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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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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최근연재일 :
2022.05.29 21:2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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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730

작성
22.04.0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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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첫 번째 재앙 (2)

DUMMY

6.


회귀 전.

첫 번째 재앙이 태동했을 당시의 한지혁은, 여의도 대피소의 피난민 중 하나였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발생한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

운이 좋게도 그는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만나지 않고 대피소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날 나는 죽을 뻔했다.’


대피소가 마련된 여의도 공원에 다다른 한지혁은 무럭무럭 피어나는 검은 연기를 확인했다.

그곳에서 방망이질을 잇는 오우거와 거친 박투를 벌이는 한 명의 헌터도 발견했다.

그녀가 누군지는 빤한 일이다.


‘S급 헌터 차유라.’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농익은 불꽃이 오우거의 근처를 직격했다.

꽤 먼 거리까지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오우거의 단단한 피부를 뚫진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곳에 닿지도 못했다.

어느덧 대피소의 지근거리까지 다다른 한지혁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전투를 보며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의 차유라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당장 차유라의 화력은 오우거를 송두리째 불태워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어디 녀석의 몸에 닿아야 대미지가 들어가질 않겠는가.

오우거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차유라의 불꽃을 이리저리 피해냈다.

단순한 힘의 균형은 차유라가 압도적이지만, 전혀 우위를 점하질 못하는 것이다.

한지혁은 간단히 평을 내렸다.


‘경험이 너무 부족해.’


한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곳을 지나쳐 달렸다.

당장 차유라를 노리고 거대한 몽둥이가 휘둘러진대도 한지혁은 신경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차유라가 이기는 싸움이야.’


여기서 차유라가 죽는다면 미래의 S급 헌터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회귀 전의 세계에서, 차유라는 혼자서 여의도 인근의 몬스터를 토벌했다.

차유라의 승리는 싸우기도 전부터 정해진 일이었다.


‘······문제는 저놈이 아니야.’


발 빠르게 대피소로 진입한 그는 질서 없이 모여든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불안에 떨면서 기도하는 사람, 가족을 찾아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과거의 그가 그러했듯.

견고하게 마련된 대피소로 회피한 사실에 그나마 안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곳에 있을 거야.’


한지혁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피소 내부를 샅샅이 수색해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찾는 곳은 아무래도 지하로의 이동 통로였다.

이곳의 지하에는 장기적인 대피를 위해서 만들어둔 벙커가 존재했다.

그곳에 가면 반드시 처리해야 할······.


“한지혁?”


그때였다.

누군가가 대뜸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잠시 눈을 가늘게 뜬 한지혁은 이내 상대를 알아보았다.

아니, 어찌 몰라보겠는가.


“선생님.”

“지혁이 맞지? 너, 어디 다친 데는 없지?”

“네, 뭐······.”

“다행이야. 천만다행이야.”


한지혁은 데자뷔처럼 말을 꺼낸 선생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젠 꽤 오래된 기억이라 잊고 지낼 법한 얼굴이었다.

하나 막상 그 얼굴을 마주하니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끝까지 날 챙겨준 사람.’


가족이 몰살당하고, 친척조차 그를 외면하여 의지할 곳 하나 없던 시절.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를 물심양면 챙겨주던 유일한 어른이었다.

졸업 이후로는 몇 번 보진 못했지만, 회귀 전의 세계에서도 그는 이곳에서 선생님을 재회했었다.

덜덜 떨고 있던 그의 손을 맞잡아준 그 다부진 손길은 아직도 기억에 선했다.


“일단 이리로 와. 선생님이 보급품을 받아둔 게 몇 개 있어.”


거칠지만 따뜻했던 그 손을 바라보던 한지혁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동적인 재회를 하기엔 아직 너무나도 이른 시점이었다.


“아뇨, 전 괜찮습니다.”

“응?”

“그리고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너, 무슨······?”


한지혁은 선생님을 지나쳐 더더욱 빠르게 수색범위를 넓혀나갔다.

칠성보마저 발휘한 그를 선생님은 따라잡을 수 없었고, 이윽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력이 공급되질 않았는지 어두컴컴한 지하는 으슥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한지혁은 생각했다.


‘늦지 않았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안쪽으로부터 끈적한 공기가 다가왔다.

응축된 마력은 곧 이곳으로 무언가가 나타난다는 걸 암시해준다.

한지혁은 오래 전 과거와 눈앞의 현실을 교차해서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살아있어.’


괴로운 듯 피를 토하며 쓰러진 선생님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창졸간에 나타난 몬스터······ 그로부터 한지혁을 구하기 위해 제 한 몸 던진 대가였다.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허물어간 선생님의 모습을 다시금 선명하게 되새겼다.


키에에엑!


한지혁은 음영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붉은 안광을 바라보았다.

대략 무릎까지 오는 작은 체구. 노인처럼 자글자글한 피부.

