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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아갈 방법을 찾아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에일라스
작품등록일 :
2015.06.21 10:47
최근연재일 :
2015.12.04 18:42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3,317
추천수 :
343
글자수 :
271,490

작성
15.09.28 11:44
조회
366
추천
3
글자
20쪽

24. 어둠의 끝 그리고 조력자

DUMMY

"큭"


"저번의 그 상태인가."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어감과 동시에 몸에서 무언가 확 뿜어져 나갔다. 그와 함께 내 머릿채를 거칠게 붙잡고 있던 손 또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덕분에 그 자리에서 땅으로 떨어졌지만 다행히도 볼썽사납게 넘어지지 않고 제대로 균형을 잡았다.


"에밀리를…모두를…"


언젠가 한 번 경험했었던 것 같은 상태.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던 고통은 사라지고 그 자리가 점점 흥분과 분노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잔뜩 고양된 감정은 이제 그 배출구를 찾아 헤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입안에는 왠지모를 중얼거림이 맴돈다.


이렇게 주위가 밝았던가…


왠지 모르겠지만 주위가 너무 밝다. 너무 밝아서 눈이 부실정도다. 바닥에는 여기저기 무언가 동그란 것들이 발에 채일정도로 굴러다니고 있었으며, 어딘가의 벽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 둘이 볼썽사나운 자세로 벽에 고꾸라져 있었따.


그리고 내 눈 앞에는 착 달라붙는 옷을 입은 좋은 몸매의 여자가 나를 경계하고 있었으며 그 뒤로는 가면을 쓰고 팔짱을 끼고있는 남자가 한 명 보인다. 그리고 그 자의 왼 손에는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한 용의 모습이…


"가면… 용 문신…?"


내가 저걸 어디서 봤더라?


갑자기 머릿속에서 녹화된 비디오 테잎을 틀어놓은 것 마냥 어떤 기억이 멋대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평화롭던 마차여행. 갑작스런 습격. 두려움. 공포. 소중한 사람을 잃기 싫다는 외침 그리고 누군가가 그려준 저 용의 모습.


그것을 떠올림과 동시에.


"으아아아아아아-!"


뒤에 서있는 저 남자를 향한 맹렬한 살의가 치밀어 오른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 저 녀석을 떄려 눕혀야 한다는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마치 저 남자를 죽이는 것이 내 목표인 것 처… 아니, 목표이다.


어느새 전신을 뒤덮었던 고통은 사라진지 오래이며 육체에는 활력이 넘쳐나고 있었다. 마치 저 남자를 죽이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된듯한 이 상황. 역시 난 저 남자를 죽여야 하는 것이 틀림없다.


남자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있지만 상관없다. 장애물은 뚫고 나가면 그만이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활력이 넘쳐흐르는 다리로 딛고 있던 땅을 박찼다. 그러자 남자와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진다.


"하아압-!"


내 시야에 들어오던 남자가 돌연 무언가에 의해 가려진다. 그와 함께 얼굴을 향해 무언가 날아오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두 팔을 교차시켰다.


퍼억-


찌릿한 감각이 두 팔을 타고 전해지며 나는 달려가던 그 자세 그대로 다시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는 아까 그 여자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남자를 향하던 맹렬한 살심이 여자에게로 그 방향을 돌린다.


"뭐야… 당신 왜 내 앞을 가로 막는거야? 빨리 비켜. 나 저 남자를 쳐 죽여야하니까 말야."


"그럴 순 없습니다. 저분은 제 주인님. 그리고 주인님을 도와 당신같은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제 사명."


내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여전히 여자는 전투 자세를 취하며 내 앞을 가로막고 선다. 여자의 주위에서 일럴이는 오오라 덕분에 여전히 남자는 가려져 보이지 않고 있다.


빨리 저 남자를 죽여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비켜"


"그럴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할게. 비켜"


"…"


"그렇다면"


이제는 아예 나를 무시하는 듯한 여자의 반응에 나는 다시 한번 땅을 박차고 나갔다. 그와 함꼐 여자 또한 나를 향해 달려오며 주먹을 내지른다.


이래서야 방금 전과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뿐이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던 내 눈에 땅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무언가가 발에 걸렸다.


구슬? 쇠구슬?


지금 내 시야에 들어오는 이 조그마한 것들이 전부 쇠구슬인 모양이다. 주변에 떨어져 있는 그것들의 숫자는 굉장히 많았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의지를 일으켜 그 쇠구슬 모두를 움직였다.


