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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님의 서재입니다.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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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295,338
추천수 :
14,095
글자수 :
1,877,846

작성
20.07.03 16:29
조회
1,494
추천
69
글자
11쪽

독기의 골짜기(Valley of Venom)(3)

DUMMY

“···잡아먹힌다고?”


시드는 질린 낯을 한 채 물었다.

소년은 어두운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응. 저 사람들이 배가 고프다고 무작정 다 잡아먹는 건 아니지만···우리 같은 애들의 경우에는 아주 많이, 위험하지.”


어린애들은 사냥할 시의 위험부담도 거의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고기가 야들야들하고 맛있다.

지금 시드와 소년 일행은 독인들이 환장한 채 달려들 수밖에 없는 요건을 전부 갖추고 있는 것이다.


시드는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독인들을 바라보았다.


“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랬지?”

“······응.”

“내가 보기엔 아니야.”


저들은 인간종이 아닌 식인종이었다.

시드는 동족포식Cannibalism을 일삼는 자들을 동족으로 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소녀는 단호히 말했다.


“저것들은 괴물이야.”

“······.”

“그리고 괴물은 괴물답게 대해야 해.”


그녀는 손에 먹빛의 칼날을 움켜쥐었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준비 만반인 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시드의 모습에, 옆의 소년이 기겁한다.


“아···아니지? 너 설마···아닐 거라고 믿어.”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은 들킬 확률이 너무 높아. 저것들, 괴물답게 꽤 감각이 예민한 것 같거든.”


시드는 사납게 말했다.


“그러니까 난, 당하기 전에 먼저 칠거야.”

“그, 그럼 난?!”

“넌 가만히 보고나 있어. 내가 다 죽여 버리고 올 테니까.”


그 앳되고 고운 미형의 얼굴에 사냥 직전의 맹수를 보는 것 같은 야성이 깃들었다.

아무리 설득해봤자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기세였다.


소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병정개미를 죽였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저런 독인 몇 명쯤이야 손쉽게 해치울 수 있겠지만,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았다.

듣도 보도 못한 ‘마법사’라 주장하는 것도 그렇고, 칼 쥐는 것도 어째 영 어설퍼 보이고······.


여태까지는 흔히 저 나이 때의 여자애가 보여주는 허세이겠거니 하고 그냥 넘겼지만, 이제는 정말로 그 무용담만 믿고 이겨주기를 바라야 할 판이었다.


‘나야 저 여자애가 죽더라도 어떻게든 도망쳐서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저 여자애는······잡아먹히면 솔직히 많이 서운할 것 같단 말이지.’


내심 응원하고 싶었다.

그새 정이라도 든 것일까.

소년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시드가 독인들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조금 지켜보자 금방 전투의 행방이 눈에 보였다.

소녀는 예상했던 그대로, 처참하게 밀리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허세였군.’


역시 저런 어린 여자애가 독인 다섯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소년이 혀를 차며 자리를 떠나려던 때였다.


“어······?”




* * *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정화교 여사제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등 뒤를 가릴 고기방패 정도만 되어 주면 충분했다.

특이한 방어 능력도 있으니 그쯤은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으리란 판단이었다.


오산이었다.


‘내가 유논의 동료를 과소평가하고 있었군. 하기야, 그놈이 범인과 함께 다닐 리 없지.'


정화교단이 배출한 가장 우수한 이단심문관의 능력은 후방을 든든하게 지키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시적인 동맹을 맺고 나자, 그녀는 그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안심이 되지 않아 개미들을 베어 넘기면서도 등 뒤쪽을 예의주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오네는 소드마스터의 등 뒤, 숫자에 있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던 개미들을 상대로 그야말로 날뛰고 있었다.


일대일의 대인무술은 유논이나 제국의 마스터에 비해 한참 부족하지만, 전쟁에서 수백의 돌연변이들을 상대로 경험을 쌓은 효율적인 살상능력에 한해서는 누구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그녀였다.


일개미들이 달려들며 얻은 충격을 흡수해 일격에 병정개미를 도살한다.

그러던 와중에 몸에 달라붙은 일개미들의 무게를 맞받아쳐 터뜨려 버린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술이 아닌,

사람 아닌 것들을 살상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무술.

괴물들에게 입은 피해를 그대로 돌려보내는 그녀의 반사反射 동작 하나하나에 폭발적인 위력이 깃들었다.


‘단순히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그 능력을 활용하는 솜씨도 만만치 않다.’


만약 저 수준에서 반사 신경만 조금 더 갈고닦는다면, 혹은 다른 방식으로 약점을 보완할 방법을 찾게 된다면.

일대다, 그리고 다대다의 전투에서는 무적無敵에 가까운 존재가 될지도 몰랐다.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순간, 지금 등을 맞대고 함께 싸우는 중인 저 전투사제에게서 어떠한 존재감을 느꼈다.

자칫 그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괴물이 되어버릴 지도 모를 어떤 존재의 아우라를······.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쩌면 지금 당장 죽여야 할지도 모를 반짝이는 샛별의 전조를.

살심이 일었지만,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피오네가 제국의 소드마스터를 죽일 수 있었으나, 시드를 생각하고 죽이지 않았듯이.

파빌리안 스트라우스 또한 피오네를 죽일 수 있었으나, 제국의 황녀를 생각하고 죽이지 않았다.


‘정화교의 사제라···저런 젊은 괴물을 품에 안았으니, 정화교단은 분명 지금보다도 더 번성하겠군.’


