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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아갈 방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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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라스
작품등록일 :
2015.06.21 10:47
최근연재일 :
2015.12.04 18:42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3,322
추천수 :
343
글자수 :
271,490

작성
15.10.0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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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추천
3
글자
23쪽

25. 데린시에르 후작가에서

DUMMY

어둡다. 공허하다.


지금 나를 표현해 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두 단어이다.


말 그대로 내 주변은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다.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화장실을 제외하면 내가 있는 곳에 존재하는 건 내가 앉아있는 이 침대가 유일했다. 촛불 하나가 벽에 걸려 스스로의 몸을 태워가며 미약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사실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주인님들의 은총으로 얻게된 능력 중에는 이렇게 어두운 어둠속에도 대낮처럼 볼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되어 있다. 덕분에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아니 불편하다는게 뭐지?


그것보다 자꾸 며칠 전 그 소녀와의 싸움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왠지 모르게 그 소녀에게 자꾸 신경이 쓰인다. 항상 주인님을 위해서만 일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는데, 그것 이외의 것이 자꾸 떠오르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게 기억 속에만 있는 '혼란' 이라는 기분일까.


끼익-


이 방의 유일한 출입구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아마 주인님일 것이다. 그런데 평소보다 돌아오는 시간이 조금 늦으신것 같다.


"3호. 큭-"


"주인님?"


평소라면 흔들림없이 나의 이름을 불렀을 주인님의 목소리가 평소와 틀리다. 그리고 저 모습은…


주인님이 조금 비틀거리는 듯 하더니 곧 문을 닫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신다.


그 모습에 침대에서 일어나 주인님에게 뛰어갔다. 어둠을 꿰뚫어보는 내 눈에 여전히 쓰고계신 가면의 뒤로 한줄기지만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인다.


"…피가"


"됐다. 후- 그것보다 3호 너에게 물어볼 것이 하나 있다."


"말씀하십시오."


"며칠전의 전투. 거기서 너는 내 말을 한번 거부했다. 그렇지?"


"예"


"어째서지?"


얄궂게도 주인님은 내가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것을 골라 물으신다. 하지만 나는 대답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주인님께서 나의 치부를 드러내라하신다면 드러내야한다. 거부라는 것은 나에게 없다.


"그레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느낌이라, 그렇군. 난 네가 아무리 내 말에 복종한다고 하나 어느정도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유연성. 저 유연성이라는건 무얼 말씀하시는걸까.


"네가 도구라는걸 잊어서는 안된다. 3호. 너는 대업을 위해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이다."


"네, 주인님."


그렇다. 나는 도구다. 그걸 잊어서는 안된다.


* * * * * * * * * * * * * * * * * * *


"우음…"


오랜시간 감겨있었던 눈꺼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밝고 따뜻한 햇살이 동공을 찔러온다.


"윽, 아파"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려다가 하복부로부터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고통에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곧 고통은 사라졌기에 나는 앉은 자세로 바꿀 수 있었다.


"에… 또 루니에 씨가 화낼지도."


어쩐지 새벽녘에 조금 으슬으슬 하더라니 이불이 바닥 한켠에 떨어져있는게 보인다. 저 모양으로 보아서는 자다가 또 걷어차버린 모양이다. 지구에서도 이래서 어머니께 자주 혼나곤 했었는데 말이지.


『어라, 일어나셨네요 세현씨? 조금 더 주무실 줄 알았더니.』


"말했잖아. 나는 언제자도 일찍 일어나게 되니까 일찍 자야한다고… 어떤 아가씨 덕분에 밤새 떠들어서 피곤하단 말야. 후아암"


『그치만 심심한걸요? 그동안 혼자 있느라 얼마나 외로웠는데요. 거기다 이미 자고 있는 상태에서 데리고 왔던건데 졸리다니 말도 안돼요.』


실제로 일레이나를 만나고 요 며칠간 잠에 들자마자 의식 공간으로 끌어올려져서는 쉴 새없이 떠드는 이 말괄량이 아가씨의 대화 상대가 되어야 했다. 나로써도 신선한 경험이고 해서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잠도 못자고 이러다보니 역시 지친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떨어져 있는 이불을 다시 침대에 올려놓고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로 발걸음을 돌렸다.


살짝 불어오는 아침 봄바람에 자고 일어나서 약간 뭉쳐있는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사건이 일어난지 어느덧 5일이 지났다.


