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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님의 서재입니다.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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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연재수 :
2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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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77,846

작성
20.06.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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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Fast & Furious(3)

DUMMY

필요 이상으로 기감을 집중하자 그제야 네모난 형체 속에서 들끓는, 폭발 직전의 농축된 마력이 느껴졌다.

과거 유논이 오크 부족장을 잡을 때 이용했던 마력 지뢰와 수류탄의 열화 버전에 가까운 폭발물이었다.


그리고 그 도화선은 파이로에게 이어져 있다.


그 뒷짐 진 손이 폭발 스위치를 쥐고 있음을 확인한 유논은 이를 악물었다.

저게 그가 일전에 사용했던 지뢰의 반의 반 정도의 화력만 내더라도, 인질들은 전부 죽을 것이다.

폭발을 통해 생성되는 마력 불꽃 또한 불의 일종이니, 화염을 다루는 능력의 파이로는 결국 살아남을 것이고.

불의 마정석으로 폭발을 흡수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폭탄이 너무 절묘한 위치에 놓여 있어서 진화鎭火가 다 끝나기도 전에 인질들이 열기에 통구이가 되어 버릴 것이다.


‘손가락만 까딱해도 인질들이 둘 다 죽는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이런 함정을 파 두었을 줄이야.

불을 쏴서 죽인다는 뜻일 줄로만 알았는데, 방사능의 아이들이 꽤나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유논이 일전에 폭발물을 전부 소모하고 아쉬워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같은 무게의 정화코인이나 드워프제 총알 한 무더기와도 바꿀 수 있을 법한, 돈이 있어도 구하기 쉽지 않은 물건이 마력성 폭발물이다.


지저도시나 지구숭배자의 일부 특수부대들 사이에서나 비밀리에 융통되는 것인데, 애초에 어떻게 구한 것인지조차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지만 저런 보물을 쉽사리 사용할 줄이야.


저 뇌까지 방사능에 절여진 미치광이들도 이번 건에 자기네들의 나름의 사활을 건 것이다.


외통수였다.

파이로를 죽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차갑게 식은 시체의 손가락이 스위치를 누르게 될 것이고, 인질들은 전부 죽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파이로 대신 그에게 이어진 도화선을 베더라도 결국 폭탄은 터질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설계된 흉악한 물건이었다.

아주 자그마한 자극에도 뇌관이 곧바로 반응해서 발화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무시하고 인질들을 구하러 갈 수도 없다.’


인질들이 묶여있는 짐칸 양 끝 간의 간격이 너무 길었다.


한 명을 구하고 다른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움직일 때쯤이면 파이로의 손가락도 함께 움직일 것이다.


인질 단 한 명만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은 있어도, 두 인질 모두를 안전하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인질을 버릴 것인가, 항복한 것인가의 양자택일兩者擇一!


유논은 결국 꼬나 쥐고 있던 은색 장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항복의 표시로 두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는 그 모습에, 돌연변이는 제가 우위에 있음을 확신하고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역시 예상했던 바대로, 저 괴물 검사가 지닌 유일한 약점은 인질이었다.

그리고 적의 약점이 제대로 통한다는 것을 좀 전의 항복으로 알아냈으니, 이제는 적을 물어뜯을 차례다.


인질들을 곱게 넘겨주고 서로 제 갈 길 간다는 선택지도 분명 존재하나, 그리 평화로운 결단을 내리는 자가 미치광이 패밀리의 빅 브라더가 될 수 있을 리 없다.


파이로는 저 무시무시한 상대가 자신 앞에서 항복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을 보며 오르가즘을 느꼈다.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이 들끓는다.

고작 폭탄으로 위협했을 뿐인데도 저 정도 반응이다. 진짜로 터뜨려 버린다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그는 저 검사가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 순간, 그는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살아있었다!


미친 방화광Pyromaniac은 제 얼굴에 그어진 핏빛 검상을 가리키며 낄낄 웃었다.


“멈칫한 순간 너는 이미 진 거야.”


딸깍.

스위치를 누른다.


‘저 미친 자식이······결국 저지르겠군.’


유논은 그 결과를 미리 예측했다.

그는 한참 전부터 파이로의 손가락 관절 마디 하나하나, 이어진 근육과 핏줄의 움직임까지 그 모든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돌연변이의 신체가 전하는 모든 생체 정보들을 수집하고, 저 손가락이 스위치를 누를 확률이 99.9%에 수렴한다고 확신했을 때.

그는 한계까지 응축되어 있던 회로의 마력을 폭발시켰다.


세상이 온통 느려진 것만 같은 착시 속.