그러나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제국의 ‘진짜’ 신혈만 돌아온다면, 적법한 능력을 갖춘 황제가 자리에 오른다면, 카라얀은 정화교단이 성장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강력해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정화교단은 제국의 일개 가신 가문 수준에 불과한 단체 따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황녀 전하는 그런 자질을 지니신 분이다.’


제국의 망령은 소녀의 눈에서 빛나던 황금빛 태양을 떠올렸다.

그녀라면 분명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태양의 씨앗을 잉태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태양은 초대 황제가 그러했듯이, 제국을 번성으로 이끌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다.’


마스터의 푸른 눈에서 날카로운 검의 광채가 번뜩였다.


그는 새로운 제국의 설계자가 될 터였다.

새로운 황제의 킹메이커Kingmaker가 될 터였다.

오래된 야망이요, 이제는 그것만이 그의 모든 것이었다.

오직 그것을 위해 15년간을 기다려왔고, 얼마든지 더 기다릴 자신도 있었다.

제국을 위해서라면.


‘제국을 위해서라면······.’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며 그어진 반원형의 참격 아래로 개미들의 시체가 우수수 스러졌다.

제국을 위한 양분이 되었다.


후방에서도 죽어가는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굳이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괴물 사제의 자비 없는 학살극을 기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영리하게 싸울 줄 아는군. 자기 몫의 개미들을 무작정 해치우는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이쪽으로 오는 벌레가 없도록 철저하게 영역을 유지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이러니 칼날 개미들이 남아날 턱이 있나.

단순히 하나에서 둘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전황이 급격하게 기울어졌고,

어느새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주변의 병정개미들은 거의 다 죽어 나간 뒤였다.

칼날 개미들의 무리는 너무나 많은 동족들이 학살당하자 승산이 없음을 느끼고 슬그머니 물러서고 있었다.


정화교의 여사제는 온몸에 칼날 개미들의 체액을 덕지덕지 묻힌 채 무표정하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국제일검은 그녀가 머릿속에서 품고 있을 법한 생각을 대신 말했다.


“인정하긴 싫겠지만, 우린 제법 손발이 잘 맞는군. 안 그런가?”

“······.”


소드마스터는 여사제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여사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명백히 이쪽을 적으로 여기며 경계하는 모습에 섭정공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그가 저 입장이었어도 경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실제로도 잠깐이나마 죽일까 말까 고민하기도 했으니······.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굳힌 지 오래였다.


현재로선 저 여사제가 큰 도움이 된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으나, 일단은 황녀 전하를 찾기 전까지는 일시적으로 동맹 관계를 맺는 것이 그에게도, 저 여사제에게도 이득일 터였다.


“걱정 마라. 나는 약속을 쉽게 어기는 편은 아니니······황녀 전하를 구출하기 전까지는 너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믿지.”

“믿지 못하겠다면? 이 나와 싸워 보기라도 할 텐가?”


미래에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결국 지금은 애송이였다.

개미들도 전부 물리친 지금, 아무리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고는 하나 소드마스터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침묵하는 피오네의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너를 죽이고자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여사제.”

“그렇다면?”


그는 한 자루 검과 같은 기세를 뿜어냈다.


“아직까지도 숨어있는 쥐새끼들을 찾아내려고 여기까지 온 거지.”


그는 그리 말하며 개미들의 체액이 만연한 수풀 속 어딘가에서 양손으로 두 인형人形을 끄집어냈다.


“······!”


골짜기의 독인들이었다.


피오네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 그 괴물 같이 생긴 인간종들.

푸른빛 고름으로 부풀고 일그러진 얼굴들, 그리고 기형으로 뒤틀린 팔다리.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그 흉측한 외형을 지닌 인간들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칼날 개미들은 전부 죽거나 도망쳤다. 골짜기의 야만인들아, 이제는 너희 차례로구나.”


바들바들 떠는 그들을 향해 선고를 내렸다.


“이제 너희가 멀찍이서 우리를 염탐하고 있던 이유를 말해 보아라. 합당한 근거를 내어놓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서 목이 달아날 각오는 하는 게 좋을 거다.”


독인들은 그 억센 손아귀 속에서 켁켁대며, 괴상한 발음과 말투로 더듬대면서 말했다.


“처, 처음에는 반의반신했다······그런데 당신들이 칼날 개미를 이기는 것 보고 확신이 나타났다!”

“무슨 확신.”


독인들은 비굴하게 헤헤 웃으며 소리쳤다.


“당신들은 우리가 찾던 영웅들이다!”

“맞다! 장로가 말했다! 마을로 데려오라고!”


자기들끼리 쿵짝이 맞아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목청이 터지게 소리친다.


“우리의 마을로 가자!”

“우리의 마을로 가자!”


독인들의 마을이라.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미간을 좁혔다.




* * *




독기의 골짜기 어딘가.

칼날 개미들의 시산혈해屍山血海가 있다.

일개미도, 병정개미도, 그들의 키틴질 갑각과 강철 더듬이, 금속 칼날 다리까지도.

그 모든 것들이 부서지고 갈라진 재의 반죽이 되어.

벌레들의 체액을 시럽 삼아, 팬케이크처럼 쌓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가슴에 구멍이 뚫린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오연한 눈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그곳에는 독인들이 무리 짓고 있었다.

괴상망측한 살덩이로 보이는 그것들이 단체로 어린아이 같은 환호성을 내지른다.


“구원자가 생겨났다!”

“우리들의 구원자!”

“골짜기의 구원자!”

“마을의 구원자!”

“구원자!”

“구원자!”

“구원자!”


구원자···.

구원자······.


그 말이 골짜기 전체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여러분들...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제 마음 다들 아시죠..?

+뜨끈한라떼님, 후원금 정말 감사드립니다아아아아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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