비록 모든 쇠구슬이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거의 대다수를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것들을 나를 향해 날아오는 여자에 주먹에 집중한다. 수 십 개의 쇠구슬들이 한번에 모여들어 커다란 덩어리로 화한다. 그리고,


쾅-!


여자의 주먹과 쇠구슬 뭉치가 부딪혔다. 거센 충격을과 함께 전면부 일부의 쇠구슬이 찌그러지면 튕겨 나갔지만 쇠구슬 뭉치 자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건재함을 과시하며 여자의 주먹이 전진하는 것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몇 개의 쇠구슬과 돌 부스러기 일부를 날려 여자를 공격해 보았지만 여자에게서 피어오르는 오오라 때문인지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한다.


"완전히 각성한 것인가. 3호, 일단 물러서라. 이래서야 소모전이 될 뿐이다."


여전히 여자의 주먹은 나를 향하고 있었고, 내가 움직인 쇠 구슬 뭉치 또한 그 주먹을 막아서고 있었다. 지루한 대치가 계속되는 사이 여자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 쇠구슬 일부를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날려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다.


"아니오. 이길 수 있습니다. 하압-!"


여자의 기합과 함께 강한 반발력이 느껴지며 또 다시 내가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방법으로는 결코 저 여자를 뚫어낼 수 없음을.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저 오오라를 꿰뚫어낼 수 있을만큼 강력한 무언가가.


그러던 중 여자의 왼 팔에 상처가 나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상처? 여태까지 내가 했던 공격 중에 저 오오라를 뚫고 들어갔던 공격이 있었던가?


없다. 잘 생각해보았지만 여태까지는 모두 막히거나 오히려 역으로 내가 당했을 뿐이다. 그렇게 잠시 기억을 되짚는 와중 눈앞을 뒤덮었던 거대한 빛덩어리가 문득 떠오른다.


마법? 누구의 마법이었지? 맞아, 에밀리의… 내가 왜 여지껏 에밀리를 잊고있었지? 에밀리는 어디갔지? 난 왜 여기서 이러고있지?


뭔가 중요한 이유를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그건 저 둘을 쓰러뜨리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며 다시 관심에서 멀어져간다.


아무튼 에밀리의 강력한 마법은 저 여자에게 상처를 입혔다는걸 알았다. 그렇다는건 저 오오라도 모든 걸 막아낼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것을 기점으로 머리가 팽팽돌며 대책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강력한 마법을 모르는데.


막대한 마법량과 반비례하게 바닥을 기는 마법응용능력 덕분에 여전히 마법을 배우는데 애로사항이 꽃피우는 나였다. 그런 마법을 알고 있따 해도 사용할 수 있을지 어떨지…


그렇다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와 에밀리의 그 강력한 마법은 무엇 때문에 강력한 것일까.


마법이란건 마법사가 마법력을 바탕으로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초 자연현상을 발현시키는… 그래, 마법력!


어차피 마법이란 것 또한 마법력을 매개체 삼아 발현하는 것. 더 강한 현상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그 만큼 고도로 응축된 마법력이 필요로 하게 된다. 그렇다면 잘은 모르겠지만 마법의 위력 또한 그 응축된 마법력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마법력을 응축하는가 인데. 그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모든 마법의 기동식에는 필요한만큼 마법력을 추출하여 처리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그 과정의 뒷부분을 생략하여 지속적으로 마법력만을 추출하면 그만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증발하는 마법력 때문에 효율은 정말 극악을 달릴테지만.


방법이 생겼다. 생겼으니 사용을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뭉쳐져 있는 쇠구슬들을 일순 모두 흩뜨렸다. 그리고 그것하나하나에 의지를 담아 여자에게로 쏘아내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법의 기동식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텅-! 터텅-!


"소용없습니다."


마치 금속이 금속을 떄리는 소리와 함께 쇠구슬들이 여기저기로 튕겨져 나간다. 여자 또한 저렇게 말하곤 있었지만, 수 십 개의 쇠구슬들이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때려대는 통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하나의 충격을 부족했지만 다수가 주는 충격은 적어도 움직임을 막는데에는 부족함이 없는듯 하다.


그 동안 머릿속에서는 일련의 기동식이 처리되다 중지되고 마법력을 추출하는 과정만이 가동되며 내 몸에서 마법력을 뽑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뽑아 올려진 마법력은 내 오른손에 차곡차곡 쌓여가며 응축되기 시작한다.


여자 또한 내 오른손에 응축되어 이제는 유형화되기 시작한 마법력에 위협을 느꼈는지 기를쓰고 나를 향해 다가오려 했지만, 여전히 쇠구슬에 의해 움직임을 저지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하얗게 백열하기 시작한 마법력 덩어리가 완성되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여자에게 쏘아내었다.