유논은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는 방화광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의 녹아내린 흔적과 높이 솟은 입꼬리, 뭉개진 손가락 끝의 지문까지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스위치를 빼앗기는 힘들다.’


놈의 손이 폭발 스위치를 거세게 감아쥐고 있어 아주 약간이라도 충격을 가한다면 뇌관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천운이 따라 무사히 스위치를 강탈해낼 수도 있겠지만, 유논은 불확실한 가능성이나 기적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에 집중했다.


‘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현재 그의 능력 밖에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마력 폭탄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유논은 그 속에 갇혀 있던 보랏빛 화염이 플라즈마의 형태로 뻗어 나가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0.1초의 찰나,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두 인질 중 결국 단 한 명만을 구할 수 있었다.

단 한 명만을.


유논은 가속된 사고의 흐름 속에서 인질들을 바라보았다.

왼쪽에는 검은 단발머리의 여자아이가,

오른쪽에는 금발 벽안의 시장 에드워드 갈란이 묶여 있다.


누구를 구할 것인가.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의 사이.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딜레마Dilemma.


‘답은······정해져 있다.’


유논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한 인질을 감싸 안았다. 그 상태 그대로 트럭 바깥으로 몸을 날린다.

떨어져 내리는 두 인영의 뒤로 이글거리는 불꽃이 노을을 그렸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폭발이 황야를 질주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 * *




“끄으으으으읍······하.”


명백한 과식이었다.

파이로는 트럭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뻗어나가는 폭발을 흡수했다.


그 막대한 화력을 단신으로 먹어치우고 나니, 더럽게 메스꺼웠다.

속이 더부룩하고 몸이 무겁다.

그리고 몸뚱이보다 더 무거운 것은 머리였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전신의 피부가 갈라지고, 또 다시 재생된다. 파이로는 터져 나갈 것만 같은 보랏빛 열기를 뿜어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주체할 수 없는 마력이 담긴 안광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멀쩡히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가 기를 쓰고 불길을 막아낸 덕에 동생들은 전부 폭발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겠는가.


살롱은 그 검사와 정신력 대결을 벌인 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콜테르는 검에 베여 중상을 입은 채, 그 흘러넘치던 타르가 전부 말라버린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그가 입은 상처는 언젠가 회복되겠지만, 한동안은 함께 움직이기도 힘들 것이다.


분명 검사를 쫓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인질은 살아있었다.

동생들의 경우와는 달리, 그가 딱히 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정말 인질들이고 검사고, 다 죽여 버릴 각오로 터뜨린 폭탄이었다.

하지만 인질은 끝내 살아남았다. 파이로 본인조차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사납던 마력의 불길이, 인질 근처에서만 사그라들었다. 알아서 피해가는 것마냥.’


어쩌면 인질이 지닌 정체불명의 돌연변이 능력이 발현된 것일지도.

그는 여전히 세상모른 채 자고 있는 검은 단발머리 소녀를 바라보았다.


유논이 선택한 것은 갈란 시장이었다.


어떻게 보면 의외의 결정일지도 몰랐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정일지도 몰랐다.


에드워드 갈란이 없으면 갈란 시는 괴수들의 침공을 막아내지 못할 테지만, 소녀가 없다고 해서 갈란 시의 운명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갈란 시장이 죽으면 수천의 자유도시 시민들이 함께 죽을 테지만, 소녀가 죽으면 그저 한 명의 비극으로 끝날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나? 널 잘못 봤군, 검은 머리 검사. 여자아이를 선택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유논이 갈란 시장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게 곧 그가 갈란 시장을 구해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파이로는 트럭 짐칸의 깊숙한 밑바닥, 유논조차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하게 은폐된 비밀 공간을 열어젖혔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법한 작은 일자형 구멍 속에서 중년 사내를 끄집어낸다.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게끔 전신이 꽁꽁 묶인 그 남자의 이름은 에드워드 갈란.

자유도시의 시장이다.


시장의 신병은 아직 방사능의 아이들에게 있었다.


분명 기뻐할 일임에도, 파이로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제 몸을 쥐어뜯었다.

유논만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 또한 유논의 선택에 일희일비했다.


그는 차라리 괴물 검사가 여자아이를 데려가길 바랐다.

네가 소중히 여기는 여자아이를 택했어야지, 도대체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시장을!


그의 여동생을 택했는가!


‘자유도시는 죗값을 치러야만 한다. 소녀는 돌려주어도 상관없지만, 시장만큼은 절대 돌려줘서는 안 된다. 그래야지만 어머니 방사능의 권위가 산다. 그래야지만 자유도시를 무너뜨릴 수 있다.’