결과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조금 골치 아프게 되었다. 최대한 조용히 무마하려고 시도해보았지만, 야심한 시각 황도 한복판에서 남작가, 자작가도 아닌 백작가, 후작가 자제들이 꽤 심한 상처를 입은채 널부러져 있었으니 그렇게 될 리가 있나.


일단은 모두가 심적으로 지쳐있고, 부상당한 상태라 간단한 조사만 받았지만 몸이 나아지는대로 황도 경비대로 출두해서 관련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가서 말한다고 뭐가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똑똑-


"들어오세요."


『자연스럽네요? 본래 이런거에 로망이 있었던거 아니에요?』


『그냥 살기위한 발버둥이라고 해줘』


그나저나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와 내가 말하는 목소리가 똑같다보니 왠지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다.


"일어나셨군요 아가씨? 여전히 부지런하시네요. 그런 사건도 있었으니 조금 푹 쉬셔도 될텐데."


열려진 문 틈 사이로 짧은 금발머리의 메이드복을 입은 누군가가 나타난다.


"루니에 씨야 말로 아침부터 고생이 많으시네요."


"이게 제 일인걸요. 그것보다 몸 상태는 좀 나아지셨나요? 에에, 또 이불 걷어차버리셨구나!"


그러면서 루니에 씨는 직접 내 방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이런건 다른 하인들을 시켜도 될터인데, 굳이 내 방만큼은 자신이 해야한다며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루니에 씨를 보고 있자니 사건 이후 처음 깨어났을 때, 내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괜찮아요. 이젠 괜찮아…' 라고 연신 중얼거리던 루니에 씨의 그 녹색 눈동자가 떠오른다.


"미안해요. 습관이란게 고치기가 쉽지가 않네요. 그것보다 몸은 거의 괜찮아 졌어요. 아마 루니에 씨가 걱정을 많이 해주셔서 그런것 같네요."


『저 그런 습관없거든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머릿속으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가볍게 무시한다.


"그렇다면 보람이 있네요. 아! 그것보다 오늘 저녁에 데린시에르 후작님과 저녁 식사가 있으신건 잊이 않으셨죠?"


"네. 오랜만에 에밀리랑 세이루스의 얼굴도 보겠네요."


『그러고보면 저는 처음 만나는게 되는군요. 에밀리 양이나 세이루스, 음… 씨라고 해야하나?』


『그냥 세이루스면 돼. 그런거에 신경쓰는 사람 아니니까』


『그럴…까요?』


엊그제였던가. 갑자기 에밀리의 가문인 데린시에르 후작가에서 저녁 식사 초대가 왔다. 그것도 무려 후작님 이름으로 직접. 초대장에는 온갖 미사여구가 다 적혀있어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자칭 초대장 해석에 능통하다는 일레이나의 도움을 빌어 한 줄로 요약해보자면.


'너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 저녁식사에 응해주었으면 좋겠다.'


…였다. 도대체 이 제국의 잘 나가시는 후작님이 이런 별 볼일없는 백작가 영애한테 무슨 볼 일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며칠전의 사건에 관련된 일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아가씨?"


"아? 네, 네! 물론요. 기억하고 있고 말구요. 이따가 준비는 부탁드릴게요."


"네~ 그것보다 아침식사가 준비되어있습니다. 식기 전에 어서 내려오세요"


잠시 대화를 하는 사이 어느새 정리가 다 된 모양이다. 창가에서 고개를 돌려보니 어지럽혀져있던 방 안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역시 20년 가까이 되는 내공은 어디 안가는구나.


……………

…………

………

……



『헤에- 이런 옷을 입으니까 내가 이렇게 보이는구나』


"그 타인을 보는듯한 말은 좀 그만두지 않을래? 이거 일단은 네 몸이라고"


『신기한걸요.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이런 느낌일까 싶어요 』


"실제로 타인인 나는 어떻겠냐…"


거울에 비친 아름다운 얼굴에 약간 씁쓸한 표정이 어린다. 데린시에르 후작님을 만나러 가서인지 나를 꾸며주는 루니에 씨의 손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서는 언제 사두어는지 모르는 드레스에 온갖 장신구 거기다 평소와는 다르게 묶지 않고 뒤로 풀어놓은 머리까지.


『이쯤되면 완벽한 귀족 아가씨네요. 저분 솜씨가 좋은걸요? 올리비에에 맞먹는 솜씨네요』


"…아니 어쩌면 올리비에씨보다 더 오래 했을지도 몰라."