"큭?"


소리없이 마치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빠르게 쏘아져나간 마법력의 덩어리는 여전히 쇠구슬들의 파상공격을 몸으로 받아내고 있던 여자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마법력의 덩어리를 보고 피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여전히 날아오는 쇠구슬보다 몇 배는 빠른 마법력의 덩어리를 피하기에는 부족했었던 듯 하다. 어깨에 상처를 입은 여자는 그대로 자세가 무너져 바닥을 한바퀴 굴렀다.


먹혀들었군.


단단하긴 했으나 속은 결국 뼈와 살로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관통당한 상처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통스럽다는 표정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다시 일어선 여자는 오른쪽 팔이 잘 움직이지 않는지 왼쪽 팔로만 자세를 잡고 다시 내 앞을 막아선다. 그나저나 이번 공격은 꽤나 마법력의 소모가 심하다. 고도로 농축된 마법력의 덩어리를 만들기 위해 나는 내 마법력의 사분지 일 정도를 사용해버렸다.


그렇게 비효율적이라는 베네딕티오로 쇠구슬을 수도없이 쏘아대었음에도 소모된 마법력이 십분의 일도 안되는 걸 감안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소모량이다. 효과는 확실했지만.


그걸 감안한다해도 여전히 여유가 조금 있었고, 부상을 입긴했으나 여전히 상대는 건재했기에 나는 모든 쇠구슬을 거둬들여 경계자세를 취했다.


삐빅-!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온다.


"쯧, 황도경비대인가. 후퇴한다 3호."


"하지만"


"저런 어중이 떠중이 마법사라면 몰라도, 정규 기사가 포함된 경비되는 지금 상태로는 버겁다. 다음에도 기회는 있다. 무엇보다 여기서 뒤를 밟히면 곤란하다."


"…알겠습니다."


경비대? 경비대가 이곳에 왜… 아, 아까 에밀리의 마법공격 때문에 일어난 폭발때문인가?


이곳이 후미진 골목이라고 해도 에일른 제국의 중심부인 황도 내이다. 아까의 섬광이나 폭발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폭발로 인한 온갖 부산물들이 하늘로 솟아올랐기에 아마도 그것을 본 누군가가 신고한 것이겠지.


가면의 남자의 말을 들은 여자가 여전히 생기없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어둠 너머로 사라지는 남자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다음을 기대하도록. 그떄는 정말 끝이다 소녀여."


가면 남자는 그 말과 함께 골목 너머의 어둠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한참 고양되었던 감정은 이미 차갑게 식은지 오래였고,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살심 또한 사라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크… 몸이… 무거…"


털썩-


여지껏 나를 지탱해주던 충만한 활력과 마법력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시작된 저릿한 고통과 온몸을 짓누르는 극심한 피로감만이 남아 나를 괴롭힌다. 그제서야 다시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이루스아 루엘은 여전히 기절해 있었고, 에밀리 또한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도와…줘야 하는…데"


그리고 저 멀리서 마법등의 불빛으로 보이는 것과 함께 호각소리가 흐려져가는 의식을 울린다.


"정말… 너무 늦는다고… 지구나 여기나 경찰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사람의 그림자와 함께 나는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 * * * * * * * * * * * * * * * * * * * * * * *


넓다. 아니 끝이 없다는게 맞을까. 아무것도 없는 칠흑의 세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며, 아무런 생각도 나지않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평화롭게 이 공간을 유영할 뿐.


「…요」


평화롭게 공간을 유영하던 나에게 어디선가 그 평화를 깨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난 이 공간이 너무나 좋았기에 애써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한다.


「이봐요」


한층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아직 십대의 앳된 소녀 목소리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분명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함과 동시에 멈춰있던 사고가 다시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더라?


「이봐요. 세현씨 일어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려진 내 이름과 함께 나는 어디론가로 강제로 끌어올려졌다.


……………

…………

………

……



"으, 음…"


"아, 일어났다 일어났어. 정신이 좀 들어요?"


아마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굳게 닫혀있던 눈을 살며시 뜨자 여태껏 시야를 감싸고 있던 어두움이 걷히며 밝은 빛이 동공을 찔러온다.


"읏, 눈부셔."