카멜라는, 그의 사랑하는 의동생은 그리 말하고는 시장의 겉가죽을 뒤집어쓰더랬다.

그녀가 낸 꾀에 마지못해 동의하기는 했지만, 이런 결말은 원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아이를 데려갔어야지······.’


“검은 머리 검사! 여자아이를 데려갔어야지! 카멜라를 놔두고······!”


절규하는 그의 눈에서 보랏빛 불길이 일렁인다.




* * *




방사능의 아이들의 트럭은 이미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유논의 등에 불이 옮겨 붙었다.


빠르게 트럭을 탈출하지 못했다면 그조차 위험했을 법한 폭발이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등의 살갗이 타오르며 고기 굽는 냄새와 함께 뼈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유논은 무표정한 낯으로 그와 함께 황야의 대지를 구르는 갈란 시장을 바라보았다.

시장을 폭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감싸 안았던 그 순간부터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돌이키기에 이미 늦었을 뿐.


“그 카멜레온인가.”


사람의 피부를 만지는 느낌이 아니었다.

꺼슬꺼슬한 파충류 특유 비늘의 감촉. 예상되는 후보는 단 한 명뿐이다.

트럭 위에서 보이지 않기에 도시에 숨어든 줄 알았는데, 인질로 위장해 있었던 것이다.


아마 진짜 시장은 트럭 어딘가 숨겨진 비밀장소에 감춰 두었을 터.


유논의 싸늘한 눈빛에 시장의 모습을 한 그것은 경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장의 금발 머리가 시들어가고, 푸른 눈동자 속에서는 파충류 특유의 찢어진 동공이 드러난다.

사람의 외모를 흉내 내던 카멜레온 돌연변이의 비늘이 뒤집히며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녹색 비늘을 두른 여인이 애써 태연한 척 혀를 날름대며 웃었다.


“어머. 속았어, 자기야?”

“그래. 실력이 좋더군. 피부를 주위 사물과 동화시켜서 위장할 수 있는 건 알았지만, 타인의 외관을 그대로 훔쳐오는 능력까지 있었을 줄이야.”

“별 건 아니야. 신체 접촉까지 해야지만 기껏해야 1시간 정도 빌려올 수 있고, 목소리도 따라하지는 못하거든. 하지만 보다시피, 그 정도면 충분했네. 아하하.”


마법사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기 몸을 바치다니, 눈물겨운 희생과 테러정신이로군.”

“음? 자기, 그거야······.”

“잘 가라.”


카멜레온의 그것을 닮은 작은 눈이 떨린다.


뻑-!


유논의 주먹이 얼굴을 감싼 비늘들을 뚫고 들어가 박혔다.

카멜라는 흐릿해진 붉은 시야 속에서 피와 이빨들을 뿜어내며 의식을 잃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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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독기의 골짜기(Valley of Venom)(2) +20 20.07.02 1,603 7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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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검과 마법(Sword & Socery)(1)(연출 수정 완료) +27 20.06.22 1,853 8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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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1) +16 20.06.18 2,058 9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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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재회(Reunion)(4) +17 20.06.16 2,102 113 12쪽
36 재회(Reunion)(3) +14 20.06.15 2,213 121 13쪽
35 재회(Reunion)(2) +22 20.06.13 2,318 122 14쪽
34 재회(Reunion)(1) +24 20.06.12 2,340 126 12쪽
33 막간-카멜레온(Chameleon, 七面蜥蜴)(2) +28 20.06.11 2,298 127 18쪽
32 막간-카멜레온(Chameleon, 七面蜥蜴)(1) +17 20.06.10 2,339 110 13쪽
31 이름에는 힘이 있다(3) +54 20.06.09 2,438 147 20쪽
30 이름에는 힘이 있다(2) +18 20.06.08 2,370 119 13쪽
29 이름에는 힘이 있다(1) +20 20.06.07 2,406 126 15쪽
28 누구의 자식인가(4) +35 20.06.06 2,454 110 15쪽
27 누구의 자식인가(3) +16 20.06.06 2,411 113 12쪽
26 누구의 자식인가(2) +20 20.06.05 2,451 119 12쪽
25 누구의 자식인가(1) +23 20.06.04 2,548 111 15쪽
» Fast & Furious(3) +2 20.06.04 2,480 114 12쪽
23 Fast & Furious(2) +16 20.06.03 2,587 122 14쪽
22 Fast & Furious(1) +20 20.06.02 2,649 133 13쪽
21 방사능의 아이들(Children of Radioactivity)(3) +15 20.06.01 2,641 12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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