정말 일레이나의 말 그대로다. 평소라면 이런 옷을 안 입으려고 온갖 꾀를 다 부렸을테지만, 오늘은 만나는 사람이 사람이다보니 체념하고 순순히 루니에씨의 손길에 모든 걸 맡겼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거울에 비치는 이 모습.


"그럼 가볼까? 며칠이긴 하지만 에밀리의 모습을 안보니 뭔가 심심하기도 하고."


『도대체 어떤 아이길래 이렇게 푹 빠진거에요?』


"너도 곧 푹 빠지게 될거라고 장담해줄게."


방을 빠져나온 나는 긴 복도와 계단참을 지나 저택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 머리 바로 위에 떠있던 해는 꽃단장을 하는사이 어느샌가 기울어 조금있으면 저녁 노을을 연출하기 시작할 듯 보였다.


"나오셨습니까 아가씨."


"아, 레이먼드 경 오랜만에 뵙네요."


『무사하셨구나. 그 때 마지막으로 보곤 틀림없이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말 안해줬었던가?』


『해주긴 커녕 누구 이야기도 해준적이 없어요. 사실 무사했으니까 여기 잘 도착한거겠지만』


묘하게 일레이나가 삐진 것 같다. 음, 이따 의식 공간에서 설명을 좀 해줘야겠구나. 고작 두 달 정도라고는 해도 기억에 공백이 있다면 이상할테니까.


꽤나 오랜만에 보는 레이먼드 경과 함께 준비 되어있는 마차로 다가가니 여느때와 같이 루엘이 마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따. 다만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풀죽어 있는 모습이다.


사건 이후로 줄곧 이런 모습인데, 아마 자신이 나를 지킨게 아니라 오히려 짐덩어리가 되었다는게 걸리는 모양이다. 평소와 다르게 말 수도 적어지고 필요한 시간 이후에는 줄곧 검술 연습만 한단다.


『루엘녀석 아직도 풀죽어있네요』


『그래도 자신의 역할에는 충실한 녀석이었으니까』


『등짝이라도 한 대 때려줘야 할 것 같지 않아요? 언제까지 저렇게 풀 죽어 있을거람』


『괜찮아. 조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사건 이후로 밖에 다닐때는 호위 기사들이 옆에 붙어다닌다. 귀찮긴 하지만 그런 일도 있고 했으니 어쩔 수 없으려나.


여느 때와 다르게 적막만이 흐르는 마차는 천천히 데린시에르 후작가를 향해 출발했다.


* * * * * * * * * * * * * * * * * * *


"도착했습니다. 아가씨"


"고마워요."


사실 우리 저택에서 데린시에르 후작가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준비하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걸어가는게 더 빠를 거리다. 다만 오늘은 목적이 목적이니 만큼 얌전히 마차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뚱해있는 루엘이 문을 열고 내리고 나 또한 그 뒤를 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우리 저택도 저택이지만 여기는 한 술 더뜨는구나."


"아무래도 아버지가 줄곧 황도에 머무르셔서 일꺼야."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평상시와 똑같은 모습의 세이루스가 서있었다. 사건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세이루스! 몸은 좀 괜찮아?"


"응, 약간 욱신거리는 곳이 있기는 한데 멀쩡해."


『흐응, 이 사람이 세이루스 씨 인가요? 세현 씨의 말대로라면 엄청 어벙하게 생긴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점은 아마 곧 알게 될거야』


"그것보다 루엘은 왜 저렇게 뚱해있는거야?"


"좀 그럴 일이 있어. 오늘은 그냥 내버려 둬."


"녀석 답지 않게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서있지 말고 들어가자. 에밀리가 안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다면 냉큼 들어가야지."


역시나 세이루스도 루엘의 상태에 대해서 물어왔지만, 그저 내버려 두라는 말 밖에는 해줄 수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다.


에밀리는 전투 당시에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어서 거동이 조금 불편하다고 한다. 사실 그런 살벌한 전투에서 그렇게 당하고도 다리가 부러지는 것이면 싼 대가라고 생각되지만.


세이루스를 따라 들어선 데린시에르 후작가의 저택 안은 우리 저택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우리 저택이 간단한 몇 가지 장식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살린다면, 이곳은 말 그대로 화려함이 가득했다. 나름 후작가라는걸까?


"일레이나!"


잠시 저택을 구경하고있던 내 귓가로 단 며칠 못 보았을뿐이지만 꽤나 그리원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의 진원지로 향한 시야에 목발을 짚으며 이쪽으로 한발한발 힘겹게 다가오는 에밀리의 모습이 들어온다.


"에밀리! 괜찮은거야?"