기다란 대롱을 손에 쥔 녀석은 흉포한 울음을 토해냈다.


‘고블린.’


녀석의 흉물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한지혁은 입꼬리를 씨익 올려 웃었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이 뒤늦게 그를 기쁘게 했기 때문이다.


“나 정말 돌아온 거구나.”


회귀 전 그날.

여의도 대피소는 공교롭게도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끔찍한 장소가 되고 말았다.

차유라가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끝내 그녀로부터 인근의 몬스터가 말살되었음에도······.

그날 대피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100명 안팎의 숫자였다.


‘이곳의 수용인원만 만 단위를 넘어서는 걸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일이지.’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참극이 일어나고 만 걸까.

한지혁은 정면의 고블린을 응시했다.


‘모두 이놈 때문이다.’


대피소의 외벽은 핵폭발조차 막아내는 설비였다. 일개 몬스터 따위가 뚫을 만한 두께도 못 된다.

모로 가도 도로 가도 대피소에만 들어가면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는 말이 괜히 떠돈 게 아니다.

하지만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대피소 안에 게이트가 생성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게이트 생성을 방해하는 재밍 기능까지 갖춘 대피소였기에 더더욱 당시의 충격은 대단했다.


“후우······.”


한지혁은 거슬리는 고블린의 울음에 미간을 찌푸리며 창졸간에 검을 뽑아들었다.

녀석의 몸은 하운드보다 질기진 못했는지 쉽게 잘려나갔다.

사실 몬스터 자체의 수준은 F급 던전에서 흔히 볼 법한 정도에 불과했다.

대피소의 사람들이 대다수 일반 시민으로 구성되었기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따름이다.


“이번엔 다를 거야.”


가방에서 야광봉을 꺼내어 정면으로 내던졌다.

은은한 빛이 지하에 감돌자, 서서히 이쪽으로 움직이던 고블린의 모습이 보였다.

대략 여덟 마리의 고블린은 일제히 한지혁을 향해 포효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대롱이 아닌, 검이나 방패 따위를 들고 있었다.


“스으으으으읍.”


공기를 쫙 들이마신 한지혁은 지체할 것 없이 칠성보를 발휘했다.

1년의 수련이 헛되진 않았는지 그의 몸은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이내 세 마리의 고블린을 양단 낼 수 있었다.


키아아아앗!


검을 쥔 몇몇은 한지혁의 속도에 반응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한지혁이 일순 느리게 움직이다, 그 속도를 갑작스럽게 올렸다.

일종의 페이크.

단순히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완급 조절을 통해 상대의 페이스를 빼앗는 기술이었다.

한지혁은 단숨에 그에게 몰려들던 고블린의 멱을 모조리 베어낼 수 있었다.


“후우우······.”


길게 숨을 토해낸 한지혁은 잠시 그가 만들어낸 풍경을 바라봤다.

종잇장처럼 잘려나간 고블린의 사체가 지하에 장식되고 있었다.

일찍이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상상해보고 그려봤던 풍경이었다.


-한지혁, 아직 끝이 아니야.

“알아.”


한지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


키이이잇! 키이잇!


사나운 울음을 앞두고 숨을 참은 지 얼마나 됐을까.

한지혁은 고블린의 시체를 짓밟고 사방이 수풀로 우거진 어느 어두운 숲속에 섰다.

이곳은 F급 게이트 ‘고블린의 정원’.

여의도 대피소의 지하에 생성된 게이트의 내부였다.

그는 이곳까지 오면서 수십에 달하는 고블린을 사냥해냈다.


“진짜 쉽지 않네······.”


체력이야 지난 1년의 훈련 덕에 엄청나게 좋아졌다.

마력 자체도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흡수되고 있었으니 부족하진 않았다.

되레 수백의 고블린을 사냥한 덕분에 마력의 양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나 있었다.


‘난 스킬도 안 쓰니까.’


하마처럼 마력을 잡아먹는 스킬을 난사할 일이 없다.

기껏해야 신체를 강화할 뿐인 게 작금의 마력 운용 방식이었다.

마력이 줄어드는 것보다 늘어나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신적인 피로겠지.’


막말로 금일 첫 실전으로 들어선 한지혁은 벌써 두 개나 되는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었다.

처음보다 마력의 크기가 늘어난 덕에 움직임은 가벼워도 머리가 개운하질 못했다.

그가 로봇이 아닌 이상 지치고야 만다.


-여기선 이놈이 마지막이다. 조금만 더 견뎌보거라.


늘 잔소리를 해대던 아일로이조차 응원할 정도로 힘겨웠다.

심지어 그는 밥 한 끼 제대로 먹질 못하지 않았던가.


“이번 일만 끝나면 반드시 치맥이다.”

-현명한 선택이로다.


