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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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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1.05.26 19:02
최근연재일 :
2021.06.01 17:59
연재수 :
7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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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6
글자수 :
30,646

작성
21.05.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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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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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어린 날의 과오

DUMMY

"히익!"


홀로 남은 수금원이 팔을 마구잡이로 흔들며 도망치는데, 나는 곧바로 쫒아가 그녀를 붙잡아 바닥에 매쳤다.


"케흑!"


수금원은 그 충격으로 기절해버리고, 주변에서는 주민들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예지 또한 집 밖으로 뛰쳐 나와서는 내게 굉장하다며 칭찬을 해주는데, 얼핏 보아서는 불안에 빠진 이들은 없는 듯했다.


아마도 이녀석들 이외에는 지금까지 외적이란 게 쳐들어 오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래가 내게 베여도 괜찮겠냐느니 온갖 허세를 부렸건만, 막상 아무도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니 피가 얼굴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후우."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흰 구름이 떠 다니는 푸른 하늘. 내 고향에서 보았던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다.


'우리 아亞나라에선 볼 수 없는 이 파란 천쪼가리, 분명 외적의 표식입니다.'


아亞나라, 분명 예지의 아버지는 이 나라의 이름을 그렇게 일컫었지.


나 혼자 이런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땅에 안착하게 되다니, 정말로 가슴이 두근거리······


······기는 개뿔,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 다시 바다로 나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바다는 평화로워 보인다만, 지도도 없이 이 망망대해를 또 떠돌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저승에 계신 조상님들을 뵈러 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도를 찾았는데, 예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그런 건 없어요."

"뭐?"

"마을 하나 지도라면 몰라도 나라 전체 지도를 만드는 건 금지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아나라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 몰라요. 평생 동안 한 마을에서만 눌러 살아야 하는 거에요. 물론 저 바다 바깥도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고요."


심장이 철렁거렸다. 지도가 없다고? 아무리 외적을 막고 싶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한다고?


아니, 그보다도,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이 나라를 관리하는 놈은 도대체 대가리가 어떻게 되어 있는 거냐.


그렇게 혼자 속을 썩였지만, 사실 별 의미는 없었다. 이 나라 토박이가 그렇게 말하는데 달리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기절한 수금원을 억지로 깨웠다. 그녀가 신음과 함께 눈을 부스스 뜨고, 나는 곧바로 질문을 바구니째 쏟아부었다.


그녀의 이름은 무엇인지, 예지의 말대로 두 달 전에 이곳을 점거했는지, 그 이유는 사리사욕을 위해서인지, 너희 말고도 외적이 더 있는지.


수금원은 내 매서운 태도에 벌벌 떨면서도 대답을 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여화麗華라고 한다.


여화의 말에 따르자면 다 맞지만, 자기들 녹적단綠賊團이 이 근방에선 유일하게 있던 외적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들은 일개 도적단일 뿐이며 관아에서 이르는 외적과는 의미가 다르다 하였다.


"하지만, 나으리께서는 관아에서 말하는 바로 그 외적이십니다. 관아에선 아나라 밖에서 찾아오는 사람 전원을 외적으로 간주하고 있습죠."


깡통 둘을 곁에 대동하고서 죽일 듯이 일갈하던 아까와는 달리, 갑자기 말투와 호칭이 비굴하게 바뀐 여화.


"아까 나으리께서 토막내버리신 그 깡통들은 관아의 하급 집행관입니다. 외적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 인간, 철인鐵人이죠."


기계 '인간'? 말도 못 하고 사람의 피도 흐르지 않는 깡통 치고는 꽤나 분에 넘치는 이름을 달고 있군.


"하급이라도 평범한 인간은 수십이 달려들어도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한데, 나으리께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검격을 구사하시어 집행관을 처치하시니, 그 신기에 제 눈이 정화되는 듯합니다. 나으리께선 도대체 정체가 어찌 되십니까?"


여화가 두 손을 비비며 간사한 표정과 말투로 내게 아부를 해왔다. 아부 따윈 하든 말든 상관은 없다만······.


"그냥 길 잃은 사람인데."


딱히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추, 출신지가 어떻게 되십니까?"