나는 그런 에밀리에게 얼른 다가가 꼭 안아주었다. 사건 이후 만나지 못해 계속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데, 품에서 느껴지는 체온에 속에서 응어리져있던 것들이 모두 날아가는 느낌이 든다.


『세현씨 이거 범죄…』


『시끄러워. 에밀리는 친구라고 친구』


『곧 삼십인 아저씨와 열 넷의 소녀가 친구라 흐흥…』


속에서 비아냥 거리는 일레이나의 말에 절로 주먹이 꽉 쥐어진다. 저걸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응, 다리도 금방 나을거래. 일레이나는 괜찮은거야?"


"그럼. 보면 모르겠어?"


"헤헤. 다행이다. 일레이나도 꽤나 다쳤었다고 들어서 걱정됐었거든"


뭐, 틀린말은 아니다. 제대로 맞은건 복부에 딱 한 방 맞은 그 충격뿐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깨어나서도 한 이틀은 계속 고통에 시달려야 했었다. 덕분에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잘 떄는 일레이나의 수다에 시달리고… 힘들었다.


"자자, 해후를 푸는 것도 좋지만 아버지가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셔. 이야기는 식사 할 때 마저 하도록 하자."


이크, 그러고보니 후작님을 뵈러 온거였지?


거동이 불편한 에밀리는 루엘과 함께 천천히 오기로 하고, 나는 세이루스의 뒤를 따라 후작님을 만나기위해 응접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문득 후작님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다는게 생각났다.


유명한 마법사라는건 알지만 그게 전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사전에 상대에 대해 알아둔다면 대화할 때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세이루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셔?"


"음, 나도 잘 모르겠는걸."


"에?"


세이루스가 건낸 대답에 세이루스의 뒤를 따라 걷던 내 발걸음이 멈췄다. 그것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본 세이루스의 아차하는 표정이 보였다.


"아,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는건 어쩔 때는 한없이 자상하시다가, 어쩔 떄는 또 한없이 무심하시기도 하고. 그래서 잘 모르겠다는거야. 적절한 예를 찾자면… 그래! 기분파라고나 할까?"


"그거 좋은 의미는 아니야."


"그런가. 하지만 그게 가장 적절한 비유같아. 너도 보면 알걸?"


나를 향해 살짝 웃어준 세이루스가 다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데린시에르 후작님 정도되는 마법사라면 그럴법도 해요. 원래 마법사라는게 성과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다보니 당일 성과에 따라서 기분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들은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오늘 기분은 또 어떠실지 모른다는거네』


일레이나의 말대로라면 오늘 내가 가서 해야할 가장 첫 일은 후작님의 기분이 어떤지 파악하는 거다. 기분이 안 좋으신데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뭐, 그래도 손님이니까 내쫓는 정도로 끝나려나?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응접실로 보이는 방 앞에 설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안에 계신가?"


"예, 방금 막 도착하셨습니다."


"좋아, 수고했어요."


문 앞에 서있던 하인이 세이루스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문 옆에 선다.


"좋아, 가자 일레이나."


"어? 응."


『헤에, 아버지에게나 이야기나 듣던 데린시에르 후작님을 직접 뵐줄이야』


왠지 모르지만 일레이나는 뭔가 기대에 차있는 것 같다. 대단한 마법사라는건 알지만 영 공감은 잘 안되는걸.


세이루스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한 홀이나 복도와 달리 응접실은 몇 가지 화초와 그림으로만 간단히 꾸며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방의 중심에 세이루스를 안다면 누가봐도 세이루스의 아버지라고 알 수 있을듯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있었다.


아마, 저분이 데린시에르 후작님.


"아버지"


무언가를 자그마한 수첩에 계속 적어내려가던 후작님은 세이루스의 부름에도 자신이 하던 일만 계속했다.


『에, 저거 기분이 별로이신거 같지?』


『제 눈에도…』


친구의 아버지라고는 해도 후작급의 대귀족을 만나는건 이번이 처음이다보니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버지. 일레이나가 도착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세이루스의 말과 함께 후작님이 이내 수첩을 접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오신다.


마법사라기보다 검사가 더 어울릴 것 같은 건장한 체격에 한쪽으로 잘 빗어넘긴 금발머리는 흔히들 말하는 미중년의 모습이었다. 세이루스도 늙으면 이렇게 되려나?


대귀족답게 그 몸에서 절로 뿜어져나오는 오오라는 왠지 모르게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자네가 일레이나 양인가."


"이, 일레이나 디엘 델피에르입니다.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후작 각하."