호흡을 가다듬은 한지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드디어 한 몬스터를 앞에 두었다.


키아아아앗!


눈을 마주치자마자 냅다 포효하며 달려드는 녀석.


‘고블린 워리어.’


녀석이 제 몸만 한 검을 휘두르자 보이지 않는 ‘바람 칼날’이 생성되어 이쪽으로 날아왔다.

거두절미하고 칠성보를 발휘한 그는 바람 칼날의 간격을 벗어나며 생각했다.


‘제법 빨라. 근데······.’


수 개의 바람 칼날을 피하며 한지혁은 고블린 워리어의 정면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래봐야 고블린이지.’


한지혁은 녀석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피해 손쉽게 그 복부를 베어내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나 멀찍이 도망쳤다.


‘소리를 지르겠지.’


키아아아아앗!


회귀 전에도 고블린 사냥 영상 정도야 골백번은 감상했다.

특히 고블린 워리어는 탑에서도 흔히디 흔한 몬스터.

치명타를 입은 녀석은 필연적으로 생존을 위해 한 가지 행동을 잇는다.


‘귀찮은 패턴이라니까.’


녀석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괴성을 질러댔다.

동시에 그 주변의 공기가 일제히 폭발하면서 사방으로 영향을 주었다.


‘맞질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지혁은 종전에 했던 공격을 반복하며 고블린의 몸에 상처를 누적해나갔다.

나름 F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답게 피통도 생각보다 훨씬 넓은지 쉽게 죽진 않았다.


‘이제 좀 끝내자.’


다리에 마력을 집중시켜 용수철처럼 튀어오른 한지혁은 그대로 고블린의 반경에 접어들었다.

녀석이 반응하여 바로 한지혁을 향해 바람 칼날을 생성했지만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푸슈우우욱!


수많은 상처가 누적되어 녀석의 속도도 느려졌을 뿐더러, 창졸간에 휘두른 일격은 녀석의 급소를 정확하게 파고들었으니까.


-실전이 최고의 훈련이니라.


그렇게 놈을 찔러 죽인 한지혁은 머뭇거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빠르게 물러났다.

놈의 피가 쫙 터진 순간이었다.


“지독한 놈이라니까. 죽는 순간까지 거슬려.”


녀석의 피에 닿은 땅바닥은 염산에 닿은 것처럼 부글부글 끓더니 녹아내였다.

녀석의 마지막 패턴이었다.


“후우우······.”


길게 숨을 내뱉은 한지혁은 전장을 둘러보았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고블린 워리어를 향한 긴장을 놓진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놈은 완전히 죽어버렸는지 더는 움직이질 않았다.

그보다 놈의 몸에서 슬그머니 흘러나온 무언가가 눈에 잡혔다.


“잠깐, 이거 설마······.”


미간을 좁히며 가까이에 다가가 그 생김새를 확인한 한지혁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건 그가 아는 물건이었으니까.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지친 얼굴로 가만히 고블린 워리어가 남기고 간 아이템을 내려다보며 한지혁의 시선은 침잠했다.


작가의말

내일도 이 시간에 만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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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두 번째 재앙 (5) +2 22.04.30 5,273 100 13쪽
27 두 번째 재앙 (4) +2 22.04.30 5,376 95 13쪽
26 두 번째 재앙 (3) +3 22.04.29 5,427 92 13쪽
25 두 번째 재앙 (2) +2 22.04.28 5,502 94 13쪽
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23 지저굴 (4) +7 22.04.26 5,609 103 13쪽
22 지저굴 (3) +3 22.04.25 5,615 89 13쪽
21 지저굴 (2) +2 22.04.24 5,808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19 화원 (2) +5 22.04.22 6,131 106 13쪽
18 화원 +4 22.04.21 6,215 94 13쪽
17 F급 짐꾼 (4) +2 22.04.20 6,295 108 12쪽
16 F급 짐꾼 (3) +4 22.04.19 6,279 100 13쪽
15 F급 짐꾼 (2) +2 22.04.18 6,474 94 13쪽
14 F급 짐꾼 +3 22.04.17 6,738 96 13쪽
13 인과 (4) +4 22.04.16 6,670 104 13쪽
12 인과 (3) +2 22.04.15 6,682 106 13쪽
11 인과 (2) +2 22.04.14 6,757 107 13쪽
10 인과 +6 22.04.13 7,051 105 13쪽
9 첫 번째 재앙 (5) +3 22.04.12 7,174 110 12쪽
8 첫 번째 재앙 (4) +3 22.04.11 7,394 114 13쪽
7 첫 번째 재앙 (3) +4 22.04.10 7,527 104 13쪽
»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5 111 12쪽
5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4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50 108 13쪽
3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2) +8 22.04.06 9,963 110 13쪽
2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7 22.04.06 11,051 119 13쪽
1 프롤로그 +8 22.04.06 14,900 14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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