"헤에, 눈부시다구요? 여긴 해가 없는데. 뭐, 눈이 적응을 못해서겠죠. 하기사 그렇게 잠을 오래잤으면…"


두어번 눈을 깜빡이며 적응시킨 나는 아까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의 근원을 찾기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근원을 찾아낸 나는 순간 내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어래? 내가 왜 여기에…"


"농담도 참. 저는 저인걸요. 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틀린건 아니네요. 지금 제 '육체'를 사용하시고 계신건 세현씨니까요."


그도 그럴것이. 지금 이 머리카락 색과 대비되는 흰색의 단벌 원피스를 입고 나를 향해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고 있는 소녀는 분명 일레이나. 즉, 내가 황당한 일을 당하고 이 세계에 환생하면서 새로 얻은 육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보니?


이제서야 깨달았는데 목소리가 이상하다. 아니, 원래 '나'의 목소리다. 대한민국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던 청년 이세현의 목소리.


그걸 깨닫고 몸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불편하고 신경쓸 것 많았던 여성의 몸이 아닌 남성의 몸이다. 혹시나 해서 바짓춤을 열고 '그것'을 확인한 내 머릿속에 희열이 차오른다.


"돌아…왔어?"


"참, 숙녀 앞에서 못하는게 없으시네요…"


하지만 옆에서 들려오는 미성에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살짝 돌린채 얼굴을 붉히고 있는 모습에 절로 얼굴에 피가 쏠린다.


"크흠. 미, 미안."


"괜찮아요. 뭐, 익숙해서요. 일단 여기 앉으세요. 차라도 한잔 대접해드릴테니."


그녀, 아니 일레이나는 이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의자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나는 차 한잔을 내 자리에 올려놓았다. 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약간 얼떨떨했지만 곧 몸을 일으켜 일레이나 맞은편의 으자에 앉아 찻잔을 받아들었다.


근데 나 차 싫어하는데.


"아, 맞아. 실수했네요. 차를 싫어하시던가요?


"어? 어 그렇…지. 근데 그걸 어떻게?"


내 바보같은 물음에 일레이나는 자신의 찻잔을 들어 잠시 차 향을 음미하더니 다시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새빨간 루비같은 붉은 눈동자가 나에게로 향한다.


"얼핏 눈치채지 않으셨나요?"


"뭘 말하는거야?"


"어쨰서 환생한 자신의 모습이 지금 내 앞에서 이렇게 말을 걸고 있는건지. 그리고 왜 자신은 환생 이전에 모습을 취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는걸…?"


내 대답에 일레이나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뭐야, 나 뭐 잘못한거야?


"하아, 당신 제 어릴적 기억을 모두 알고있죠?"


"기억?"


"글요. 저 일레이나 디엘 델피에르의 기억 말이에요."


"알고있지."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알게되었다. 별 이상한 것을 다 포함해서.


"그렇담 당신은 대한민국의 청년 이세현인가요 아니면 델피에르 백작가의 장녀 일레이나 디엘 델피에르 인가요?"


"그건 갑자기 왜 묻는거지? 그것보다 넌 누구야?"


여전히 모르겠다는 내 반문에 일레이나의 얼굴에 답답하다는 표정이 떠오른다.


"끄응, 정말 눈치를 못챈건지…. 방금전에도 말했지만 일레이나 입니다. 세현씨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육체의 원래주인."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 말에 갑자기 혼란이 생긴다.


"원래… 주인이라고?"


"그래요. 당신이 이 세계에 떨어지기 이전에 태어나서부터 14년간 그 육체를 사용했던 사람. 그게 바로 저에요."


"하,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한 몸에 두 사람이 들어있을 수 있는저기? 난, 난 분명 환생했는데?"


"그거야 저도 모르죠. 다만 확실한건 뭔가 잘못 되었다는거에요. 세현씨가 환생을 잘못했거나 혹은 제가 없었어야 했거나."


그것을 말하는 일레이나의 표정이 약간 씁쓸해보인다. 갑작스런 상황에 목이타는 것이 느껴진 나는 내 앞에 놓인 찻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켁, 켁켁! 뜨거워. 쓰흡…"


"정말 매너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사람이네요."


크, 맞다. 이거 펄펄끓는 찻물이었지.


갑작스런 상황때문일까?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는다.


"그것보다 여기는 어디야?"


잘 몰랐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한쪽은 온통 검은색 일색이고, 한쪽은 온통 하얀색 일색이다. 마치 체스판 안에 들어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도 의식공간이에요. 여태까지는 잘 몰랐지만 세현씨가 여기서 그 모습을 취하고 있는걸 보니 이제야 확신이 드네요."


"의식공간이라…"


확실히 지금도 나는 나를 이세현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므로 그 본질이 되는 의식 공간에서라면 내가 이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겠지.