당황하는 여화의 물음에 나는 내가 떠밀려온 바다 쪽을 가리켰다.


"여기 바다 너머의 공功나라라는 곳에서 왔다만, 알고 있나?"


그러자 굳은 미소를 지으며 눈만 멀뚱멀뚱 뜨는 여화.


"아니요······ 생전 처음 들어봅니다."

"그러냐."


입만 요란하고 실속은 없는 녀석이군.


"여화!"


그때 멀리서 젊은 사내의 외침이 들려왔다. 회색 활동복을 입은 다른 주민들과는 달리 그들은 제각기 자기들 편할 대로 입고 있었다.


또 그들은 급하게 달려온 듯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여화는 그들을 알고 있었는지 태연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화, 괜찮냐?"


무리를 이끌던 청년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 여화.


"아니, 쫄딱 망했어."


그녀가 그리 말하고서 나를 돌아보는데, 나는 눈에 힘을 주고 그녀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히익! 놀라며 고개를 돌리는 여화.


청년이 나를 더러 누구냐고 묻는데, 그 옆에 있던 머리 빡빡 민 청년이 그딴 것보다 큰일 났다며, 우리 다 망했다고 다급하게 외쳤다.


"이미 망한 것 같은데 뭐가 더······."

"아니! 중급 집행관이 이변을 눈치챘어! 북서쪽 입구로 철인들을 이끌고 쳐들어 왔다고!"

"뭐라고?"


그 말에 벌컥 정색을 해버리는 여화.


"그 놈이 갑자기 왜······."

"몰라! 우리가 한 짓이 아니라고 발뺌하긴 했지만 이미 6명이 죽었어."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동요하는 여화.


"통제기는?"

"씨알도 안 먹혀!"

"자헌은?"

"죽었어!"

"젠장."


여화는 이를 악 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어깨와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 일품이었다.


"나으리, 이 마을을 통제하던 녹적단도 실은 더 거대한 세력에게 통제받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 끝났어요. 여기 인간들 전부 다 몰살당할지도 모릅니다."


이후 여화가 이야기 해주기를, 이 마을을 통제하겠답시고 설쳐대던 그들 녹적단은 사실 이 섬 북쪽에 살던 토박이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썰어버린 하급 집행관들이 원래 이곳, 하문厦门섬의 통제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화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말이다.


여화를 비롯한 몇몇 젊은이들은 언제부턴가 이에 불만을 갖게 되었는데, 여화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기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다 마침내 하급 집행관들을 원거리에서 통제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했다고 한다.


"이것이 통제기입니다."


길고 넓적하고 검은 막대기를 품에서 꺼내는 여화.


"이런 걸 만든 뒤엔 그나마 쾌적하게 살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우물쭈물거렸다. 대강 무슨 일인지 알겠군.


"갑자기 없던 권력욕이 샘솟아 같은 마을 사람들을 핍박했다?"


그 말이 정답이었는지, 여화는 죄송하다고 하였다.


"통제 때문에 남쪽 마을 사람들과는 만날 기회도 없었는데, 그걸 이용해서 외적인 척을 했습니다. 첫 만남이 이런 식의 만남이 되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런 사과는 마을 사람들에게나 하라고 말하려던 그때, 육중한 목소리가 우리들을 때렸다.


"사과 같은 건 너희 육인肉人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나 같은 철인鐵人들을 향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 싸웠던 하급 깡통들처럼 키가 큰 놈이었다. 하지만 그는 옆으로도 커서 더욱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중급 집행관인 철광鐵曠이다. 하급 집행관 2체가 여기서 파괴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너희 육인들 중에서 6명을 처리한 것이다. 육인은 육체도 정신도 불완전한,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이니 이 정도는 해줘야 수지타산이 맞다."


그 말에 녹적단원들은 중급 깡통을 향해 눈을 부라렸지만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기만 했고, 깡통은 그들을 비웃듯이 말했다.


"나약한 육인, 애초에 너희 육인 따위를 여기서 일하게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너희들은 일할 필요도 돈을 낼 필요도 없다."


'부당한 노동을 시키면 안 된다' 라고 의외로 바른 말이라도 하나 생각했지만······.


