! 고광렬 헌터, 여기 봐주십시오!”

“SBT에서 나왔습니다. 이 안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몬스터는 어떤 몬스터가 출몰했죠?”

“생존자는 몇 명입니까! 김도겸 헌터! 대답해주십시오!”


정리되질 못한 수많은 질문 속에서 생환한 헌터들은 탈출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곤혹부터 겪어야 했다.

아무렴 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을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관리국의 직원들이 애써 막는 눈치였지만 기자들의 카메라는 그보다 예리했다.


‘이건······ 피해야겠군.’


한편 소리 없이 그 현장을 빠져나가려니 한지혁은 김도겸과 시선이 부딪치고야 말았다.

의문이 섞인 눈으로 이쪽을 바라봤지만 구태여 그는 한지혁을 붙잡으려 하진 않았다.

인터뷰의 홍수에 빠진 탓도 있겠지만은, 한지혁이 왜 여길 빠져나가려는지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난 있어도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해. 내 존재가 발각되면 굉장히 곤란해질 거야.’


이는 이전처럼 딱히 나비 효과 따위를 우려해서 도망치는 건 아니었다.

그가 걱정하는 건 전혀 다른 방향의 문제.

현재의 시점에서 사람들이 그를 받아들일 수 있냐는 데에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살인자로 낙인찍힌다.’


한지혁은 지저굴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사람의 목을 베고 말았다.

말했듯 그건 부득이한 일이었지만, 이게 부득이했다고 설득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아직 개미병이 불치병이란 사실이 공공연하게 밝혀지지 않은 세계니까.’


그의 확신으로 사람을 죽인 죄로 그에게 괜한 살인죄가 덧씌워질 수도 있었다.

하물며 그는 F급 헌터.

누군가의 생사여탈권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이름 있는 헌터도, 권한도, 무엇도 없는 무지렁이 같은 존재였다.

즉 이번엔 어떤 식으로든 한지혁의 이름 석 자가 들통 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완벽하게 숨기 위해서 아직까지 F급 헌터로 머물고 있는 거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F급 헌터가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진 못할 테니까.

아니, 들어도 믿지 못할 테니까.


“······그나저나.”


천천히 무리에서 멀어져 주변을 둘러보던 한지혁은 가까이 다가오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당장 인식 장애 모자를 써 얼굴만큼은 누군지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은.

그 목소리는 귀에 익었다.


“무사귀환을 축하드립니다.”

“······신우민 헌터.”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한지혁 헌터에겐 몇 번이나 더 고마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지혁은 신우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지막이 답했다.


“화원의 희생자들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저 때문에 괜한 일에 말려들게 만들었습니다.”

“아뇨, 제 불찰입니다. 한지혁 헌터를 시험하겠다고 낮은 등급의 헌터를 보낸 건 저니까요.”

“······솔직하시군요.”

“잘못은 잘못이니까요.”


신우민은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그 모습에 한지혁은 쓰게 웃었다.

이걸로 일단 그의 테스트는 완전히 통과했다고 봐도 되는 걸까.

한지혁은 그를 바로 세우며 물었다.


“그보다 제가 부탁한 걸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이런 게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있습니다.”


한지혁은 신우민이 건넨 가방을 받아들었다.

만약 정말로 창동역에서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면······.

일찍이 준비해달라고 부탁해뒀던 물건.

한데 가방 안을 확인한 한지혁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이게 다 뭡니까?”

“제가 준비한 약소한 선물입니다.”

“약소하다고요······?”


가방 속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물약이 꽉꽉 들어찬 상태였다.

최소 중급으로 분류되는 물약부터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최상급 물약까지.

심심하지 않게 먹을거리까지 넣어준 센스는 또 뭐란 말인가.

그 구석엔, 한지혁이 부탁한 물건이 소소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굉장히 주객이 전도됐다.


“사과의 뜻과 모두를 지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심지어 가방은 억 단위로 판매되는 ‘인벤토리’ 마법이 내장된 물건이었다.

