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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1.05.26 19:02
최근연재일 :
2021.06.01 17:59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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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수 :
30,646

작성
21.05.2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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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탈출

DUMMY

3일 전, 내가 무인도에 가서 행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던 그 생사결.


생사결의 약조를 한 것은 하루 전이었다.


상대는 천마신공인지 뭔지를 쓴다던 애송이였다.


그녀는 내가 어떤 녀석인지 뻔히 알고도 뻔뻔하게 정면에서 생사결을 언급해왔다.


생사결을 제안하는 순간, 살의를 보이는 순간 베어버린다. 나를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있게 해준 삶의 철칙이다.


그렇지만 무한의 이치를 얻고 나서부터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사라진 참이었다. 언제 어디서 습격이 오든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히 그녀를 곧바로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만······.


"제가 알기로는, 무한 씨께선 아예 들이받을지언정 물러나는 일은 결코 없는 분이실 텐데요."


건방진 꼬맹이었다. 설마 그런 식으로 도발을 해오다니.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가 당장 무슨 짓을 하든 이 자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단언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장 검집을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검을 뽑아 그녀를 베어버릴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당연히 무한속의 발도였다. 발도와 참격이 동시에 행해지는 그것.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맨몸으로 버텨냈다. 그것도 생채기만 남은 수준으로 말이다.


나와 비슷한 녀석이었다. 한 번 결심한 것은 어떤 외압이 가해지더라도 반드시 해낼 수 있는 관철자.


신선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살기 위해서, 그리고 피하기 싫어서 싸워온 것이었다만, 무한속을 익히고나서는 삶이 지겨워졌던 참이다.


목숨을 건 싸움을, 사실 마음 한 켠에서는 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는 녀석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장소와 일시까지 잡아 준 것이었건만······.


"내 마음 속에서 피어오르던 불꽃을 폭우와 파도가 꺼트려 버렸다."


하늘은 창창했다. 3일 전엔 그렇게나 찡그리고 있었으면서, 이제와서 저런 태연한 표정을 짓는 것은 얄밉기 그지없었다.


"그 때문에 재미난 일을 못 하게 되었으니, 대신 황제를 상대로 충분히 즐기다 돌아가 주겠다는 거다."


이곳은 대국이다. 그리고 그 대국을 통제할 정도의 인물이면 필히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죽은 불꽃을 다시 살려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직감했다.


한편 사람들은 또 대답을 못하고 입을 봉하고 있었다. 세상에 나만 있는 것처럼,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제정신이십니까? 나, 나으리······."


그런 와중, 멈춘 시간 속에서 여화만이 유일하게 시계침을 돌렸다.


한 순간이었지만 그녀에게서 울분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 화내지?"

"무모한 짓이잖습니까. 나으리께선 가뜩이나 외적으로 의심받고 계신데, 내륙엔 철인들이 드글거리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중원으로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날 걱정해 주는 거냐?"

"······."


우물쭈물거리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걱정을 하려면 네 몸이나 걱정해라."

"네?"

"너도 나와 함께 간다."


침묵, 내 발언은 기어코 그녀의 시간마저 멈추고 말았다.


"네에에에?"


곧이어 미친듯이 소리를 내지르는 여화.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혼자서 이리저리 해매고 부딪치며 빙 돌아가는 것도 나름 괜찮을 테지만,


3일 동안 바다를 표류한 일로 인해 나의 젊은 치기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러니 조금은 차가워진 머리로 생각해보자면, 역시 동행자는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그 동행자로서 가장 적합한 것이······.


"너는 꽤 박식한 것 같으니 데리고 다니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여화, 그녀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그 깡통들을 원거리에서 통제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냈다.


적어도 3일 전의 나처럼, 폭우가 내리는 날에 배를 띄운다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자, 잠까아아안!"


두 손을 내저으며 저항하는 여화.


"말도 안 됩니다! 황제를 만나러 간다니요!"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나 뿐만 아니라 그녀 또한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너, 깡통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노력해서 방법을 찾으려 했잖아. 그리고 내가 지금 너한테 기회를 주겠다고 말하고 있잖아. 그런데 거부할 거냐?"


여화는 단어가 목에 막혀 쉬이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밖에는 철인들이 엄청 많이······."