"너희들은 황상皇上께 버림받은 놈들이다. 내륙에서 사는 걸 허락받지 못한 놈들이다. 버려진 쓰레기일 뿐이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비참하게 살아갈 바엔 차라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낫다는 거다."


그럼 그렇지.


"애초에! 황상께선 육인의 불완전성을 혐오하시어 철인의 세상을 만드셨다. 철인은 항상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며 명받은 것 이외의 딴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속된 말에 현혹되지 않는 건강한 정신과, 총포에도 망가지지 않는 굳건한 신체를 가진 것이 바로 철인······."

"육인이니 철인이니 지랄염병을 떨어 대는군."


내 참을성은 널널하다. 바다보다 넓다. 그런데 방금 그 한계를 넘어버렸다.


"깡통 나부랭이가 자신을 철'인'이라 칭하는 게 더 신기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주제넘은 소리를 지나치게 길게 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깡통에게 인권이 생겨난 거냐? 내 나라에선 깡통 따위는 머리 뚜껑을 따이고 내용물을 먹히는 것 외에는 권리가 없었는데 말이다. 깡통 따위가 세상 좋아진 줄 알아야지."


녹적단원들이 우스꽝스럽게 입을 쩍 벌리고 말 없이 놀라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마음대로 내뱉었다.


한편 깡통은 입을 다물고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는데, 갑자기 그의 하나 뿐인 눈이 붉게 점멸했다.


그 다음에 그가 내뱉은 말은 걸작이었다.


"네놈, 외적이로군."


하, 그래, 결국 외적 몰이를 하겠다 이거지?


여기 주민들 뿐만 아니라 깡통에게까지 외적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흐흐흐."

"뭐가 웃기나?"

"아니 그냥, 뭔가 웃겨서."


깡통은 손을 들더니, 그를 따라온 하급 깡통들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외적, 준비해라. 생사결生死決이다."

"생사결?"

"그래, 뭔지 아나?"


생사결, 그 말을 들으니 더욱 웃음이 나왔다. 나는 웃음을 참을 생각도 없이 그대로 깡통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생사결? 당연히 알지, 그건 우리나라에도 있는 풍습이다."


알고 말고, 내가 폭우 속에서 배를 탄 것도 바로 그 생사결을 하러 가기 위해서였지.


생사를 정하는 결투, 그것이 바로 생사결이다.


"그럼 얘기는 빠르겠군. 당장 준비······."


깡통이 그 말을 할때, 내 검은 이미 검집에서 튀어나와 그의 머리 뚜껑을 날려버린 뒤였다.


무한인 1식 무한속.


뚜껑이 떨어져 나가, 머리에서 전기를 지직거리며 뿜는 그에게 내가 일갈했다.


"생사결, 네 말대로 응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선 생사결을 이렇게 한다.


준비하고 시작? 생과 사가 갈리는 싸움에 그런 건 없다. 알아들었나? 중급 깡통."


그런데, 그의 외눈이 또 한 번 붉게 점멸했다.


"네놈의 나라엔 결투는 알아도 명예는 모르는 짐승들 밖에 없는 모양이구나."


그의 웅웅 울리는 짜증나는 목소리 또한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애초에, 외적에게 그런 걸 기대한 내가 잘못이었다."


깡통은 손등에서 붉게 빛나는 칼날을 뽑아냈다. 여기까진 하급 깡통과 동일했다. 다만 그의 칼날은 아丫자로, 3갈래로 솟아나 있었다.


3갈래의 칼날은 마치 풍차처럼 빙빙 돌아가기 시작했다. 매우 빨라서 원반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


"집행하겠다."


그가 내 머리통을 향해 원반을 내리쳤다. 이것 또한 하급 깡통과 동일한 양상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딱 한 가지,


머리가 토막나 죽기 1초도 남지 않은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내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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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유의 증명 21.06.01 19 0 7쪽
6 미쳐버린 환대 21.05.31 21 0 11쪽
5 여정의 시작 21.05.30 19 0 7쪽
4 탈출 21.05.29 24 0 9쪽
3 자유의 관철자 21.05.28 24 1 9쪽
» 어린 날의 과오 21.05.27 37 2 12쪽
1 나는 병신이다 21.05.26 72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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