물약을 언제나 최상의 상태로 보전하기 위한 자동온도조절은 기본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에 음식을 쌓아둔다면 평생 썩을 일이 없을 거다.


‘이거 나중엔 진짜 귀해지는데.’


냉장고고 뭐고 음식을 보관하기 힘들어질 미래엔 이 가방이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물론 한지혁은 냉큼 받아들었다.


“성의를 거절할 순 없죠.”


어차피 이번 사건으로 인해 화원의 명성은 엄청 드높아질 테니 서로 이기는 장사였다.

화원은 이런 것쯤은 가뿐히 주고도 남을 정도로 든든한 재력을 갖춘 곳이기도 하고.


“그럼 길드에 가입하실 생각은······.”

“없습니다.”


신우민은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다음 일정은 있으십니까? 없으시면 저랑 저녁이라도 함께 어떻습니까.”

“아, 미안합니다. 약속이 있어요.”

“네?”


사실 인터뷰의 홍수에 빠져선 안 될 가장 중요한 이유.

그에겐 오직 하루라는 시간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니면 다시 만나기 힘든 놈이 있거든요.”


*


신우민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한지혁이 냅다 도달한 곳은 탑이었다.

그곳에서도 탑의 측면.

한 번이라도 오른 적이 있는 층이라면 어디든 한 번에 도달할 수 있는 포탈을 앞에 뒀다.

한지혁은 잠시 가방을 열었다.


[여왕개미의 더듬이].


보기만 해도 끈적한 무언가가 듬뿍 묻은 아이템.

지저굴에서 친히 챙겨온 유일한 전리품이었다.


‘만지기도 싫군.’


하지만 이 불쾌한 물건이야말로 그를 녀석에게 인도해줄 복덩이나 다름없다.


“그럼······ 가볼까.”


한지혁은 가방을 닫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탑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가 향할 곳은 탑의 10층대 어딘가.


“기다리고 있으라고.”


오늘 그는 이 세계에서 가장 흉악한 해충을 박멸하고 말 것이다.


작가의말

다음 편은 오늘 밤, 21시 25분에 연재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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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두 번째 재앙 (5) +2 22.04.30 5,273 100 13쪽
» 두 번째 재앙 (4) +2 22.04.30 5,376 95 13쪽
26 두 번째 재앙 (3) +3 22.04.29 5,427 92 13쪽
25 두 번째 재앙 (2) +2 22.04.28 5,502 94 13쪽
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23 지저굴 (4) +7 22.04.26 5,609 103 13쪽
22 지저굴 (3) +3 22.04.25 5,615 89 13쪽
21 지저굴 (2) +2 22.04.24 5,807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19 화원 (2) +5 22.04.22 6,131 106 13쪽
18 화원 +4 22.04.21 6,215 94 13쪽
17 F급 짐꾼 (4) +2 22.04.20 6,295 108 12쪽
16 F급 짐꾼 (3) +4 22.04.19 6,278 100 13쪽
15 F급 짐꾼 (2) +2 22.04.18 6,474 94 13쪽
14 F급 짐꾼 +3 22.04.17 6,737 96 13쪽
13 인과 (4) +4 22.04.16 6,670 104 13쪽
12 인과 (3) +2 22.04.15 6,682 106 13쪽
11 인과 (2) +2 22.04.14 6,756 107 13쪽
10 인과 +6 22.04.13 7,051 105 13쪽
9 첫 번째 재앙 (5) +3 22.04.12 7,174 110 12쪽
8 첫 번째 재앙 (4) +3 22.04.11 7,394 114 13쪽
7 첫 번째 재앙 (3) +4 22.04.10 7,525 104 13쪽
6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4 111 12쪽
5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3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49 108 13쪽
3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2) +8 22.04.06 9,963 110 13쪽
2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7 22.04.06 11,051 119 13쪽
1 프롤로그 +8 22.04.06 14,900 14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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