『이 대륙 사람 다 됐네요. 그냥 눌러살…면 안되지 참』


자연스럽게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후작님을 향해 나도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건넸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동작이 이어지는 걸 보면 일레이나의 말처럼 적응이 다 된 것일지도.


"편하게 하거라. 그렇게 부담가질 필요는 없다. 그리고 세이루스 나는 잠시 일레이나 양과 둘이 할 말이 있으니 에밀리와 식당에 가서 기다리도록 하여라."


"예, 아버지"


어, 어어? 세이루스 어딜가는거야?


말릴 새도 없이 세이루스는 그대로 뒤로 돌아 방을 나가버렸다. 덕분에 이 응접실이라는 좁은 공간에는 후작님과 나 단 둘이 남게 되었다. 아니 일레이나까지 합하면 셋인가?


"자, 편한 자리에 앉으면 된다."


후작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다시 앉아있던 곳에 가서 앉으신다. 후작님의 맞은편에 앉기에는 뭔가 부담이 되었기에 옆으로 있던 자리에 앉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일단, 며칠전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한마디 하도록 하지."


『올 것이 왔네요.』


한 동안 침묵이 흐르던 응접실의 분위기를 깬 것은 후작님 쪽에서였다. 역시나 예상했던 주제에 왠지 모르게 잔뜩 긴장되기 시작했다. 왜 흔히들 보면 이런 사람에게 대답한번 잘못했다 목이 날아가곤 하잖아?


왜 그런곳으로 갔냐고 하면 어쩌지? 왜 도망치지 않았냐고 하면? 일단 죄송하다고 해야하나?


후작님이 잠시 뜸들이시는 사이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엄친다.


"아들과 딸을 구해준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죄송…에?"


다음에 이어지는 후작님의 말에 반사적으로 사죄의 말을 내뱉을 뻔 했다. 다행히 중간에 멈추긴 했지만, 그것보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거 아니지?


"경비대로부터 자네가 진술한 내용을 전해들었네. 상황을 들어보니 불가피한 전투였던 것 같더군. 조금 다치기는 했지만 저렇게 두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아, 아닙니다. 제가 한 거라곤 그저…"


부드러운 웃음을 짓는 후작님의 모습에 나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도 그것과 관련되어 있지. 자네, 경비대에 정체불명의 단체에게 습격을 받았다고 했던데 그게 사실인가?"


살며시 웃음짓던 후작님이 표정을 굳히신다. 보아하니 내게 궁금한건 아마 이 부분인 듯 했다. 후작님이 내 적이 될 사람도 아니니 말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아니, 오히려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예, 베네딕티오를 사용하는 여자 한 명과 가면을 쓴 남자 한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내 말이 시작되자 후작님은 아까의 그 작은 수첩을 꺼내들어 무언가를 메모하기 시작하신다.


"가면, 가면이라. 그렇다면 자세한 인상 착의는 보지 못했다는거군?"


"여자쪽은 보라색과 은색인지 흰색인지 모를 색이 섞인 긴 머리를 하고 있었고 상당히 아름다웠습니다."


"그 외에 별다른 특이점은?"


별 다른 특이점이라. 뭐가 있었더라? 아, 문신!


"그, 남자의 손등에 마치 똬리를 튼것 같은 용이 그러져 있었습니다."


"용? 잘못 본 것은 아닌가? 그게 사실이라면 상황이 좀 심각해질 것 같은데."


용이라는 내 말에 후작님이 필기를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신다. 그저 바라볼 뿐인데 생각을 읽히는 것 같아.


『뭔가 할 말이라기보단 취조당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왠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확실히 제국 제일의 마법사가 도와준다면이야 한결 추적이 쉬워질지도요. 어쩌면 거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세현 씨의 죽음. 아마 용족과 관련 되어 있을거에요. 만약 습격당한 것이 용족과 관련이 있다면 그 뿌리는…』


『내 죽음과 연결 되어있을 수도 있다는거구나?』


『네』


"일레이나 양?"


"아, 예 죄송합니다. 확실히 그런 문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일레이나와 이야기 하던 사이에 후작님이 재촉하듯 물어오신다. 그리고 그것을 대답하던 와중에 내가 환생할 당시의 사건이 떠올랐다.


맞아, 그때도 분명 똑같은 문양이었어.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카데미 입학을 위해 황도로 올 때, 동일한 문양을 가진 괴인들에게 습격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습격? 하지만 자네가 멀쩡하다는건…"


"예, 모두 격퇴하긴 했습니다만, 물어볼 사람을 남기지 않는 바람에."