"밖에 나가 본 적 없다며. 너 황제를 만나본 적 있나? 밖에 어떤 깡통들이 있는지 보았나? 아니잖아. 직접 보지도 못 한 걸 왜 두려워 하지?"


그러자 여화가 버럭 외쳤다.


"제 말은 귓등으로 들으셨습니까? 외적으로부터 인간을 수호할 목적으로 철인들을 대량으로 배치해 놨단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말도 안 되는 게 당연하잖습니까! 두 명이서 그 많은 철인들을 뚫고 인간들의 도시로 가서 황제를 만난다는 게!"


내게 비굴하게 굴던 태도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기에, 물러나지 않고 더욱 자극했다.


"황제가 무서워서, 적들이 많아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어서, 이것 때문에 안 된다, 저것 때문에 안 된다,


괜찮은가? 평생 그렇게 제한 투성이인 삶을 살게 되어도?"


입을 닫은 채 나를 맹렬히 쏘아보는 여화.


"······바보 같아! 말이 안 통하네."


그녀는 내게서 등을 돌려 버리고, 나는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 내 무한인의 초식들 중 하나인 무한속은 검을 뽑는 것과 베는 순간을 같이 한다. 무한한 속도를 낼 수 있기에 무한속이라 불리지. 네 머릿속에 든 상식으로 이것이 설명 가능하나?"


그 말에는 대답을 못 하는 여화.


"네가 설명할 수 있든 못 하든 어쨌든 나한테는 가능한 일이다. 잠재력의 무한, 무제한을 믿지 못 한다면 유한, 제한은 끊어낼 수 없다."

"그럼 증명해 보세요."

"뭘?"

"저희들이 당장 이곳을 나갈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어요."


그녀가 내게 내민 도전장이었다.


물론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받아주지."


그녀는 나를 어디론가 안내하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하문섬 북서쪽에 있는 출입구였다.


그 출입구는 크고 두꺼운 성문이었으며, 옆으로 마찬가지로 두꺼운 성벽이 세워져 있었다.


"이 문은 하급 집행관의 권한으로는 열 수 없어요. 빠르기만 한 당신의 검으로 이 문을 어떻게 뚫을 건데요?"


따지듯이 묻는 여화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필요없다."

"네?"


나는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이 뚫려 있다. 그 말은 성벽을 기어올라가 넘어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처음에 흘러들어온 해변가에 벽은 없었다. 그 말은 즉 헤엄쳐서 건너편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

"······."

"너희는 건너가고자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건너갈 수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네가 원하는 대답은 이런 게 아니겠지."


나는 검을 천천히 뽑았다. 그 무엇도 베지 않았다. 그저 뽑을 뿐이었다.


"네가 알고자 하는 것은, 과연 내륙에서 살아갈 수 있을만한 힘이 내게 있는가."


그리고는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높게 솟아오른 성문의 중앙, 세로로 난 빈틈을 칼날로 노렸다.


"이게 내 대답이다."


무한인 3식,


"무한한 것은 속도만이 아니다."


무한절無限切.


철문 중앙의 빈틈에 칼날이 박힌다.


미세하게 떨리는 진동, 그것을 검기에 부여한다.


검기에 새겨진 진동은 물체를 조금씩 깎아나간다.


벤다기 보다는 깎아내는 것, 그것이 무한절의 이치였다.


그렇게 위에서 아래로, 검에 닿는 모든 것을 끊어낸다.


불똥이 튄다. 굉음이 터진다. 검이 쇳덩이를 뚫고 나온다.


그리고 문이 열린다. 바람이 분다.


찬란한 푸른 바다, 길게 이어진 도로, 그 너머에 있는 거대한 성벽과 성문, 그리고 도시, 그것들이 한꺼번에 망막에 때려 박혔다.


문이 완전히 열린 뒤에도 여화는 조용했다. 나는 뒤통수로 그녀에게 말했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다면, 무한한 힘 또한 마땅히 낼 수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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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유의 증명 21.06.01 19 0 7쪽
6 미쳐버린 환대 21.05.31 21 0 11쪽
5 여정의 시작 21.05.30 20 0 7쪽
» 탈출 21.05.29 25 0 9쪽
3 자유의 관철자 21.05.28 24 1 9쪽
2 어린 날의 과오 21.05.27 38 2 12쪽
1 나는 병신이다 21.05.26 7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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