"그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거죠?"


"어떻게라니?"


"본의 아니게 저도 세현씨의 기억을 모두 읽게 되었어요. 세현씨가 나의 기억을 모두 읽었듯이. 참 기구한 인생이던데요. 불쌍할정도로."


기억을 읽었다는건 그 한 사람의 일생을 보았다는 것이 된다.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네."


이러자 저러나 힘내서 살아왔던 인생이다. 저런 말을 들으면 살짝 화가 날지도.


"나쁘게 들렸다면 사과할게요. 다만 그렇기에 묻는거에요. 세현씨는 지구로 돌아갈건가요?"


"물론이야. 어떻게 잡은 행복인데. 놓칠수야 없지."


십 수년간 노력해서 간신히 얻은 행복의 실마리를 눈앞에서 놓쳐버렸었다. 혹자가 보면 바보같다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걸 그리 쉽게 손에서 놓을 순 없지.


내 대답을 들은 일레이나가 이내 화사한 웃음을 지어낸다.


"그렇다면 결정이네요. 저는 세현씨가 돌아가는걸 도와주겠어요. 그리고 저는 이 몸을 되찾는거에요. 정확히는 저 일레이나 디엘 델피에르의 인생을."


요컨대 거래를 하자 이거구나.


내용은 간단했다. 나는 지구로 돌아가고, 일레이나는 몸을 되찾는다. 사실 이미 진즉에 죽어버렸을 지구의 육체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은 돌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좋아, 그럼 나를 도와주는거야?"


"물론이에요. 서로의 이해가 이렇게나 일치하는걸요."


"하지만 어떻게?"


"기억을 모두 읽어서 하는 말이지만 또 바보같이 혼자 방법을 찾고있었죠?" 돌아갈 방법 말이에요."


조금 틀리긴 하지만…


"…그렇지?"


"그런면에서라면 제가 좀 도움을 드릴 수 있겠네요. 세상엔 혼자 해결할 수 없는게 많은걸요."


뭔가 어린애한테 인생충고를 듣는 기분인데 이거. 하지만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담 앞으로 잘 부탁해. 일레이나."


나는 일레이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세현씨."


그녀는 내밀어진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또 든든한 조력자를 지금 이 자리에서 얻은 것 같다.


작가의말

안녕 일레이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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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 사라지지 않은 그림자 +1 15.12.04 382 0 14쪽
36 35. 여름의 끝 그리고- +2 15.12.01 577 1 14쪽
35 34. 20년 전의 이야기 +1 15.11.29 444 0 22쪽
34 33. 차오르는 악의 +2 15.11.02 388 0 18쪽
33 32. 녹색 보석을 가진 늑대 (3) +3 15.10.30 463 1 20쪽
32 31. 녹색 보석을 가진 늑대 (2) +2 15.10.18 381 2 19쪽
31 30. 녹색 보석을 가진 늑대 +2 15.10.16 396 0 16쪽
30 29. 고민, 그리고 고민 +2 15.10.13 375 5 17쪽
29 28. 당혹스러운 진실 +4 15.10.10 340 5 23쪽
28 27. 강해지려면 필요한 것 +2 15.10.07 404 5 18쪽
27 26. 데린시에르 후작가에서 (2) +3 15.10.04 371 4 17쪽
26 25. 데린시에르 후작가에서 +2 15.10.01 426 3 23쪽
» 24. 어둠의 끝 그리고 조력자 +2 15.09.28 367 3 20쪽
24 23. 어둠 속에서 +2 15.09.26 429 4 18쪽
23 22. 춘제 그리고… +1 15.09.23 448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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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 춘제 준비 (1) +1 15.09.09 553 4 19쪽
20 19. 차이 +2 15.09.06 449 6 16쪽
19 18. 동아리 (3) +1 15.09.03 495 6 17쪽
18 17. 동아리 (2) +6 15.09.01 433 8 17쪽
17 16. 동아리 (1) +2 15.08.30 518 6 17쪽
16 15. 재수없는 3인방 (2) +3 15.08.27 591 8 16쪽
15 14. 재수없는 3인방 (1) +5 15.08.25 401 11 20쪽
14 13. 실마리 15.08.23 548 7 19쪽
13 12. 친구 +1 15.08.12 652 7 15쪽
12 11. 입학식 +1 15.08.08 689 9 16쪽
11 10. 입학 전날 +2 15.08.05 1,224 9 13쪽
10 9. 다시 황도로 +4 15.08.01 612 11 9쪽
9 8. 습격(2) +3 15.07.29 579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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