"그랬었군."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수첩에 무언가를 적어넣은 후작님은 다시 그것을 품속으로 집어넣으셨다.


"고맙네. 개인적으로 좀 조사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말야. 마법사의 변덕이라고 해두지. 그건 그렇고 동일한 단체에게 두 번이나 습격당했다는건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네 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후작님의 눈빛에 약간 싸늘함이 깃든다.


"그,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세이루스와 에밀리는 또 다시 며칠전 같은 사건에 휘말리 수도 있다는 셈이 되는군."


"…"


실수다. 이건 미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언제 습격당할지 모르는 위험한 사람의 곁에 자신의 자식을 놔두는 부모가 어디있겠는가. 이대로라면 세이루스 그리고 에밀리와는 헤어지게 되…


"뭐, 별 상관은 없다. 그 애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겠지. 그 아이들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경호를 붙일것이니 그렇게 세상이 무너진듯한 표정을 지을 것 까지는 없다."


방금까지의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후작님이 다시 웃어주신다.


『한 방 먹었네요. 후작님, 생각보다 재미있으신 분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잠시만, 그러니까 저 말은…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둘의 좋은 친구로 남아준다면 그걸로 좋다는거다."


"가, 감사합니다. 후작각하… 정말로…"


왠지 모르게 속에서 울컥하는 기분이 올라온다. 처음엔 멀리하려고만 했던 인연이었는데, 어느덧 이렇게 내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나 싶다.


"뭘, 감사 인사는 그 아이들에게 하면 된다. 사실 원래는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이루스와 에밀리가 끈질기게 와서 조르는 통에 말이지. 여태 그런 모습을 보여준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래서 흥미가 생겼을 뿐이라네. 자, 식사나 하러가도록 하지. 아마 둘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예!"


그리고 일어서 응접실을 나가시는 후작님을 따라 나 또한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처음으로 1만자를 넘겨보네요 (...)


쓰다보니 무아지경이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5.10.06 14:30
    No. 1

    설마..정신연령이 저기서 멈추는거 아니겠죠?
    그리고 나중에 "나랑 결혼할 사람~" 이라고 데리고 나오..
    그전에 육체는 어쩌고..으음..
    어쨌건 주인공만 구르겠군요.
    확실한건 그렇군. 명복을 빌어야지.
    하나는 쉬고 싶은데 하나는 심심하다며 놀자고 하고.
    계속 피곤한 상태가 될지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9 에일라스
    작성일
    15.10.06 19:03
    No. 2

    피로가 누적되고 누적되고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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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 녹색 보석을 가진 늑대 (2) +2 15.10.18 382 2 19쪽
31 30. 녹색 보석을 가진 늑대 +2 15.10.16 396 0 16쪽
30 29. 고민, 그리고 고민 +2 15.10.13 375 5 17쪽
29 28. 당혹스러운 진실 +4 15.10.10 340 5 23쪽
28 27. 강해지려면 필요한 것 +2 15.10.07 404 5 18쪽
27 26. 데린시에르 후작가에서 (2) +3 15.10.04 371 4 17쪽
» 25. 데린시에르 후작가에서 +2 15.10.01 428 3 23쪽
25 24. 어둠의 끝 그리고 조력자 +2 15.09.28 367 3 20쪽
24 23. 어둠 속에서 +2 15.09.26 429 4 18쪽
23 22. 춘제 그리고… +1 15.09.23 448 4 18쪽
22 21. 춘제 준비 (2) +2 15.09.20 373 4 17쪽
21 20. 춘제 준비 (1) +1 15.09.09 553 4 19쪽
20 19. 차이 +2 15.09.06 449 6 16쪽
19 18. 동아리 (3) +1 15.09.03 495 6 17쪽
18 17. 동아리 (2) +6 15.09.01 433 8 17쪽
17 16. 동아리 (1) +2 15.08.30 518 6 17쪽
16 15. 재수없는 3인방 (2) +3 15.08.27 591 8 16쪽
15 14. 재수없는 3인방 (1) +5 15.08.25 401 11 20쪽
14 13. 실마리 15.08.23 548 7 19쪽
13 12. 친구 +1 15.08.12 653 7 15쪽
12 11. 입학식 +1 15.08.08 689 9 16쪽
11 10. 입학 전날 +2 15.08.05 1,224 9 13쪽
10 9. 다시 황도로 +4 15.08.01 612 11 9쪽
9 8. 습격(2) +3 15.07.29 579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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